한마디 먼저 건넸을 뿐인데 - 아무도 몰라주던 나를 모두가 알아주기 시작했다
이오타 다쓰나리 저자, 민혜진 역자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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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밀폐되어 있는 공간에 둘만 있다는 것은 상상만도 싫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 부장님과 외근을 나가는데 같은 성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적막하게 있어야만 했는데, 그것을 깨뜨린 사람은 나였다. 차라리 내가 운전을 했다면 좋으련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기 때문에.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주로 질문을 하는 편인데, 그때 도대체 무슨 질문을 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부장님의 아이에 대해 물었겠지. 나는 그 사람이 혼자서 몇 분 정도는 술술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하곤 하니까. 차라리 나는 상대가 혼자서 술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나는 친구들과의 수다가 아닌 직장동료들과의 잡담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조차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하지만 친한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하거나 여러 명이 함께 대화를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참...)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상황만 있을 수는 없고, 싫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며칠에 한 번쯤은 꼭 부딪히는 게 잡담 시간이었다. 그게 찰나의 시간, 아주 잠깐이라도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잡담의 기술을 익히기보다는 잡담을 하는 그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읽어보고 싶었다.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책들에서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하지만, 잡담에서는 예외라고 한다. 처음부터 열린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고.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요즘 어때?” 대신에 “일은 잘 돼?”라고 묻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요즘 어떠냐는 말은, 업무의 진행 상황을 묻는 건지 업무와는 관계없는 일을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설교하기 전에 떠보려는 건지 헷갈리기 때문이라고. 그걸 듣고 나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요즘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요즘요?라고 되물으며 그냥 뭐 똑같다든지, 아무 일도 없다든지 하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요즘 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나, 내가 요즘 뭐가 있었나 하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런 대화법에서 신선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무심코 습관처럼 애매한 질문을 했다면 곧바로 다음의 예시처럼 상대방이 대답하기 쉽도록 말을 덧붙이라고 한다. 물어보기 쉬운 질문이 아니라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할 것.

“요즘 어때? + 예전에 말했던 프로젝트는 끝났어?”

“주말에는 보통 뭐 해? + 지난 주말에는 뭐 했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



위와 비슷한 예시로 “OO 씨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대신에 “최근에 빠져 있는 게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 좋다.

생각을 해보니, 나 역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겉돌았던 적이 있다. 오히려 취미가 공통인 모임에 갔을 때 그 취미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겠지. 책의 질문처럼 요즘 빠져있는 게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8월 30일에 저한테 개조카가 생겼는데요. 원래 개는 좋아하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는데, 개조카는 좀 귀여워서 사진도 저장해두고 즐겨찾기에 해놓고 보고 있어요. 요즘은 산책하면서 제 개조카랑 닮은 개들이 유독 많이 보이고 그러는데 은근히 내 개조카가 좀 더 예쁘네. 해요. 그리고 남동생이 개조카 사진을 가끔 올리는데 좀 자주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런데 남동생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는 부분이에요.”라고(...)

“제가 몇 달 전부터 해피트리라는 식물을 키우는데, 날씨가 좀 추워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햇빛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그밖에 제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생긴 건지 연두색 잎이 노랗게 되어버렸더라구요. 낙엽은 아닐 텐데 좀 속상해요. 그래서 출퇴근길에 주시하고 있는데 다시 싱싱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라고(...)



대화를 할 때, “왜 그랬어요?”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자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시가 있어 읽어보니 왜?라는 물음은 내가 편하기 위해 하는 물음과 같았기 때문에. why가 아니라 how를 묻기. “어떤 상황이었어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잡담의 기술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법이라든지, 칭찬을 인사말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법이라든지, 선 넘은 질문을 받았을 때라든지, 모든 말에 리액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든지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의 가장 큰 영감님은 리액션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 보이지만), 말을 끝내는 기법이라든지 하는 팁들이 많이 있기에, 잡담이 어려운 사람들이 읽는다면 공감도 하고 팁도 얻어 가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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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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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는 내 범주에 크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배우로서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 영화들을 찾아볼 정도로 광팬은 아니었다. 어떤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그 영화에 하정우 씨가 나오면 “볼 만하겠네.” 정도인 배우.

그런데 그런 그가 몇 년 전에 걷는 것에 대해 책을 냈다고 했다. 바로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어쩐지 꺼려졌다. 연예인의 책을 읽고 감흥이 길었던 적이 거의 없는 까닭이었다. 그들의 책을 읽고 나면 단지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사람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웃님의 서평을 보고, ‘읽어봐도 좋겠다.’하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 이후로도 책 구매는 계속 망설였다. 여름에는 덥다고, 습하다고, 끈적거린다고 걷는 일을 멈추고 있다가 내가 선포한 가을, 9월이 되자마자 나는 걷기를 계획했고, 주문을 실행해 비로소 이 책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8.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하진 않고 달라지는 풍경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걷거나 운동장 트랙을 도는 것보다 공원을 걷고, 골목길을 걷고, 도시를 걷는 일을 즐긴다. 그리고 목표 지향적인 까닭에 대부분 도착지를 설정해두는 편이기도 하다. 어쩐지 그래야만 목표 달성한 느낌을 받아서.

하루 보통 3만보, 가끔 10만보까지 걷는다는 하정우 씨를 보며, 나는 기껏 해봐야 팔천보에서 만보 정도인데. 하며 주눅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보를 넘어가면, /우와 나 오늘 진짜 많이 걸었다! 야호!/ 하며 굉장히 기뻐하는 사람이 나인데. 으흐흐

10. 걷기 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오늘은 얼마나 걸었나 서로 내기하고 응원하며 계속 걷는다. 내가 사는 도시를 내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네에 연결된 작은 골목길들을 알아가는 게 나는 즐겁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소풍 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건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나도 하루쯤은 그대로 이불 속에 파묻혀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귀찮음과 게으름을 딛고 일어나 몸을 움직여 걸으면, 이내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멀고 막막해 보였던 세상과 나의 거리가 훅 당겨진다.

타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 걷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그 지역의 깊은 곳까지 걸어본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윤이 그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걸었던 것처럼. 나는 눈으로 스윽 본 곳은 쉽게 잊어도 발이 닿은 곳은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 지역을 깊숙이 알고 지내기에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올 3월 즈음에 걷기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모임은 하루 만보를 걷고 인증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목표가 8000보인 나에게도 만보를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8000보가 목표라면 2000보만 더 걸으면 되는데, 그 2km 걷는 게 생각보다 잘 되지가 않는다. 물론 이전에 몇 년 동안 착용하던 샤오미미밴드라면 생활 걸음으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샤오미미밴드 대신 좋아하는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생활 걸음보다 작정하고 걸어야 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게 더 운동이 잘될 거라며 혼자 위안을 삼기도 한다. 하하

154.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서평을 쓰게 된 오늘 아침, 나는 체중계를 보고 뜨악하고 놀란 것과 어제 먹은 저녁을 소화시킬 요량으로 공복으로 3.5km(40분가량)를 걷고 왔다. 하정우 씨 말대로, 우선 몸을 일으켜 걸으러 나가면 어쨌든 걷게 된다. 신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새삼스럽게 참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뎌보는 것.

책을 읽고 있노라면, 몸을 일으키고 산책을 나가고 싶게 만든다. 묘한 매력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걸었다. 책을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고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오기도 하고, 평일에는 점심시간에 밥 먹고 근처 산책로를 걷다 오기도 했다. 하정우 씨의 글은, 내게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58.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나른해질 때가 있었다.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피로가 풀릴 때도 있기는 있었겠지? 나는 정말 내가 피곤을 느낄 때, 누적된 피로들을 날려줄 수 있는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공들여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공감을 한다.

186. 별 뜻 없이 한 말도, 일단 입 밖에 흘러나오면 별 뜻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걷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70% 정도라면 나머지는 하정우 씨의 생활습관이나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요리, 직업, 그림, 독서, 대인관계, 말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 그 부분들에 대해 배우 하정우가 아니라 인간 하정우를 읽을 수 있었고, 그 바르고 건강한 가치관들 덕에 그가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 읽기 쉬운 정갈한 글솜씨도 한몫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하정우 씨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어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다.

292.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책에는 하와이도 참 많이 나오는데 하정우 씨 덕에, 풍광이나 일몰, 바다가 아니라 걷기 위해 하와이에도 가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 속에 소개된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도 읽어봐야지. 그리고 오늘도 J가 시간외근무가 끝나고 오면 슬렁슬렁 하품하는 퓨마처럼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걸으러 나가야겠다.

덧.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아낌없이 밑줄을 좍좍- 그어가며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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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사의 동물병원 이야기 김야옹 수의사의 동물병원 이야기 1
김야옹 지음 / 뜻밖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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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가 큰 코 다칠 뻔했다. 책의 첫 페이지, 고양이 두 마리의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책을 읽으며 마시려던 커피를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이야기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길고양이나 유기견에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고, 사료를 사서 줘본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까이 다가오면 오히려 피하기 일쑤다. 살아있는 동물들을 만진다는 게 아직까지 나한테는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임을 동반하는 문제라서 반려동물을 들일 생각은 전혀 안 하거나 못 하고 있지만,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멀리서 보며 고양이 야옹~이라든지, 너 어디 가~ 하고 말을 붙이는 정도가 되면서도 조금씩 관심이 간다.




그러다가 필명이 너무나도 귀여운(필명이 아닐 수도 있을까?) 김야옹 님의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사의 동물병원 이야기가 눈에 띄었고, 읽어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 분, 참 멋지다. 30대의 늦은 나이에 수의대에 입학하고 수의사가 된 것이 멋지다는 게 아니라, 동물들을 대하는 따듯한 마음들, 동물들을 사랑하는 시선이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 마음 때문에 아내인 김부장님에게 구두로 이혼을 몇 번이나 당하는 신세가 되기는 하지만,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더 빛나는 예쁜 마음인 것이니까.

몇 년 전, 1차선만 있는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에 다친 건지, 일어나지 않고 야옹야옹 우는 어린 유치원생 같은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사람이 옆에 쓰러져 있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나갈 사람이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왔었는데, 그게 아님을 그때 새삼스레 느꼈다. 다행히 어쩌지 못하는 나 대신에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이 고양이를 걱정하고 있는 걸 몇십 분 동안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처치를 잘 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그 고양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좀 더 용감한 사람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다친 동물을 동물병원을 데리고 갔을 때 비용 부담은 데려온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치료를 받은 이후의 거취 문제도 신경을 아예 안 쓸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부분을 감안하기도 하고 거취 문제는 잠시 뒷전으로 미뤄서라도) 아픈 동물을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가져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데려온 동물들을 경제적인 부분에서 조금 손해로 보더라도 치료를 해주는 수의사들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역시.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동물병원에 간 적이 한 번 있는데, 중학생 때 아주 잠시 키우던 강아지가 아팠을 때였다. 아주 잠시라는 것은, (엄마가) 강아지를 강아지 가게에서 금액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는데, 어느 날부터 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친구랑 택시를 타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 새끼 강아지, 요크셔테리어는 죽었고, 내가 그 개를 데리고 왔는지 아니면 엄마가 데려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강아지를 잘 묻어주고 온 기억밖에.


변을 보지 못해 죽을 것 같던 미루가 살아난 것도, 새 주인에게 입양되었지만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버림받았던 쫑이가 소운이로 새로이 태어나 행복하게 살다가게 된 것도, 동동이와 봄이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이 된 것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취준생이 데려온 튼튼이가 살아난 것도, 죽을 병에 걸려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다닌 길고양이 봉순이가 살아난 것도, 죽기 전에 수액이라도 한 번 맞춰보자던 다람이가 살아있는 것도 모두, 한 사람의 덕분이 아니라 마음이 따듯하고 여린 사람들이 그 생명들을 잘 보살펴주었기 때문일 거다. 튼튼이를 포기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던 취준생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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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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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엄마한테 뭘 기대해?”

“아니. 엄마는 더 이상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설명도, 사과도.”

“그럼 엄마를 용서했어?”

 

용서… 거창한 말이다.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겠다고 저자가 열네 살에 집을 떠난 엄마.

저자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 나는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는 대상을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에 우습게도, 그동안 미워했고 싫어했던 대상들에게도 용서라는 단어는 적절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분명 나는 그들에게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고, 분명한 것들로 인해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용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왜 자꾸만 불편했을까. 그렇다고 화해의 대상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오간다고 하더라도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도대체 용서라는 것은 무엇이고, 용서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오히려 책이 질문을 던진다.

1. 용서는 이해한다는 뜻일까

2. 용서는 사랑한다는 뜻일까

3. 용서는 망각한다는 뜻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사랑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망각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세 가지가 결합되어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세 가지 모두가 적용되지 않아 용서를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심지어 기억이 망각되거나 미화가 됨에 따라 혹은 시간의 지남에 따라 혹은 자신의 여러 경험들에 따라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이해를 하게 되고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뒤늦게라도 용서를 하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이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다니.

 

 

 

16. 용서는 말 그대로 하자면 복수와 보상의 포기다. 용서하는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념하고, 중지하며, 꾸짖기(가리키고 알리기)를 멈춘다. 상처를 가리키는 손이, 타인을 향한 책망이 용서와 더불어 끝난다.

책을 읽으며 어려움을 느꼈다. 용서라는 개념을 알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서가 철학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책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하는 애매모호함에서 왔다.

 

책에서는 죄 사함과 용서를 비교하고 있는데, 죄 사함(=사면)은 오직 성직자 혹은 신의 영역이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다운그레이드 된 용서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영화 <밀양>을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책의 소개평에 쓰여있는 것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딸을 죽인 범인이 이미 자신은 신에게 사면을 받았다고.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사면을 받았다니. 영화를 봐야만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영화를 위시 목록에 넣어두고 조만간 보려고 한다.

 

나는 그보다는 화해와 용서의 개념을 정립하고 싶었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라는 그 말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화해는 하고 싶지 않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서는 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마음이 삐죽거린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용서라는 것은 단순하게 복수와 보상의 포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단순하게 복수와 보상의 포기라고 한다면 나는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상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게는 용서를 함으로써 얻는 보상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책의 논리를 인용하자면 용서가 아니다.

 

“제가 만일 ‘나는 네가 용서를 구함으로써 변화되었고 더 이상 전과 동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조건하에서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용서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순수한 의미에서 용서하는 사람은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이 보상을 포기한 것이 유익한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반드시 의도가 있는 경제적 채무 탕감과 달리 용서는 철저히 무목적적이다.

 

 

그렇다고 그게 용서가 아닌 것은 아닌데. 그럼 그건 용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칭해야 한단 말인가. 아, 책의 제목과 꼭 같다. 조금 불편한 용서_

 

 

 

책을 읽으며 용서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마음가짐이 다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이해할 수도 있고 지금은 사랑할 수 없지만 결국에 사랑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지금은 생생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고 여전히 생생하지만 용서를 할 수도 있다. 용서는 오롯하게 개인의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그것을 종용하거나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용서는 딜레마와 같을지 모르겠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결국 엄마를 용서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생일에 초대한 엄마가 와서 환하게 맞이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초대를 한 것도, 올까 안 올까를 궁금해한 것도, 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도 모두 한 사람이라는 것을. 따라서 저자에게 엄마는, 용서의 존재가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책 속의 문장

 

21.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것이야말로 용서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야말로 용서를 요청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

 

21.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22. 화해의 과정에서 상처를 봉합하는 것

 

전체주의 정부의 등장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요한 사건인 만큼 전체주의를 이해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용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가능한 세상과 화해한다는 뜻이다.

 

81. 이해를 하면 무조건 감수해야 할 때보다 견디기가 수월하죠.

 

133. 용서할 수 있으려면 상대에 대한 사랑이 한 움큼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습니다.

 

137. 그는 용서란 ‘마음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거리를 두면 조금씩 진전이 보이죠 용서는 일종의 자기 발견이거든요.”

 

166. 용서하는 사람은 일어났던 일을 잊는 것이 아니며, 결코 건망증을 앓는 것이 아니다. 일어났던 일은 흔적으로 기억에 고이 보관된다. 용서를 통해 변하는 것은 이 흔적의 심리적 배역이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무거운 죄나 어쩔 수 없는 집착의 대상이 아니다. 그 흔적은 역사적 무의미 속으로 가라앉는다.

 

229. 용서는 포기의 행위다. 용서하는 사람은 보상을 포기한다. 하지만 이런 포기는 그것이 유지되는 동안, 유지될 수 있는 동안까지만이다. 용서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진행된다. 또 용서는 오늘 되는데 내일은 다시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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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에서 꽃 배우기
이유현 지음 / 부크크(book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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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듣고 싶었던 강의를 찾는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본적 말고는,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큰 도시일지도 몰랐다. 이사를 오기 전에 검색해보니 교육에 대한 인프라가 꽤 괜찮기도 했었다. 바로 직전에 살던 곳에서는 취미로 꽃 수업을 배우려면 주 2회, 6주에 45만 원이라는 말에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접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꽃 수업을 1년 텀을 두고 같은 곳에서 두 번을 수강했는데, (내 꽃꽂이 실력은 생각보다 더 하찮았지만) 꽤 괜찮은 강의였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수강을 하니 거의 98% 똑같은 커리큘럼에 그 이후로는 꽃 수업은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즈음은 또 생각이 바뀌어 다른 곳으로 좀 다녀보고 싶은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직장 생활이나 직장 생활의 연장이 아닌 이상에야 모임은 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꽃 수업을 듣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가을이 왔으니 꽃을 들였다. 이번에는 카네이션 두 송이. 꽃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살랑거린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나한테 마법을 건 것이 틀림없다.

 

 

플로리스트 이유현 씨는 일상에서 꽃이 주는 행복을 일기처럼 적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꽃의 매력을 하나의 책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이 그 결과물이 되었다. 책에는 본인의 커리큘럼을 담았는데, 재료와 도구, 부자재를 소개하고 꽃을 잡는 방법과 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꽃다발을 받으면 공기가 잘 통하도록 포장은 풀고 물에 꽂아주라는 것이었는데, 그 물은 매일 갈아주는 게 좋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고 이번에 데려온 카네이션의 물을 갈아주었다.

 

 

그런데 문화센터 꽃 수업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꽃들을 만져볼 수 있나? 싶어서 호기가 생겼다. 내가 이전에 꽃 수업을 받았던 곳에서는 꽃 종류가 10가지가 넘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 스톡, 장미, 유칼립투스, 소국, 왁스플라워, 편백, 리시안셔스, 글라디올라스, 스프레이카네이션, 레몬잎, 석주 정도였는데, 색상도 비슷할 때가 많았고, 꽃 상태가 별로일 때도 많았다. 간혹 천일홍, 거베라와 튤립이 나올 때면 너무 행복해서 탄성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책에는 퐁퐁이나 라넌큘러스, 수국, 히야신스, 카라, 프리지아, 작약, 맨드라미도 몇 번씩 나왔다. 나는 꽃을 데려오는 금액은 잘 모르지만 장미나 스톡, 리시안셔스, 왁스플라워, 스프레이카네이션 정도는 좀 저렴한 가격에 데려올 수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해봤다. 꽃 수업을 다닐 때 단골인 꽃들이었는데, 책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걸 보면-

덧. 집에 맨드라미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 9월인 지금도 있으려나. 다음에 꽃집에 가면 여쭤봐야지.

 

 

하지만 내가 꽃보다 더 관심이 갔던 건 가드닝이었다. 꽃 수업을 할 때도 식물은 언제 심느냐며 여쭤보고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까지 했었으니까. 꽃과 식물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꽃보다는 식물 쪽이다. 당시에 가드닝은 왜 이렇게 적냐는 내 말에 강사님은 가드닝만 하면 지루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가드닝이 더 즐거웠기 때문에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책에는 가지치기를 통해 나무를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키울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너무 아쉬워서 가지치기를 못하고 있다. 새싹이 나고 있는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나요. 엉엉.

 

 

 

책을 읽으며 저자가 꽃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들이 더해져 마음이 따뜻해졌고, 꽃과 식물들을 보며 잠깐이지만 설렘과 즐거움을 느꼈다. 며칠 전에 식물을 들여서 이름을 뺀질이라고 붙여주었다. 뺀질이를 데려올 때, “오늘 식물 하나 데려오려고-”라는 내 말에, “꼭 하나만 데려와. 두 개 데려올 거면 니가 짊어지고 자야 해.”라고 말하던 J의 말이 떠올라서 잠시 눈치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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