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 하나하나 세세하게 표현해낸 걸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봐야 할 대상인 신윤복은 그렇게 세세하게 표현해 내주고 있지 않다. 왜 일까? 아마 드라마에서 신윤복이 문근영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좀 더 긴장감과 박진감을 가지고 신윤복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켜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주인공 캐스팅 때문에 '도대체 언제 밝혀지는거야.'라는 생각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다 밝혀짐에도 반전과 벅찬 감동따위는 일지 않았다. 드라마만 아니었다면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너의 그림에는 늘 여인들이 등장했고, 여인들은 웃고 울며 슬퍼하고 즐거워했다." 2권 p131 
또한 영복이라는 윤복의 형. 영복은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칭찬을 받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진실로, 진실로 아우가 위대한 화인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좋았다. 1권 p27 1권에서 잠깐 나오고 2권에선 모습조차 비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개그로 유행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것이 지금이 아닌 예전부터 그래왔구나 라는 사실을 더욱 각인시켜주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게다가 강수항과 서징의 의문의 죽음이 1권 초반에 김홍도가 벗의 죽음을 따라다니는 장면이 긴박하게 나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2권이 되서야 나오기 시작했는데, 만약 1,2권을 합쳐서 본다면 그 중간은 뚝 잘라먹고 앞부분과 마지막에만 언급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간에 한번쯤은 더 개입시킬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1권에서는 여러개의 사건들에 따라 인물들이 움직이지만 2권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에워싸인 느낌을 받은건 나뿐일까?
1권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2권이 되면서부터 그 인물들은 뚝뚝 잘라먹고 두 인물과 김조년에만 초점을 맞춘 것만 같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던 것 같다. 짧은 분량임에 불구하고 구태여 1,2권을 나누어서 출판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홍도 - 씨름                                                           ▲신윤복 - 쌍검대무
 
 
 
 
이 그림들은 중,고등 교과서에 많이 실리는 그림들이다. 이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대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김조년때문에 그린 그림들인데, 그 상황을 만든 김조년을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건만, 김조년이 아니었다면 이런 좋은 그림들을 우리가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그저 '둘 다 대결구도를 꾀했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김홍도의 씨름, 그리고 신윤복의 쌍검대무에서 누가 이길 것 같느냐는 질문에 난 둘 다 틀렸다. 맞는다고 하더라도 뚜렷한 근거가 없음과 그저 찍기의 실력이었으니 맞아도 맞은게 아닐터. 이 그림은 대결하고 있는 장본인들도 중요하지만 그 주변사람들의 행동까지 하나하나 관찰해야만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판정이 나오는 작품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한 가지의 그림마다 그것에 대해 그 그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가 놓쳤던 부분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다 알 수 있다. 그림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한다. 어떤 그림이든지간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그림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림의 참 의미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반전에 상관없이 그림에 초점을 두고 알고싶다면 주저말고 책을 펴 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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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惡喪(악상) :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
 

 

우리가 별 의미없이 살아가는 오늘이 그들에게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고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가. 책의 뒷편엔 "사는 의미를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받는 무균병동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라고 적혀있다. 나는 가끔 맛있는 것을 먹고, 어딘가를 여행하고, 재미있는 것을 보다가도.. 어차피 이런 것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다 부질없는 것들 아닌가..하는 못된 생각이 불쑥불쑥 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참 꼴사납게 느껴졌다. 세상에는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병마와 싸우는 사람이 참 많은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사는 나를 단박에 일깨워주기 위한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김효선이 자신과 딸인 윤서연의 힘겨웠던 투병기를 그려내었다. 처음에 실화인 줄은 모르고 그저 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슬픔을 꾹꾹 눌러참고 있다가 마지막 서연이 마지막 갈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울컥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처음엔 서연의 고통을 나에게까지 전달시키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백혈병인걸 알게 되고 입원했을 때 늦지 않았으면 치료하면 되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좀 더 읽다가 이식받고 사는 도중에 몇개월 되지않아 재발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책을 잠깐 덮었었다.

그 때, 표지에 쓰여있던 글.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그 글을 보고 '아.. 희망을 가질 수도 없구나..' 라는 생각에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책을 그대로 쥐고 있어도 되는지, 잠시 멈춰야 하는지.. 요즘 한창 슬럼프인 내가 서연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기에 잠시 덮어뒀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몇일 후 다시 책을 집어들고 다 읽었을 때, 서연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미어져 내린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보다.

 

끝도 없는 투쟁 속에 그들은 얼마나 말도 못하게 고통스러울지.. 그 투쟁과 고통이 결합된 순간순간을 읽는 나도 이렇게 숨이 막힐 듯이 아파오는데 그걸 보는 부모 심정은 오죽하랴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제방을 세워 흘러가는 물줄기를 틀어막고 싶었다. (P153) 라고 저자는 엄마의 마음으로서 시간을 지체시켜서 맞는 골수를 찾아야 것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들을 간절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숨가쁘게 써내려가고 있다.

 

"엄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쟤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왜 나만 이래야 해."(P248) 서연이가 첫번째 재발에 이어 두번째 재발이 다가왔고, 가발은 다 나을 때 까지 절대 사지않겠다던 결심이 허물어지고 가발을 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통증을 호소할 때, 깔깔대며 지나가는 여대생들을 보며 하는 말이다. 서연이도 그런 삶을 꿈꿔왔을텐데.. 여느 여대생들처럼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삶..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누구보다 예쁜 여대생으로 살고 있을 서연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미소짓게 된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읽었던 '가시고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혈병이란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해준 무서운 책. 백혈병에 걸린 9살 다움이. 그리고 그런 다움이를 지켜만 봐야하는 아빠. 중간에 재발때문에 죽을 고비도 맞고, 결국은 수술조차 포기하고 병원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며 떠나지만 결국엔 다시 병원신세를 지고 마는.. 그러다 운좋게 이식해준다는 사람이 나타나 다움은 이식을 받게 되고 자식을 살려놓고 자신은 죽어가는 가시고기인생. 차라리 이렇게 다움이처럼 이식수술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식을 받고 잘 산다는 그런 이야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꿈꿨는지 모른다. 정말 차라리 그랬더라면... 또한, 2009년 신종플루로 온 국민이 숨막혀하던 그 때, 자식을 잃은 탤런트 이광기씨를 보며 마음이 얼마나 애잔하게 아팠던지.. 그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절로 눈물방울 짓게 만드는...


 

이 책의 단 한가지 흠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김효선 작가는 특정한 종교가 있었기에 그 곳에 많은 의지를 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그 종교가 아니거나 거부감이 있다면 조금은 신경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찬송가의 가사가 그대로 실려오고, 기도하는 부분이 나올 때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조금만 억제를 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김효선 작가는 많은 독자가 읽기를 바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단 “딸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다는 오직 딸과의 이 생에서 보낸 마지막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으리라. 이 책을 쓰기까지 셀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 쓴 글일 것이며, 시도때도 없이 서연이 생각에 숨도 쉬지 못하고 울었을 엄마 김효선을 생각하니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서 좀체 떨어지질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슴에도 서연이라는 천사가 존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않는다.


자식은 부모와는 전혀 다른 영혼인 것 같아.  수억의 광년을 뚫고 빛나는 햇살로 우리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어디론가 향해 자신의 길을 떠나는 존재 같은 것. (P147)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위로란 많은 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외로운 조각배에 돛대 하나 달아주는 일.  그것은 어떤 거찰한 설교도 유난스런 행위도 아니다. 그저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관심. 네 두려움과 고통을 알고 있으며 잊지 않고 함께 기도해주겠다는 그 마음을 상대에게 알리는 일이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족했다. 때때로 작은 위로를 받고 베푸는 일조차 우리는 얼마나 서투른지. (P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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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잇 스타일 인테리어 - 빈티지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영국식 인테리어
니코 웍스.이가타 게이코 지음, 나지윤 옮김 / 나무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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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꾸미기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다 자신만의 집을 꿈꾼다. 여기서 자신의 집이란 말 그대로 자신이 산 집을 뜻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인테리어한 집이라는게 이 책을 설명하기에 적합할 것 같다.
 

 

각기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 듯 개개인의 취향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에게도 색깔이 있고 성격이 있듯이 집에도 그만의 색깔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갈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우리 눈에 보이는건 항상 똑같은 고층 아파트뿐이어서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친척집, 친구집에 놀러갈 때면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집 구조나 가구들에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만다. 그렇다고 우리집이라고 뭐 다른가? 또 그렇지도 않다. 이 책에는 각기 다른 집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집들은 각기 다른 매력들을 뽐내기 바쁘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익숙해져버린 습관때문일까? 예쁘고 스타일리쉬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보는 내내 눈이 너무 어지러웠다. 마음에 드는 그런 집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심플함을 꿈꾸는 내게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집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림에 비해 인테리어 설명이 조금 부족했다고 해야할까? 그저 술렁술렁 잡지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런던이라고 해서 잘 알려진 사람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꾸민 집들도 소개받고 싶었는데,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만 그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보는 인테리어들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아 이런 것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건축쪽 일을 하고 있고, 도면을 수정하는 작업도 하고 포토샵으로 바닥재를 까는 작업도 한다. 그 작업들은 그 집과 얼마만큼 조화롭게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축을 할 때 설계자의 생각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 집에서 거주할 사람의 취향이다. 설계자의 생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주자의 생각보다 우선시되는 것 없다고 봐야 한다. 몇일 전엔 일을 하다가 한 예술가가 사놓은 땅에 집을 지을거라며 설계를 부탁해 온 일이 있었다. 그 예술가는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직접 손으로 그려와서 처음엔 쉬울 것으로만 생각했던 작업이 원하지 않는 방향과 흘러가자 계약파기라는 얘기까지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처음부터 그런 집을 꿈꿔왔고 가구배치까지 다 생각해 놓은 상태였는데, 평수에 따라 이리 깎이고 저리 깎이고 원하지 않았던 곳들은 늘리게 되버리고 둥그스름했던 모양이 각지게 되고... 그 집에서 살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보면서 표나지 않는 곳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워야할까 싶었다. 그래도 완강히 고집을 피우는 덕에 우리쪽이 조금 손해를 볼 지언정 우리가 공사를 맡지 않으면 그쪽은 어차피 다른 쪽에 공사를 맡기게 되어있기 때문에 서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은 우리가 그쪽의 타협점에 맞추기로 하고 공사를 진행했던 일이 언뜻 생각났다. 이 책을 보고 각기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은 '아 그 사람은 그럴 권리가 당연하게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집을 자기의 취향대로 꾸미길 원했고 우리가 그 비례에 맞게 해주길 원했던 것이었으리라. 나중에 그 사람은 장난식으로 자기가 돈을 벌어 자기가 사는거니 자기의 취향대로 인테리어하겠다고 했었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좀 친해지면 집구경이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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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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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자 수니파의 파쉬툰인인 아미르와 아미르의 집 하인이자 시아파의 하자라인인 하산.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그들은 그래서인진 몰라도 형제애와 같을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압적인 상하관계의 끈을 놓지않으며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된다. 그런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는 연 대회에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연을 쫓는 것에 대핸 탁월한 재주가 있는 하산이 늦도록 오지를 않자 아미르는 찾아다니게 되고 무언가를 목격하게 된다. 아미르는 그 상황에서 도망칠 것이냐 남을 것이냐를 택해야하는 중요한 순간과 마딱드리게 된다. 결단을 내릴 단 한번의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단 한번의 최종적인 기회였다.(p120) 난 아미르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면서 읽었는데 책 중간중간마다 아미르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어서 상상하며 읽기엔 역부족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미르가 미국에 가게 되기 전에 아마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내렸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라는 말을 한 하산.. 하지만 아미르는 자신에게 그런 충성심을 바치던 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하산에 의해 다시 손잡을 기회가 분명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르는 먼저 내치게 된다. 만약 아미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고 내 옆에 있었다면 머리통을 백대를 때려도 시원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미르는 어린 아이였고,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미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나와 바바 사이를 조금 호전시켜주는 존재는 연이었다. 바바와 나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다른 존재영역 속에 살았다. 그 영역 사이의 종잇장만큼 얇은 교차점이 바로 연이었다.(p78) 라는 구절이 생각나면서 아미르의 내면 깊은 그 곳에는 어린 아이어서 무서운 것보다는 하산이 쫓아서 가지고 온 그 연으로 해서 아버지인 바바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다는게 보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배짱 두둑하게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만약 하산이라면 두 손 두 발 벗고 나섰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래, 하산이라면 분명히 그리 했을 것이다. 연을 넘겨줌으로 해서 자신은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미르때문에 그 연을 결코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미르 도련님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저는 도련님을 위해 이 연을 쫓아가 잡았어요. 공정하게 달려가서 잡은 겁니다. 이것은 도련님 연이에요.(p113)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p32) 아미르의 아버지인 바바는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 단 한가지를 숨기고 그것을 영원히 펼치지 않고 그대로 재가 되버린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바바는 자신이 저리 말해놓고 어찌 뻔뻔스럽게 그런 행세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바바는 하산과 내게 각각 똑같이 생긴 연과 유리가루 연줄 실패를 세 개씩 사주었다. 내가 마음을 바꿔서 더 크고 화려한 연을 원하면 바바는 그것을 사주곤 했다, 내가 마음을 바꿔서 더 화려한 연을 원하면 바바는 그것을 사주곤 했다.그러나 하산에게도 똑같은 것을 사줬다. 때로는 바바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p80) 하지만 이렇게 알게 모르게 복선이 깔려있었다는 사실. 왜 읽으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인가.

 

 
자신을 위해 천 번이라고 그렇게 해준다는 하산은 이제 없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p556) 라며 대신 그는 하산의 아들 소랍에게 같은 말을 해주며, 자신의 어리석었던 유년기를 반성하게 되고, 그 날의 죄책감들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책을 읽고나면 여운이 지독하리만큼 길다. 다른 책에는 손이 안갈 정도로. 이 책으로 인해 내 유년기 또한 되돌아보며 내 어린 날의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깊이 반성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누구나 읽으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책이다.
 

아프가니스탄. 그 나라에 대해 떠올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탈레반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을 다 같은 종족이라 취급했던 내가 너무도 어리석게만 느껴졌고, 그에 아직도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할 진데,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에 너무 안타까워서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가 맺혔다.
 

 

 

 

 나는 달렸다. 고함을 질러대는 아이들 무리와 함게 다 큰 어른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판즈세르 계곡만큼이나 활짜 미소를 지으며 달렸다.  

그렇게 나는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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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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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p249

 




 '나'의 손을 거쳐 그들의 삶이 써내려진다. 
'나'는 반지하에서 다른 사람의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대신 써주는 누구에게도 '난 작가에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없는 대필작가다. 그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항상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했던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내가 지금은 곁에 없다.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막걸리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그는 남이 보기엔 그저 그런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그 무료한 삶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어귀에서 혼자 술을 먹게 되는데, '장자익'이라는 남자가 끼어들어 그 남자는 자신의 삶을 대필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 펴낸 이는 '나'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있다. 그러다가 그 남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돈은 받은게 있으니 그 남자의 삶을 써주어야 하는데, 그 남자의 삶을 설명해줄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오직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써보려고 한다. 이제부터 '나'의 외로움이 읽는 독자들을 향해 물밀듯이 덮쳐올 것이다. 

 

 

그의 삶을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대며 읽어내려가면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똑같은 일상에 답답해했고, 뭔가 새로운 일을 꾀하지 않는 저자도 답답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누구의 삶을 불쌍하게, 안타깝게 여길 수 있을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또한 아닌데... 그래도 난 그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와의 <소통>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적어도 소설 속의 '나'가 아내와의 사별에 대한 가슴 미어질 듯한 슬픔과 아픔을 조금은 덜어줄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아내는 어느 병명으로 그를 쓸쓸한 세상에 혼자 두고 그 먼 길을 떠나야만 했는지 나와있지 않아서 그 심각성이 피부에 미처 와닿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졌다. 그러나 아내의 죽음까지 허공으로 흩어진 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경고음은 짧았고 죽음까지는 너무 빨라서 읽는 내가 호흡을 내쉴 수 있을만큼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죽음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에 대해 '어떻게 몇년 동안 함께 한 아내가 죽었는데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 역시 소설은 소설인가' 라고 생각하며 무신경하다고 생각했고, 원망했다. 그러나 소설 곳곳에 나와있는 흔적들은 내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다. 마음은 스른데 쓸슬하지는 않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 거리. 바람도, 가로수도, 불 거진 창들도, 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슬하지 않다.(p191) 아내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을 혼자 걸으며 울면서 가는 '나'를 생각하고 있자니 한숨이 푹 나올만큼의 가슴저림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인이는 왜 그런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을지 아직도 의아하다. 조금은 더 설득력있는 문장을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태인이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찬 죽음을 보면서 불과 1년 전 함께 했던 우리집 강아지가 생각났다. 난 동물이라곤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아빠와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키웠었는데, 그 땐 미처 몰랐었는데 10년을 넘게 함께 생활해 왔다. 난 그 시간동안 그 강아지를 좋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항상 걸리적거리고 귀찮은 존재라고만 생각해왔다. 그 강아지에게 '밥 줘라, 물 줘라' 하는데 내가 밥 주고 물 줄 때마다 자신은 왕인 척 날 한번 쏘아보고 태평하게 드러누워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자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도 들었고, 나만 보면 짖는 그 못된 강아지에게 내가 왜 이런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을 함께 병행하면서까지 키워야하는지 항상 '어디라도 좋으니 좀 보내버리라고' 했었다. 그러다 나에게 취약한 것 중 하나가 강아지 털이라는 걸 알고부터 그 강아지는 이제 우리 집에 없다. 10년이 넘도록 주인인 내가 집에 와도 짖어대던 그 못된 강아지가 없음에 편할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를 허전함에 휩싸였다. 길에서 스친 사람한테도 정이 가는 법인데,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강아지는 오죽하겠느냐만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왜 항상 그렇게 못되게만 굴었는지, 따뜻한 미소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게 뭐가 어렵고 돈드는 일이라고 한번 해주지 못한건지... 난 여전히 동물은 죄다 싫어한다. 그러나 항상 내 동생 역할을 했던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또순이'는 제외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적응한다.(p150) 고 난 벌써 그 10년이란 세월을 잊고 지금 생활에 적응해 버렸나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아이와 비슷한 짖는 소리가 나면 한번씩 꼭 쳐다보게 되는 걸 보니 그립긴 그리운가 보다.

 

 

불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가도 왜 가지? 어디로 가지? 하고 되묻고 나면 금세 시들해진다. 목적이 없는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마음 뿐, 목적이 없는 길은 떠나게 되지 않았다.(p212)라는 구절을 보며 나 역시 항상 '떠나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지만, 목적이 없는 길은 떠나지 않는다. 반드시 계획이 갖추어지고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그 길을 떠날 수 있는 나다. 목적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건 아닐진데... 평생동안 몇번은 그런 여행.. 정말 해보고 싶다.

 

 

소설 속의 '나'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그 삶을 엿보고 있는 나의 삶도 함께 병행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그 흔한 기승전결도 없고 반전 또한 없다. 그래서 무슨 재미를 느끼나 싶었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에 외로움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외로움이 보태져서 저자 임영태의 밥벌이인 이 책이 나에겐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책을 다 덮고서도 그 외로움의 향기가 방 안에 잔잔하게 남아있어서 나에게까지 그 외로움이 전이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길을 걸을 때 혹여나 지금도 소설 속의 '나'가 거리를 걸으며 울고 있을까봐 뒤를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오롯이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각자의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날 힘이 있는데 '나'는 그걸을 잊기위함이 아닌 온 몸을 다해 느끼고 그것을 감당해 내었다.

 

 

 

 

 

 

우울증이 있는 살마은 햇빛을 많이 보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은 아주 단순한 사물도 찬란하게 만든다.
깊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도 저 찬란한 빛이 자기 몸에 쏟아지면 생각할 것이다.
햇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란 살아볼만한 것이다. -p219



 

한 사람을 온전히 만나면 거기에 다른 이들도 보인다.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산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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