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괜찮니 - 사랑 그 뒤를 걷는 자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최예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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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에 아파했고, 힘들었을 때 의지했던 책이 있었는데, 아직도 내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있는 '이미나- 그 남자 그 여자'였었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원래 '이소라의 FM 음악도시'라는 라디오에서 코너로 자리잡아서 몇 번 듣다가 즐겨 듣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의 각각 다른 혹은 같은 내면을 써내려갔고, 이별 편에서는 보고 듣는 독자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라디오를 듣던 시절 여리고 풍부한 감성을 지녔고 사랑에 대한 환상도 많았던 고등학생이었으니 두말 할 것 없었다. 그리고 책으로 출간되어 사고 읽진 않았었는데, 그 때의 연인과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읽기 시작했었다. 그 때는 그 모든 사연들이 꼭 그 때의 내 상황과 참 많이 닮아있어서 그 책을 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그와 비슷한 '사랑아, 괜찮니'라는 책을 선물받아 부담없이 슥슥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읽다가 울컥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난 분명 그 시절을 다 씩씩하게 겪어내고 지금 이렇게 행복해하고 있는데, 불행이라는 것이 내 뒤에서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종잇장 뒤집듯 너무 쉽게 변했기에 지금 내 마음도 그 사람 마음도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변할 것만 같아서 읽는 내내 가슴이 참  아파왔다.

 

 

책의 거의 첫 부분인 표현하라고. 표현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는 건 기적을 바라는 거라고. (p23) 이 문장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책을 덮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안좋은 일이 있으면 얼굴에 다 드러나지만, 멀리 있는 그 사람과 통화를 한다고 해서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항상 투덜대고 징징대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만을 바랬었다. 그러다가 알아주지 않으면 신경질과 짜증을 있는대로 내고, 그 사람이 지칠 걸 알면서도 참 많이 못된 짓도 많이 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이기적이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듯 싶다.

 

 

어느 연인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권태의 정의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고 한다. 물건에 대한 권태는 내팽개치고 두면 언젠가 찾아지거나 잊혀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사람에 대한 권태는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마주서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할지 모르겠다. 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딱히 권태라고 할 만한 것들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때에 '권태기'라고 느낄 수 있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는 사랑이고 오늘은 어떻게 이별이 될 수 있냐는 어느 노랫가사말처럼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와 이별할 때 견디지못할 정도로 싫어서 헤어진 적 보다는 구속, 집착, 부담감 등과 더불어 여러 외부 요인이 작용했었기에 헤어진게 대다수였으니까. 내가 혹은 그가 혹은 누군가가 권태를 느끼고 있다면 작가의 말을 인용해야겠다. 사랑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권태기는 새로운 빛깔의 사랑으로 거듭나기 전의 과도기일 뿐이라고. (p175)

 

 

그리고 몇 페이지를 더 넘기다가도 멈칫하게 되는데 사랑은 적당한 온도와 속도를 유지해야한다. (p180) 라는 문장이 붙은 제목이었다. 내가 이걸 감성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간인 자기 전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마음이 찌릿찌릿하게 와닿았다. 그에게 우리 사랑의 온도는 몇 。C이고 속도는 몇 km인지 우리가 너무 느리게 혹은 너무 빠르지 않게 안전운행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고 일어나니 적당하게 잘 흘러가고 있으니까 걱정말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불안하다. 이 행복이 이 웃음들이 나중엔 추억으로 얼룩지게 될까봐. 그러면 작가는 이렇게 답해줄 것만 같다. 지금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라고. 돌아볼 때는 이미 늦었다고. 그래. 까짓거. 해보지 뭐. 하지만 분명 내일이 오면 또 징징거리고 있을터다.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내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책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 감정을 콕콕 찌르고 짓무른 상처들에 연고를 발라주고 메마른 감성에 물을 주기도 하고 오래된 습관때문에 움직이기를 힘겨워해서 미소조차 짓지 못하는 피부에 윤활제를 발라주고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심장들에 펌핑을 달아준다. 그 펌핑덕분에 오늘도 내 심장은 팔딱팔딱 잘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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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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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런 때에 온다.

별것 있겠느냐 빈손을 내보이며 능청을 떨 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며 풀 죽은 시늉을 할 때

삶의 목덜미를 왁살스레 물어뜯으며 사랑이 온다.

아무 때나 어떤 길에서나 복병처럼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사랑은 살아가는 한 언제고 온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며 보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녀를 집필해 놓은 책들도 그저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미실이 당대 어떤 여인이었는지에 대한 한 오라기도 몰랐었다. 그래서 이 책을 열페이지를 읽었음에도 마음에 확 와닿는 무언가가 없었기에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읽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고, 분명 한글로 쓰여진 우리말이지만 한문과 뒤섞인 이 책을 읽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어서 책을 폈다 덮었다 폈다 덮었다 반복하며 책을 가지고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나서 읽으려고 마음먹고 거진 이틀만에 기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기차에서 읽기엔  낯뜨거운 문장들이 속출해서 누가 혹시 보고 있진 않을까 주위를 휙휙 둘러보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또한 그런 문장들 덕분[?]인지 몇 페이지만 넘어가면 처음엔 읽히지 않던 이 책도 집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왕위를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 왕에게 바쳐지는 신하라는 의미로서의 색공지신이라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인 옥진에게서 배운 것이라고는 그 신분을 이어나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인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남자를 다루는 방법 등을 배워나가기 시작하고 그녀는 그것들을 익히게 된다. 왕들은 그녀를 보고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들고 그녀 또한 응대해준다. 그러나 그녀를 오롯이 가질 수 없었던 그들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 그녀는 그것을 빌미로 당대의 권력을 조금씩 휘어잡기 시작한다. 책에서 그녀의 업적[이라고 불릴 것이 얼마나 있겠느냐 싶겠지만]이 조금 돋보였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고, 그것이 주가 되기보다는 운우지락의 모습이 주가 되었기에 미실이라는 인물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참 많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은 천박하게만 그리던 운우지락을 작가는 참 아름답게 서술하고 있음에 깊은 찬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미실이란 인물에게 처음으로 다가가는 나같은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작가는 내가 미실을 ’색(色)을 가지고서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여자’로 생각하게 만들어서, 그것이 기정사실이건 아니건간에 내가 다른 작품에 쓰여있는 미실이란 인물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해보아야겠다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김별아의 손에서 그려진 미실은 외적인 묘사에만 너무 치우쳐져 있어서 내적인 묘사가 많이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마음껏 사랑하십시오. 후회 없이 아끼고 돌보십시오. 사랑의 상대는 마음의 길을 따라 바뀌겠지만 순간의 진정만은 잊지 마십시오." (p327)

 

미실이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었는데 두번,세번 곱씹었을 때에야 아 - 하고 탄식을 내뱉게 만든 말이었다. 현재하고 있는 사랑에 앞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불안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나를 꾸짖는 말처럼 들려서 또 한번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마 서평을 다 쓰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에게 연락을 취해봐야 할 듯 싶다. 마지막에 미실은 운우지락을 나눈 사람을 모두 사랑했다 하였지만, 모두가 사다함만 했을까싶다. 사다함과 그녀를 떨어뜨려놓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한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그런 평범한 여인처럼 살다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애틋하게 느껴졌다. 특히 그녀의 마지막은 언저리를 다시 마련해주고 싶을 정도로 참 비극적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나에게 미실은 여장부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던 한 여자를 운명이라는 삶을 살게 한 세상의 이기심으로 망가뜨려놓은 희생양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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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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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으로도 골머리가 아파죽겠다. 그런데 세계 기아문제까지 플러스로 내 머릿 속을 헤집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불편한 진실들에 마주 설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내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얼마만큼의 도움의 손길이 오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만큼의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고 그 생각에서 비롯된 내 한계성을 느끼기도 싫었다. 그래서 특가가 떠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책 중 한 권이었다. 그러다가 손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책 속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무거움이 펼쳐져있었다. 나는 기아문제의 원인과 실태를 어느 깊이까지 생각해보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게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피부에 직접 닿지 않았기에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불편한 진실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일조차도 내게는 너무 버겁다. 그렇기에 고개를 돌려 회피해버리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된다. 하지만 외면해버린다고 해서 있는 일이 없는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책의 저자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었고 지금은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있는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그, 장 지글러이다. 그는 우리에게 조금 힘들게 다가올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아들 카림이 묻는 말에 대답해주는 형식의 글을 취함으로써 우리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는 무관심에 따른 무지함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며 비판했고, 해결책이 있음에도 기아를 불가항력으로 보거나 자연도태의 결과로 보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구지 검색해보지 않아도 제목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내용을 대충 알 수 있었기에 표지만으로도 불쌍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은 나 살기에만 바빠서 너무 관심을 두지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으나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냉정한 사람이라 불쌍한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리며 퍼주기보다는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배 곪고 못 입는 사회의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고 해도 100원도 쥐어주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손에 쥐어주어야하는지, 그게 싫어서 그냥 무관심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지금 세계 속의 기아문제의 상황은 그것과는 별개다.

 

책의 내용 속으로 한발짝 들어가보면, 기아 발생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볼 수 있다.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로 가뭄, 허리케인, 전쟁 등이 있다. 그 곳에 구호물품을 보내주면 될까? 구호품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항상 한발짝 늦고 부족해서 그들을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구조적 기아'인데,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것은 외부적인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게다가 정말 경악을 넘어 분노로까지 치솟게 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토머스 맬서스의 '자연도태설'이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 말은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소 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설인데, 이것은 유럽적, 백인 우월적인 '정당화'로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다. 자신들은 죽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나. 자연도태설. 이것의 문제점은 내면 속에 잠재되어있는 양심의 가책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편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것에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과연 인간은 평등한가? 그들의 죄명은 무엇이기에 우리와 함께 공존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야만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또 한 번 나의 한계점을 찍고 무력한 내 모습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루소 [사회 계약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닌, 그들을 보호해줄 법이 아닐까. 그들은 활개치는 시장의 자유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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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시간
리처드 도이치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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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에 대한 슬럼프가 오려는지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리처드 도이치의 열세번째 시간>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였다. 두께감부터 후덜덜한 이 책은 3장을 읽고 덮어버리고, 처음부터 2장읽고 덮어버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던 차에 우연히 서평을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읽었는데, 아. 정말 가관이 아니다. 거진 500페이지가 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에 뿌듯함마저 감돌게 한다.

 

 

인생이 끝나는 날 결국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어리석고 뻔한 말처럼 들려도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인생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곧 누군가가 그의 인생을 망쳐놓으려 하고 있었다. (p99)이 책의 줄거리를 한번에 요약하는 말이 책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어느 날 이유없이 죽은 아내 메리의 진범을 찾아내고 메리를 살리기 위한 남편 닉의 시간여행이다. 메리가 총에 맞아 죽고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닉은 체포당하고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의 제의가 들어온다. 아직 부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부인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당신에게는 12시간이 있습니다.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 시간입니다. 특히 당신의 경우라면 더욱 더 그렇겠죠. (p22) 누구보다 사랑하는 메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금시계를 받아들게 된다. 방금 전 상황을 다 겪은 닉은 아무것도 모르는 메리에게 경고를 하게 되지만 메리는 또 다시 살해당하고 만다. 그는 그렇게 몇번씩이나 사랑하는 메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몇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며 범인을 찾아내지만, 범인은 그가 믿어야만 했던 뜻밖의 인물이었지다. 하지만 범인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쉬워지기는 커녕 점점 더 꼬여가기만 하는데…….

 

 

이 책은 내가 읽었던 시간여행을 해서 죽은 아내를 살리려는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닮았고, 같은 상황을 거슬러올라가고 계속해서 자신이 죽는 것을 봐야한다는 점에서 기욤 뮈소의 <사랑을 찾아 돌아온다>와 닮아있었고,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영화 <if only>와도 닮아있었다. 게다가  대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죠. 현재를 위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있긴 있을까요?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p241) 이 문장을 읽으며 존 블룸버그의 <카르페 디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책을 찾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닉에게는 시간을 13번씩이나 되돌릴 수 있는 금시계가 손에 있어서 과거로 몇번씩이나 돌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런 진귀한 물건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작가의 진심어린 충고까지 곁들여져 있는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전화를 걸어서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걸 계속 보게 된다면 어떨거 같아? 라고 물어놓고 내가 먼저 대답해버렸다. 나는 못볼 것 같아. 그리고 조금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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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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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들어온지 어언 9개월이 지난 뒤에 읽은 책. 표지부터가 끌리지 않았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읽기 전 서평을 뒤적뒤적 거렸는데, 난해하다는 말에 주춤거렸으나, 언제까지 묵혀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한번 들춰보자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전에 나는 그녀의 책으로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으나 어느 면에서 감흥을 전달받아야 하는지의 갈피를 잡지못한 채 읽어서 이 책도 어느정도의 실망감을 주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슥슥 읽어내려나갔다. 그런데 다 읽은 지금은 이런! 진즉에 읽을걸 그랬어!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전작과는 다른 그녀의 멜랑꼴리하고 건조한 문장에 묘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까.

 

 

주인공 하진은 과거의 어떤 큰 충격으로 대학생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때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 우습게도 이 책의 줄거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싶다.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저편에는 나는 다른 사람으로 살았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는다. 사실 하진이 기억 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얼마의 충격을 받아야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까. 라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 시절의 자신과 같은 조카를 바라보며 하진이 조근조근 말해준다. "슬퍼하지 마…… 물 속에 비치듯이 그저 네 마음에 뭔가 비칠 따름이야. 네 마음이 물과 같이 투명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마. 널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어른이 되면 그래서 네 마음에 다른 것이 비치게 되면 그땐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아도 그때는 그 힘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거야……." (p103) 왠지 나의 과거에게 말걸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이 작품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다가 뇌리에 박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차고 솟아오르는 거야. (p214)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07년이었고, 정말 죽어도 좋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스무살 때 미친 듯이 술만 먹었더랬다. 쌩뚱맞지만 그렇게 먹고도 간이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서 인체의 신비를 느끼기도 한다. 햇수로 올해가 4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 때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이 아파오고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는 그 시절이다. 왜 난 그 시절을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잊지 못했는가. 나는 언제까지 그 짐들을 떠안고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나쁜 생각들이 머릿 속을 헤집는다. 하지만 신경숙은 힘듦과 마주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는 바닥이 보일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일들엔 바닥이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아. 답답하다. 보기 싫다는 욕구가 강해서 특정 사람만 보면 잠깐 실명이 되던 미란도 안보는 편이 나은 것 처럼 나도 조금 더 외면하다가 당당하게 마주볼 수 있을 때, 그 때 다시 한번 이 책을 들어야겠다.

 

"뭔가 지독하게 헤어지기 싫은 무엇과 억지로 헤어진 느낌인데 무엇과 헤어졌는지를 모르겠어. 만약 내가 그 헤어진 것을 찾아내었을 때 그것이 끔찍한 것이라면 그때 당신 어떻게 하겠어요?" (p169) 지독하게 헤어지기 싫은 무엇과 억지로 헤어진 느낌. 그래, 난 그게 느낌이 아니라 왠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게 느낌뿐이라면, 만약 나에게도 과거에 기억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면, 그 답답함에 못이겨 나도 아마 끝까지 찾아냈을 것 같다. 그리고 후회했겠지. 그냥 덮어둘껄. 그리고 나는 나약한 사람이기에 그것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보란 듯이 하진은 다시 시작한다. 훨훨 털고 새로이 시작하는 삶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나도 그 날을 위해 날갯짓을 시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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