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붉은 사랑 -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그대가 있었다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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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시리게 찬 날이다. 나는 황망한 표정을 자주 지어 보였다. 어리둥절할 것도 없다. 으레 겨울만 되면 느껴왔던 헛헛함이었다. 헛헛함의 대상은 어떤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아니었고, ‘무엇’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왜’라는 부사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폭발처럼 치솟아 오르는 그런 겨울이다. 낡고 허물어질 것처럼 아스라이 놓인 내 표면의 거친 감촉을 어루만져 줄 것을 원했다. 나는 겨울에 먹이를 찾아 나선 눈 속에 폭폭 빠지는 사슴처럼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도서관을 더 열심히 들락거렸다. 내게 주어진 공부를 해야 하지만, 잠시 미루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어쩌면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의 시간에 대해 어리석다 말할지도 모를, 스치는 지금의 시간들을, 나는 귀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네댓 권 빌려온다. 어쩌면-이 아니라, 역시나 다 읽지 못할 책들이다. 또 욕심을 부렸다며 자괴를 느낀다. 하지만 이 책들 중에서 나와 인연인 책이 있다면 끝까지 읽어내리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는 눈에 넣는 그림이 아니라 심장에 넣어 입으로 토하는 음악’이라고, 그는 써두었다. 오래도록 그 문장을 오묘하게 바라보다가, 내가 詩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만다. 시를 써본 것도, 초등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고 싶은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어떤 용기가 솟았는지 손을 번쩍 들었을 때. 시를 써본 것은 단연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고등학생 때는 딱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를 쓸 일이 없었지만, 시를 외워야 하는 일은 참 많았다. 내가 외운 것이 그뿐이랴. 강제로 외운 것들은 마음속에 잉태되지 못하고 금세 휘발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강제로 읽었고 읽혔으며 외웠던 그 시들은 내 가슴속에 아직도 자리 잡아 나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은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박준 시인의 시를 필사하지만, 나는 그래도 시를 모른다. 내가 그 시를 알 리가 없다.

처음에는 조금 두꺼운 시집인 줄로만 알았다. 천천히 읽어봐야지,라며 도서관에서 집었던 게 화근이었다. 서문을 읽고, 곧바로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이 페이지만 몇 번이나 도돌이표처럼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자식을 두지 않았기에 자식으로서의 입장으로 이 글을 읽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 누구든, 엄마로서의 입장보다 자식으로서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내가 가장 오랫동안 시선을 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글을 읽으며 뭔가를 생각한다기보다, 그 글들을 하나씩 정성껏 눈으로 짚으며 자간 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오래,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책. ‘어머니의 편지’는 유튜브에서 <그토록 붉은 사랑>을 검색하면 낭독한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글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한동안 무거웠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

봄에 피는 꽃들에 대해 나열해놓은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가장 처음, 목련을 떠올렸다. 내가 삼 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목련을 통해 봄을 알 수가 있는데, 빨리 피지만 목련이 질 때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운 것이었다. 목련의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색이 갈색으로 변색되버리면, 아름다웠던 목련의 모습보다는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는 목련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다. 목련, 화사했으므로 추한 최후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을로 넘어가는 볕을 햇솜으로 지은 신혼 이불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어휘력이라든지, 배추와 무가 햇살의 젖꼭지를 빨아 대며 통통하게 살찌고 있습니다.라든지, 달걀노른자 같은 낮별,같은 표현은,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서 배워보고 싶은 필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이 좋았던 것은, 허투루 가벼운 글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쓴 글일지라 하더라도, 묵직한 울림이 있어 좋았다.

사랑은 생각해 보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와락 덤비는 것이다. 그냥 손잡고 입 맞추고 꼭 껴안고 거침없이 뒹구는 것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오돌토돌 돋아 오르는 것이 감각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였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와 당신이 가진 마음의 무게를 가늠하고, 재어보기도 하면서, 그것이 알맞게 채워지지 않았거나 채워질 수 없었을 때 삐지고 고개 홱 돌려 토라지며 내 마음 알아달라고 떼쓰는 게, 결코 사랑의 일부분이 아니었지. 내가 잠시 잊었었나 보다. 사랑을 하는 법을, 이렇게 다시 배워야지. 그리고 한 평생을, 그와 그렇게 살아야지.



그늘은 늘 오롯한 위안입니다. 그늘진 자리에 들면 비로소 잠시 내가 살을 비우고 나온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량한 것들과 숨이 멎을 것 같은 환한 고요가 젖은 눈을 열고 들어옵니다. 실상사 뒤란, 부도 밭의 여린 제비꽃들이 햇살로 짠 날개옷을 입고 팔랑거리고, 생리통을 앓는 배롱나무들이 지그시 하혈을 누르고 있습니다. 나는 양지에 펼쳐진 햇살이 페이지보다 그늘이 집필한 더 짙은 그늘의 산문을 읽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 가려면 체제에 무조건 순응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이 어디서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삶, 나의 행동도 존중받을 수 있다.



구월의 햇볕은 정숙한 여자처럼 다소곳하다. 나는 문득 햇살에게 경건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싶어진다. 수국 화분을 밖으로 꺼내 주근깨마냥 박힌 여름의 그늘을 잎에서 닦아 낸다. 서늘한 시간의 더듬이가 내 손등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여름의 무기력과 권태를 위태롭게 지나왔던가. 이 가벼운 구월의 스침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 때, 나는 사과 상자를 과적한 구름 트럭이 무게에 못 이겨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붉은 사과 궤짝들로 바다는 어지러웠고, 쏟아진 사과알에 맞은 물고기들의 등에는 푸른 멍이 번졌다.



사는 것은 왜 이리 간절해야만 하는 것이냐. 하필이면, 감상적인 날씨에게 물어보려 할 때 아랫 입술에 박힌 송곳니가 너무 깊어 핏물이 차오른다. 불량하고 음습한 어둠이 저만치 뒷걸음질 친다. 양아치 같은 십일월, 석류처럼 터지고 바스러진 마음의 붉은 졸개들.

열차가 섰다. 비가 내렸고, 비가 내렸고, 이른 단풍일 몇 장이 내렸고, 가을이 뒤따라 내렸다. 가을은 부서질 듯 야위어 있었다. 나는 시리고 아파서 눈을 감았다. 커다란 갈색 트렁크 밑바닥이 땅에 끌려 신음하는 소리가 났다. 어떤 가녀리고 가벼운 몸이 내게 육박해 왔다. 나는 바스라지게 가을의 허리를 껴안았다.

어떤 통증은 감염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대중가요 한 소절에 버텨온 일상이 무너지는 방심의 날이 있다.





/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이 책을 참 좋게 읽었고, 내 책이었다면 밑줄을 좍좍 그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중도에 덮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유씨와 류씨는 서로 다른 성씨인데, 두음법칙으로 인해 류씨가 유씨와 같은 뿌리라고 하니, 류씨가 소송을 해서 대법원 판결이 났었다. 나씨와 라씨는 어떠한 연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예외로 두었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런데 다른 성씨에 대해서는 아직 나와있지 않았다.

그가 인스타를 하기에, 그에게 디엠을 보냈다. (1월 4일에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는 상태이다.)


안녕하세요. 현재 림태주 님의 책, <그토록 붉은 사랑>을 읽고 있습니다. 고독과 사색을 일삼게 되는 겨울에 읽으니 찬 공기도 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갖, 궁금한 점이 있어 이렇게 여쭙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두음법칙상 성씨 /림/이 /임/으로 변경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씨와 /류/씨는 소송으로 위헌 판결이 나 분리된 것으로 어렴풋 알고 있고요. 그런데 성씨 /림/으로 지내시는 건 어떠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나는 찝찝한 이 부분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이 책에 대한 어떠한 평도 내릴 수 없고, 내리기도 싫다. (뒷부분에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림태주, 임태주가 같이 쓰여 있었는데, 그것도 어떠한 연유인지 궁금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이상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하기에 그만 쓴다.





<오탈자>

P.272

식탁에 꽃병이 놓이자 식구가 는 것처럼 천정의 불빛이 따뜻해졌다. ▶ 천장

<그토록 붉은 사랑>을 12개를 낭독한 걸 나는 다 읽어보았는데, 천정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천정이라고 읽더라.

천정은 북한어고, 천정은 천장의 잘못된 말입니다. 잘못된 건 고쳐서 읽어야지, 천정이 뭡니까...



천정2 (天井) [명사] <건설>
1. ‘천장2(2. 반자의 겉면)’(天障)의 잘못.

2. [북한어]‘천장2(2. 반자의 겉면)’의 북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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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의미를 잊은 당신에게
모로토미 요시히코 지음, 신찬 옮김 / 올댓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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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을 하기 싫다, 고 생각을 한 적은 있어도 일을 완벽하게 쉬고 싶다,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게 일이라는 것은, 본래 게으른 나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세상의 시계에 맞춰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내가 일을 하고 싶은, 또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지만 현재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몇 개월째 무직 상태이다. 일을 하지 않음의 상태를, 나는 견딜 수 없어서 사사로운 일거리를 모색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속되지 못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매 순간 들었기 때문에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출근을 해서 퇴근을 하는 그 시간 동안에 정을 둘 수 있는 아늑함이 없었다. 그 헛헛한 마음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차분하게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사사로운 일거리도 잠시 버려둔 상태며, 이 기간을 “잠시 여름방학이야.” 라는 생각으로 쉬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달아나버리고 만다. 일을 하지 않음과 동시에 삶의 안정성을 잃어버린 기분. 이걸 무엇에 빗대어야 할까. 나의 배우자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왜 제대로 쉬지를 못하냐면서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나의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내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언제부터 일을 할 예정이니 그때까지는 마음놓고 쉬어야지. 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일하는 의미를 잊은 당신에게」라는 제목을 보곤, 현재의 내가 일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그게 극대화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내게 직장이 주어졌을 때, 나는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여 이 책을 기대에 부푼 감정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 아뿔싸!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의 서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빅터 프랭클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주장을 기초로 한 책임을 밝힌다. 이것이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는 총 48개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답변이라는 것은, 빅터 프랭클의 책에서 발췌한 것이나 프랭크의 글을 인용한 것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이 책에 가장 많은 문장은 단연, 프랭클은 ~라고 말합니다. 이었고, 내 시선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급기야 무엇이 저자 모로토미 요시히코의 말이고 무엇이 프랭클의 말인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프랭클 요약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가운 것은, 아직 읽지 않은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정도.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를 죽어라 읽지 않았다. 그것은 한낱 책 따위가 나를 변화시킬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 기초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틀린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감정이) -할 때 찾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부터였다. 그렇기에 한낱 책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조금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혹은 아무런 생각 없이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언젠가는 나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에세이와 자기계발, 인문서에도 조금씩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책을 읽는 그 당시에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흥미를 갖기도 하며 의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개의 질문과 답변을 읽으면서 날이 서버렸고, 그 상태를 유지한채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 참 쉽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말은 쉬워, 실천이 어렵지.



책에 자주 쓰여있는 것 중 하나는, 일의 가치는 업무의 크기와 관계없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프랭클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일이든 작은 지역에 국한된 일이든 일의 가치는 그 활동 범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하는 일에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주어진 일에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게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프랭클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다음 문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랍니다. (중략)



하지만 내 입장은 좀 다르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이직을 생각하는 것은 본인을 다시 돌아봐야 하겠지만,) 능력이 80인데 50의 능력을 발휘하라고 했을 때,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강제수용소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에서든 일의 가치를 찾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강제수용소에서 (어쩔 수 없이) 의미를 찾아야 했던 프랭클과 달리, 현대인에게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걸까. 일의 가치가 업무의 크기와 관계가 없으니 일을 가치있게 생각하라는 프랭클의 말을 인용할 것이 아니라, 대표 혹은 상사와 타협 후 다른 부서로 간다든지 혹은 다른 업무를 배워본다든지 혹은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시도(업무에 관한 공부나 자기계발)를 하라는 편이 지금 세대에 맞는 현실적인 답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일의 가치는 업무의 크기와 관계없으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만족해라. 라는 문장은, 현재에 만족하라는 말 같았는데,


지금 회사 사정이 절망적이라 이직할 때까지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환경 탓만 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태도는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성공한 대다수는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어떻게든 가능성을 찾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성공의 기회는 그런 사람들의 몫입니다.


내가 발췌한 이 뒷부분의 문장들은 도대체 이 질문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내가 ... 이해도가 딸리나?)







이 책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 중 하나.

어떻게 하면 ‘천직’을 만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자기 바라보기는 그만둡시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나 사람, 미래에, 그리고 당신이 실현해야 할 일에 집중합시다. 라고 답변을 달아놓았다.

이 답변은,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프랭클은 아무리 자기 자신을 살펴봐도 ‘천직’을 찾을 수 없다고 조언합니다. 라면서, 천직은 자기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기다리거나 필요로 하는 일, 또는 사람에게 눈을 돌릴 때 찾을 수 있다고. 자기 밖의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 당신을 기다리는 ‘뭔가’가 반드시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일이라는 것은, 마음속으로 열 번, 백 번, 천 번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공감할 수 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동생에게 나 무슨 일하지? 뭐 먹고살지? 뭐 할까? 하는 물음에, 우선 어떤 것이든 좋으니 그 어떤 것이라도 해보라고 조언해준 적 있었다. 그것이 비록 내 일, 내 길이 아니었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삶의 경험으로 축적되어 나를 좀 더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다 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으니까. (물론 그 뒷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인 동생이 그러한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나 역시 그때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라고  지나고 나서 생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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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빛나는 밤에 - 고요한 시간을 채워줄 문장들
김효정.딱풀 지음 / 꿈의지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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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어린왕자>였다. 동화책이고, 다른 것보다 분량이 적으니까, 이 정도면 필사를 하기가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필사를 하고 있으려니 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이 아파지고, 손목도 아프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판단 오류였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내가 읽고 좋았던, 김이설 작가의 <선화>를 필사하기로 했다. 나는 그 책을 전부 다 필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 책 전체 필사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 중 하나이고, 차라리 나는 좋았던 구절만을 필사하겠다.”라고. 그리고 내가 요즘 필사하는 책은,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숙제처럼 하는 것은 또 싫어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또 생각나면 하나씩, 그렇게 노트에 옮겨 쓰고 있다. (그걸 필사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해)

그리고 밤삼킨별의 <혼자라도 빛나는 밤에>의 표지를 보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이게 산문집인 줄 알았는데 책 소개에 나와있는 속지를 보니 짧은 명언과 감성적인 사진을 수록한 필사책이었고, 이거라면 나도 숙제처럼 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책 제목은, <혼자라도 빛나는 밤에>였지만, 나는 잠시 여유가 생겨서 낮에 이 책을 붙들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우유와 콜드브루를 진하게 섞은 커피를 한 입씩 마시면서 필사에 몰두했다. 처음 본 문장도 있었고, 눈으로 많이 보았지만 처음 써보는 문장도 있었다. 마음에 닿았으면 했지만 그대로 공중에 흩뿌려진 문장도 있었고, 도대체 이건 무슨 의미지, 하는 문장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하나 열심히 쓰고 있었다. 적어도, 필사가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하지 않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 먼저 해야지,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썼던 것.
내가 불신하는 것이지만, 항상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문장.
그래서 다행이다.

하지만,
타인이 직접적으로, 저 문장을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없으니까,
상처가 곪고 고름이 터지고 그리고 그 모양이 흉해질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니까

 

 

 

 

 


낮이건, 밤이건-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문장씩 곱씹으며 문장을 적었다.
크게 위로를 받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위로를 받았다거나 하는 부분도 적(少)었다.
단지, 글씨가 삐뚤빼뚤해서 이게 뭐야 낄낄 거리기도 하며,
어쩌면 여백이 있을 수도 있는, 혼자의 시간을 충실하게 채운 기분이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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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마리 씨, 우리 집 좀 정리해주세요 - 만화로 보는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곤도 마리에 지음, 우라모토 유코 그림,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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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가구가 다른 신혼부부에 비해 많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집과 비교해서 그랬던 것이었던 것이지, 우리 집은 결코 가구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인의 집에는 다 있는 식탁과 소파가 없다는 것, 그리고 아기용품이 없다는 것 말고는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나는 생활물품을 살 때에, 많이는 아니지만 서너 달은 족히 쓸 만큼의 양을 쟁여두는 것을 좋아했다. 그야 첫 신혼집인 25평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활물품을 쟁여두지 않게 된 것은 우리가 원하는 집 대신에 15평에 살아야 했을 때였다. 두려고 해도 둘 곳이 없다는 게 첫 번째 해요, 둬도 쓸 수 없게 돼버리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들인 좋은 습관이, 우리 부부가 살기 딱 알맞은 19평에 와서 다시 볼쏙 생겨버렸다. 나는 집안에 어떤 물품을 몇 월 즈음에 사야 하는지 세세하게 꿰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서너 달은 아니어도, 두어 달 정도는 살 물품이 항상 구비되어있으면 했다. 첫 번째는 (당연히 몇 개를 더 사면 저렴할 수밖에 없는) 금액적인 부분이고, 두 번째는 매번 사기가 귀찮다는 이유였다. 생활물품은 그렇게 혼자서 커트라인을 정해두었다.
 
 
언젠가, 미니멀 라이프를 해볼까?라고 말하는 내게 J우리 집에 더 이상 정리할 게 있어?”라고 되물었다. 조만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은 이사를 앞두고 있다. 번거롭기 때문에 이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사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집안의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집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뭐가 이렇게 너저분하지? 하며 한숨이 폭 나왔다. 정리가 필요했다.

 

 

 

 

 

 

 

의뢰인은 치아키 씨, 정말 돼지 우릿간을 방불케했다. 세상에...
그래서 결국 정리를 도와줄 고마리 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고마리 씨는 정리를 하기 전에, 청소를 할 공간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어떤 생활을,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싶은지.에서 치아키 씨가 꿈꾸는 행복의 형태가 보인다고.


치아키 씨는 깔끔하게 정돈된 옆집 남자의 집을 우연히 보게 되고, 집에서 맛있는 밥을 해 먹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고마리 씨의 끊임없는 “왜?”라는 질문에 치아키 씨는 집을 빌릴 때 사용하기 편한 주방이 있어서 좋아했던 기억을 회상하고,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단 배를 채우고 보는/ 행위를 단절하고자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리기부터 시작할 것

 

 

 

 

하지만,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가 아니라, 남길 물건을 선택할 것이었다.
남길 물건은 설렘이 기준이다. 그 물건을 만졌을 때, 설레는가 아닌가-

 

 

 

 

 

내가 가장 간과했던 것은, 이곳 먼저 청소하고, 저곳 청소해야지-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고마리 씨는 장소별이 아니라 물건별로 정리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건이 많아서이고,
그 물건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리를 할 때에는 모든 물건을 다 꺼내기, 가 핵심!

 

 

 

 

 

 

 

내가 책을 비우려고 할 때에 들었던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나는 내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읽을 책만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는 욕심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려면,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팔거나, 나눔 한 책 중에서는 가지고 있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읽어보고 팔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으니까. (대부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하지만 책을 뒤적이지 않고 손만 대어 보고도 설렘을 느낄 수 있냐, 하는 기준은 나는 좀 애매모호했다. 그것이 맞을지언정, 기준이 모호하다면 당장은 나와 맞지 않는 부분까지 다 흡수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내가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 나는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을 쉬이 버리는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입지 않으니까, 신지 않으니까, 읽지 않으니까, 바르지 않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있는가 하면, 아직 쓸모가 있는데 버려야 하는 물건은 잘 버리지 않게 돼버린다는 것. 이를테면, 펜이라든지, 이면지들 (학교 교안) 같은 것 말이다.

1. : 잘 안 나오는 건 버리는 편인데, 잘 나오는데 버리기는 참 어렵다. 언젠가 쓸 거니까,라는 생각보다, 어쨌든 쓰기 위해 사온 혹은 가져온 어쨌든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이고, 그게 아직 멀쩡한데 그렇게 버려도 되나? 싶은 마음. 하지만 또 쓰는 펜만 쓰다 보니, 잘 안 쓰게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국 언젠가는 다 쓰고 마는 것들이기도 하다. 버리는 걸 좋아하는 나조차도 멈칫거리게 만드는 물건.

2. 메모장 혹은 이면지 : 나는 어디를 갈 때든 메모장을 가지고 다닌다. 그게 수첩이 됐든, 이면지가 됐든 상관이 없다. 어쨌든 쓸 공간이 있는 것이면 되는 것. 그러다 보니, 필요가 없어진 교안이나, 일전 회사에서 공부를 한다고 집으로 가져온 것들을 처분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된다. 쓰지 않는 게 아니다. 결국은 쓴다. 진짜 흥청망청. 그곳에 적는 건, 일일 계획, 주간 계획, 월간 계획, 내 생각 끼적이기, 책 읽으며 메모하기, 통화할 때 메모하기, 뭐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써도 써도 계속 남아있는 이면지의 늪... 이사 갈 때는 다 버리고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는데....!

 

 

 

결국 전부, 필요 없던 거였다는 말이 조금 비이성적으로 들렸다. 필요 없는 것. 필요 없는 것. 적어도 나는 고장 난 가전제품, 곰팡이가 핀 이불, 정체불명의 전기- 같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집에 무심코 있다는 사용기한이 지난 약?도 없는 우리 집인데... 그렇다면 그 외에는 뭐가 있을까. 눈에 보이는 곳에만 없을 뿐, 아마 우리 집에도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 아. 선물을 받았는데 이미 죽어버린, 가죽도 너덜너덜한 시계 같은 건 어쩌지, 하고 방금 생각했다.


사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파일 다이어트가 가장 시급하다고 느꼈다. 필요 없는 사진이랄 것은 없겠지만, 우리 집의 모든 사진 파일은 원본인 RAW 파일까지 저장하기 때문에, 용량을 많이 잡아먹는다. 이 부분에 대해 J군에게 말했더니, “난 그대로 쓸 거야, 니 것이나 정리하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네...... 알겠...)

 

 

 

 

 

책에는 티셔츠, 스커트, 속옷, 수건 등등 개는 법까지 친절하게 나와있고, 세로로 보관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수건을 이제까지 차곡차곡 위로 쌓아두는 편이었는데, 책을 보고 실행해보았다. 이렇게 하니, 확실히 더 효율적이게 보인다. 차곡차곡 위로 쌓아두면 밑에 있는 수건은 내내 쓰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PS. 수건을 그레이로 통일하고 싶은 것은, 결혼 생활의 로망 중 하나지만, 소모품인 수건을 굳이 돈 들여서 살 필요가 있나, 그러면 기존에 쓰던 수건들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수건은 또 자주 들어와서, 굳이 사게 되지를 않...게 된다는 점. 그래서 결론은, 까끌까끌한 수건들은 버릴 건 버리고 살 때 소량씩 사야겠다는 것. (소량씩 사면 비싸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나름대로 잘 정리하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정리하는 습관이 들여있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순식간에 방이 더러워지는 건 시간문제고, 그게 점점 쌓이다 보면 나도 치아키 씨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J가 나를 엄청나게... 구박하지 않을까. 원래 깔끔한 편이 아니어서, 친정에 있을 때에도 구박당하기 싫어서 정리하는 여자였는데)


만화책으로 되어있어서 얼마 안 되어 후루룩 보기는 했지만, 참 알차게 본 책이다. 물건을 잘 정리하다 보면, 내 삶의 정리도 한결 쉬워진다고 책에서 잘 설명해두었다. 글로 쓰자니 이게 뭐람? 싶지만, 읽어보면 긍정의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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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끝내는 독학 프랑스어 첫걸음 나혼자 끝내는 독학 첫걸음 시리즈
염찬희 지음 / 넥서스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언어라는 것은 으레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를 배울지 고심했다. 어떤 언어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어떤 언어라는 것은 대개 내가 거의 모르는 언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한국어라든지 영어라든지 같은 것은 자연스레 제외되는 셈이었다. 체코어, 헝가리어, 포르투갈어를 두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언어이기 때문인지 교재를 찾는데만 시간을 허비하다가 종래는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우습게도 프랑스어였다. 프랑스어는 순위에도 없던 언어였는데, 어떤 언어라도 뭐라도 배워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때에 눈앞에 있는 것이 프랑스어였을 뿐이었다.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건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명확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프랑스라는 나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이건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다.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기차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프랑스인들(평균 60세)이 정말 너무너무 시끄러워 정중하게 조금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기차는 뚫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나도 어쩔 수 없는데?” 하며 비아냥거리는 대답을 했고, 오히려 더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이 동양인을 비하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본인들의 잘난 우월주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때 느꼈던 것은, 프랑스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게 억울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그들에게 프랑스어로 욕을 한 마디 날려주고 싶었는데. 뭐 그렇다고 내가 욕을 배우려고 프랑스어를 배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억울할 터로 한 마디 정도는 구사해서 말을 하고 싶어서 배운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입을 좀 다물라고 하는 것. 그 정도만. 음. 배우겠다는 의도가 너무 불손한가.

 

 

 

 


책에는 CD가 있어서 교재에 대한 부분을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했다. 집에 CD ROOM이 없는 줄 알고 부러 뜯지는 않았는데, 일 년 전에 산 것을 잊고 있었다. CD ROOM 설치해야지.

 

 

 

 

지난 학기 중 <언어와 문화>라는 과목에서 프랑스 문화에 대해 공부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종전까지는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안타깝게도 문화에 대해 그렇게 깊게 공부를 한 것은 아니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언어에 관해서 만큼은 혀를 굉장히 많이 굴려야 하는 언어라는 것을 느꼈다. 뭐 흔히들 알고 있는 봉주흐~ (프랑스어에서 R은 ㄹ이 아니라 ㅎ로 발음되어 봉주르가 아니라 봉주흐라고 하는 것 같다.)만 보더라도 입에서 사탕을 굴리는 그런 느낌. 또 상대적으로 한국어나 영어와는 달리 [ㅊ],[ㅋ],[ㅌ],[ㅍ]와 같은 발음이 없어 그런건가 싶기도 했다. [ㅍ]으로 발음되는 것도 있기는 한데 그건 거의 f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 같다. p는 [ㅃ]으로 발음되는 것 같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잘 모름 주의_ 이건 공부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c는 [쌔]로 발음을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뜻을 가진 coréen을 발음할 때는 [코헤앙]이라고 한다는 것.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파리라고 알고 있는 paris는 프랑스인들은 [빠히]라고 발음한다고 했다.

 

 

 

 

지난 번, 두 학기에 걸쳐서 한국어 교재를 분석하고 /내가 교재를 만든다면/이라는 가정을 두고 교재를 기획하는 강의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프랑스어 교재는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나를 자세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국어를 잘 알고 있기에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전혀 모르는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접해보니 그 의미가 또 색달랐다. 발음기호 다음으로는 이런 식의 대화가 몇 개 나열되어 있었는데, 일상생활에서 쓰는 기본적인 문장들을 써두어 부담 없이 따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vous auss'를 발음할 때에 만화와 그 밑에 쓰여있는 발음이 달라서 [부 오씨]인지, [부 조씨]인지 생각하다가 그 옆에 'toi aussi'를 [투아 오씨[라고 하는 것을 보니 [부 오씨]가 맞겠구나. 했다. 특히나 배움에 있어서는 교재의 오타를 허용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뿐만이 아니라 자격증 기출문제에서도]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세밀하게 짚어내야 하지 않았나 했다. 별거 아니라고 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학습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어서 검수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를 테면,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만났다면 나는 what을 [왓]이 아니라 [홧]이라고 발음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 그렇게 발음하도록 변화가 되었을 뿐이지만, 우리나라 사례를 들자면 [설거지]를 더 이상 [설겆이]라고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 문법.은 한국어를 공부할 때도 제일 힘겨운 부분이고 영어를 공부할 때도 문법만큼은 참 어려웠는데 본격적으로 문법을 하게 되면 나 같은 사람은 금방 싫증을 낼 것 같아서 아직 쉽게 시작을 하지는 못했다. 우선은 발음이 좀 익고, 귀에도 좀 익을 때 즈음에 문법을 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 익힌 알파벳 발음을 프랑스어로 익히려니 그렇게 빨리 학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다만, 회화로 이렇게 쓰여있는 부분은 굉장히 열심히 따라 읽고 있다. 내 발음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CD를 들어보려고 하는데, 찾아보니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 것 같아서 찾아봐야겠다. 이 책은 20일이면 프랑스어의 기본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제대로 알지 않으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든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장기적으로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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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 2017-09-0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불어 공부 하려고 책 찾아보다가 한가지 말씀드릴게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부 조씨는 오타가 아니에요. vous aussi 할때 첫 단어가 자음으로 끝나고 뒤에 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모음이 오면 연음이 되서 saussi를 조씨로 발음하는 것이지요. 계속 공부하고 계시다면 지금쯤 아셨을거 같기도 한데, 언어는 정확히 공부하는것이 좋으니까요 ^^ 기우였다면 죄송해요..

하늘보리 2018-01-31 22: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이제야 보게 되었어요. ^_^
제가 저때는 처음 공부를 하는 것이어서, 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저렇게 끄적여놨네요. 하하. 타르코프스키 님께서 짚어주신 게 맞아요. 저도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고, 또 여전히 거의 모르는 상태이지만 이렇게 알려주시는 덕분에 저도 또 공ㅂ를 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