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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햇살이 꽤나 눈부신 오월,이다. 약간 떨어져있던 기온에 선득선득함이 살갗에 파고들었던 날에 책을 펼쳤었는데, 딱 한 달,만에야 변종모, 그 사람과 좀 떨어질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찍어놓고, 그 나라에 대해 써놓은 글을 읽으며 책을 넘기는 손끝에서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그 나라에 대한 닿지 못한 동경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어느 순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 여기 다녀왔어요. ctrl+C, ctrl+V 한 듯 한 사진 쾅쾅. 글 쾅쾅. 책을 내기 위해 찍은 사진, 쓴 글_ 미션클리어 하듯 찍어낸 책에서 내가 뭘 느껴야하지, 회의감마저 들었던 것.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여행에세이와 멀어졌는데, 복작복작해진 마음에 혀를 내두르고 여행병이 다시금 도지고, 다시금 손을 뻗었고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래, 참 다행이야.
그 낯선 순간이 나는 이상하지 않아서 이상했다. 여행이란 이렇게 또 낯선 순간과 그 낯선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경험하는 일,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일, 그 속에서 가까워지는 일일 것이다. 어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이 여행이다.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실은 나, 무척이나 정이 많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 익숙하지 못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젠간 멀어져야 할 사이임을 자각하고 만나야했고, 그 순간순간이 위태로움이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우리 만약에-라는 부정적인 문장을 달고 살았던 내게 우리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라고 말해준 J.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변종모 이 사람,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사람을 찾아가는 때도 있고, 사람이 그를 찾아오는 때도 있다. 나는 혹여 정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지,하는 약간의 불안감을 안은 채로, 그를 덤덤하게 지켜볼 뿐. 여행지에서의 만남, 그것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정말 찰나의 순간,의 그때의 만남.
오늘은 그날과 닮았고 그날 혼자 먹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혼자 대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과 오늘의 간격은 아득하고 그곳과 이곳은 지구의 반대편처럼 아득하다. 시간을 메우고 거리를 메우는 것에는 많은 양의 추억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가올 것이 아닌, 이미 지나간 슬픈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그저 만두처럼 덤덤할 뿐이다. 누구나 진저리를 치는 일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나, 우리는 살면서 자주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발설하므로 결코 궁핍하거나 허기지지 않다. 오늘처럼 아무도 없는 날, 나는 다시 그날들을 떠올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므로. 파키스탄의 훈자, 이집트 다합, 시리아 여행 골목의 감자를 볶는 여자, 그루지야 트빌리시의 만두보다 환하게 웃던 여자, 스리랑카 웰리가마[어촌 마을 마리사]의 한국어를 배우던 청년, 청년의 할아버지, (그리고, 변종모가 무척이나 아끼고 아껴두었던 것 같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와인 여인, 쿠바 트리니다드의 종업원, 푸리의 브론, 그루지야 카즈베기의 꼬꼬닭 할머니, 겐지스의 디아 소녀, 짜이 할아버지, 푸쉬카르의 키노시타, 칼라파테 후지여관의 여자, 볼리비아 수크레의 밥 퍼주는 남자,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핫산_ 변종모, 그의 여행에는, 그의 펼쳐진 손바닥에 기꺼이 맞대었던 다른 손바닥들이 있었기에 성숙해진건 아닐까,하는 조금 주제 넘은 생각. 그래서- 이야기, 그 끝에 풍기는 진한 향긋함에 코끝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