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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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목적이 있는 예를 들면 여행에세이라거나 감성에세이가 아닌 어떠한 작가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그 책의 저자에 대한 호감을 짙게 혹은 옅게 만드는 산문집이라는 것을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음에 무당개구리같은 이 책을 끌어안고는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 산문집이라고 한다면 왠지 그 자가 펴낸 책을 적어도 한 권쯤은 읽어보았어야 하고, 그 자에 대한 애증없이 읽지 못할, 그러니까 어떤 작가의 애독자 정도는 되어야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어 쉽사리 손을 뻗지 못했던 이유가 그 곳에 있다. 그래서 그가 나의 두 손에 안겨주었을 때에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실없이 허허 웃곤 했지,싶다. 그 후에도 읽어야지, 언젠가.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나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산문집도 읽을 만 하다, 라는 것을 안겨준 책은 단연 고 장영희 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었기에 전처럼 산문집이라면 정말 싫다며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돌려가며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리기엔 자신이 없었다. 실은 일전에 그녀가 써 낸 「친절한 복희씨」를 세 번이나 손에 집었다가 놓은 것도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기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기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그 소설은 관찰자 혹은 2,30대 시점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를 보기좋게 깔아뭉개고 50대의 여인을 주체로 그 시선을 따라간다. 사실, 부끄럽지만 단편 중 고집스럽게 첫번 째 단편만을 세 번 모두 쉬이 읽은 적 없이 힘겹게 마무리를 하고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다시는 그녀의 책을 찾지 않으리라, 혼자 다짐했었더랬다. 그러다가 그녀의 에세이가 그러니까, 80세인 박완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이 책이 나에게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니, 내가 지레 겁먹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이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바꿔 말해, 이 글을 몇 번이나 되돌려 읽으며 맞아, 맞아를 연거푸 되뇌었던 이는 비단 나뿐이었을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담긴 문장들은 어느 노작가의 슬픈 독백으로 귓가에 스며들었고,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해 끈덕지게 미련을 두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잘 가던 길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주춤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해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이게 진정 내 길이 맞긴 한건지 (…) 하지만 이 물음엔 언제나 그렇듯 답이 없다. 인생의 주체인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며 배워야하고, 감당내야하며, 풀어나가야 할 나만의 과제인 셈이다.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내가 만드는, 나의 길.

 

 

 

책을 다 읽어내리고 덮고 난 후 작가가 만들어낸 정갈한 문장들이 고요하다,라는 동사 말고 어떤 말이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요동치지 않는 바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돛단배처럼 흔들림이 없고 잔잔하여 그것은 이윽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가는 우리를 심연의 고요 속에 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그득한 문장으로 다시 손을 내밀어 어잇차! 하며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지금 나와 같은 세대가 살지 못한, 허나 그녀는 숨쉬던 그 시대 - 한국전쟁 - 에 대해 우리 귓가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며 그 때가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달라, 당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 주관적인 판단 아래에 그녀의 글에 녹아들었다. 혹자는 먹먹함을 맛보았다 하였는데, 나에게 다가온 것은 먹먹함보다는 텃밭을 가꾸는 모습에서 아기자기함이 더욱 돋보였다 말하면 여든이 된 노작가에게 실례가 될까. 사실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내 나이 때의 작가 삶을 이야기할 때에서야 그 먹먹함의 의미를 어렴풋 느낄 수 있었으나 어떤 면이? 라고 다른 이의 서평에 혼잣말로 반문했다. 물론 한국전쟁에 얼룩진 겨우 이십대를 태동하던 그녀의 삶 자체에 마음 아픈 이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작가의 너무도 무덤덤한 듯 말하는 말투가, 또 그 문장이, 당시에 내가 마시고 있는 식어버린 커피와도 같아서 초콜렛을 하나 넣고는 휘휘 저었다. 식어버린 커피에서 풍기는 진한 초콜렛 향이 시린 코 끝을 달콤하게 만들었다.

 

 

 

이 산문집의 1부는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 생애의 밑줄」로 시작해서, 2부엔 그녀가 다른 책을 읽으며 자신의 느낌을 쓰다 다른 길로 새어버렸다며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엉뚱하지만 재치있는 문구가 독자를 향해 손짓하며 그 안에 들어있는 책을 함께 교감하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해야할까. 나는 이랬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 라며 나에게 되물어오는 것 같음에 기가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 3부인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곳엔 이미 황천길을 가고 있을터, 하지만 그녀의 손길로 살아숨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선생과 박수근 화백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책을 덮음으로서 아무래도 이 산문집 역시 책장에 고이 꽂아두고 한 두 해가 지난 후에 다시 한번 꺼내어 먼지를 탈탈 털어 다시 곱씹어야겠다고,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울림을 느낀다. 또한 그녀의 신작이 나오면 그 땐 주저하지 않고 읽어보겠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고, 손에 잡고 읽을 날이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그러나 훗날, 언젠가는 내게도 그 나이가 오리니, 지금보다는 그 때에야 손에 붙들고 한 자, 한 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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