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권미주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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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다양성은 점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결혼하고 알았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우리 부부 역시도 보편적이라고 불리는 삶의 범주에서 약간 비껴나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였다. 보편적인 삶이 아니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난과 충고와 조언 속에서 나는 화도 났고 경계심도 가졌고 오기도 생겼다. 해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았고 내 삶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랬다. 결혼 전에는 이혼이 한쪽의 일방적인 결격사유로 인해서만 발생하는 것인 줄만 알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왜 결혼을 못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고,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들에 대해 자발적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이야 내가 듣는 무례함들에 좀 무뎌진 편이기는 하지만, 열에 한 번 타인의 아무렇지 않은 물음에 여전히 화가 날 때 오래전의 그만큼 세계의 넓이를 가늠하지 못했던 나를 불러오고, 그 사람도 이전의 나처럼 그런 것이겠구나 하고 말아버리려고 ‘노력’해보기도 한다.

 

 

내 주변에도 비혼주의자가 한두 명이 있고, 그들의 삶을 지지하기도 한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셋이 살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이 책도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고, 그 삶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책에는 정부 정책에는 비혼이 제외라는 것과 청약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 대출도 쉽지 않다는 것, 고독사 등과 같은 비혼의 장점 외에 단점도 함게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곁들여서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비혼의 장점으로는 아무래도 자유롭다는 것에 있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 부분이 조금 거슬렸지만 왜 그런지 몰랐기 때문에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걸 짚어주는 문장을 봤다.

162. 멋진 이웃들과 쌓아가는 나의 내적 친밀감이 결혼으로 남편을 두고 있음에도 섹스리스에, 버려진 느낌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어떤 이의 삶보다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아, 글쎄... 그런 부부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할 자신도 없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고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모두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듯이 세상에 즐거운 일만 있는 사람도 없고, 슬픈 일만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본인이 그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더더욱.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감은 첫 번째로 비혼의 삶을 결혼한 삶보다 우위에 두려는 것이 간간이 보였던 까닭이고, 두 번째로 결혼한 삶에는 무조건 아이가 있다는 가정이 들어가 있었던 까닭이다. 다양한 삶 중 어떤 한 형태를 살기로 결심했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른 삶에 대해서도 인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탓이었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기혼이기 때문인 걸까.

결혼하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가 각기 다르듯이 자신의 삶에 정말로 확신이라는 게 있다면 비겁한 비교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이 있음을 인정함을 넘어 존중해야 하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있음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나와 다른 타인의 삶 역시 인정하고 존중해야 마땅하다.

 

 

 

내가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삶이 3개가 존재한다면, 나는 비혼으로도 살아보고 싶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삶은 이번 생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정말 그런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나는 결혼 7년 차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가 미혼도 아니고 기혼도 아닌 중간의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을 처음 사귀어야 할 때에 확연하게 더 느껴지는데, 주제가 모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건 미혼이든 기혼이든 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니까. 취향에는 나라는 사람 말고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마음의 구석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투자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가계부를 쓴다는 것이나 유서를 쓰며 삶을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보는 것이나 비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 좋았다. 그냥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고 바라보는 인생도 아니고 내가 꾸려가는 인생.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렵다. 무언가 배우거나 하는 것에 있어 시간이 있어서,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혼자여도, 둘이어도, 셋이어도, 넷이어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꺾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란, 삶이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혼의 입장에서 비혼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기혼이 된다 하더라도 그 역시 응원한다. 자신의 가치와 행복을 신중히 고민한 결과의 삶이야말로 충분히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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