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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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들어온지 어언 9개월이 지난 뒤에 읽은 책. 표지부터가 끌리지 않았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읽기 전 서평을 뒤적뒤적 거렸는데, 난해하다는 말에 주춤거렸으나, 언제까지 묵혀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한번 들춰보자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전에 나는 그녀의 책으로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으나 어느 면에서 감흥을 전달받아야 하는지의 갈피를 잡지못한 채 읽어서 이 책도 어느정도의 실망감을 주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슥슥 읽어내려나갔다. 그런데 다 읽은 지금은 이런! 진즉에 읽을걸 그랬어!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전작과는 다른 그녀의 멜랑꼴리하고 건조한 문장에 묘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까.

 

 

주인공 하진은 과거의 어떤 큰 충격으로 대학생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때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 우습게도 이 책의 줄거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싶다.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저편에는 나는 다른 사람으로 살았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는다. 사실 하진이 기억 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얼마의 충격을 받아야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까. 라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 시절의 자신과 같은 조카를 바라보며 하진이 조근조근 말해준다. "슬퍼하지 마…… 물 속에 비치듯이 그저 네 마음에 뭔가 비칠 따름이야. 네 마음이 물과 같이 투명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마. 널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어른이 되면 그래서 네 마음에 다른 것이 비치게 되면 그땐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아도 그때는 그 힘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거야……." (p103) 왠지 나의 과거에게 말걸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이 작품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다가 뇌리에 박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차고 솟아오르는 거야. (p214)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07년이었고, 정말 죽어도 좋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스무살 때 미친 듯이 술만 먹었더랬다. 쌩뚱맞지만 그렇게 먹고도 간이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서 인체의 신비를 느끼기도 한다. 햇수로 올해가 4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 때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이 아파오고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는 그 시절이다. 왜 난 그 시절을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잊지 못했는가. 나는 언제까지 그 짐들을 떠안고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나쁜 생각들이 머릿 속을 헤집는다. 하지만 신경숙은 힘듦과 마주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는 바닥이 보일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일들엔 바닥이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아. 답답하다. 보기 싫다는 욕구가 강해서 특정 사람만 보면 잠깐 실명이 되던 미란도 안보는 편이 나은 것 처럼 나도 조금 더 외면하다가 당당하게 마주볼 수 있을 때, 그 때 다시 한번 이 책을 들어야겠다.

 

"뭔가 지독하게 헤어지기 싫은 무엇과 억지로 헤어진 느낌인데 무엇과 헤어졌는지를 모르겠어. 만약 내가 그 헤어진 것을 찾아내었을 때 그것이 끔찍한 것이라면 그때 당신 어떻게 하겠어요?" (p169) 지독하게 헤어지기 싫은 무엇과 억지로 헤어진 느낌. 그래, 난 그게 느낌이 아니라 왠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게 느낌뿐이라면, 만약 나에게도 과거에 기억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면, 그 답답함에 못이겨 나도 아마 끝까지 찾아냈을 것 같다. 그리고 후회했겠지. 그냥 덮어둘껄. 그리고 나는 나약한 사람이기에 그것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보란 듯이 하진은 다시 시작한다. 훨훨 털고 새로이 시작하는 삶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나도 그 날을 위해 날갯짓을 시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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