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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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불과 몇일 전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vs 한국의 경기가 자연스레 생각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90%가 축구 광팬일 저정도로 축구에 관해선 매우 열정적이라고 한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선수들은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이 눈에 보였기에 아름다웠던 그들. 그리고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가 항상 격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약자들의 설움을 쏟아내는 일을 대신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설움을 축구로 조금은 해소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격정적이라고 해서 그게 어느 정도인지까지를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헉 , 소리를 안낼 수가 없었다. 열띤 응원이 이어질 때면 경기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 실제로 그것은 살짝 느껴지는 떨림이 아니라 사람의 몸까지 들썩이게 하는 강한 요동이어서 경기장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고 말하는 저자를 보며 , 우리나라는 월드컵만 되면 붉은 악마로 분장해서 열띤 응원을 하지만 , 정작 우리나라의 경기인 k리그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월드컵을 기점으로 응원하는 우리는 아르헨티나인들의 열정에 대적할 바가 못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번 아르헨티나 vs 한국의 경기는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여졌다. 보카 너에게 내 마음을 바치고 싶어. 세상 어디든 너를 따라갈 거야. 챔피언이 되어주어 고마워. - 보카 주니어스 응원가 中

 

 

 

그 열정적은 축구에 그치지 않고 탱고에서도 엿볼 수 있다. 탱고하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나라가 아르헨티나가 아니었던가.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리고 절대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항상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 탱고는 춤이 아니야.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 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p95) 사랑 , 이별 , 인생까지 탱고로 비유하는 그들은 탱고를 출 때는 나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상대방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고 , 그것이 연인관계 뿐만 아니라 , 대인관계까지 미친다. 또한 탱고를 춤으로써 각기 다른 '너와 나'를 '우리'라는 명칭으로 승화시키고 있기에 자신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슬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나라에서 , 자신들을 지키며 , 온전히 자신의 partner를 믿고 의지하며.

 

 

 

또한 아르헨티나에서는 자신의 본래의 직업 이외에 예술적인 직업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이 2개인 셈이다. 예를 들면 '은행원이고 가수예요. 변호사인데 춤을 추지요. 버스를 몰면서 그림을 그립니다.'(p45) 라는 식이다. 혹독한 독재 정부 아래 표현의 자유에 큰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것이 예술이었다는 것이다. 예술은 그들의 삶에 그렇게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예술은 그들에게 있어서 꿈이고 , 희망이었고 ,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있어야 하고 , 그 돈으로 자신의 문화를 취하기보다는 다른 곳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 그만큼 우리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 직업이라는 현실과 예술이라는 꿈의 다리를 동시에 걷고 있는 그들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시시각각 빙하가 녹아 내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페리토 모레노에 선 그녀는 온 몸으로 그 음성들을 들었다. '이해하려 애쓸수록, 마주하고 끝장을 보려 할수록 더 큰 아픔으로 느껴지며 삶을 짓누르는 것들이 있지. 그런 것들은 그냥 편안하게 놓아주어야 해. 인생은 때로 있는 그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거야. 기쁨과 아픔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그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거 아니겠니? 가끔은 이해할 수 없기에,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고 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아르헨티나처럼, 너 자신처럼, 그리고 너의 인생처럼 말이야.' (p232)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자연에서 '나'라는 존재는 매우 미미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겠지만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어서 잠시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라고. 아르헨티나의 열정이 나에게까지 미쳐서 나의 열정을 되새김질 할 수 있어야할텐데 , 아마 얼마 가지 못할 열정일 것만 같아서 조금은 두렵다.

 

 

 

이 책은 아마 저자가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썼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그녀가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한 명 , 한 명이 손미나로 하여금 읽는 독자도 함께 미소를 머금게 만들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이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평생에 놓칠 수 없는 기회 , chance가 손미나에겐 시시때때로 찾아든다. 그건 아마 그녀의 활동성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성격때문일지도 모르지만 ,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생각되는 그녀와 아르헨티나인들의 만남이 약오를만큼 부럽기 그지없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기 보다는 항상 자주 내 발자취가 있던 낯익은 곳을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도 혹여 언젠가 정말 우연처럼 아르헨티나라는 곳에 잠시나마 발을 붙일 날이 온다면 , 95%의 커피에 한방울의 눈물처럼 우유를 똑 , 하고 떨어뜨리는. 그래서 눈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라그리마를 온 몸으로 음미하면서 책 한 권을 그 자리에서 읽고 저녁으로는 소들까지도 행복해서 맛이 좋은 아사도를 우걱우걱 먹어줄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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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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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쥰세이를, 헤어진 쌍둥이를 사랑하듯 사랑했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현재 내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  그런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런 생활? 책을 가지고 기차를 타기 전 친구를 만났을 때에 친구에게 말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주인공 여자는 항상 아침마다 밥 대신 와인을 먹고 , 사람은 간간히 감성적인데에 비해 주인공은 시시때때로 감성적이고 , 현대인의 바쁜 생활을 등지고 너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왠지 나와 너무 대조적이야. 왜 에쿠니 가오리는 맨날 똑같은 여성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친구는 에쿠니 가오리가 현재 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라고.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았어? 라고 묻는다면 나는 , 냉정과 열정사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Blu를 먼저 읽어서 일까, Rosso는 Blu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래서 왠지 후회도 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정석대로 Rosso 먼저 읽을껄 그랬다고. Rosso가 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 움직임이 전혀 없는 애벌레를 보는 듯하던 Blu보다는 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쥰세이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함께 가슴아파하고 애달파하며 그리워하며 아오이를 찾아 헤맸지만 , 그에 반해 아오이는 읽는 내내 지루함이 찾아들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서정적인 그녀의 문체에 내가 아직 적응을 못하는 탓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밖에. 생활 곳곳에서 아오이를 그리며 살던 쥰세이와는 달리 , 아오이는 마빈과 함께하면서 간간히 쥰세이를 떠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가 마빈과의 생활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충족감때문에 쥰세이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마 마빈과의 생활은 덜함도 더함도 없다. 조용하고 온화하고 충족되어 있다. (p138) 이 대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일상 속에서 쥰세이를 찾는 아오이는 그것은 과거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지만 , 오해가 풀릴 수 있는 단박의 편지를 읽는 순간 아오이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녀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헤맨다. 그런 그녀도 두오모를 찾는다. 서른번 째 자신의 생일에 만나기로 했었던 쥰세이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여느 책에서 무릎을 탁 ! 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어느 것이 좋았냐는 질문에 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는 아마 비는 싫다. 엉뚱한 생각만 떠오른다. 이렇게 창문을 닫고 있어도, 비의 기척이 온 방에 충만하다. (p139) 이 대사였음직하다. 한 때 비를 무던히도 싫어했던 내게 비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그 사람이 갑작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나는 비오는 날이 참 좋아.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함께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그 말에 나는 '응.'이라고 대답해버렸다.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 그 시간동안엔 우연치않게 비가 참 많이도 왔었다. 그러고보면 그 사람은 감성적이었다. '이 비가 내 마음의 먼지를 씻겨내려가게 할지도 몰라. 그러면 네 앞에 섰을 땐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들고 서있을게.'라는 말을 서슴지않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요즘에 내리는 비는 때때로 그 사람을 생각나게도 만들지만 , 웃으면서 흘려버릴 수 있는 추억들이기에. 비만 오면 짜증을 있는 대로 내던 나를 이제는 비오는 날에도 웃을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그 사람이 지금은 고맙다. 비록 과거형일지라도.

 

 

 

이미 지난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약속은, 우리가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p225) 약속이라는 것은 손가락걸었던 그 대상이 마음으로부터 멀어졌을 땐 한낱 지껄였던 말로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가끔 그것들은 그 때의 추억들을 꺼낼 때면 때때로 생각나서 나의 마음을 헤집는다. 약속은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을 때에만 약속이라고 칭하는 것이지 , 올지 안올지 모르는 먼 훗날을 기약하는 약속따위는 그저 입방아에만 오르내리기 일쑤임을 뒤늦게 깨닫고도 난 현재도 지키지 못할 미래의 약속을 한 건 없는지 돌이키게 된다. 함께 했던 것들은 추억으로 남아도 예쁘게 그 자리에 지키고 서있지만 ,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은 추억으로 남아도 항상 서글프다는 것을 알기에.

 

 

 

그 순간 정겨운 냄새를 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아주 정겨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냄새라기보다 공기였다. 쥰세이의 냄새. 또는 그 시절의 우리들 냄새. (p124) 그 시절의 우리들의 냄새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마음이 쥰세이를 사랑하던 그 때의 아오이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로소 그녀가 쥰세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을 난 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이니 , 다른 분들과는 다를 수도.)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 밖에 없는 것이란다." (p210) 사람은 태어나서 사랑을 하고 , 이별을 하고 ,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그 순간에도 사랑을 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가슴 속에서 팔딱팔딱 숨쉬고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은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을 때에야말로 온전히 본연 자신의 모습을 얻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 밑도 끝도 없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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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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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사람. Una persona non posso dimenticare.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만나서 하나의 이야기로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 서서 써낸 열정과 냉정사이라는 이 작품이 여성들의 감성을 촉촉히 녹아내릴 수 있다는 책이라는 점에서 항상 관심있게 지켜보던 책이어서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면서 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이 책을 받게 되었고, 어느 날 책의 아련한 빛을 내뿜고 있는 듯한 푸름이 너무 예뻐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rosso부터 읽어야한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blu를 먼저 읽게 되었다.

 

쥰세이는 메미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오이라는 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아오이만을 위한 방을 따로 준비해놓고 살고 있는 것 같은 한 남자의 회고록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쥰세이의 삶에 아오이라는 이미 놓쳐버린 대상은 이미 번질대로 번져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8년 전 그때 이미 그의 삶 속에 스며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서 쥰세이의 감정표현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연인인 메미에게 의도치않게 상처를 주게 되고, 메미는 그런 그에게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p167) 라고 말하며 그의 곁을 떠나간다. 그리고 그는 아오이와 함께였을 때 스쳐가듯 약속했었던 10년 후 아오이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한 것을 잊지 않고 오지 않을 그녀를 만나러 그 곳을 찾아가게 된다.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기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고 올인하지 못하는 쥰세이가 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을 읽으며 그 애절함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하여 뭉클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직설적인 것일까, 사랑에 대해 너무도 소극적인 그를 바라보며, 그건 남자다운 행동이 아니야. 좀 더 남자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라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어떤 역동성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마지막에 쥰세이가 아오이의 눈동자에서 그를 찾기 위해 15분 전에 도착하는 국제특급 트랩 티켓을 끊을 때는 나도 웃으며 그의 뒤를 함께 뛰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 보낼 수 없다. 그래서, 그 날이 그리워, 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p206) 나에게도 과거의 사랑을 현재에 와서도 잊지 못하고 살만큼 좋은 사람과 예쁜 추억들을 만들며 살았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쥰세이와 아오이는 우발적으로 헤어진 것에 비해 나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정말 천신만고 끝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이별을 후회하지 않았고, 과거의 사랑을 현재의 삶을 지배하면서까지 생각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현재 자신의 옆에 자신과 함께 할 연인이 있는데, 그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한 두번씩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만에 하나 정말 내 연인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정강이를 차주고는 그 여자에게 보내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그 여자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할 때 뿐이다. 짧디막한 내 머리로 생각했을 땐 전의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나에게 충실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권태로움이 아니냐 이 말이다. 현실의 권태로움을 과거의 사랑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번잡하다. 마음이라는 부분이 육체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탓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깨나 발목의 아픔과는 달리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는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아픔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과거를 잊게 해 주리라 기원하면서……. (p142)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그만의 방법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게 만들 뿐이라고. 또 하나 깨달은 건 사랑에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는 방법은 시간이라는 약보다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약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메미의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치료해달라고 징징대기보다는 자신의 사랑이 무뎌질 때까지 기다리던지, 그것이 힘들다면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 나왔던 구절 중 한 문장을 인용하자면 그 사랑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언젠가는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놈이 제 풀에 제가 지쳐 달아날 수 있게 기다리던가, 아니면 그 사랑을 향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더 용기내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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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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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에는 다른 별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  

망원경으로 그 별들을 들여다보면 쌍둥이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들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백색의 별을 보았다면  

나중에야 그 옆에 동반성인 백색왜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첫 번째 별은 아주 밝게 빛나지만, 두 번째 별을 알아볼 때쯤이면 너무 늦어버린다. (p540)

 

 

 

 

 


이 책이 원작인 영화가 나왔다는 말에 원작에 겨룰만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일까? 볼까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더랬다. 그러다가 결국 그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보지 못했고, 책으로도 올해가 되서야 접하게 되었다. 책을 먼저 보고 그 감흥을 잃지 않기 위해 다운을 받아서 바로 봤는데, 책으로 먼저 보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책은 역시나 듣던대로 결말이 전혀 달랐지만, 가슴 속에 차있는 눈물이 내려가지 못하게 누군가 막고 있는 듯한 먹먹함은 영화와 책 둘 중 어느 것이 더 깊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만큼 각자의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브라이언과 사라의 사이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인 '제시, 케이트, 안나'가 있다. 평범한 가정이라고 보기에는 이들 가정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이들 부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언제나 병명부터도 오싹오싹한 전골수백혈병이라는 병을 안고있는 케이트가 있다. 그런 케이트를 살려내기 위해 체외수정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케이트에게 이식하기 최상의 상태를 갖춘 맞춤형 아기인 안나가 태어나게 된다. 첫 장 이 책을 보면 안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아기는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태어나느냐'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닌, '아기가 왜 태어나느냐'를 궁금해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태어난지 한달 후부터 언니를 위해 희생해야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13살이 된 안나는 신체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부모님을 상대로 고소를 하려고 신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을 차지했던 캠벨변호사를 찾아간다. 처음에 고소하려는 이유를 듣고, 안나가 고소하는게 당연하다 여겼고, 그렇기에 그 재판도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몇 승 따위의 명성만을 위해 안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옛애인이었던 줄리아가 사라로부터 안나를 지키기 위한 후견인으로 발탁된다. 사라의 대변인은 전직 변호사였던 그녀가 되고,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자유 중의 하나인 신체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안나와 언니이기에 골수가 맞는 안나가 이식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라의 입장차는 좁혀지고 화해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재판관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주고 우리는 그 판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들을 들어줄 필요가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드는 독자들은 결코 냉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골수 채취에 대비하여 안나에게는 성장인자 주사를 주어야 한다. 최초의 제대혈 이식 후 내가 케이트에게 준 주사처럼. 이것의 목적은 안나의 골수를 꽉꽉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세포를 뽑아낼 때 케이트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p306) , 캠프에서 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동생이 없는 동안 케이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다. 케이트가 이 재발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또 언제 위기가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안나가 필요할 것이다. 안나의 피가, 줄기세포가, 조직이. 그것도 당장. (p359) 하키에 재능을 지닌 안나가 여름캠프에 초대장을 받게 되었을 때 마냥 좋아하며 들떠있는 안나에게 사라는 "안나, 넌 갈 수 없어." 라고 단호히 말한다. 정말 이 책에서 사라는 정말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안나에게 케이트에 의한, 케이트의, 케이트를 위한 삶만을 고집한다. 처음엔 무척이나 이기적이어서 뒤통수를 한대 갈겨도 시원찮을 정도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자식이지만, 한 자식의 골수를 이식해서 다른 한 자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있고 설령 그게 털끝만큼 빈약한 퍼센테이지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유혹을 나도 역시 결코 뿌리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안나는 케이트를 위한 맞춤형 아기이기에 정확히 케이트와 동일한 골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라를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언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없으면 내가 누군인지를 기억하기 힘들기 때문에 왔다. (p190) 그러나 어린 안나의 생각과 행동엔 사라를 이해하기는커녕, 더욱 더 미워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 마음을 찌르르하게 울리기에 충분하다.

 

 

조금 독특했던 것은 하나의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안나, 캠벨, 사라, 브라이언, 제시, 줄리아의 시점으로 각기 돌아가며 진행되기 때문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서로 생각하는 양상들을 더욱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책이었다. 만약 사라나 안나의 시점으로만 돌아갔다면 우리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사건만을 바라보고 그 사건에만 집중했을 터였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우리가 집중할 것은 그 사건은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닐 것이다. 한 가정의 위태로움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지, 가족愛라는 이름으로 어느 허용치까지의 희생을 치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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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 목록을 눈여겨봐라.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유령들의 작품인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논픽션에서 소설까지 모두.

 우리는 디즈니 월드의 숨은 일꾼처럼 출판계를 지탱하는 그림자 군단이다. (p19)

 

 

 

 


솔직히 고백컨대, 처음에 제목을 보고 단어 그대로 '유령 작가'라고 인식한 뒤 'death note'를 떠올렸다. 그 열광하던 로버트 해리슨이 '이런 공포물을 써놓고 그렇게 열광을 받고 있다는거야?'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대신 써주는 작가 즉, '대필 작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책을 쓰윽 읽으며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유령 작가'의 주체인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전임자 마이클 맥아라가 전 영국 수상인 아담 랭의 자서전을 쓰던 중에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은 정확한 수사도 없이 단순히 자살로 치부해버린다. 그 바람에  '나'는 후임자 자리를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고, 다른 회고록에 비해 몇 배의 대필금액과 대필대상의 명성을 완전히 간과할 수 없던 그는 한달이라는 기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의를 수락하고 만다. 그러고서 계약을 맺고 집에 돌아오는 중 알 수 없는 공격을 받게 된다.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던 중, 스토리가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맥아라가 꽁꽁 감춰두었던 수수께끼를 화자와 함께 발맞추어 뛰어 찾아내는 둥 이야기의 전개를 짜맞추어 나가며 인 때려맞추기를 시도했다. 범인은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를 읽어나감으로써 충분히 숙지했던 터라 쏙쏙 뽑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전의 반전은 약간의 현기증을 동반했지만, 이게 끝이야? 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뭔가가 있겠지. 이건 아니야. 책장을 다시 되감기, 되감기.

 



일전에 대필이라는 소재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가 그랬고, 바로 앞전에 읽었던 리디 쌀베르의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그랬다. 대필이라는 명목으로 쓴 글들은 왠지 슬퍼보였고, <고스트 라이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안해요. 기분을 건드려서. 물론 유령이라도 감정은 있겠죠? 나도 그러니까." (p257) 라던가 책은 결코 유령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는 장이 될 수 없다. <유령작가> (p270) 이런 문장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본디 보여주려고 했었던 미스테리나 스릴러에 집중하기 보다는 본연 자신만의 글을 쓰는 오롯한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조차 없는 '대필 작가'의 한계성을 띠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유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테러와의 전쟁, 런던 지하철의 연쇄 폭발, 이라크 관련 자료 조작 등을 책의 곳곳에 뿌려놓음으로써 애덤 랭의 모습이 토니 블레어와 오버랩 된다. 역자 후기에서 보고 난 뒤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 블레어는 부시의 개(개인적으론 감히 애완견이라고도조차 말할 수 없는)라고 불리워진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인) 노동당과 토니 블레어의 지지자였던 그가 정말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삼아 애덤 랭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검색해보았지만, 부인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는 그 숨겨진 이면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만약 애덤 랭이 특정한 인물을 본따서 만들어진 인물이라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이라는 매체의 뒤에 숨어서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자인 '나'의 뒤에 서서목소리를 내는 것 저자 본인이 고스트 라이터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여태껏 나에게 고스트 라이터의 치욕과 불안정한 감정들을 다 내비춘게 아니냔 말이다. 그런 저자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스트 라이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상당히 불쾌해졌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한 많은 찬사를 들었기에 나에게 이 작가를 꿈꾸게 하기에 더 없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오는 정치적 권력의 모습들이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정치 스릴러라는 분야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만 스릴러보다는 저자의 정치에 대한 입장이 너무나도 커서 스릴러의 참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나라 정치상에 큰 관심이 없는 한 150p를 넘기기 전까진 재미를 보기가 힘들 것 같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할 판이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중간중간을 제외하고는 170p를 넘어가서 저자의 정치입장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에서야 조금 아, 이제 좀 숨통이 트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권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자신의 것인양 남용해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영원히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되물림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오늘 먹은 것들이 더부룩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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