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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 목록을 눈여겨봐라.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유령들의 작품인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논픽션에서 소설까지 모두.
우리는 디즈니 월드의 숨은 일꾼처럼 출판계를 지탱하는 그림자 군단이다. (p19)
솔직히 고백컨대, 처음에 제목을 보고 단어 그대로 '유령 작가'라고 인식한 뒤 'death note'를 떠올렸다. 그 열광하던 로버트 해리슨이 '이런 공포물을 써놓고 그렇게 열광을 받고 있다는거야?'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대신 써주는 작가 즉, '대필 작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책을 쓰윽 읽으며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유령 작가'의 주체인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전임자 마이클 맥아라가 전 영국 수상인 아담 랭의 자서전을 쓰던 중에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은 정확한 수사도 없이 단순히 자살로 치부해버린다. 그 바람에 '나'는 후임자 자리를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고, 다른 회고록에 비해 몇 배의 대필금액과 대필대상의 명성을 완전히 간과할 수 없던 그는 한달이라는 기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의를 수락하고 만다. 그러고서 계약을 맺고 집에 돌아오는 중 알 수 없는 공격을 받게 된다.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던 중, 스토리가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맥아라가 꽁꽁 감춰두었던 수수께끼를 화자와 함께 발맞추어 뛰어 찾아내는 둥 이야기의 전개를 짜맞추어 나가며 범인 때려맞추기를 시도했다. 범인은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를 읽어나감으로써 충분히 숙지했던 터라 쏙쏙 뽑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전의 반전은 약간의 현기증을 동반했지만, 이게 끝이야? 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뭔가가 있겠지. 이건 아니야. 책장을 다시 되감기, 되감기.
일전에 대필이라는 소재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가 그랬고, 바로 앞전에 읽었던 리디 쌀베르의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그랬다. 대필이라는 명목으로 쓴 글들은 왠지 슬퍼보였고, <고스트 라이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안해요. 기분을 건드려서. 물론 유령이라도 감정은 있겠죠? 나도 그러니까." (p257) 라던가 책은 결코 유령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는 장이 될 수 없다. <유령작가> (p270) 이런 문장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본디 보여주려고 했었던 미스테리나 스릴러에 집중하기 보다는 본연 자신만의 글을 쓰는 오롯한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조차 없는 '대필 작가'의 한계성을 띠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유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테러와의 전쟁, 런던 지하철의 연쇄 폭발, 이라크 관련 자료 조작 등을 책의 곳곳에 뿌려놓음으로써 애덤 랭의 모습이 토니 블레어와 오버랩 된다. 역자 후기에서 보고 난 뒤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 블레어는 부시의 개(개인적으론 감히 애완견이라고도조차 말할 수 없는)라고 불리워진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인) 노동당과 토니 블레어의 지지자였던 그가 정말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삼아 애덤 랭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검색해보았지만, 부인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는 그 숨겨진 이면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만약 애덤 랭이 특정한 인물을 본따서 만들어진 인물이라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이라는 매체의 뒤에 숨어서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자인 '나'의 뒤에 서서목소리를 내는 것 저자 본인이 고스트 라이터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여태껏 나에게 고스트 라이터의 치욕과 불안정한 감정들을 다 내비춘게 아니냔 말이다. 그런 저자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스트 라이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상당히 불쾌해졌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한 많은 찬사를 들었기에 나에게 이 작가를 꿈꾸게 하기에 더 없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오는 정치적 권력의 모습들이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정치 스릴러라는 분야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만 스릴러보다는 저자의 정치에 대한 입장이 너무나도 커서 스릴러의 참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나라 정치상에 큰 관심이 없는 한 150p를 넘기기 전까진 재미를 보기가 힘들 것 같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할 판이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중간중간을 제외하고는 170p를 넘어가서 저자의 정치입장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에서야 조금 아, 이제 좀 숨통이 트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권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자신의 것인양 남용해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영원히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되물림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오늘 먹은 것들이 더부룩하게 느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