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 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 잔이다.”

 

 

 


얼마 전 법정스님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살아계실 때 그 분의 책이 몇권씩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 한 권도 접해보지 않았던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법정스님의 책을 소장할까 하는 고민을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소유를 주장하던 법정스님의 외침은 뭇 사람들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모기소리일뿐이었나보다. 더이상 법정스님의 책이 출간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욕심많은 자들은 값을 정가보다 더 높이 부르며 그 분의 책을 흥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그 욕심 가득한 생각과 꼬락서니가 더럽고 아니꼬와서 안사고 안보고 만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 그것도 분명 사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팔았겠지 -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올해까지만 법정스님의 책을 펴낸다는 소리에 아마 정가보다 더 비싸게 주고 샀을 사람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그러던 중 나는 지인이 선물해주어서 읽으려고 계획잡았던 책들을 모조리 싹 다 뒤로 미루고 그 책 먼저 집었더랬다.

 

 

 

법정스님의 책은 한결같이 종교적인 느낌이 강할거라고 단정지었던 나의 예상이 삐걱거렸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한 인격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우리보다 오래 이 세상에 계셨던 그 분이 깨우치고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종교적 색채가 때때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하기야 법정스님이 불교라는 특정종교에 몸 담고 계셨기에 , 그 부분을 송두리째 간과하진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우리가 소유하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것 역시 소유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무소유 또한 내가 읽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말하고 있는 내려놓음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올 때 맨 몸으로 오고 갈 때도 맨 몸으로 가는데 , 누구나 어떤 것에 대한 소유욕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을테고 , 그것이 나에게는 화장품과 책이었으나 , 화장품은 쓰면 쓸수록 사라지고 , 유통기한도 있기에 소유할 수 없음을 실감하고 난 뒤로부터는 책만이 내가 가장 유일하게 소유하고 싶은 산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스님은 그것도 한 권이면 족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나는 그 한 권이 아닌 여러권을 가지고 있으니 책을 읽었음에도 실천하려면 아직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생을 마칠 때까지도 소유욕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책을 익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p238)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 책에 대한 법정 스님의 자세였다. 저 위의 문장들을 두어번씩 읽으며 나는 어쩌면 가슴 속에 책을 새기기보다는 그저 읽는 것만 치중하지 않았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대로 읽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몇 일, 몇 달, 몇 해가 지나면 너무나도 자연스레 잊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다른 생각에 빠져 책장을 넘기면서도 내가 책을 읽고 있는지 글자를 읽는건지도 모를 상황까지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 책을 억지로 읽으려다가 시간낭비만 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어느 때고 책이 읽히지 않을 경우엔 그 책을 붙잡고 글자 수만 헤아리기보다는 스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책장을 덮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처음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 제목을 접하고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제목이었기에 더더욱 흥미가 일었던 책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하고 , 자신이 있었던 자리는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치워줘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 실천하기란 조금의 마음만 가지고는 참 어렵다. 그 마무리를 배우고자 책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그런 뜻의 마무리뿐만 아니라 , 여러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마무리란 - 이다.' 라는 문장이 수없이도 많았다. 그 중 와닿지 않았던 것이 없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움 그리고 내려놓음이었다. 법정스님이 펴낸 이 책은 우리가 어느 순간 아차 !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닌 , 언젠가는 깨우칠 수도 혹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깨우치지 못할 내용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우리가 스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모조리 실천하려면 시간이 그만큼 필요할테고 , 뜻대로 되지않을 때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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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속으로 - 71-Into The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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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명 학도병의 감동실화 | 6월, 그들을 기억하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T.O.P.)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피난민도 군인들도 모두 떠난 텅 빈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영덕시를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오랜만에 극장가서 본 영화. 사실 이런 영화가 있다는걸 어제 볼 때 알았다-_- 그래서 영화보기 전 포스터 달랑 한 장보고, 아 이런 영화구나 - 라는 생각으로 기대 하나도 안하고 봤던 영화. 아마 6.25전쟁이 올해로 60주년을 맞았기 때문일까 6.25전쟁을 다룬 내용이었다. 6.25전쟁을 다룬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동막골'이 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서 이러니 저러니 보지도 못했고, 언젠가는 봐야지했었는데 여지껏 까먹고 있었던... 좌우당간 처음에 이 영화는 실화라는 사실이 자막에 뜨지만 '뭐 그렇겠지' 라는 생각만 들 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끝나고 한번 더 실화라는 자막이 뜨는데, 그제서야 '아 - ' 하는 생각이 들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휴가'는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영화에선 어디를 눈물포인트로 잡은 것인지를 몰라서 찔끔찔끔 거리기만 했다. -_- 마음이 꼼틀꼼틀거렸던 대사를 뽑자면 김승우 역의 강석대와 최승현 역의 오장범이 말하는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라는 대사는 마음이 참 아파왔다. 펜을 잡고 공부를 해야할 학도생들에게 너무 힘든 짐을 맡겨놓은 것 같아서.. 그리고 오장범이 말한 제가 알고있는 북한군은 머리에 뿔달린 괴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와 같은 '어머니' 였습니다. 라는 대사였다. 솔직히 처음엔 아이리스에서 몹쓸 연기(-_-)의 소유자 top이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사투리에 집중해서 그런지 들을 때마다 웃겼던(-_-) 권상우, 비중이 너무 없어 아쉬웠던 김승우도 함께 나오지만 단연 돋보였던건 역시 차승원. 인민군으로 나오지만 역시 그의 매력은 철철 넘친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건 최승현과 권상우를 뺀 나머지의 69명의 학도병 역할을 충실해 해내준 조연들도 함께해 더 빛났던 영화. 실제 전쟁 당시 포항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을 잡고  싸웠을 71명의 학도병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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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My Sister's Keep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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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다. 나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는 언니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태어난 맞춤형 아기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대혈,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내 몸의 모든 것을 언니에게 주었고 그런 내 역할에 대해 한 번도 도전한 적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난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엄마 ‘사라’(카메론 디아즈)와 아빠를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두 살배기 딸 케이트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전 공학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건 어떤 이들에겐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부부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안나가 우릴 고소했다. 최고 승소율을 자랑하는 변호사(알렉 볼드윈)까지 고용해서. 난 11살 된 딸을 상대로 또 다른 딸 케이트를 살리기 위한 재판을 해야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슬픈 건 나 때문에 가족들도 죽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엄마는 변호사 일도 그만 두고 나를 살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나는 아빠(제이슨 패트릭)의 첫사랑을, 오빠 제시(에반 엘링슨)의 엄마를 빼앗았다. 그리고 동생 안나의 몸을 빼앗았다. 이제는 가족들을 위해 나 나름의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어제 조디 피콜트의 '쌍둥이별(My sister's keeper)'을 읽었다. 이 책의 감흥을 놓고 싶지 않아서 결말이 전혀 다르다던 이 영화를 접했다. 아마 영화를 보고 책을 봤더라면 무지막지하게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책에서는 시점이 각기 달라져서 주인공 각기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인 듯한 느낌을 준 반면에 영화는 시점에 따라 변화할 수 없다는 한계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감점요인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나타나는 제시의 방탕한 생활이라던가, 반항적인 태도를 보기보다는 조금 더 온순한 제시를 본 듯한 느낌에 김이 팍 새버렸고, (나름) 처음엔 조금 냉정한 케이트가 압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안나는 뭐라고 해야할까, 감정이라던가하는 등의 표현이 제대로 전달되긴 했지만, 책에서 안나는 법정에 선 이유가 온전히 자신의 신체를 지키려는 욕구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땐 매우 그 느낌이 강했는데, 영화에선 그런 모습들이 약화됐다고 해야할까. 사라는 원작에서는 정말이지 옆에 있었으면 뒤통수를 치고 싶을 만큼... 안나를 사랑하긴 하는지, 그저 케이트를 살리기 위한 용도로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못돼먹었는데(-_-) 책에서는 아마 그런 모습들은 자제된 거겠지. 쩝. 그냥 이래저래 불만이 많다. -_- 하지만 안나 역의 아비게일 브레슬린과 케이트 역의 소피아 바실리바의 아역들은 놀라우리만큼 소화를 잘 해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건, 줄리아가 빠졌다는 점. 책이 별 다섯개만점에 ★★★★★ 였다면 영화는 ★★★ 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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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 Music and Lyrics B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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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작가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어. 다른 사람들한테 휘둘리지 말라고"

 

 

 

 

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왕년의 팝스타 알렉스(휴 그랜트).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그에게 어느 날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다. 브리트니보다 인기 많은 최고의 스타 가수 코라 콜만으로부터 듀엣 제안을 받은 것! 단 조건이 있으니 둘이 함께 부를 노래를 알렉스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곡에서 손 뗀지 이미 오래인데다 작사라곤 해본 적도 없는 알렉스는 굴러들어온 기회를 놓칠 지경이다. 그런데 마침 알렉스 앞에 자신의 집 화초를 가꿔주는 수다쟁이 아가씨 소피(드류 베리모어)가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전에는 시끄럽기만 하던 말소리가 하나 같이 주옥 같은 노랫말! 알렉스는 작사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소피에게 동업을 제안하고. 왠지 인생 최고의 히트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책보다는 영화가 더 땡긴 날. 전엔 한번은 무엇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아서 미칠 뻔한(-_-정말) 적이 있어서 집에서 영화 5편을 주구장창 본 적도 있었는데, 그 때 본 영화가 '당신이 잠든 사이에' , 'if only' , '비커밍제인' , '아는 여자' , '국화꽃향기' 였었는데, 이 중 버릴 영화는 단 하나도 없어서 항상 추천하는 나의 top 5. 그나저나 아무 이유없이 영화가 땡긴 걸 보니 오늘 조금 우울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사실 엄청 보고 싶었던 영화도 아니고, 뭐 볼까 하다가 맨 위에 있길래 그냥 다운받은거-_- '브릿진 존스의 일기'나 '러브액츄얼리'에 출연하여 낯이 익은 휴 그랜트의 연기는 나에게 있어 로맨틱 코미디 부문에서 언제나 excellent ! 를 외칠 수 밖에 없는 배우로 자리메김 해왔다. 드류 베리모어는 원래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죄다 pass ! 를 외쳤었는데, 이 영화를 봄으로써 '첫 키스만 50번 째'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음, 과연 보려나..)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보려고 한 두번 시도만 했었지, 제대로 본 적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마음까지 말랑말랑해졌다. 그렇다고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는 것도 혹은 격한 감동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딱딱하게 굳어있던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달까. 이 영화 ost로 유명한 'way back into love'는 다시 한번 나의 romance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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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지음, 박상미 옮김 / 이상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가정은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시할 수 있는 장소이다. - A. 모루아

 




 


누구에게나 가족이라는 존재는 고유의 그 명사만으로도 뭉클하게 만들며 눈이 시릴 정도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에 관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계속해서 극찬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가족,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라는 작품은 뜻밖에도 단편집이었다. 단편집을 무던히도 싫어하는 나이지만, '위험한 독서'를 읽고나서부터는 '단편도 하나의 작품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나름대로의 패턴을 유지하며 읽고 있다. 그러나 단편집은 그에 대한 매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해야만 넘어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 정말 그 매력에 빠져 허우덕대며 읽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자 , 후자 모두 낯설었는데 이유인즉슨 , 읽으며 TV 프로그램에서 해주고 책으로도 출간되어서 전혀 낯설지 않은 'TV동화 행복한 세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강렬한 임팩트를 기대할 수 조차 없고 그저 설렁설렁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냥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내용이 실려있지도 않고 , 나에게 있어 상상할 수 없는 상황들도 꽤 있어서 그다지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한번 들었다 , 두번 들었다 , 세번째 들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읽은 것이 아니라 , 겨우 한번 훑어봤을 뿐이다. 책은 두번 읽어야 제대로 읽은 것임을 알지만 , 두번씩이나 읽고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던 것도 , 공감이 되었던 것도 없었기에 두번이나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괜찮았던 단편은 보석함 속의 진짜 보석이라는 단편이었는데 , 겨우 두장밖에 되지 않는 글이기에 길어야 3분 안에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다. 화자인 엄마에게 보물이 들어있는 보석함이 있는데 , 그곳엔 종이 한 장과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몇가지가 함께 보관이 되어있다. 엄마는 사춘기인 아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엄마에겐 힘겹기에 꼭 이렇게까지 다가가야 하냐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들여다보는 쪽지가 있는데 , 그 쪽지엔 이렇게 씌어있다.  '엄마,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랑해요.' 그 순간은 정지되지 않았고 , 어쩌면 당연한 그 말이 변질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 엄마는 그것을 생각하며 아들에게 다가가기를 꺼리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희망은 자식인 '내'가 되고 , 그 희망을 깨뜨릴 수 있는 것도 '내'가 되기 때문에 , 부모님이 그것을 영원토록 행복한 그때의 마음으로 가지고 가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결국은 '내'가 된다.


 


 


 


가정은 나의 대지이다. 나는 거기서 나의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한다. - 펄벅 (p202)


 


 


 


나는 그동안 ,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항상 가족에 대한 불만을 터뜨려왔고 , 터뜨리고 있다. 나를 제외한 family 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는 내 가족들은 나에게 있어 항상 나의 행동을 규제하는 대상들이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발목을 꺾는 것만 같았고 ,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에 대해서라면 생각해보고 내리는 결정이 아닌 무조건적인 'NO'라는 대답만을 들었기에 'YES'라는 대답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 다하는 혼자서의 여행이라던지 , 모험이라는 것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했고 , 설사 부득이하게 어딜 놀러가게 되더라도 마음 편하게 즐기기는 커녕 집에서 오는 염려가득한 전화를 받느라 하루를 다 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항상 불만이 터졌고 , 철없는 마음에 나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나를 과잉보호해서 그런 것이라며 단정짓곤 했었다. 하지만 'NO'라는 대답을 듣고도 내가 그것들에 엄청난 반항을 하지않고 항상 순응하고 마지못해 억지로라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가족을 믿고 ,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이유가 아닌 맏딸이라는 위치는 나에게 부담에 부담에 부담을 지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유년기의 그런 생활들은 참 많이 괜찮은 시간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통금시간이라는 것이 주어져있던 나는 정해진 통금시간 안에서의 시간들만이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기에 매일매일 주어지는 나의 시간들을 어떻게 쓸 것인지 매일 밤 연구하고 ,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통금시간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없어지고 전에는 '어차피 밤에 잘껀데 뭣하러 낮에 자면서 시간을 낭비해?' 라고 대꾸하던 나는 할일없는 날이면 주구장창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 컴퓨터 혹은 TV 혹은 술먹으러 나가는 날들이 이어지는 항상 의미없게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역시 스무살 때 흐트러진 생활들로 인한 여파가 커서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지만 , 적어도 그 때 당시는 부모님이 의도했건 , 의도치 않았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아이로 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몇 해 전 , 무엇이 원인이었는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시작된 아주 작은 사소한 일로 엄마와 다퉜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 먼 훗날 찾아오게 될 상황이 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서 그 새벽에 엄마와 아빠가 주무시는 안방엘 가서 그 속을 파고들고서야 겨우겨우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생각해본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겠다고 떠나버린다면 , 이라는 생각을 할 때면 그저 책 한 권을 읽고 느끼는 먹먹함이 아닌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들이 역류하며 숨을 쉬지 못할 만큼의 위험을 동반하게 되는 상상이다. 그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 언젠가는 있어야하는 불변의 법칙임에도 나에게는 그런 날이 조금 더 늦춰지길 바라고 , 이뤄질 수 있다면 아예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대관계로 맺은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에게는 왜 항상 냉담하게 반응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늘 함께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있다뿐이지 , 결코 가벼운 존재는 아닐텐데 내가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아서 왠지 내 가족에게 벅차오르는 가슴만큼 미안해지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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