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잊을 수 없는 사람. Una persona non posso dimenticare.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만나서 하나의 이야기로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 서서 써낸 열정과 냉정사이라는 이 작품이 여성들의 감성을 촉촉히 녹아내릴 수 있다는 책이라는 점에서 항상 관심있게 지켜보던 책이어서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면서 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이 책을 받게 되었고, 어느 날 책의 아련한 빛을 내뿜고 있는 듯한 푸름이 너무 예뻐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rosso부터 읽어야한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blu를 먼저 읽게 되었다.

 

쥰세이는 메미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오이라는 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아오이만을 위한 방을 따로 준비해놓고 살고 있는 것 같은 한 남자의 회고록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쥰세이의 삶에 아오이라는 이미 놓쳐버린 대상은 이미 번질대로 번져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8년 전 그때 이미 그의 삶 속에 스며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서 쥰세이의 감정표현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연인인 메미에게 의도치않게 상처를 주게 되고, 메미는 그런 그에게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p167) 라고 말하며 그의 곁을 떠나간다. 그리고 그는 아오이와 함께였을 때 스쳐가듯 약속했었던 10년 후 아오이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한 것을 잊지 않고 오지 않을 그녀를 만나러 그 곳을 찾아가게 된다.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기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고 올인하지 못하는 쥰세이가 된 츠지 히토나리의 글을 읽으며 그 애절함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하여 뭉클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직설적인 것일까, 사랑에 대해 너무도 소극적인 그를 바라보며, 그건 남자다운 행동이 아니야. 좀 더 남자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라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어떤 역동성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마지막에 쥰세이가 아오이의 눈동자에서 그를 찾기 위해 15분 전에 도착하는 국제특급 트랩 티켓을 끊을 때는 나도 웃으며 그의 뒤를 함께 뛰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 보낼 수 없다. 그래서, 그 날이 그리워, 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p206) 나에게도 과거의 사랑을 현재에 와서도 잊지 못하고 살만큼 좋은 사람과 예쁜 추억들을 만들며 살았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쥰세이와 아오이는 우발적으로 헤어진 것에 비해 나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정말 천신만고 끝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이별을 후회하지 않았고, 과거의 사랑을 현재의 삶을 지배하면서까지 생각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현재 자신의 옆에 자신과 함께 할 연인이 있는데, 그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한 두번씩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만에 하나 정말 내 연인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정강이를 차주고는 그 여자에게 보내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그 여자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할 때 뿐이다. 짧디막한 내 머리로 생각했을 땐 전의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나에게 충실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권태로움이 아니냐 이 말이다. 현실의 권태로움을 과거의 사랑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번잡하다. 마음이라는 부분이 육체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탓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깨나 발목의 아픔과는 달리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는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아픔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과거를 잊게 해 주리라 기원하면서……. (p142)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그만의 방법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게 만들 뿐이라고. 또 하나 깨달은 건 사랑에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는 방법은 시간이라는 약보다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약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메미의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치료해달라고 징징대기보다는 자신의 사랑이 무뎌질 때까지 기다리던지, 그것이 힘들다면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 나왔던 구절 중 한 문장을 인용하자면 그 사랑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언젠가는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게,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놈이 제 풀에 제가 지쳐 달아날 수 있게 기다리던가, 아니면 그 사랑을 향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더 용기내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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