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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아르헨티나'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불과 몇일 전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vs 한국의 경기가 자연스레 생각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90%가 축구 광팬일 저정도로 축구에 관해선 매우 열정적이라고 한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선수들은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이 눈에 보였기에 아름다웠던 그들. 그리고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가 항상 격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약자들의 설움을 쏟아내는 일을 대신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설움을 축구로 조금은 해소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격정적이라고 해서 그게 어느 정도인지까지를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헉 , 소리를 안낼 수가 없었다. 열띤 응원이 이어질 때면 경기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 실제로 그것은 살짝 느껴지는 떨림이 아니라 사람의 몸까지 들썩이게 하는 강한 요동이어서 경기장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고 말하는 저자를 보며 , 우리나라는 월드컵만 되면 붉은 악마로 분장해서 열띤 응원을 하지만 , 정작 우리나라의 경기인 k리그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월드컵을 기점으로 응원하는 우리는 아르헨티나인들의 열정에 대적할 바가 못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번 아르헨티나 vs 한국의 경기는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여졌다. 보카 너에게 내 마음을 바치고 싶어. 세상 어디든 너를 따라갈 거야. 챔피언이 되어주어 고마워. - 보카 주니어스 응원가 中
그 열정적은 축구에 그치지 않고 탱고에서도 엿볼 수 있다. 탱고하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나라가 아르헨티나가 아니었던가.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리고 절대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항상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 탱고는 춤이 아니야.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 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p95) 사랑 , 이별 , 인생까지 탱고로 비유하는 그들은 탱고를 출 때는 나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상대방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고 , 그것이 연인관계 뿐만 아니라 , 대인관계까지 미친다. 또한 탱고를 춤으로써 각기 다른 '너와 나'를 '우리'라는 명칭으로 승화시키고 있기에 자신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슬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나라에서 , 자신들을 지키며 , 온전히 자신의 partner를 믿고 의지하며.
또한 아르헨티나에서는 자신의 본래의 직업 이외에 예술적인 직업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이 2개인 셈이다. 예를 들면 '은행원이고 가수예요. 변호사인데 춤을 추지요. 버스를 몰면서 그림을 그립니다.'(p45) 라는 식이다. 혹독한 독재 정부 아래 표현의 자유에 큰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것이 예술이었다는 것이다. 예술은 그들의 삶에 그렇게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예술은 그들에게 있어서 꿈이고 , 희망이었고 ,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있어야 하고 , 그 돈으로 자신의 문화를 취하기보다는 다른 곳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 그만큼 우리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 직업이라는 현실과 예술이라는 꿈의 다리를 동시에 걷고 있는 그들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시시각각 빙하가 녹아 내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페리토 모레노에 선 그녀는 온 몸으로 그 음성들을 들었다. '이해하려 애쓸수록, 마주하고 끝장을 보려 할수록 더 큰 아픔으로 느껴지며 삶을 짓누르는 것들이 있지. 그런 것들은 그냥 편안하게 놓아주어야 해. 인생은 때로 있는 그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거야. 기쁨과 아픔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그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거 아니겠니? 가끔은 이해할 수 없기에,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고 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아르헨티나처럼, 너 자신처럼, 그리고 너의 인생처럼 말이야.' (p232)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자연에서 '나'라는 존재는 매우 미미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겠지만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어서 잠시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라고. 아르헨티나의 열정이 나에게까지 미쳐서 나의 열정을 되새김질 할 수 있어야할텐데 , 아마 얼마 가지 못할 열정일 것만 같아서 조금은 두렵다.
이 책은 아마 저자가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썼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그녀가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한 명 , 한 명이 손미나로 하여금 읽는 독자도 함께 미소를 머금게 만들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이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평생에 놓칠 수 없는 기회 , chance가 손미나에겐 시시때때로 찾아든다. 그건 아마 그녀의 활동성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성격때문일지도 모르지만 ,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생각되는 그녀와 아르헨티나인들의 만남이 약오를만큼 부럽기 그지없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기 보다는 항상 자주 내 발자취가 있던 낯익은 곳을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도 혹여 언젠가 정말 우연처럼 아르헨티나라는 곳에 잠시나마 발을 붙일 날이 온다면 , 95%의 커피에 한방울의 눈물처럼 우유를 똑 , 하고 떨어뜨리는. 그래서 눈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라그리마를 온 몸으로 음미하면서 책 한 권을 그 자리에서 읽고 저녁으로는 소들까지도 행복해서 맛이 좋은 아사도를 우걱우걱 먹어줄 것이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