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무고한 청년의 무죄 입증 방법, 이라는 주제로 현직 변호사가 쓴 소설이라네요. 다큐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대강 짐작만 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안고 있는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들도 확인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책이에요. 

 

 

 

 

 

꾸준히 책을 써내는 조경란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을 한번 정도는 접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편인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럼에도 그녀가 써내는 글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에 마음껏 파고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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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머리앤 2010-10-0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어찌하는건지 보러왔지~~~

하늘보리 2010-10-04 14: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언니야~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ㅋㅋ

곰곰이v 2010-10-0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댓글따라 방문하게 되었어요.
같은 평가단으로서 저희가 공동으로 추천한 책이 선정되면 정말 좋을텐데.
앗, 두 분께서는 이미 아시는 사이인가봐요^^

하늘보리 2010-10-04 18: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왠지 빵과 장미가, 대세인 것 같은.. ^^, 위에 까망머리앤님과는 이미 인연이에요~ 깔깔깔 토순이님, 알라딘 8기를 기점으로 좋은 인연 만들어가요! ^^
 
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접하기 바로 직전, 전공 서적과 다를 바 없는 책 한 권을 몇일 동안이나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하여 간신히 읽어내리고 어떤 책을 고를까 시야에 확 들어오는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끝내는 아무런 책도 손에 집지 않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후에 책이 읽고 싶어 손을 뻗었을 때는, 붉은 생채기가 확연하게 눈에 띈 채로 쓰러져있는 참새인 양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의 내가 화장실의 거울로 마주한 순간이다. 엄마를 간호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생각하다 아무렇지 않게 소설을 집어들고 어리석음에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읽을 수 있을리 만무하잖아,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내려놓았더랬다. 나에게는 당시 생채기에 연고를 발라줄 그런 책이 절실히 필요했다. 혹은, 텅 비어버린 상태에서 미친 듯이 웃을 수 있는 책이거나. 한참을 주저앉아 책장을 훑어내리다가 끌림이라는 책과 마주하고 서서 소리내어 안녕,하고 말했다. 끌림,이라는 단어가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며.

 

 

 

여행 에세이 중 가장 감성적인 에세이, 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나는 이병률 작가에게서 특출난 감성을 엿보지는 못했던 듯 싶다.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감성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고 딱 거기까지만. 실은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조차. 공황 상태에서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자체는 언제나, 늘 어려운 과제처럼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끝없는 나락에 빠져 허우덕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손을 잡고 일으켜준 고마운 친구,라고 얘기하면 끝이 난 것도 같은데, 그렇게 끝내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라는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고는 삐쳐있는 모양새로 나를 아니꼽게 노려보고 있을 성 싶어 낄낄 웃으며 이 책을 읽던 그 때를 떠올리고는 책을 휙휙 다시 한번 넘겨보며, 포스트잇 플래그가 붙어있는 곳은 다시 한번 정독하며, 그렇게 -

 

 

 

책에서 풍겨지는 향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연상케하기에 충분했지만, 나는 주춤하지 않고 풍덩, 그 곳에 침범했고, 작가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 곳은 그가 만들어낸 세상도, 공유하는 세상도 아닌 나의 세상이었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실은 잘 모르겠다.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001, '열정'이라는 말) 가끔은, 있다면 자네, 거기 내 안에 꼼틀꼼틀 움직이고 있는가,아니면 쉬고 있는가, 혹은 죽었는가, 하며 끄집어내서 묻고 싶기도 하고 지금은 니가 열심히 활동해야할 차례라고, 너는 니 차례도 모르냐며 따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늘 언제나 열등감을 열정으로 착각하곤 했었는데, 그 점이 항상 아쉬우면서도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열정을 발휘해서 이뤄낸 것이 무엇이 있나,라며 초점없는 눈을 한동안 첫 페이지에 두고선 멍,하니 앉아있었다. 참 우습다. 고작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는 있는 거예요. (#032,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러냐며, 한탄 안해본 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대부분은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다행히도 자각하고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었다. 나 역시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어떠한 개입도 없다고 생각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은 행운과 불운 뿐이지만, 그것도 자신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투정부린다. 실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너, 나, 미워해요?

 

 

 

헌데, 난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병률 작가의 감성? 필력? 그의 긍정적(으로 보인) 마음가짐? 실은 「#013, 길」「#018, 사랑해라」「#020,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을,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할」「#023, '아비'의 맘보*」「#025, 511 W22ND STREET, NEW YORK」「#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027, 소파에 눕다, 구르다, 끄적이다」「#031, something more」「#035, 좋은 풍경」「#039, 좋아해」「#043, 먼 훗날」「#045,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047, 시시한」「#056, 생일」「#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067, 케 세라 세라」등 많은 곳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놓았고, 그 곳에는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글들이 수북히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다. 나는 복잡복잡한 일상 속에서의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었을 뿐이고, 단순한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던 「끌림」이라는 이 곳에서 예상치못한 이 책을 읽으며 누구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여유를 한껏 즐기며 읽은 책이었음에 분명하다. 고마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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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에 눈을 뜨다 - 문화와 환경이 어우러진 도시디자인 산책
김철 지음 / 조이럭북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전문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저는 도시계획이나, 건축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며, 책의 의도 역시 도시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보다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도시디자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도란도란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저자는 겁도 없이 과감하게 타이핑 쳐냈다. 그러나 사실 난 그가 도란도란 들려준다는 이야기는 고사(姑捨)하고 실은 사진만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진 한장마다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손가락이 닿는 곳엔 애증어린 시선이 닿아있었고,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고 그 기쁨의 두배는 그에 합당한 활자를 보는 일,이라고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하지만 도시디자인,이라는 것에 나의 지식이 얕았던 탓일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을 다 덮고나서도 이렇다 할 정도로 뇌리 속에 박히는 단어조차 남지 않은 채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그래서 이 책을 나와 같은 시기에 접하여 써내려간 다른 이의 서평과 그와 부합하는 별의 개수를 보노라면 그 틈새에는 여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내 불만과 불평의 개입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라며 내 별점수를 보는 순간,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라는 착각을 갖게 만들어 혼동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 좁혀질까, 사고 방식?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 에라, 모르겠다.

 

 

 

강의 시간에 최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릴 공사를 한국에선 6개월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 그 때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아 헤헤거리며 흘려들었지만,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 정말이었어'라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오게 된다. 지금은 몸 담고 있지 않지만, 작년 12월달부터 한달간을 한 디자인 시공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현장에 나가 실측하고 캐드 도면을 그려주고나서 심사 뒤에 ok 해버리는 식의 공사가 비일비재했고, 그 일을 하면 할 수록 졸업 작품에 허비했던 1년이라는 시간은 덧없이 느껴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곳에 있는 동안 2개의 건물을 만들어냈고, 일을 관둔 한달하고도 보름만에 1개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후엔 언니도 회사를 사직 의사를 전해서 나머지 한개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훗 날 그곳에 지나다들러 돌아봐야 알 수 있을터다. 번갯불에 콩 구어먹기 식의 공사는 이른바 삼풍백화점, 와우아파트, 성수대교와 같은 부실공사를 연상케한다. 아, 말이 흘렀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야지.

 

 

 

하물며 건물 하나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야하는 판에 도시디자인이라니? 그것도 하나같이 견줄 수도, 견주어서도 현저히 저평가되어 있는 한국에 비해 프랑스 「라데팡스」, 「마른라발레」와 「리브고슈」,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와 「라이프치히」 「유럽, 그 도시의 취향」과 마지막으로 아마 비판을 가했을 것만 같은 「한국의 도시디자인」이라는 흥미있는 타이틀로 독자를 향해 손을 내미니 그 유혹적인 곳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을 잡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고 판단된다. 나 역시 뭣 모르고 그의 손을 덥썩 잡았지만, 부푼 마음을 계속 안고 그와 함께 발 맞춰 그곳을 돌아보기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러닝 타임이 너무 짧았고, 도시디자인에 관한 내 지식이 얕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프랑스의 「라데팡스」는 저자가 말하기에 마천루로 된 숲 사이에서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다는 점이 라데팡스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라데팡스는 외국 관광객은 고사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까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다. 그 까닭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고층건물이라는 폐쇄적인 의미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닿지 못함을 저자는 간과했던 모양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 개선문 계단에서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에서는 뜨악했다. 외면받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라데팡스에 사람이 찾아든 것이다. 글쎄, 가보지 않은 나는 왈가왈부 떠들어댈 순 없겠지만, 주관적인 생각으로 라데팡스는 프랑스의 도심으로 자기메김하기엔 매우 큰 부족함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도시임엔 틀림이 없다, 생각한다.

 

 

 

그 후에 사실 나머지는 어떠한 감흥도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에 과감히 생략하고, 가장 인상깊었던, 이미 독일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 1위로 꼽히고 있는 독일의 친환경 도시「프라이부르크」사실, 저 위에 별 세개는 프라이부르크에 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밀하게 잘 표현해내주었다. 도시디자인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라고 어깨를 으쓱대며 독일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남모를 자부심을 표출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이 도시를 한껏 구경하며 이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프라이부르크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그 대안으로는 에너지 보존, 신기술 사용,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것 등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교통정책을 꼽을 수 있는데, 매연과 보행자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서민들이 교통체계에 가지는 불편함을 줄여 나가고 있다는 점과 전차의 이동에 대해서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섞여 이동한다는 것과 특히 도로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것을 보며 자연스레 정말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그런 도시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게 만들었음에 실로 경이로워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글쎄, 한국이 이 정도로 발전하려면 억만년이 걸릴까?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폭, 새어 나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 도시디자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을 향하는 도시디자인의 조건이라며 인본주의적 문화기반과 철학, 도시 정체성을 고려한 장기적 비전,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라는 이 세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서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고 심지어 광장으로서의 제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광화문이라던가, 길가에 널부러져있는 자전거모양은 자전거도로의 현 주소를 설명하는 듯 했다. 사실 어느 자전거도로의 표기는 같을테지만. 도시디자인이란 선진국 따라잡기가 아닌 지역의 특성과 본래의 의미를 살린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참여 역시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p52 , 8째줄) 늘어난 인구의 수용을 위해 시작된 주택개발과 공금으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택난은 어느 정도 완화되는 시점을 완화되었습니다.

(p56 , 3째줄) 각 구역별 개발은 하위 자치단체와 민간 개발업자 그리고 지역주민이 구체적인 색칠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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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어떠한 목적이 있는 예를 들면 여행에세이라거나 감성에세이가 아닌 어떠한 작가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그 책의 저자에 대한 호감을 짙게 혹은 옅게 만드는 산문집이라는 것을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음에 무당개구리같은 이 책을 끌어안고는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 산문집이라고 한다면 왠지 그 자가 펴낸 책을 적어도 한 권쯤은 읽어보았어야 하고, 그 자에 대한 애증없이 읽지 못할, 그러니까 어떤 작가의 애독자 정도는 되어야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어 쉽사리 손을 뻗지 못했던 이유가 그 곳에 있다. 그래서 그가 나의 두 손에 안겨주었을 때에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실없이 허허 웃곤 했지,싶다. 그 후에도 읽어야지, 언젠가.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나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산문집도 읽을 만 하다, 라는 것을 안겨준 책은 단연 고 장영희 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었기에 전처럼 산문집이라면 정말 싫다며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돌려가며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리기엔 자신이 없었다. 실은 일전에 그녀가 써 낸 「친절한 복희씨」를 세 번이나 손에 집었다가 놓은 것도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기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기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그 소설은 관찰자 혹은 2,30대 시점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를 보기좋게 깔아뭉개고 50대의 여인을 주체로 그 시선을 따라간다. 사실, 부끄럽지만 단편 중 고집스럽게 첫번 째 단편만을 세 번 모두 쉬이 읽은 적 없이 힘겹게 마무리를 하고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다시는 그녀의 책을 찾지 않으리라, 혼자 다짐했었더랬다. 그러다가 그녀의 에세이가 그러니까, 80세인 박완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이 책이 나에게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니, 내가 지레 겁먹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이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바꿔 말해, 이 글을 몇 번이나 되돌려 읽으며 맞아, 맞아를 연거푸 되뇌었던 이는 비단 나뿐이었을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담긴 문장들은 어느 노작가의 슬픈 독백으로 귓가에 스며들었고,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해 끈덕지게 미련을 두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잘 가던 길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주춤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해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이게 진정 내 길이 맞긴 한건지 (…) 하지만 이 물음엔 언제나 그렇듯 답이 없다. 인생의 주체인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며 배워야하고, 감당내야하며, 풀어나가야 할 나만의 과제인 셈이다.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내가 만드는, 나의 길.

 

 

 

책을 다 읽어내리고 덮고 난 후 작가가 만들어낸 정갈한 문장들이 고요하다,라는 동사 말고 어떤 말이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요동치지 않는 바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돛단배처럼 흔들림이 없고 잔잔하여 그것은 이윽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가는 우리를 심연의 고요 속에 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그득한 문장으로 다시 손을 내밀어 어잇차! 하며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지금 나와 같은 세대가 살지 못한, 허나 그녀는 숨쉬던 그 시대 - 한국전쟁 - 에 대해 우리 귓가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며 그 때가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달라, 당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 주관적인 판단 아래에 그녀의 글에 녹아들었다. 혹자는 먹먹함을 맛보았다 하였는데, 나에게 다가온 것은 먹먹함보다는 텃밭을 가꾸는 모습에서 아기자기함이 더욱 돋보였다 말하면 여든이 된 노작가에게 실례가 될까. 사실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내 나이 때의 작가 삶을 이야기할 때에서야 그 먹먹함의 의미를 어렴풋 느낄 수 있었으나 어떤 면이? 라고 다른 이의 서평에 혼잣말로 반문했다. 물론 한국전쟁에 얼룩진 겨우 이십대를 태동하던 그녀의 삶 자체에 마음 아픈 이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작가의 너무도 무덤덤한 듯 말하는 말투가, 또 그 문장이, 당시에 내가 마시고 있는 식어버린 커피와도 같아서 초콜렛을 하나 넣고는 휘휘 저었다. 식어버린 커피에서 풍기는 진한 초콜렛 향이 시린 코 끝을 달콤하게 만들었다.

 

 

 

이 산문집의 1부는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 생애의 밑줄」로 시작해서, 2부엔 그녀가 다른 책을 읽으며 자신의 느낌을 쓰다 다른 길로 새어버렸다며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엉뚱하지만 재치있는 문구가 독자를 향해 손짓하며 그 안에 들어있는 책을 함께 교감하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해야할까. 나는 이랬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 라며 나에게 되물어오는 것 같음에 기가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 3부인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곳엔 이미 황천길을 가고 있을터, 하지만 그녀의 손길로 살아숨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선생과 박수근 화백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책을 덮음으로서 아무래도 이 산문집 역시 책장에 고이 꽂아두고 한 두 해가 지난 후에 다시 한번 꺼내어 먼지를 탈탈 털어 다시 곱씹어야겠다고,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울림을 느낀다. 또한 그녀의 신작이 나오면 그 땐 주저하지 않고 읽어보겠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고, 손에 잡고 읽을 날이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그러나 훗날, 언젠가는 내게도 그 나이가 오리니, 지금보다는 그 때에야 손에 붙들고 한 자, 한 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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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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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여고생이었을 땐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돈을 벌고 싶은데, 소위 괜찮은, 눈에 차는 '알바'라는 것에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스무 살이 되지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고작 2,3살 어리다고 하여 내가 못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번번히 퇴짜를 맞곤 했었더랬다. 게다가 야간자율학습이라는 틀 안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잡았던 일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기에, '내가 스무 살만 되봐라' 라며 입을 앙 물고 스무 살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덧 꿈꿔왔던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쳐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이른 지금에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는, '아 - 다시 고등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라는 마음 뿐이걸.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를 먹고도 아직 내 앞에 주어진 삶이 마냥 불만스러워 투덜거리기를 밥 먹듯 하고, 힘들다며 찡찡거리는 것도 단연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나의 지인들이 있고, 누가 날 미워하면 눈물부터 나는 아직도 마냥 어린 애 티를 못벗은 채로 어른이라는 가면을 억지로 씌워 쓰고 있는 꼴이다. 그런 나에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며 거부할 수 없는, 유혹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이 품 안에 스며들었다.

 


 

 

다 읽고 나서 말이지만 이 책을 한 자리에서 휘리릭 읽을 수도 있었고, 밤을 꼬박 새서라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손에 착 감겨 떨어질 줄을 몰랐던 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한 자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던 이유, 아마 읽은 사람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 나도 이런 때가 있었지' 라며 공감도 하고, 내가 미처 발을 들여놓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옆집 언니가 '앞으로 세상은 너에게 이럴지도 몰라' 라며, 조언해주는 듯 하여 활자를 읽으면서도 고분고분 옆에서 듣는 시늉을 내기도 했다. 실은 책에서 '그'와 '그녀'를 지칭하는 주어가 분명하게 나와있기에, 뭐를 중심으로 쓰는 것인지도 몰랐던 나는 작가가 여자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았더랬다. 나의 그가 작가가 여자니까 그렇지, 라고 내뱉었는데 난 당연하다는 듯 '아니야, 남자작가야' 라고 반문하면서도 의아해서 급기야 책을 덮고는 강세형 이라는 작가의 이름 세자를 검색창에 재빨리 써넣고는 검색을 망설였더랬다. 내 예상대로 하마터면 작가가 남자였더라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불만이 응어리져 터져나오며 그간 읽었던 활자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실망' 중 하나는 이것일 테니까. 나 자신에 대한 실망. (p119) 실망이라는 것엔 여러 종류가 있고, 그것을 느끼는 주체는 항상 내가 된다.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내 자신에 대해 극도의 자괴감에 빠져 허덕거릴 때가 있었다. '왜 난 이 모양, 이꼴인거야? 그렇지, 그동안 허투루 했으니까, 충분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으니까' 라며 자책하다가 급기야는 '이것 하나 해내지도 못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라며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넘쳐흘러 더는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으로도 붙잡지 못했던 그것을 붙잡아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까짓것 다시 해보면 되는거지, 못하는게 어딨다고' 라며 다이어리에 '난 나를 믿어'를 몇 번이나 끄적여 놓았는지 모른다. 아무리 옆에서 '넌 그것밖에 안 돼, 그냥 포기해'라고 말한다 한들 반대로 '이대로 포기하지 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한들 내 자신의 한계는 나만 알고 있다.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여기까진 건가?' 나 조차도 이런 생각이 들 때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건 결국 믿음, 나에 대한 믿음, 자신감이다. 실패. 좌절. 이런 것들이 한두 번도 없는 삶은 아마 없을 거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그것들을 넘어서느냐, 넘어서지 못하느냐. 어쩌면 꿈을 이뤄내는 사람과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p334,335) 어떻게 그것으로 빠른 회복을 거머쥐었는지 나조차도 의아해하던 찰나, 이 글귀가 눈에 와 닿았다. 그래,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아마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 글귀를 발췌하여 그에게 보내주었다. 나에게 닿은 이 글귀가 그에게도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가 이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다고 감히 내뱉진 못하겠다. 이 책은 그녀가 말하고 싶어하는 그 많은 사연들 중 '아니아니-' 라며 고개를 저으며 회피해버리고 싶은 것도 있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명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쉬운 것만은 아닐테지만, 그것을 같이 공유하고 위로해줄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또 한번 각인시켜준 셈이다. 언젠가 삶의 무게에 깔려 버티기 힘들어 누군가의 손길조차 마음의 짐처럼 느껴질 때에, 다시 한번 펼쳐들고 싶은 책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라며 책을 마무리했다. 강세형 작가, 마침표만 보고 세상을 살아가느라 쉴 틈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못했던 나에게 쉼표,를 내밀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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