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빈지 다이어트 - 100만 독자의 식습관을 바꾼 초간단 멘탈 트레이닝
글렌 리빙스턴 지음, 조경실 옮김 / 봄빛서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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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한 번도 날씬했던 적이 없다. 살을 10kg를 뺐을 때에도 통통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고, 지금은 뚱뚱의 범주에 너무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3월에 나는 총 5kg가 빠졌었고, 그 체중은 고스란히 몇 달 뒤에 다시 그 체중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상태에서 다시 5kg가 쪘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살들과, 누가 따라올까 무섭게 급하게 찐 살들이 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현재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체감할 수 없지만, 내가 위협을 받는 것은 자존감 하락이었다.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훨씬 더 심했을 텐데 지금은 가을_ 이런저런 옷을 입어 조금 둔해질 수는 있겠지만 기존에 맞던 바지가 맞지 않고, 기존에 입었던 원피스가 더 이상 예쁘다고 생각되지 않는 몸뚱어리를 보며 나는 극심한 좌절을 느꼈다.

 

 

먹지 말아야지, 간헐적 단식을 하자.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그 방법+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에 혼자였으면 가능했을 일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다.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자가 곁에 있으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고 방법도 아는데 실천이 안 되니 이게 참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냥 막 살아보자! 하기에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내 기준에) 예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가설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도 알아버렸다.

 

 

그래서 난생처음 운동을 글로 풀어놓은 책도 읽어보고, 다이어트에 관한 책도 읽게 되어버렸다. 살이 적당히 찌면 안 읽었을 텐데... 네버 빈지 다이어트(Never binge again)다. 책의 저자인 글렌 리빙스턴은 130kg에서 무려 4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책은 운동에 대한 이야기보다 식이에 대한 이야기, 특히 binge(과식,폭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저자는 과식 및 폭식을 하지 않은 비법으로 40kg를 뺐다는 것인데 그 비법이 궁금하다.

 

 

나는 섭취하는 음식이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밥을 두세 숟가락만 먹어도 금세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살려면 충분히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술, 술이 문제다. 술이 들어가면서는 안주가 필요하다. 대부분 내가 과식 또는 폭식을 하는 것은 그때인 것 같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이니까 배가 불러도 미련하게 먹고 있다는 것. 정말 미련해. 과식과 폭식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운동보다 식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은 8년 전의 일이고, 또 새로운 운동을 할 때마다 느끼기도 한다. 그동안 스트레칭을 해도, 스피닝을 해도, 수영을 해도, 필라테스를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은 식이가 병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 (엉엉)

 

 

저자는 말한다. 내 안에 꿀꿀이가 산다고 가정하고, 자신과 꿀꿀이를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그리고 그 꿀꿀이가 꽥꽥대는 소리를 무시하는 것.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꿀꿀이는 과식&폭식을 하는 내 모습을 합리화하는 나 자신인데, 꿀꿀이라고 생각하고 꿀꿀이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걸 서술하는 방식은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꿀이라는 이름 대신에 다른 이름을 지어줘도 된다고 해서 고민 중이다. 나는 새를 싫어하니 짹짹이라고 해볼까. 하고 방금 생각해봤다.

 

 

이 책을 읽은 효과로는, 과자가 먹고 싶거나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진다면 80% 정도는 ‘지금은 밥 먹는 시간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됐달까. 하지만 나머지 20%는 ‘짹짹이가 배가 고프구나. 나도...’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풋.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저녁을 바나나 두 개로 간단히 요기하고 허기가 지고 있는데, ‘짹짹이 내일 아침에 밥 먹자.’하고 달랜다. 살뜰하게 보살피지 말라고 했지만, 달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 나는 좀 달래보려고 한다. 보나 마나 요즘 아침을 먹는 습관이 좀 무너져서(잠을 좀 더 자려고) 안 먹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지금을 잘 견뎌야 한다. 그 와중에 배우자가 라벤더 차를 건네줘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의 짹짹이가 나한테 짹짹거리는 것이,

어차피 내일부터는 안 먹기로 했잖아. 오늘만 먹자.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아.

맨날 이렇게 먹는 것도 아닌데 뭐.

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어제도 과음을 했고, 과자도 탈탈 털어 넣었다.

으음... 할 말이 증발되어버렸다. 어제의 나 반성해!

 

 

48. 여러분이 성공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먹고 삼키는 모든 음식에 대해 100퍼센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책에서 위의 문장과 더불어 식단을 계획할 때 제한사항을 너무 많이 두지 말라는 말도 함께 와닿았는데, (여전히 먹을 생각뿐) 조금은 느긋하게 시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책에서는 강력하게 제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난 평생을 그러고 살 자신은 없다. (난 나에 대해 너무 관대해. 살이 찌는 이유를 이렇게 알아간다...) 하지만 폭식이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늪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작심삼일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책 덕분에 내 안에 살고 있는 짹짹이를 만날 수 있었고, 나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단단하게 수립하며 나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선 나는 술을 당분간 끊어봐야겠다. 믹스커피도 몇 달 동안 안 마시고 있는데 술을 당분간 끊는 건 껌이지!라고 생각하기엔 연말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볼 생각이다. (꼭) - 짹짹아 당분간 좀 힘들 거야.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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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정여랑 지음 / 위키드위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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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흥미로운 소설책을 한 권 읽었었다. 김려령 작가의 <트렁크>라는 책이었는데, 서른 살에 다섯 개의 결혼반지를 낀 여자, 그 여자의 직업은 VIP 회원의 기간제 부인이었다. 그 책을 읽은 게 언제인가 싶어 찾아보니 2015년이었다. 지금은 2020년.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는지 없는진 모르겠다. 계약 결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계약 결혼과는 좀 거리가 먼 것이었으니. 그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그런 흥미로운 소설책을 한 권 더 읽게 되었다. 정여랑 작가의 <5년 후>_


 

지훈과 선우는 4년 차 부부다. 결혼 5주년이 다가오면서 지훈은 머릿속이 복잡해져온다. 정부에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결혼 갱신제를 도입했는데 그 갱신제는 5년 주기로 갱신을 할 수 있게끔 되어있는 까닭이다. 지훈은 선우와 결혼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도 낳고 싶은데, 불안하다. 선우의 태도나 얼굴에서는 결혼생활을 지속할 것인지 종료할 것인지 그 낌새를 전혀 알 수 없다. 선우는 무슨 생각인 걸까.



신선한 것은 혼인신고를 하면서 종신제와 갱신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로 인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겠네,라고 생각하던 참에 선우의 동생 연우가 예비신랑 한석과 파혼을 할 지경에 이른다. 갱신제를 하자고 한석과 합의를 했지만, 종신제를 강요하는 한석의 부모와 우물쭈물 대는 한석의 태도가 못 미더웠던 것.




처음에 출생률 회복을 위해 결혼 갱신제를 도입했다는 것이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5년이라는 기간을 둔 생활이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부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혼 갱신제를 현실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정말 책에서처럼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글쎄...였다.


나는 여러 지역에 짧게는 3년, 길게는 +알파까지 거주할 수 있다. 그 지역에 살면서 만족감이 커서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 지역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시간만 세던 때도 있었다. 하물며 거주하는 지역도 그러한데, 사람은 어떻겠나. 살면서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는 것이 결혼생활이고, 연차마다 권태기가 올 수도 있을 텐데 그것들은 어떻게 극복할까 싶은 것이다. 시기가 맞물려 그 시기에 연장인지 종료인지를 선택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종료를 선택하게 되려나. 아니면 하나의 협박이나 폭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너 자꾸 이러면 나는 갱신할 때 결혼을 종료해버릴 거야. 따위의 것들.

결혼생활을 깨지 않기 위해 노력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서로가 느슨해져버릴까 봐 갱신제를 택하는 것은 그 노력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결혼 7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봤다. 내가 결혼할 당시 갱신제를 택했다면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5년, 참 힘든 때였다. 물론 좋을 때가 훨씬 더 많았지만, 그 당시가 너무나도 힘들 때였기 때문에 나는 아마 연장이 아닌 종료를 택했을 것이었다. 아마도 분명하게. 연고도 없는 지역에 와서 서로 지쳐있던 상태였으니까. 그 생각을 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여전히 결혼 갱신제에 대한 의구심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부모나 조부모의 돌봄 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여 경력 단절을 완화한다든지, 미혼인 여성들이 시험관 시술을 받아 임신할 수 있다든지, 청소년의 임신에 대해 센터에서 본인의 의사를 묻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에 맞는 문제들을 센터에서 도움을 주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부분이라든지,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가족 구성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된다든가 하는 것들은 신선하다고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시대에 아이를 낳으라는 것은 가히 폭력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필요한 것은 국가보조금이 아니라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 아이 입장에서는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도. 인구 절벽인 지금, 방향을 제대로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도.



+ 이 책을 읽고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권유해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언제쯤 다 읽게 될 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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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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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멍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형상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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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200선>에 실려있는 Y주택은, 아오세가 지은 것이었다. 그 집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의 건축주였던 요시노가 “전부 맡기겠습니다.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라고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아내 유카리와 이혼을 하며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패잔병과 다름없었으나, 그 주택으로 인해 여느 때보다 열정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집이었다. 자신의 이상을 분명한 형태로 실현한 집.



그러던 중 다른 건축주가 아오세에게 Y주택과 똑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뒤이어 Y주택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시 건축주는 마음에 든다고 했는걸. 웃으면서 열쇠도 받아 갔는걸. 바로 입주할 것처럼 행동했는걸. 하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Y주택을 오카지마와 함께 방문하게 된다. 정말 사람이... 살지 않아? 아예 처음부터 입주를 하지 않았어?... 왜? 발자국은 뭐지? 그나저나 덩그렇게 있는 이 의자는 도대체 뭐야?



오카지마는 그 의자가 독일의 유명 건축사 타우트가 만들어낸 의자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고, 아오세는 타우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타우트와 요시노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파고드는 아오세. 요시노의 집까지 찾아간 아오세는, 요시노가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키가 작은 요시노 부인 대신 키가 큰 여성이 요시노의 아내라고 지칭하는 것을 듣게 되며, 얼굴이 벌건 남자가 요시노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기만 한다. 요시노 씨, 도대체 무슨 일이 당신에게 생긴 겁니까. 급기야 아오세는 요시노가 곤란에 처한 건 아닐까, 하며 ‘일가족 실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한편, 오카지마는 하루코 기념관 건립 공모전 참가 자격을 받아내게 되는데, 작은 사무소일 뿐인 오카지마사무소가 그 공모전 참가 자격을 받아낸 것은 비리가 있을 것이다 라는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미,

시작된 일들.


308. 왜 자신에게 집 설계를 의뢰했나. 왜 아오세여야만 했던 건가.


예정되었고, 예견된 일들이니까.

결론은, 그여야만 했다는 것.




41. 거품경기의 패배 경험은 자존심의 문턱을 낮췄다. 단순한 후유증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태도를 좌우하는 정신력가지 뒤흔들어 놓았다. 머릿속에는 사무소에 들어오는 의뢰를 적당히 처리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찰이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주장도 굽혔다. 일급건축사의 체면을 가까스로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의뢰인의 낯빛을 살피며 비위를 맞춰 도면을 그리는 패잔병 시절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을 은밀히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던 자신의 모습은 요시노 도타의 눈동자 속에서 보았다. 그 의뢰는 역시 마법이었다. 네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보라는 암시에 걸려,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건축에 대한 열정이 새로운 세포를 얻은 듯 솟구쳤으니까.


마찰이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주장을 굽힌다는 문장에, 의뢰인의 낯빛을 살피며 비위를 맞춰 도면을 그린다는 문장에,

여느 사무소나 그렇지 않나 하며 씁쓸한 웃음이 먼저 마중 나온다.

일말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지만 처음의 나는 그것 때문에 회의감이 많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건축주인 본인이 원한다는데. 게다가 돈이 걸려있는 일인 걸.

정말 창의성을 꾀하는 것이란, 책에서 나오는 설계공모전이나 아니면 내 집 마련, 그도 아니면 학교 졸업작품 정도이지 않을까.

아니면 대형 건축사사무소나.



30. 건축을 하다 보면 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력이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용납할 수 있고,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지.


모든 것은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집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집에 대해 특별하게 뭔가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게도 한 가지 바람은 있다. 빛.

어떤 건축물을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빛에 대한 부분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

여담으로,

며칠 전에 아파트 내의 주민공동시설을 설계변경을 하며 비가 들이칠 우려가 있으니까 석재로 트러스를 짜서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분개했다. 그 작은 선큰은 채광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석재 트러스로 막는다니. 결론은 일부만 석재 트러스로 막고, 유리블럭을 하는 것으로 조율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마저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캐노피를 달면 되잖아, 왜 굳이 석재 트러스고, 왜 굳이 유리블럭이란 말이야?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이도 몇몇 있었지만, 고집만 부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33.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족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North light).


아오세도 결국 빛이었다.

그게 북향 빛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는데, 북향에서 드는 빛은 어떤 빛일까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부를 수 있는 기억이 없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혹은 관심이 없거나.

언젠가 북향 빛을 보게 된다면, 아오세가 만든 Y주택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서향 빛을 좋아해서 언젠가 서향 빛이 드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가 질 때의 그 빛을 온 집안에 품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자주 소망한다.

다행스럽게 나의 배우자는 그 로망을 한껏 응원해 주고 있고.



76. 하늘을 향해 폭을 넓혀가는 사다리꼴 모양의 파란 지붕.

그 위로 튀어나온 세 개의 ‘빛의 굴뚝’.


나는 책에 묘사되어 있는 Y주택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급기야 이렇게 자세하고 섬세하게 표현을 했다면, 도면이 있을 것도 같아서 찾아보았지만 검색 부족인지, 아니면 없던 것인지 찾을 수는 없었다.

Y주택의 도면과 뒤이어 나오는 하루코 기념관의 도면을 보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건축과 미스터리를 함께 풀어내는 작가라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자체에도 관심이 일었지만, 부끄럽게도 타우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타우트에 대해 깊게 들어가면서도 흥미를 느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여러 나라에 망명하면서 작품을 남겼다는 것.

가쓰라 별궁을, 눈을 기쁘게 하는 아름다움이라 칭하여 책을 읽던 중에 찾아보았는데,

그곳은 사진이 많지도 않아서 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해지게 만든 책.



Y주택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선(善)이며, 사랑이기를 바랐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그의 바람 대로 Y주택의 최후는, 선이었고 사랑이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이었고,

가족을 환대하고 가족에게 환대 받는 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집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오세의 그런 소망(hope)들이 듬뿍 들어간,

세상에서 특별한 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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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권미주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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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다양성은 점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결혼하고 알았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우리 부부 역시도 보편적이라고 불리는 삶의 범주에서 약간 비껴나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였다. 보편적인 삶이 아니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충고와 조언 속에서 나는 화도 났고 경계심도 가졌고 오기도 생겼다. 해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았고 내 삶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랬다. 결혼 전에는 이혼이 한쪽의 일방적인 결격사유로 인해서만 발생하는 것인 줄만 알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왜 결혼을 못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고,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들에 대해 자발적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이야 내가 듣는 무례함들에 좀 무뎌진 편이기는 하지만, 열에 한 번 타인의 아무렇지 않은 물음에 여전히 화가 날 때 오래전의 그만큼 세계의 넓이를 가늠하지 못했던 나를 불러오고, 그 사람도 이전의 나처럼 그런 것이겠구나 하고 말아버리려고 ‘노력’해보기도 한다.

 

 

내 주변에도 비혼주의자가 한두 명이 있고, 그들의 삶을 지지하기도 한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셋이 살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이 책도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고, 그 삶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책에는 정부 정책에는 비혼이 제외라는 것과 청약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 대출도 쉽지 않다는 것, 고독사 등과 같은 비혼의 장점 외에 단점도 함게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곁들여서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비혼의 장점으로는 아무래도 자유롭다는 것에 있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 부분이 조금 거슬렸지만 왜 그런지 몰랐기 때문에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걸 짚어주는 문장을 봤다.

162. 멋진 이웃들과 쌓아가는 나의 내적 친밀감이 결혼으로 남편을 두고 있음에도 섹스리스에, 버려진 느낌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어떤 이의 삶보다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아, 글쎄... 그런 부부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할 자신도 없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고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모두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듯이 세상에 즐거운 일만 있는 사람도 없고, 슬픈 일만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본인이 그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더더욱.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감은 첫 번째로 비혼의 삶을 결혼한 삶보다 우위에 두려는 것이 간간이 보였던 까닭이고, 두 번째로 결혼한 삶에는 무조건 아이가 있다는 가정이 들어가 있었던 까닭이다. 다양한 삶 중 어떤 한 형태를 살기로 결심했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른 삶에 대해서도 인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탓이었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기혼이기 때문인 걸까.

결혼하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듯이 자신의 삶에 정말로 확신이라는 게 있다면 비겁한 비교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이 있음을 인정함을 넘어 존중해야 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있음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나와 다른 타인의 삶 역시 인정하고 존중해야 마땅하다.

 

 

 

내가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삶이 3개가 존재한다면, 나는 비혼으로도 살아보고 싶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삶은 이번 생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정말 그런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나는 결혼 7년 차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가 미혼도 아니고 기혼도 아닌 중간의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을 처음 사귀어야 할 때에 확연하게 더 느껴지는데, 주제가 모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건 미혼이든 기혼이든 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니까. 취향에는 나라는 사람 말고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마음의 구석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투자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가계부를 쓴다는 것이나 유서를 쓰며 삶을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보는 것이나 비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 좋았다. 그냥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고 바라보는 인생도 아니고 내가 꾸려가는 인생.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렵다. 무언가 배우거나 하는 것에 있어 시간이 있어서,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혼자여도, 둘이어도, 셋이어도, 넷이어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꺾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란, 삶이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혼의 입장에서 비혼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기혼이 된다 하더라도 그 역시 응원한다. 자신의 가치와 행복을 신중히 고민한 결과의 삶이야말로 충분히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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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단호하고 건강한 관계의 기술
박상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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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렵게 생각해서 더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과 맺는 관계가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회사에서 나는 여직원들과 친밀하게 지내본 적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가 우스울지 몰라도 내가 만난 여직원들은 ‘점심시간은 언제나 같이 보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친하니 말을 놔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점심은 같이 먹되 가끔은 나 혼자만의 시간도 알뜰하게 챙겨야 하는 사람이었고, 직장에서의 존칭은 직장 생활을 하며 응당 쓰여야 하는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게 어려웠다. 또 누군가의 험담으로 이루어지는 친분 유지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점심시간 대부분을 누군가를 욕하면서 보내는 것에 대해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내가 내 시간을 챙기는 시간들과 꼬박꼬박 존칭을 하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벽을 세워둔 것 같다거나 거리감을 둔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지금은 같은 팀 11명과 사이가 크게 나쁜 사람이 없는 상태로 잘 지내고 있고 성별은 전부 남성이다. 오히려 남성이 대하기 편한 것은 선을 딱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도 이랬었는데, 요즘 드는 느낌은 내가 지금 대학을 간다면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인 거다. 허허.

 

그런데 그런 내 마음에 꼭 맞게 직장동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문장이었는데, 정말 내 말이...(엉엉) 동료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동료와 깊이 공감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업무적인 협력 관계에 중점을 둔 지혜로운 관계 맺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거리 두기’가 필수이며, 이것에 실패하면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다. 동료는 친구가 아니라, ‘업무를 위해 협력하는 동반자’ ! 그랬는데 나도 올 초에 나한테 이런저런 지적을 하며,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는 어이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더 많이 공감했던 바였다. 친해지는 거랑 사사건건 터치하는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며(...) 책에는 이외에도 자존감이 낮은 후배를 대하는 법,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 대하는 법과 같은 예시를 들어주며 직장 생활에 필요한 팁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쏠쏠하게 읽었다.

 

 

 

최소한의 거리두기

고슴도치는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기 때문에 자기가 찔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다고 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람을 만나면 우선 천천히 그 사람을 살핀다. 내게 그 사람의 첫인상은 대개 행동이나 말투다. 그래서 나와 대화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 사람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난 낯가림도 심하고 경계도 심해서 사람과 단시간에 친해지는 경우도 드문데, 공통점이 있으면 그게 허물어짐을 느끼기는 한다. 물론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도 싫은 사람은 존재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좀 더 적다고 해야 할까

 

 

 

20. 나의 자존감을 짓밟고, 수시로 내 감정에 상처를 주는 사람 중에는 직장 동료나 가족이 많습니다. 산불의 확산을 줄이는 데는 3미터 이상의 나무 간격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가족 간에도 서로에게 기대치를 낮추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해 주면서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57. 가족 간에도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자발적인 희생도 혼자 너무 오래 하면 분노가 됩니다 마음이든 물질이든 내 것을 너무 많이 퍼주고 나면 가족이 미워집니다. 나부터 챙길 줄 알아야 가족을 보살필 힘도 생깁니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지혜로운 겁니다.

 

나도 이 부분 때문에 힘들었기에, 많이 공감했다. 기대치를 낮추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말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 여전히 힘들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나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전자로 생각해왔었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기에 내가 기분이 불쾌한 것이라고. 상대의 말에 가시가 있다면 전자가 맞겠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될까? 아직까지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한번 그렇게 생각을 해보도록(...)

 

 

 

생각을 말하지 말고 소망을 말하라.

애매하면서도 공감됐던 말이었다.

(대부분 배우자에게 적용한다는 사실을 기반한 가정하에) 나는 당신의 그 말과 행동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그 마음을 그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인정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하면 결국 배우자는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묻는다. 그래서 그가 저렇게 물어오면, 어쩐지 또 꿍해지는 거다. 아니! 결론성으로 말하지 말라고!!! 라며(;;)

 

 

 

43.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면 정신이 상하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면 재앙에 이르게 한다.

44. 만족하는 법을 알아서 평소에 만족하며 살면 평생 모욕당할 일이 없고, 절제하는 법을 알아서 제대로 절제하면 평생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

143. 괴테 -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 들을 수 있다.

162. 사람을 만날 때는 말을 10분의 3만 하고,

진짜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

호랑이 세 마리의 입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사람의 두 개의 모습을 가진 마음을 두려워하라.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숙이 감추면 몸이 편안해져 가는 곳마다 견고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명심보감>을 한번 주욱 읽고 싶어졌다. 군자는 역시 군자, 달라도 달라. 라며 어떻게 이런 말들을 했지 싶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깜냥이 되는 인간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런 척해 보고 싶기도 했고, 그 문장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인간이고 싶다.

 

 

 

 

이외에도 책에는 여러 팁을 알려주는데, 죄송합니다 대신에 실례합니다 혹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라는 문장을 구사하라고 한다. 죄송합니다는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말 같지만 나에게 손해가 큰 말이기 때문에. 나 역시 죄송하지만, 죄송한데,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용자로서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 내가 요즘 유독 좀 신경 쓰이는 호칭도 나와서 반가웠는데, 사모님,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이다. 나는 회사에서는 직함이 불분명한 작업자분들께는 사장님이라고 칭하고,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타인을 불러야 할 때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쓴다. 남자라고 해서 아버님, 여자라고 해서 어머님,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특히나 결혼이나 가족계획이 이전보다 더 선택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런 호칭은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참 잘 읽은 책이라 이후에도 한 번 더 읽을 기회가 온다면 자연스레 다시 펼치고 싶을 정도로.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 끊는 것도 어렵다. 어려운 것투성이인데, 이 정도면 나 잘 살고 있다! 하고 셀프 칭찬을 해본다.

 

 

 

 

 

오탈자 P212. 우리 맨날 방법 없을까? 우리 맨날 만날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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