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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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침엔 쌀쌀하더니 지금은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것이 제법 가을 티를 내는 듯 하다. 그러나 느낄 수 있을만큼의 기분 나쁜 꿉꿉함은자동적으로 에어컨과 성푼기에 손이 가게 만들지만 3분도 채 되지 못하게 틀고는 꺼버린다. 그로 인해 온 몸에 오한이라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꿉꿉함은 얄궂게도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검사의 아니, 대한민국의 비린내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직 서평을 쓰지 않아 집으로 직행되지 못한 그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손에 쥐어본다. 어떤 것이든 표현하지 않고 잊고 있는다면 아무리 좋았던 감정도 엷어지기 마련이라 오래 묵혀두어 혹시 쉰내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녹록지 않은 그것은 서평을 쓰는 동안에도 손님처럼 찾아왔는데, 그 느낌이 어찌나 말랑한지 좀 더 오래도록 내게 머물러주길 희망했다.

 

 

 

'소수의견'에 대한 대다수 독자들의 서평을 들여다보면 '용산 참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책은 그것을 모티브로 썼다고 작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읽는 독자에게서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건인 셈이다. 09년 용산 참사로 얼룩진 어느 날에 '100분 토론'을 시청했었다. 한가지 사건에 두가지 의견이라니, 참 매력있다 생각하면서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측 패널들을 보며 '너희가 국민을 상대로 준비한 변명이 고작 그 정도니'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때, 이따금 들려오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의견은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박수라도 치고 나설 만큼 경쾌함과 대범함이 실려있었다. 그걸 보며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혹자 한 사람은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 즈음에 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이야. 게다가 아마 그 때의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했었고, 사건의 경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용산 참사'의 실제적 결말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책은 잘 짜여진 플롯을 독자에게 과감히 밀어부치는 힘을 가진 책이라 더욱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놀기도 바쁜 팔 월의 여름 휴가, 내가 과연 책을 읽을 수나 있을까, 의구심을 품으며 나를 따라나서기 싫다던 윤 변호사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 끌고는 기차에 탑승했다. "지난 2월말 경찰이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사업부지의 현장을 점검하고 있던 철거민들에 대한 진압에 들어갔습니다.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우고 저항했지요. 진압 중 폭력 사태로 철거민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고, 죽은 철거민은 열여섯살 학생이고 폭행으로 사망했는데,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가 진압 경찰 중 한 명을 둔기로 내리쳐 골로 보낸 모양이오. 검찰은 그 아버지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소. (…)" (p36-37) 국선 변호인인 윤 변호사는 국가의 명령에 반기를 들어 사직서를 쓰고는 박재호에 의한, 박재호를 위한, 박재호의 변호사가 되고, 그에게 있어 피고인은 대한민국이 된다. 대한민국에 청구하는 배상액은 100원. 그렇다. 그들은 단지 여론을 환기하려는 목적, 그 뿐인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국민참여재판까지 문을 두드렸고 그 재판이 당신의 귀가 쫑긋하고 시선이 가 닿을 때 시작된다. 실체따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가운데에 피고로 세우고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와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의 싸움이 법원이라는 국한된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그들의 판을 지켜보아라.

 

 

 

사건에는 항상 진실과 거짓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해있고,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놀아나고 있는 자들을 강타하여 진실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은폐하고 대신 거짓을 표면에 매끈하게 발라놓기에 우리는 거짓을 보고도 진실이라 스스로를 납득시키기고 그것을 믿기에 이른다. 이 책에서 독자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진실은 단연 p36-37 뿐이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작가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오롯하게 사건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소설의 전개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마저 나의 숨을 옥죌 만큼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소수의견이라는 좋은 책을 만나서 참 행복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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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민음 경장편 3
하재영 지음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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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날리고 있는 한 낮의 한가로운 오후에 연신 뻐끔거려 눈에 그렁그렁 매달은 눈물을 스윽 닦아내고는 그간 읽은 책의 서평을 쓰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볼펜을 한바퀴, 두바퀴 빙빙 돌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한참을 끼적거리다가 두서없는 글에 금세 샐쭉해져서 그마저도 두고 그와 상관없는 책을 내리 읽어가다가 겨우 30페이지가 남은 책을 읽을까 말까 10초쯤 망설였을까, 결국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리고는 엉켜있던 책의 내용을 제 자리에 끼워 맞춰놓았다. 책 한 권을 끝마친지 10분도 안되서 새로운 다른 책을 손에 움켜잡고 읽기란 대단한 과욕이라 생각하는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햇빛에 뽀송뽀송 말린 이불을 배까지 끌어올려 덮고 잠을 자는 것 뿐인데, 아무리 일이 없다한들 회사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하재영 작가의 '스캔들'에 대한 같잖은 서평이라는 구색에 대강 맞춘 글짓기이다. 하지만 그리 재미도 감동도 감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이 책에 대해 쓰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책의 질과 양이 얼마만큼 비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두께를 보고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절로 저으며 읽었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는 '질과 양은 반비례하다'라는 문장이 머릿 속에서 새로이 성립되기를 희망했으나, 책을 다 덮고 난 후에는 그것을 희망했다는 것조차 머쓱해질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알만하지 않은가. 책의 중점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다. 아니 그런 듯 하다. 중간중간 주제를 잊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런 듯 하다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혀를 간지럽혀 구태여 내 입술 사이로 짜증이 새어나오게 만든다. 제기랄. 책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당연하지, 그래서 이 책은 아미가 죽은 원인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런 의도따위는 없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들을 향한 잣대가 그들을 죽였다고 그것을 비판하지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떠한 - 혹은 잘 알려져있는 구식이라도 - 문제해결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문제점만 제시해놓고는 뒤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의 내용이 혹자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며 좋아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부한다.

 

 

 

루머는 스스로 번식한다. 루머의 자가 번식에 필요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호기심뿐이다. 호기심은 선의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타인의 치부를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을 닮은 저열한 욕망이 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이들은 루머의 끝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할 결말을 지어내려 하지 않을까? 그 결말이 완전한 창작, 100퍼센트의 허구여도 말이다. (p116)

 

아무리 이 책에 반감을 가졌다한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컴퓨터 앞에서 끼적끼적대는 누리꾼들의 자세이다. 재미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고. 하지만 그에 따른 대응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더디지만 조금씩 자리메김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네트워크상의 가장 큰 문제인 익명제를 실명제로 탈바꿈(완전하진 않지만)되고, 사이버 수사대가 출동한다. 그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것은 그들을 손가락만으로 중얼중얼거릴 수 있는 악플러들로부터 도피시킬 수 있는 방법이고, 그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힘들어 세상을 놓아버리는 꼴이 도대체 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지는지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것도 헤쳐나오지 못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동물,이라는 생각만이 머릿 속을 맴돈다. 혹은 요즘같은 연예인들의 도미노식 자살은 관심받고 싶은 그들의 최후의 발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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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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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국소설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에 손을 뻗게 된 까닭은 책의 소개글에 오롯이 나와있는 책의 본문 중 "왜 피를 팔았어요?" "샴푸를 한 병 사고 싶었어요." 이라는 대화를 보고나서였다. 그럼에도 어둠이 빽빽 찬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담스러움이 손에 안기는 기분이었고 급기야 책꽂이 가장자리에 억지로 밀어 붙여넣고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고 설령 그곳에 눈길이 닿는다 하더라도 힐끗 보고는 누가 볼새라 다시 시선을 거두곤 했다. 내 애정어린 시선이 가닿는 곳에 '딩씨 마을의 꿈'은 늘 제외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나 자신을 삼킬 듯한 생각지도 못한 흡입력으로 골든 슬럼버를 이틀 꼬박 읽고는 이젠 어떤 책을 읽어야하지, 고민하던 중 이 책을 집어들고 책의 표지를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가방에 구겨넣어놓고 가방에 책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로 3일 내내 들고 다니느라 고생만 하다가 읽기를 시도한 것이 서너차례가 되고 읽히지 않아 두어장 읽다 관뒀더랬다. 그러니까 나는 책의 첫부분인 황혼에 물든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만 서너번 읽은 셈이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한번 읽어나보고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덮어야지.' 라는 무책임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고 어지러운 머릿 속을 가라앉히고는 출근 20분 전 집 앞 놀이터에 앉아 한스러운 매미의 일정한 간격의 맴맴 소리를 들으며 나보다 좀 더 앞선 황혼에 물든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매미 소리를 떨쳐버리고 책의 계절을 따라가려 애쓰며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입에 삼키고 있었다.

 

 

 

'마오쩌둥의 사상을 모욕했다'라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판금 조치를 당했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군대 상관 부인과 취사병 간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최음제'로 전락된 소설로 불리고 있다)의 작가 옌롄커를 나는 '딩씨 마을의 꿈'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의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판금 조치를 당했던 이유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때문이라기 보다는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를 표면으로 표출시키려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레 겁을 먹은 모양새겠지, 라는 생각으로 작가가 쓴 <한국 독자들께 드리는 글>을 읽는데, 이 또한 판금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도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금기를 범했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실화에 입각한 픽션이 물밀듯 출간되는 지금, 유독 이 책만이 판금 조치를 당한 것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을 독자인 내가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런지, 그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

 

 

 

"피 삽니다. 피 파실 분 안 계세요?" (p114)

 

상부의 주도 아래 대대적인 '매혈' 정책이 시행된다. '딩좡'이라는 마을도 역시 예외일 수는 없지만, 매혈이 가져다주는 효용가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을 관가는 매혈을 통해 부를 축적한 마을에 견학을 시켜준다. 피를 팔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난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부친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주는 몫에서 조금 더 얹어주는 '나'의 아버지 딩후이에게 매혈하는 딩씨 마을 사람들은 하나의 주사기와 하나의 탈지면으로 여러 사람이 나눠쓰게 되는 비위생적인 체혈 방법으로 그들이 일컫는 '열병'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이즈'에 감염된다. '나'의 할아버지는 그의 아들인 딩후이의 죄값을 덜기 위해 열병에 걸린 사람들을 학교에 모아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조차 끊임없이 갈구하는 그들의 탐욕을 보는 것은 절로 토악질이 날 듯한 비린내를 동반하지만, 그것이 추악한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이름으로 나동그라져있는 모양새를 깨닫고 나서야 아차, 하며 온 몸에 부르르 떨었다.

 

 

 

책을 덮고나서 5분을 멍한 표정으로 초점없는 동공으로 책의 표지를 바라봤다. 거진 500페이지가 되는 이 책의 줄거리를 고작 7줄로 써놓고나니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눈 앞을 안대로 가린 것처럼 캄캄하다. 아웃사이더의 입장으로 책을 통해 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추악함을 밑바닥에 깔아놓고 누가 더 추악한지 시합을 하는 듯함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엔 내가 이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 할 수 있는 권리가 손에 쥐어져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을 뒤로 하고 이 책의 화자를 살펴보면 아버지 딩후이의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발라놓은 독이 발린 토마토를 먹고 살해당한 고작 열두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조금도 베베 꼬임없는 그대로로 바라볼 수 있어서, 그래서 안타까움이 배가 됐던 것일까. 단순히 화자가 어린 아이의 시선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것 또한 안타까움의 잔재로 남아 머릿 속에 표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좀처럼 게워낼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책 제목이기도 한 '딩씨 마을의 꿈'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의 꿈은 부(富)에서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p91) 그렇기 때문에 즐겁게 사는 것(喜)으로 변화되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소유욕이 무욕으로 변화되기는커녕 그것은 점점 방대해져 탐욕과 욕망으로 탈바꿈되고 결국 그것은 그들에게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동시에 영혼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안겨준다. 그러나 작가는 유토피아가 붕괴된 자리에 남은 잔재들로 디스토피아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희망이 있음을 새롭게 펄쩍펄쩍 뛰는 세상을 보았다. (p455) 이라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탈자  p21 , 12째줄. 이 나서 → 샘 
          p91 , 8째줄. 고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교실
          p148 , 18째줄. 따스함과 고용함이 가득했다 → 고요함
          p191 , 15째줄. 열쇠를 꼽고꽂고
          p195 , 7째줄. 어제 까지만 해도 → 
          p222 , 7째쭐. 남쪽으로 가서 밥을 짓고 시작했고 → 짓기
          p289 , 11째줄. 부부가 될 수 잇을 것이고 → 있을
          p401 , 3째줄. 장기를 두거나 마장을 하거나 → 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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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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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사카 코타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책을 쉽사리 손에 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언의 거부감때문이었다. 다른 이가 칭찬을 한다한들 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레 내 손에 감기게 되었다. 무언의 거부감은 공포스럽게도 표지에 나와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떤 이의 눈물까지 내게 있어 아무런 의미없이 말살시켜버린다. 책을 읽기로 작정하고도 3일 동안은 읽을까 말까, 손에 잡았다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음에 놓았다가, 결국은 손에 잡고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에 슥슥 읽어갔다. 맙소사, 너무 경거망동 했을까, 내 속독에 그리도 자신이 있었던가. 처음부터 집중할 수 없었던 탓에 이해는커녕, 활자 또한 낯설게 다가왔고, 결국 책의 5장 중 1장을 십분만에 내리 읽어가다가 앞으로 되돌아와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읽어내려갔다.

 

 

 

 

어느날, 낯선 여자가 취미를 물어왔다. 8년 만에 녀석이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보낸 이를 알 수 없는 우편물이 반복해서 도착했다. 난데 없이 치한으로 몰려 지하철을 내려야 했다. 문득, 그녀와 헤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지나치게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이상하다. 경찰이 이토록 쉽게 발포하고, 더구나 전혀 관계없는 술집 주인을 다치게 하고도 신경 쓰지 않으며 그의 뒤만 쫓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p134) 일본 센다이에서 일어난 총리암살사건.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계획된 함정에 질퍽하니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버렸고, 언제나 그렇듯 잘 짜여진 프레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기대에 순순히 응해주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뿐이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하지만 아오야기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들이 진실에 관심이 없는데,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진범을 찾아내고 그들 앞에 내밀어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기증이 난다. 무력함에 등짝의 털이 모조리 곤두설 지경이다. (p260) 그들은 애초에 진실따위엔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결국 도망친다. 끝도 없이.

 

 

 

 

성실한 스토리와 성실하게 짜여진 구성은 작가의 문체마저 무미건조할 정도로 감정이 실리지 않아서 감흥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리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에는 탁 차고 나오 듯 '나는 범인이 아니야. 아오야기 마사하루.' '그럴 줄 알았어.'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듯 마음을 적신다. 책을 읽는 중에 한가지 눈 여겨보아야 할 점은 단연 소설의 구성이다. 오롯이 1인칭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 같지만, 완벽한 1인칭 문장이 아닌 주변인물의 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표면에 떠올려서 아오야기의 입장만이 아닌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자칫하면 독자로 하여금 내용의 이해보다는 혼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공황상태로 밀어넣기로 제격이다. 내가 읽은 책 중 루스 엔들의 '내 눈에는 악마가'가 그랬었다. 명확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시점들은 읽는 독자에게 있어 불쾌감의 연속이고 그것들을 이해하며 읽어야할 과제이지만, 책을 읽을 때 독자가 그것까지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골든 슬럼버를 읽는 동안에 명확하게 지어진 경계선을 보며 작가의 역량에 감탄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누구나 정론을 뱉어낸다. 인권을 주장하고 정공법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폭풍이 일면 이성을 잃는다.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소동에 휩싸인다. 다 그런 법이리라. (p69) 또한, 2장에 나왔던 매스컴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그 사건을 접하게 되는 시청자들의 관점까지 개별적인 하나의 초점으로 맞추어 세세하게 표현한 그곳에서 그가 전해주고자 했던 것이 권력이라는 총칭 앞에서 쉬이 일그러지는 한 사람의 인생인 듯하여 갑갑해져 오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서 답답함이 또 다른 답답함을 낳는 현상을 경험했다. "잘난 놈들이 만든 거대한 부조리에 쫓기게 되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도망치는 것뿐이지 (…) 거대한 부조리의 사냥감이 되면 어딘가 몸을 숨긴 채 달아나는 수밖에 없어." (p380) 하지만 그에 따른 결말은 끝도 없는 실망감에 감출 수 없을 정도의 일정한 선을 넘어 가슴 가득한 불만을 안겨줬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를 이해하고 감싸안아줄 수밖에 없다. 이사카 코타로의 문체가 그려놓은 아오야기의 행보를 따라가다보면 어떤 이의 말마따나 어느 새 일본 전지역을 한바퀴 돈 것 같은 기분마저 감돌아서 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쫓기는 서스펜스는 별 다섯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았지만, 영문도 모른 채로 쫓기기만 하는 아오야기의 행보에 대한 물음표를 작가가 끝까지 손아귀에 움켜지고 내비쳐주지 않음에 이내 옥죄어옴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책을 덮을 즈음엔 가지런히 호흡을 정리하고 아오야기의 새로운 행보를 응원하며 골든 슬럼버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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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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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는 오늘은 의도하지 않은 광복절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 지금도 매스컴에서는 줄기차게 광복절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저 자신의 밥줄을 채우기 위한 요깃거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무심하리만큼 정갈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속이 매스껍다 못해 토악질이 절로 날 지경이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해대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를 허공으로 보내버리고 컴퓨터를 켰는데, 메인기사에 뜬 몇 개의 그저 손가락만 까딱까딱거린 인터넷의 기삿거리 또한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무시해버리는 것이 최대의 선택인 지금. 그들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일만큼 예민해져있는 까닭은 새삼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광복절을 맞이해서 감동이나 해방감을 느껴서라기 보다는 책을 읽고 난 후에 나라를 지키려 했던 의열단 열사들의 위험하리만큼 무모한 행동들이 뇌리에서 떠나지않고 머물러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는 역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찬란한 역사적 사건도 후손들이 망각하면 사라지지만 아무리 쓰라린 경험이라도 후손들이 잊지 않고 되새기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열단의 처절한 투쟁사를 기억한다면 결코 100년 전의 쓰라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p8)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다. 작가보다는 세계일보 도쿄 특파원이라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리는 김동진 작가는 이 책을 써내기 위해 3년동안 해방 전 신문, 문서, 각종 서적 등 수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취합했다 하였는데 과연 이 책에 실린 그 때의 자료들은 우리가 쉬이 접할 수 없는 더 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3년간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져 새삼 고개가 절로 숙여졌더랬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를 잊지 말자며 아팠던 그 날을 되새김질하는 이도 있는데, 그에 반해 어느 순간 나에게 있어 광복절은 내가 학교다닐 때도, 직장을 다니는 지금에도 쉬는 날인 공휴일로 굳어버렸다는 생각에 개탄스러움과 함께 오는 자괴감을 감출 길이 없다.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책에서 내가 아는 이라고는 김상옥뿐이었다. 하지만 안다한들 두어번 들어본 적 있다하여 아는 척 하는 것일 뿐, 그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조차 모르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그저 의열단인 것을 알고 있기에 아마 이랬을 것이다 라며 지레짐작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 거의 백지상태로 책을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의 시작은 #1. 누가 종로서에 폭탄을 던졌나로 시작하여 #14. 김상옥 최후의 순간으로 김상옥 열사의 거침없는 독립운동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는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라고 말할 만큼 진취적이었던 사람임에 분명한데, 내가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이유는 그 거사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었으리라. #15. 풀리지 않은 의혹에서는 종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이 김상옥 열사냐, 아니냐를 근거를 따지며 규명하고 있다. 그 결과로 당시 <조선일보>는 3월 16일자 신문에서 "(경무국의 발표내용과 김상옥 동지들의 재판정 진술) 이런 사실 내용을 볼 것 같으면 김상옥은 정녕 폭탄 범인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23년 1월 12일 밤 8시경에 종로경찰서 서편 동일당이라는 간판집의 모퉁이에서 경찰서 서편 창문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사람은 김상옥 열사였다고 이 책이 아닌 외의 정보망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총독부와 경찰의 눈이 김상옥 열사에게 쏠려있던 그 시기에 또 다른 곳에서 폭탄거사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은 #16. 또 다른 의열투쟁의 전조로 시작해 #30. 믿을 수 없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는 2차 폭탄암살투쟁을 위한 폭탄 반입 작전에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이 가닿는 곳엔 황옥이 있다. 황옥의 별칭은 황만동으로서 일제 고등계 형사이지만, "비록 지금은 일제의 주구로 일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조선 독립운동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고 있었다."며 앞으로 약산과 의열단을 도와 독립운동에 '분골쇄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p205) 하지만 나는 그가 일제 고등계 형사라는 이유만으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지만, 점점 나 역시 그에게 호기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현재 '황옥경부사건'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난 거사이기에 우리들의 머릿 속 한 구석에 자리메김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던 듯 싶다.

 

 

 

이렇듯 우리는 잊고 살면 안되는 고마운 분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레 잊고 산다. 그 분들을 한분,한분 거론할 만큼 모두 알지 못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 싸워온 그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시대와는 상반되는 편안한 세상 속에서 햇빛이 말려주어 그에 따른 냄새가 나는 이불을 끌어안고 내가 살지 못한 시대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당시의 상황들을 머리 한 쪽 구석에 내 멋대로 그릴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를 비추고 있는 햇빛 속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암흑만이 가득했던 그 시대에서 흘렸을 그들의 눈물들을 닦아주어야만 할 것이다.

 

오탈자 p
183 첫번째줄, 그와의 약속만큼은 꼭 지키기 싶어 → 지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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