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붉은 사랑 -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그대가 있었다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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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시리게 찬 날이다. 나는 황망한 표정을 자주 지어 보였다. 어리둥절할 것도 없다. 으레 겨울만 되면 느껴왔던 헛헛함이었다. 헛헛함의 대상은 어떤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아니었고, ‘무엇’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왜’라는 부사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폭발처럼 치솟아 오르는 그런 겨울이다. 낡고 허물어질 것처럼 아스라이 놓인 내 표면의 거친 감촉을 어루만져 줄 것을 원했다. 나는 겨울에 먹이를 찾아 나선 눈 속에 폭폭 빠지는 사슴처럼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도서관을 더 열심히 들락거렸다. 내게 주어진 공부를 해야 하지만, 잠시 미루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어쩌면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의 시간에 대해 어리석다 말할지도 모를, 스치는 지금의 시간들을, 나는 귀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네댓 권 빌려온다. 어쩌면-이 아니라, 역시나 다 읽지 못할 책들이다. 또 욕심을 부렸다며 자괴를 느낀다. 하지만 이 책들 중에서 나와 인연인 책이 있다면 끝까지 읽어내리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는 눈에 넣는 그림이 아니라 심장에 넣어 입으로 토하는 음악’이라고, 그는 써두었다. 오래도록 그 문장을 오묘하게 바라보다가, 내가 詩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만다. 시를 써본 것도, 초등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고 싶은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어떤 용기가 솟았는지 손을 번쩍 들었을 때. 시를 써본 것은 단연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고등학생 때는 딱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를 쓸 일이 없었지만, 시를 외워야 하는 일은 참 많았다. 내가 외운 것이 그뿐이랴. 강제로 외운 것들은 마음속에 잉태되지 못하고 금세 휘발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강제로 읽었고 읽혔으며 외웠던 그 시들은 내 가슴속에 아직도 자리 잡아 나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은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박준 시인의 시를 필사하지만, 나는 그래도 시를 모른다. 내가 그 시를 알 리가 없다.

처음에는 조금 두꺼운 시집인 줄로만 알았다. 천천히 읽어봐야지,라며 도서관에서 집었던 게 화근이었다. 서문을 읽고, 곧바로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이 페이지만 몇 번이나 도돌이표처럼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자식을 두지 않았기에 자식으로서의 입장으로 이 글을 읽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 누구든, 엄마로서의 입장보다 자식으로서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내가 가장 오랫동안 시선을 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글을 읽으며 뭔가를 생각한다기보다, 그 글들을 하나씩 정성껏 눈으로 짚으며 자간 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오래,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책. ‘어머니의 편지’는 유튜브에서 <그토록 붉은 사랑>을 검색하면 낭독한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글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한동안 무거웠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

봄에 피는 꽃들에 대해 나열해놓은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가장 처음, 목련을 떠올렸다. 내가 삼 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목련을 통해 봄을 알 수가 있는데, 빨리 피지만 목련이 질 때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운 것이었다. 목련의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색이 갈색으로 변색되버리면, 아름다웠던 목련의 모습보다는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는 목련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다. 목련, 화사했으므로 추한 최후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을로 넘어가는 볕을 햇솜으로 지은 신혼 이불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어휘력이라든지, 배추와 무가 햇살의 젖꼭지를 빨아 대며 통통하게 살찌고 있습니다.라든지, 달걀노른자 같은 낮별,같은 표현은,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서 배워보고 싶은 필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이 좋았던 것은, 허투루 가벼운 글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쓴 글일지라 하더라도, 묵직한 울림이 있어 좋았다.

사랑은 생각해 보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와락 덤비는 것이다. 그냥 손잡고 입 맞추고 꼭 껴안고 거침없이 뒹구는 것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오돌토돌 돋아 오르는 것이 감각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였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와 당신이 가진 마음의 무게를 가늠하고, 재어보기도 하면서, 그것이 알맞게 채워지지 않았거나 채워질 수 없었을 때 삐지고 고개 홱 돌려 토라지며 내 마음 알아달라고 떼쓰는 게, 결코 사랑의 일부분이 아니었지. 내가 잠시 잊었었나 보다. 사랑을 하는 법을, 이렇게 다시 배워야지. 그리고 한 평생을, 그와 그렇게 살아야지.



그늘은 늘 오롯한 위안입니다. 그늘진 자리에 들면 비로소 잠시 내가 살을 비우고 나온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량한 것들과 숨이 멎을 것 같은 환한 고요가 젖은 눈을 열고 들어옵니다. 실상사 뒤란, 부도 밭의 여린 제비꽃들이 햇살로 짠 날개옷을 입고 팔랑거리고, 생리통을 앓는 배롱나무들이 지그시 하혈을 누르고 있습니다. 나는 양지에 펼쳐진 햇살이 페이지보다 그늘이 집필한 더 짙은 그늘의 산문을 읽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 가려면 체제에 무조건 순응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이 어디서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삶, 나의 행동도 존중받을 수 있다.



구월의 햇볕은 정숙한 여자처럼 다소곳하다. 나는 문득 햇살에게 경건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싶어진다. 수국 화분을 밖으로 꺼내 주근깨마냥 박힌 여름의 그늘을 잎에서 닦아 낸다. 서늘한 시간의 더듬이가 내 손등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여름의 무기력과 권태를 위태롭게 지나왔던가. 이 가벼운 구월의 스침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 때, 나는 사과 상자를 과적한 구름 트럭이 무게에 못 이겨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붉은 사과 궤짝들로 바다는 어지러웠고, 쏟아진 사과알에 맞은 물고기들의 등에는 푸른 멍이 번졌다.



사는 것은 왜 이리 간절해야만 하는 것이냐. 하필이면, 감상적인 날씨에게 물어보려 할 때 아랫 입술에 박힌 송곳니가 너무 깊어 핏물이 차오른다. 불량하고 음습한 어둠이 저만치 뒷걸음질 친다. 양아치 같은 십일월, 석류처럼 터지고 바스러진 마음의 붉은 졸개들.

열차가 섰다. 비가 내렸고, 비가 내렸고, 이른 단풍일 몇 장이 내렸고, 가을이 뒤따라 내렸다. 가을은 부서질 듯 야위어 있었다. 나는 시리고 아파서 눈을 감았다. 커다란 갈색 트렁크 밑바닥이 땅에 끌려 신음하는 소리가 났다. 어떤 가녀리고 가벼운 몸이 내게 육박해 왔다. 나는 바스라지게 가을의 허리를 껴안았다.

어떤 통증은 감염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대중가요 한 소절에 버텨온 일상이 무너지는 방심의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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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이 책을 참 좋게 읽었고, 내 책이었다면 밑줄을 좍좍 그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중도에 덮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유씨와 류씨는 서로 다른 성씨인데, 두음법칙으로 인해 류씨가 유씨와 같은 뿌리라고 하니, 류씨가 소송을 해서 대법원 판결이 났었다. 나씨와 라씨는 어떠한 연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예외로 두었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런데 다른 성씨에 대해서는 아직 나와있지 않았다.

그가 인스타를 하기에, 그에게 디엠을 보냈다. (1월 4일에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는 상태이다.)


안녕하세요. 현재 림태주 님의 책, <그토록 붉은 사랑>을 읽고 있습니다. 고독과 사색을 일삼게 되는 겨울에 읽으니 찬 공기도 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갖, 궁금한 점이 있어 이렇게 여쭙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두음법칙상 성씨 /림/이 /임/으로 변경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씨와 /류/씨는 소송으로 위헌 판결이 나 분리된 것으로 어렴풋 알고 있고요. 그런데 성씨 /림/으로 지내시는 건 어떠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줄 정도로 좋게 읽었지만, 나는 찝찝한 이 부분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이 책에 대한 어떠한 평도 내릴 수 없고, 내리기도 싫다. (뒷부분에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니, 림태주, 임태주가 같이 쓰여 있었는데, 그것도 어떠한 연유인지 궁금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이상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하기에 그만 쓴다.





<오탈자>

P.272

식탁에 꽃병이 놓이자 식구가 는 것처럼 천정의 불빛이 따뜻해졌다. ▶ 천장

<그토록 붉은 사랑>을 12개를 낭독한 걸 나는 다 읽어보았는데, 천정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천정이라고 읽더라.

천정은 북한어고, 천정은 천장의 잘못된 말입니다. 잘못된 건 고쳐서 읽어야지, 천정이 뭡니까...



천정2 (天井) [명사] <건설>
1. ‘천장2(2. 반자의 겉면)’(天障)의 잘못.

2. [북한어]‘천장2(2. 반자의 겉면)’의 북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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