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세 번째 시간
리처드 도이치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책에 대한 슬럼프가 오려는지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리처드 도이치의 열세번째 시간>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였다. 두께감부터 후덜덜한 이 책은 3장을 읽고 덮어버리고, 처음부터 2장읽고 덮어버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던 차에 우연히 서평을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읽었는데, 아. 정말 가관이 아니다. 거진 500페이지가 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에 뿌듯함마저 감돌게 한다.
인생이 끝나는 날 결국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어리석고 뻔한 말처럼 들려도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인생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곧 누군가가 그의 인생을 망쳐놓으려 하고 있었다. (p99)이 책의 줄거리를 한번에 요약하는 말이 책 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어느 날 이유없이 죽은 아내 메리의 진범을 찾아내고 메리를 살리기 위한 남편 닉의 시간여행이다. 메리가 총에 맞아 죽고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닉은 체포당하고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의 제의가 들어온다. 아직 부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부인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당신에게는 12시간이 있습니다.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 시간입니다. 특히 당신의 경우라면 더욱 더 그렇겠죠. (p22) 누구보다 사랑하는 메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금시계를 받아들게 된다. 방금 전 상황을 다 겪은 닉은 아무것도 모르는 메리에게 경고를 하게 되지만 메리는 또 다시 살해당하고 만다. 그는 그렇게 몇번씩이나 사랑하는 메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몇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며 범인을 찾아내지만, 범인은 그가 믿어야만 했던 뜻밖의 인물이었지다. 하지만 범인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쉬워지기는 커녕 점점 더 꼬여가기만 하는데…….
이 책은 내가 읽었던 시간여행을 해서 죽은 아내를 살리려는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닮았고, 같은 상황을 거슬러올라가고 계속해서 자신이 죽는 것을 봐야한다는 점에서 기욤 뮈소의 <사랑을 찾아 돌아온다>와 닮아있었고,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영화 <if only>와도 닮아있었다. 게다가 대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죠. 현재를 위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있긴 있을까요?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p241) 이 문장을 읽으며 존 블룸버그의 <카르페 디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책을 찾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닉에게는 시간을 13번씩이나 되돌릴 수 있는 금시계가 손에 있어서 과거로 몇번씩이나 돌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런 진귀한 물건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작가의 진심어린 충고까지 곁들여져 있는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전화를 걸어서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걸 계속 보게 된다면 어떨거 같아? 라고 물어놓고 내가 먼저 대답해버렸다. 나는 못볼 것 같아. 그리고 조금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