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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멍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형상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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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200선>에 실려있는 Y주택은, 아오세가 지은 것이었다. 그 집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의 건축주였던 요시노가 “전부 맡기겠습니다.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라고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아내 유카리와 이혼을 하며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패잔병과 다름없었으나, 그 주택으로 인해 여느 때보다 열정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집이었다. 자신의 이상을 분명한 형태로 실현한 집.
그러던 중 다른 건축주가 아오세에게 Y주택과 똑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뒤이어 Y주택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시 건축주는 마음에 든다고 했는걸. 웃으면서 열쇠도 받아 갔는걸. 바로 입주할 것처럼 행동했는걸. 하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Y주택을 오카지마와 함께 방문하게 된다. 정말 사람이... 살지 않아? 아예 처음부터 입주를 하지 않았어?... 왜? 발자국은 뭐지? 그나저나 덩그렇게 있는 이 의자는 도대체 뭐야?
오카지마는 그 의자가 독일의 유명 건축사 타우트가 만들어낸 의자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고, 아오세는 타우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타우트와 요시노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파고드는 아오세. 요시노의 집까지 찾아간 아오세는, 요시노가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키가 작은 요시노 부인 대신 키가 큰 여성이 요시노의 아내라고 지칭하는 것을 듣게 되며, 얼굴이 벌건 남자가 요시노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기만 한다. 요시노 씨, 도대체 무슨 일이 당신에게 생긴 겁니까. 급기야 아오세는 요시노가 곤란에 처한 건 아닐까, 하며 ‘일가족 실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한편, 오카지마는 하루코 기념관 건립 공모전 참가 자격을 받아내게 되는데, 작은 사무소일 뿐인 오카지마사무소가 그 공모전 참가 자격을 받아낸 것은 비리가 있을 것이다 라는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미,
시작된 일들.
308. 왜 자신에게 집 설계를 의뢰했나. 왜 아오세여야만 했던 건가.
예정되었고, 예견된 일들이니까.
결론은, 그여야만 했다는 것.
41. 거품경기의 패배 경험은 자존심의 문턱을 낮췄다. 단순한 후유증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태도를 좌우하는 정신력가지 뒤흔들어 놓았다. 머릿속에는 사무소에 들어오는 의뢰를 적당히 처리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찰이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주장도 굽혔다. 일급건축사의 체면을 가까스로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의뢰인의 낯빛을 살피며 비위를 맞춰 도면을 그리는 패잔병 시절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을 은밀히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던 자신의 모습은 요시노 도타의 눈동자 속에서 보았다. 그 의뢰는 역시 마법이었다. 네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보라는 암시에 걸려,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건축에 대한 열정이 새로운 세포를 얻은 듯 솟구쳤으니까.
마찰이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주장을 굽힌다는 문장에, 의뢰인의 낯빛을 살피며 비위를 맞춰 도면을 그린다는 문장에,
여느 사무소나 그렇지 않나 하며 씁쓸한 웃음이 먼저 마중 나온다.
일말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지만 처음의 나는 그것 때문에 회의감이 많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건축주인 본인이 원한다는데. 게다가 돈이 걸려있는 일인 걸.
정말 창의성을 꾀하는 것이란, 책에서 나오는 설계공모전이나 아니면 내 집 마련, 그도 아니면 학교 졸업작품 정도이지 않을까.
아니면 대형 건축사사무소나.
30. 건축을 하다 보면 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력이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용납할 수 있고,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지.
모든 것은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집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집에 대해 특별하게 뭔가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게도 한 가지 바람은 있다. 빛.
어떤 건축물을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빛에 대한 부분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
여담으로,
며칠 전에 아파트 내의 주민공동시설을 설계변경을 하며 비가 들이칠 우려가 있으니까 석재로 트러스를 짜서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속으로 분개했다. 그 작은 선큰은 채광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석재 트러스로 막는다니. 결론은 일부만 석재 트러스로 막고, 유리블럭을 하는 것으로 조율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마저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캐노피를 달면 되잖아, 왜 굳이 석재 트러스고, 왜 굳이 유리블럭이란 말이야?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이도 몇몇 있었지만, 고집만 부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33.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족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North light).
아오세도 결국 빛이었다.
그게 북향 빛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는데, 북향에서 드는 빛은 어떤 빛일까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부를 수 있는 기억이 없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혹은 관심이 없거나.
언젠가 북향 빛을 보게 된다면, 아오세가 만든 Y주택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서향 빛을 좋아해서 언젠가 서향 빛이 드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가 질 때의 그 빛을 온 집안에 품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자주 소망한다.
다행스럽게 나의 배우자는 그 로망을 한껏 응원해 주고 있고.
76. 하늘을 향해 폭을 넓혀가는 사다리꼴 모양의 파란 지붕.
그 위로 튀어나온 세 개의 ‘빛의 굴뚝’.
나는 책에 묘사되어 있는 Y주택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급기야 이렇게 자세하고 섬세하게 표현을 했다면, 도면이 있을 것도 같아서 찾아보았지만 검색 부족인지, 아니면 없던 것인지 찾을 수는 없었다.
Y주택의 도면과 뒤이어 나오는 하루코 기념관의 도면을 보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건축과 미스터리를 함께 풀어내는 작가라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자체에도 관심이 일었지만, 부끄럽게도 타우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타우트에 대해 깊게 들어가면서도 흥미를 느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여러 나라에 망명하면서 작품을 남겼다는 것.
가쓰라 별궁을, 눈을 기쁘게 하는 아름다움이라 칭하여 책을 읽던 중에 찾아보았는데,
그곳은 사진이 많지도 않아서 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해지게 만든 책.
Y주택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선(善)이며, 사랑이기를 바랐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그의 바람 대로 Y주택의 최후는, 선이었고 사랑이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이었고,
가족을 환대하고 가족에게 환대 받는 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집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오세의 그런 소망(hope)들이 듬뿍 들어간,
세상에서 특별한 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