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사카 코타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책을 쉽사리 손에 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언의 거부감때문이었다. 다른 이가 칭찬을 한다한들 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레 내 손에 감기게 되었다. 무언의 거부감은 공포스럽게도 표지에 나와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떤 이의 눈물까지 내게 있어 아무런 의미없이 말살시켜버린다. 책을 읽기로 작정하고도 3일 동안은 읽을까 말까, 손에 잡았다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음에 놓았다가, 결국은 손에 잡고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에 슥슥 읽어갔다. 맙소사, 너무 경거망동 했을까, 내 속독에 그리도 자신이 있었던가. 처음부터 집중할 수 없었던 탓에 이해는커녕, 활자 또한 낯설게 다가왔고, 결국 책의 5장 중 1장을 십분만에 내리 읽어가다가 앞으로 되돌아와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읽어내려갔다.

 

 

 

 

어느날, 낯선 여자가 취미를 물어왔다. 8년 만에 녀석이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보낸 이를 알 수 없는 우편물이 반복해서 도착했다. 난데 없이 치한으로 몰려 지하철을 내려야 했다. 문득, 그녀와 헤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지나치게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이상하다. 경찰이 이토록 쉽게 발포하고, 더구나 전혀 관계없는 술집 주인을 다치게 하고도 신경 쓰지 않으며 그의 뒤만 쫓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p134) 일본 센다이에서 일어난 총리암살사건.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계획된 함정에 질퍽하니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버렸고, 언제나 그렇듯 잘 짜여진 프레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기대에 순순히 응해주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뿐이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하지만 아오야기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들이 진실에 관심이 없는데,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진범을 찾아내고 그들 앞에 내밀어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기증이 난다. 무력함에 등짝의 털이 모조리 곤두설 지경이다. (p260) 그들은 애초에 진실따위엔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결국 도망친다. 끝도 없이.

 

 

 

 

성실한 스토리와 성실하게 짜여진 구성은 작가의 문체마저 무미건조할 정도로 감정이 실리지 않아서 감흥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리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에는 탁 차고 나오 듯 '나는 범인이 아니야. 아오야기 마사하루.' '그럴 줄 알았어.'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듯 마음을 적신다. 책을 읽는 중에 한가지 눈 여겨보아야 할 점은 단연 소설의 구성이다. 오롯이 1인칭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 같지만, 완벽한 1인칭 문장이 아닌 주변인물의 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표면에 떠올려서 아오야기의 입장만이 아닌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자칫하면 독자로 하여금 내용의 이해보다는 혼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공황상태로 밀어넣기로 제격이다. 내가 읽은 책 중 루스 엔들의 '내 눈에는 악마가'가 그랬었다. 명확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시점들은 읽는 독자에게 있어 불쾌감의 연속이고 그것들을 이해하며 읽어야할 과제이지만, 책을 읽을 때 독자가 그것까지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골든 슬럼버를 읽는 동안에 명확하게 지어진 경계선을 보며 작가의 역량에 감탄을 억누를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누구나 정론을 뱉어낸다. 인권을 주장하고 정공법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폭풍이 일면 이성을 잃는다.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소동에 휩싸인다. 다 그런 법이리라. (p69) 또한, 2장에 나왔던 매스컴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그 사건을 접하게 되는 시청자들의 관점까지 개별적인 하나의 초점으로 맞추어 세세하게 표현한 그곳에서 그가 전해주고자 했던 것이 권력이라는 총칭 앞에서 쉬이 일그러지는 한 사람의 인생인 듯하여 갑갑해져 오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서 답답함이 또 다른 답답함을 낳는 현상을 경험했다. "잘난 놈들이 만든 거대한 부조리에 쫓기게 되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도망치는 것뿐이지 (…) 거대한 부조리의 사냥감이 되면 어딘가 몸을 숨긴 채 달아나는 수밖에 없어." (p380) 하지만 그에 따른 결말은 끝도 없는 실망감에 감출 수 없을 정도의 일정한 선을 넘어 가슴 가득한 불만을 안겨줬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를 이해하고 감싸안아줄 수밖에 없다. 이사카 코타로의 문체가 그려놓은 아오야기의 행보를 따라가다보면 어떤 이의 말마따나 어느 새 일본 전지역을 한바퀴 돈 것 같은 기분마저 감돌아서 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쫓기는 서스펜스는 별 다섯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았지만, 영문도 모른 채로 쫓기기만 하는 아오야기의 행보에 대한 물음표를 작가가 끝까지 손아귀에 움켜지고 내비쳐주지 않음에 이내 옥죄어옴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책을 덮을 즈음엔 가지런히 호흡을 정리하고 아오야기의 새로운 행보를 응원하며 골든 슬럼버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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