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 다투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 32가지 대화의 기술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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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 그래, 나는 공격적인 사람이다. 무척이나. 가끔은 지인에게도 지독하리만큼, 서슴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비단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할 때면. 그런 나에게 그는 “너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너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되잖아.” 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했었다. 맞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인데, 그 사람이 왜 내 기준에 부합되어야하지? 내가 뭔데? 내 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닌데. 너무 자만했고, 오만했으며, 또 거만하기까지 하다. 웃긴다, 정말 내가 뭐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럴 땐,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그래,라고 대답하는 습관을 길러야하는데.

 

 

 

조금 창피하지만, 나는 인맥이 그렇게 두텁지 못하다. 내 인맥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만 한한다. 그걸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으니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그렇게 아니꼽게 나갈 수가 없다. 한때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그래, 그게 스트레스라면 차라리 그런 사람과는 말을 하지 말자.”라고 생각한 것이 아직도 습관처럼 내게 들러붙어있다. 까닭에 나는, 참, 사회생활하기가 어려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인맥은 아직도 한정적,이고, 내 주위엔 적이 드글드글하다. 드글드글.

 

 

 

언품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것은 언제 들어도 늘 공감하는 문장이다. 나는 지금으로 5년 전만 하더라도, 참 무식했다. 그래, 무식했다는 말밖에는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생각하는대로 내뱉고, 내뱉은대로 행동하고. 뭐, 지금은 친구들에게 “넌 진짜 많이 변했어. 우린 오빠(그)에게 정말 고마워해야해.”라는 말까지 듣는데, 그건 아마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와의 만남이 진행되던 시점부터였음을, 난 반발할 길이 없다. 어쨌든, 내가 바뀔 수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도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모습을 볼 때면 그게 그렇게 무식해보일 수가 없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참 오만한 생각이겠지. “너도 그랬잖아.”라고 하면 할 말 없을거면서.

 

 

 

소통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할 때 제대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 ‘특별하다’는 건 거창하고 화려한 표현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솔한 감정을 전달하고, 상황에 어울리는 비유와 적절한 유머 등을 대화 속에 녹여낼 때 ‘특별하게 말할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p222)

 

난 참, 소박한 사람이다. 말하는 것이. 예쁘게 말하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가끔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 마디 툭, 내던지는 게 다인, 그래놓고 뒤돌아선 그냥 이렇게 얘기할걸,하며 남몰래 후회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소심함까지 겸비하게 되어서는,“내 의도는 A였는데, 혹여나 B로 알아들었으면 어쩌지?”하기도 하고, 뭔가 깊이 생각해야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말을 하기보다는 글을 써서 상대방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니까 느끼는 것 같은데, 내 말과 행동이 ‘나’를 나타내는 지표겠구나,생각하곤 해서 좋건 싫건 간에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조금 더 나를 가꿔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까닭에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였고, 다 읽고 난 순간까지도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지만, 이따금 멈칫,했던 그 순간들이 읽고 있던 이 책 때문은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은 품게 된다. 막연하게 타인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이 조금 더 당당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지.

 

 

 

 

사과를 할 때 ‘하지만’으로 말을 이어나가면 상대방이 당신의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당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과는 무조건 명확하고 짧아야 한다. 길어지면 또 다른 갈등이 배태된다. (…) 사과에도 나름의 유통기한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과의 타이밍’을 지나치게 오래 끌면, 그땐 사과가 아니라 단순한 양보로 변질된다. 사과의 유통기한을 최대한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p29)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풍경의 ‘비밀 정원’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타인이 잘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추억과 소중한 경험, 아픈 상처, 이루지 못한 꿈 같은 것들이 처연하고 은밀하게 어우러져 있을 것만 같다. ‘한 사람의 근원적 의도를 헤아린다’는 것은 이 정원을 살짝 엿보는 행위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낯선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정원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슬쩍 까치발을 들어보자. 그리고 세심하게 상대를 관찰해보자.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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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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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꽤나 눈부신 오월,이다. 약간 떨어져있던 기온에 선득선득함이 살갗에 파고들었던 날에 책을 펼쳤었는데, 딱 한 달,만에야 변종모, 그 사람과 좀 떨어질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찍어놓고, 그 나라에 대해 써놓은 글을 읽으며 책을 넘기는 손끝에서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그 나라에 대한 닿지 못한 동경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어느 순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 여기 다녀왔어요. ctrl+C, ctrl+V 한 듯 한 사진 쾅쾅. 글 쾅쾅. 책을 내기 위해 찍은 사진, 쓴 글_ 미션클리어 하듯 찍어낸 책에서 내가 뭘 느껴야하지, 회의감마저 들었던 것.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여행에세이와 멀어졌는데, 복작복작해진 마음에 혀를 내두르고 여행병이 다시금 도지고, 다시금 손을 뻗었고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래, 참 다행이야.

 

 

 

 

 

 

그 낯선 순간이 나는 이상하지 않아서 이상했다. 여행이란 이렇게 또 낯선 순간과 그 낯선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경험하는 일,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일, 그 속에서 가까워지는 일일 것이다. 어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이 여행이다.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실은 나, 무척이나 정이 많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 익숙하지 못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젠간 멀어져야 할 사이임을 자각하고 만나야했고, 그 순간순간이 위태로움이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우리 만약에-라는 부정적인 문장을 달고 살았던 내게 우리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라고 말해준 J.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변종모 이 사람,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사람을 찾아가는 때도 있고, 사람이 그를 찾아오는 때도 있다. 나는 혹여 정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지,하는 약간의 불안감을 안은 채로, 그를 덤덤하게 지켜볼 뿐. 여행지에서의 만남, 그것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정말 찰나의 순간,의 그때의 만남.

 

 

 

 

 

 

오늘은 그날과 닮았고 그날 혼자 먹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혼자 대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과 오늘의 간격은 아득하고 그곳과 이곳은 지구의 반대편처럼 아득하다. 시간을 메우고 거리를 메우는 것에는 많은 양의 추억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가올 것이 아닌, 이미 지나간 슬픈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그저 만두처럼 덤덤할 뿐이다. 누구나 진저리를 치는 일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나, 우리는 살면서 자주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발설하므로 결코 궁핍하거나 허기지지 않다. 오늘처럼 아무도 없는 날, 나는 다시 그날들을 떠올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므로. 파키스탄의 훈자, 이집트 다합, 시리아 여행 골목의 감자를 볶는 여자, 그루지야 트빌리시의 만두보다 환하게 웃던 여자, 스리랑카 웰리가마[어촌 마을 마리사]의 한국어를 배우던 청년, 청년의 할아버지, (그리고, 변종모가 무척이나 아끼고 아껴두었던 것 같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와인 여인, 쿠바 트리니다드의 종업원, 푸리의 브론, 그루지야 카즈베기의 꼬꼬닭 할머니, 겐지스의 디아 소녀, 짜이 할아버지, 푸쉬카르의 키노시타, 칼라파테 후지여관의 여자, 볼리비아 수크레의 밥 퍼주는 남자,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핫산_ 변종모, 그의 여행에는, 그의 펼쳐진 손바닥에 기꺼이 맞대었던 다른 손바닥들이 있었기에 성숙해진건 아닐까,하는 조금 주제 넘은 생각. 그래서- 이야기, 그 끝에 풍기는 진한 향긋함에 코끝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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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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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 좀 읽어야지, 봄-이잖아. 봄,은 내게 항상 또 다른 시작,이자 출발점,이고 또 하던 일을 마무리를 해야하기도 하는 조금은 모순된 계절이니까. 손에 집게 된 건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_ 바로 전, 앞의 열 페이지를 반복해서 서너 번은 족히 읽었지만 덮어 둘 수밖에 없었던 「하느님의 보트」도 있으면서 다시금 에쿠니를 집다니. 수상쩍다, 나. 굉장히. 몇 년 전, 따사롭기보다는 등이 조금 아릴 정도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속, 붉은 꽃들 사이에서 책을 읽었었다. 삼 남매의 「소란한 보통날」 그래서 그 책을 볼 때마다 봄이다. 덩달아 작가도 봄-이다,라고 적으려다 「빨간 장화」를 흘깃보곤 다시 겨울,이라 적는다.

 

 

 

 

여드레째. 모레에는 도쿄로 돌아가 남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어젯밤 외간 남자의 몸을 제대로 맛보았다. 아주 짧은 동안이라고는 해도 평소 좋아서 갇혀 사는 장소 -남편에게 소유되어 있다는 느낌은 떨어져 있을 때 오히려 더 강하다- 에서 바깥에 놓인 것이다. 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럭저럭 잘 견뎌낸 것 아닐까. 마흔다섯의 중년 슈코,는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혹은 남편에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어머니 기리코,와 종종 여행을 떠난다. 슈코,는 남편에게 소유됨,으로써 비로소 해방됨,을 느끼는, 조금은 모순되는 여자.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말이 모순된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소유되었다는 것, 그것을 소유되었기에 옴싹달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소유됨으로서, 불안정해서 언젠가 퉁퉁- 변형되어 버릴 것 같은 형태가, 하나의 안정된 형태를 되찾는 것으로서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해방됨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나는, 조금 (사실은 꽤나) 오만을 떨었다. - 이번에는 9박 10일 일정으로 떠난 푸켓에서 만난 미미. 그리고 미우미의 아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정사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 슈코는 남편 하라를 오로지 그녀의 것,으로서의 소유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그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까지, 모- 두. 내가 이제까지 행해왔던 성숙하지 못했던 연애는, 각자의 삶을, 생활을,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서로와 상반되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못했었는데 몇 년 전에 시작된,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연애의 상대방은 나에게 안도현의 「연어이야기」를 읽어준 적 있었는데 이는 다음 구절과 같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배경까지 만나는 일이야.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상처와 슬픔까지 만나는 일이지.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현재만 만나는 일이 아니야. 네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과 네가 살아갈 미래의 시간까지 만나는 일이지.

 

 

 

 

와타루의 특별 대우를, 간결하고 애매한 지금의 관계를 나는 잃고 싶지 않다. 설령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 유지할 수 없는 것ㅡ마치 장미에 맺힌 물방울처럼ㅡ이라 해도. 에쿠니, 그녀는 사랑,이라 부르지만 나와 낯선 것에 대해 냉소적인 나는 그것을 불륜,이라 부르고, 이해할 수 없다,고 그녀를 또 한차례 매몰차게 질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을 건드리는 표현들에 유약해져있는 마음이 물러 터져버려선, 끝내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감싸안고야 마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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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
티에리 코엔 지음, 박명숙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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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로맨스가 참 그립다. 며칠 전, “나 연애해.”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좋겠다, 설레임.”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는 연애 삼 년 반인 나와, 각각 연애 삼 년과 이 년을 껴안은 친구 둘도 함께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말에 모두 공감 백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설레임,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연애 초창기의 설레임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을 때가 더러 있다. 그를 만나러 대전역에 도착할 때 즈음- 한껏 달뜬 목소리, 신나보이는 표정, 두근두근대던 심장을 감출 길이 없어 발개지던 얼굴.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안면에 띄워 나를 향해 쭈뼛쭈뼛 걸어오던 그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지금은, 신난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하며 다가오거나, 장난을 치려고 몰래몰래 다가오거나. 또 다퉈서 말도 하기 싫을 때에는, 현재 기억하고 있는 오래 전의 그 설레임으로, ‘그래, 그랬던 때가 있었지.’ 라며 나 스스로를 릴렉스시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요즘,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통화할 때마다 주를 이루는 건 결혼이야기. 이러기 싫은데...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 그것. 그래서 일까? 달달한 연애소설이 자꾸만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가. 요즘은 부쩍 - 연애소설이, 자신을 읽으라며 나를 종용한다.

 

 

 

 

 

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요나. 어느 날, 꿈에 찾아온 여인에게서 ‘글을 써요.’라는 나직한 한 마디에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소설을 한- 권 쓰게 된다. 그 소설은 우연찮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고, 곧이어 출판사로부터 강요받다시피 쓴 두 번째 소설에 혹평을 받아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힐렐이 운영하는 서점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번번이 믿었던 사랑에 배신을 거듭 당해 사랑에 대해서라면 마음에 철벽을 세운 여자, 리오르가 병원의 간호사직을 그만두고 개인 간호사이자 친구로 환자 세레나를 돌보며 그녀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러 요나가 일하고 있는 서점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며 둘의 만남을 암시한다. 하지만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남자와 사랑에 곪을 대로 곪은 여자의 사랑은 참 어렵고, 힘들고, 더디기만 하다. 다가오는 남자와 뒷걸음질치는 여자. 포기하는 남자와 마음이 열리는 여자.

 

 

 

 

 

사랑은 존재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절대적 감성이다. 모순과 반론, 논쟁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그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하며 지식이나 이성을 파스텔 톤의 이미지 뒤로 넣어둘 것을 요구한다. 사랑은 절대적인 예속을 요구하는 대신 그 보답으로 맹목적인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p152 나도 그와의 만남에서 책이 매개체가 되어서일까? 개인적으로 책,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개체가 됐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반갑게만 느껴진다. 티에리 코엔, 이 작가는 책을 읽기 시작한 즈음 「살았더라면」을 읽고 호기가 가던 작가였는데, 사실 프랑스 작가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기욤 뮈소와 문체가 많이 닮아있구나,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뭐든 잘 잊는 게 특기라서, 책을 읽고 돌아서면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며 책을 다시 뒤적이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때 주인공 이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당시 크레미가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닐텐데. 음, 이건 쓰잘떼기없는 농담.) 그런데 연애소설을 썼다니 소재를 ‘사랑’으로만 쓰는 기욤 뮈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의외다. 연애소설치고는 생각만큼 진중한 언어와 어휘 선택에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 틀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힐렐을 통해 꾸준하게 발설하고 있었다. 작품은 사랑과 책의 배함 5:5를 섞어놓아, 단순히 연애소설만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전개방식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하지만 작가 티에리 코엔의 사랑과 책의 사상이 궁금하다면, 그것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싶다면 - 나와 같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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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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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공허감에 마음이 허공에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연례행사이기라도 한 듯, 유독 십이월은 나에게 그런 달이다. 고등학생 때는 얼른 스무 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했지만 스무 살하고도 다섯 해가 지난 지금, 나는 그 때 했던 생각들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은 한 해가 저물어 십이월이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친 날들을 후회하느라 마음이 바빠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하는데, 하면서. 재작년 이맘 때 즈음에 성수선 작가의 「밑줄 긋는 여자」를 만났었고, 올해 같은 시기에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를 품에 안았다. 혼자,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인상은 쓸쓸, 처량, 고요, 적요, 고독 등의 단어뿐이다. 함께인 줄 알았는데 혼자였고,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함께였다는 그런 괴상한 논리에 긍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현 내 마음 상태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혼자,이고 싶을 때도 많지만 사소한 일까지 시시콜콜 공유할 수 있게끔 되어있는 생활 속에서 오롯하게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막연히 좇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알싸함에 코 끝이 시렵다.

 

 

 

 

마법의 질문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나 연극을 좀 해볼까 봐. 뭐 구청에서 하는 연극학교가 있는데 가볼까 봐, 라든가 이탈리아 가곡을 배울까 봐 그러면, 어 그래? 연극?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래? 마법의 질문이에요. 해서 뭐 하려고 그래?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해서 뭘 하려는 게 아니죠. 예술은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자기표현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런 실용주의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담대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 재밌어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내가 좀 먼저 할게,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p124 :: 김영하의 강연 中) 사실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재미있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던 중 올해 오월에 스포츠댄스와 벨리댄스를 겸해서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그런거 왜 배워? 살 빼려고? 차라리 다른 거 하는 게 나을껄? 이라고 얘기했고, 나 역시도 처음 목적은 그것이었지만 재미에 푹 빠져서 퇴근하고 배우러 가는 발걸음 또한 가벼웠었다. (나는 꽤 심각한 몸치였지만!)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어쨌든 끊어놨으니까.”라며 얼렁뚱땅 넘기기도 했었다. 그래서 성수선 그녀가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라는 강좌를 들으면서 타인에게 얼렁뚱땅 넘겼다는 대목에서 허허 웃어버렸다. 그때의 내 모습과 같아서. 자아를 확장하고 타인과 교감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연애를 하는 게 아니듯이, 좋아하는 일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일단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모든 일에 목적이 있고 수량화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p124) 그리고 난 그동안 미뤄왔던 헬스를 그 다음 주에 당장 등록했다. 이번 역시 목표는 건강해지기,이지만 퇴근 후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요즘, 전보다는 약간의 피곤함이 있지만 매일매일 신나는 퇴근길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미안해요, 나만 신나서.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소개해주는 글 중, 마틸다의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급작스레 울컥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와의 미래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것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다. 개월 혹은 년 단위로 소액의 적금을 들어 여행가기, 작은 어항에 물고기 키우기 (이건 그가 약간의 반대를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작은 트리사기,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회사 근처로 와서 저녁 먹기 등등. 하지만 마틸다의 리스트는 너무도, (정말이지 너무나도) 소소한 일들뿐이었으니 울컥한 것이 이상할 일이 아니다. 신문 읽기, 시장 보러 가기, 슈퍼마켓에 가기, 동시에 양치질하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그리고 당신이 날 여전히 사랑하는지 물어보기. 연애란 게 이런 거다. 밀고 당기고, 고백도 주고받고, 더러 이벤트가 있기도 하지만, 연애도 결국은 일상이다. 생활인으로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서로의 일상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 서로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 되는 것. (p82) 일상이 된,다고. 그렇지. 일상이지. 굿모닝,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을 건지, 추운데 옷은 잘 입고 갔는지, 길이 미끄럽던데 삐끗한 곳은 없는지, 오늘 일은 많이 바쁜지, 퇴근 후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버스에서 앉아서 가는지, 서서 가는지, 서서 간다면 다리가 아프진 않은지, 피곤하진 않은지, 몇 시에 잘 예정인지, 발은 씻었는지, 전기장판은 따뜻한지, 그리고 굿나잇. 늘 똑같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그것이 서로의 일상이 되는 것. 맞다, 연애.

 

 

 

 

밤이 오고 계절이 바뀌듯이, 그렇게 슬럼프도 오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닐까? 내가 무슨 로봇도 아닌데, 일정한 작업속도와 생산성이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감기에 걸리면 며칠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어야 되는 것처럼, 슬럼프가 오면 팔를 잡듯 때려잡는 대신 그냥 좀 쉬어줘야 되는 것 아닐까? 오죽하면, 정말 오죽하면 슬럼프가 날 찾아왔겠어, 하고 보듬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냥 감기처럼 슬럼프를 편하게 받아들이면 안 될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는 사이클이 있으니까. (…) 핸드폰을 많이 쓰면 배터리가 금방 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앞뒤 안 보고 죽어라 달리면 사람도 금방 방전된다. 슬럼프는 ‘배터리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같은 경고 메시지 아닐까? 위험하니 충전하라는, 스스로를 좀 돌봐주라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목에 ‘슬럼프’가 들어간 온갖 책을 읽으며 고민해봐도, 슬럼프를 극보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건 바로, 그냥 슬럼프를 받아들이는 것. ‘슬럼프는 어쩔 수 없이 온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사람은 로봇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 이러다 조만간 또 상승곡선을 타리라는 것을, 아니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안달복달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쿨하게 말해주는 것.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p92-93) 내게도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처럼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때문에 무기력한 그의 행동과 말투에 화가 났다. 말할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고, 단어 선택이 잘못됐던 것 뿐인데,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일방적으로 쏘아붙였다. 서평을 쓰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두 페이지를 찰칵, 찰칵 찍어댔다. 그리고 그에게 보내주었다. 성수선 그녀의 글들이 부디, 그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이것을 보내주는 내 마음도 함께 전달되기를.

 

 

 

 

전작인 「밑줄 긋는 여자」는 오롯하게 독서에세이였다면(혹은 독서일기), 이번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는 성수선, 자신의 일상 한 조각에 책 한 권이 차곡차곡 얹혀지는 기분이랄까? 전작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 아쉬웠다는 사실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았고, 작게나마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전보다 좀 더 그녀를 알게 된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 어떤 책이든 작가를 알아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다못해 아는 사람이 쓴 것은 아무리 재미가 없는 글이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조금은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들려주는 일상이야기는, 뭐라도 더 해야겠다,며 바쁘기만 했던 내 마음에 휴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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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랑받는 건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뭐를 잘해서도, 좋은 회사를 다녀서도 아니야. 아무 일 안 하고 이렇게 잠만 자도 아무 상관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적어도 여기 있을 때만큼은.” (p20)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그 느낌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인생을 관통하는 아주 핵심적이고 중요한 능력!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박탈감이 느껴질 뿐이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자신의 결핍에 집중하면 자기연민에 빠질 뿐이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 시간이 없다면 남 좋은 일만 시킬 뿐이고, 아무리 잘나도 행복하지 못하면 재미없는 소풍처럼 쓸쓸한 삶을 살다가 떠날 뿐이다. (p27)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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