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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먼저 건넸을 뿐인데 - 아무도 몰라주던 나를 모두가 알아주기 시작했다
이오타 다쓰나리 저자, 민혜진 역자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9월
평점 :
나는 잡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밀폐되어 있는 공간에 둘만 있다는 것은 상상만도 싫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 부장님과 외근을 나가는데 같은 성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적막하게 있어야만 했는데, 그것을 깨뜨린 사람은 나였다. 차라리 내가 운전을 했다면 좋으련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기 때문에.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주로 질문을 하는 편인데, 그때 도대체 무슨 질문을 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부장님의 아이에 대해 물었겠지. 나는 그 사람이 혼자서 몇 분 정도는 술술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하곤 하니까. 차라리 나는 상대가 혼자서 술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나는 친구들과의 수다가 아닌 직장동료들과의 잡담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조차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하지만 친한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하거나 여러 명이 함께 대화를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참...)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상황만 있을 수는 없고, 싫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며칠에 한 번쯤은 꼭 부딪히는 게 잡담 시간이었다. 그게 찰나의 시간, 아주 잠깐이라도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잡담의 기술을 익히기보다는 잡담을 하는 그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읽어보고 싶었다.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책들에서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하지만, 잡담에서는 예외라고 한다. 처음부터 열린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고.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요즘 어때?” 대신에 “일은 잘 돼?”라고 묻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요즘 어떠냐는 말은, 업무의 진행 상황을 묻는 건지 업무와는 관계없는 일을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설교하기 전에 떠보려는 건지 헷갈리기 때문이라고. 그걸 듣고 나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요즘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요즘요?라고 되물으며 그냥 뭐 똑같다든지, 아무 일도 없다든지 하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요즘 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나, 내가 요즘 뭐가 있었나 하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런 대화법에서 신선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무심코 습관처럼 애매한 질문을 했다면 곧바로 다음의 예시처럼 상대방이 대답하기 쉽도록 말을 덧붙이라고 한다. 물어보기 쉬운 질문이 아니라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할 것.
“요즘 어때? + 예전에 말했던 프로젝트는 끝났어?”
“주말에는 보통 뭐 해? + 지난 주말에는 뭐 했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
위와 비슷한 예시로 “OO 씨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대신에 “최근에 빠져 있는 게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 좋다.
생각을 해보니, 나 역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겉돌았던 적이 있다. 오히려 취미가 공통인 모임에 갔을 때 그 취미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겠지. 책의 질문처럼 요즘 빠져있는 게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8월 30일에 저한테 개조카가 생겼는데요. 원래 개는 좋아하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는데, 개조카는 좀 귀여워서 사진도 저장해두고 즐겨찾기에 해놓고 보고 있어요. 요즘은 산책하면서 제 개조카랑 닮은 개들이 유독 많이 보이고 그러는데 은근히 내 개조카가 좀 더 예쁘네. 해요. 그리고 남동생이 개조카 사진을 가끔 올리는데 좀 자주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런데 남동생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는 부분이에요.”라고(...)
“제가 몇 달 전부터 해피트리라는 식물을 키우는데, 날씨가 좀 추워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햇빛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그밖에 제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생긴 건지 연두색 잎이 노랗게 되어버렸더라구요. 낙엽은 아닐 텐데 좀 속상해요. 그래서 출퇴근길에 주시하고 있는데 다시 싱싱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라고(...)
대화를 할 때, “왜 그랬어요?”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자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시가 있어 읽어보니 왜?라는 물음은 내가 편하기 위해 하는 물음과 같았기 때문에. why가 아니라 how를 묻기. “어떤 상황이었어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잡담의 기술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법이라든지, 칭찬을 인사말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법이라든지, 선 넘은 질문을 받았을 때라든지, 모든 말에 리액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든지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의 가장 큰 영감님은 리액션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 보이지만), 말을 끝내는 기법이라든지 하는 팁들이 많이 있기에, 잡담이 어려운 사람들이 읽는다면 공감도 하고 팁도 얻어 가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