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엔 쌀쌀하더니 지금은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것이 제법 가을 티를 내는 듯 하다. 그러나 느낄 수 있을만큼의 기분 나쁜 꿉꿉함은자동적으로 에어컨과 성푼기에 손이 가게 만들지만 3분도 채 되지 못하게 틀고는 꺼버린다. 그로 인해 온 몸에 오한이라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꿉꿉함은 얄궂게도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검사의 아니, 대한민국의 비린내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직 서평을 쓰지 않아 집으로 직행되지 못한 그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손에 쥐어본다. 어떤 것이든 표현하지 않고 잊고 있는다면 아무리 좋았던 감정도 엷어지기 마련이라 오래 묵혀두어 혹시 쉰내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녹록지 않은 그것은 서평을 쓰는 동안에도 손님처럼 찾아왔는데, 그 느낌이 어찌나 말랑한지 좀 더 오래도록 내게 머물러주길 희망했다.

 

 

 

'소수의견'에 대한 대다수 독자들의 서평을 들여다보면 '용산 참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책은 그것을 모티브로 썼다고 작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읽는 독자에게서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건인 셈이다. 09년 용산 참사로 얼룩진 어느 날에 '100분 토론'을 시청했었다. 한가지 사건에 두가지 의견이라니, 참 매력있다 생각하면서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측 패널들을 보며 '너희가 국민을 상대로 준비한 변명이 고작 그 정도니'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때, 이따금 들려오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의견은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박수라도 치고 나설 만큼 경쾌함과 대범함이 실려있었다. 그걸 보며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혹자 한 사람은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 즈음에 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이야. 게다가 아마 그 때의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했었고, 사건의 경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용산 참사'의 실제적 결말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책은 잘 짜여진 플롯을 독자에게 과감히 밀어부치는 힘을 가진 책이라 더욱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놀기도 바쁜 팔 월의 여름 휴가, 내가 과연 책을 읽을 수나 있을까, 의구심을 품으며 나를 따라나서기 싫다던 윤 변호사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 끌고는 기차에 탑승했다. "지난 2월말 경찰이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사업부지의 현장을 점검하고 있던 철거민들에 대한 진압에 들어갔습니다.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우고 저항했지요. 진압 중 폭력 사태로 철거민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고, 죽은 철거민은 열여섯살 학생이고 폭행으로 사망했는데,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가 진압 경찰 중 한 명을 둔기로 내리쳐 골로 보낸 모양이오. 검찰은 그 아버지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소. (…)" (p36-37) 국선 변호인인 윤 변호사는 국가의 명령에 반기를 들어 사직서를 쓰고는 박재호에 의한, 박재호를 위한, 박재호의 변호사가 되고, 그에게 있어 피고인은 대한민국이 된다. 대한민국에 청구하는 배상액은 100원. 그렇다. 그들은 단지 여론을 환기하려는 목적, 그 뿐인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국민참여재판까지 문을 두드렸고 그 재판이 당신의 귀가 쫑긋하고 시선이 가 닿을 때 시작된다. 실체따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가운데에 피고로 세우고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와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의 싸움이 법원이라는 국한된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그들의 판을 지켜보아라.

 

 

 

사건에는 항상 진실과 거짓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해있고,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놀아나고 있는 자들을 강타하여 진실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은폐하고 대신 거짓을 표면에 매끈하게 발라놓기에 우리는 거짓을 보고도 진실이라 스스로를 납득시키기고 그것을 믿기에 이른다. 이 책에서 독자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진실은 단연 p36-37 뿐이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작가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오롯하게 사건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소설의 전개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마저 나의 숨을 옥죌 만큼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소수의견이라는 좋은 책을 만나서 참 행복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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