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산다는 것 -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관계로부터 담담하게
이모겐 로이드 웨버 지음, 김미정.김지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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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나를 찾기 위한 책을 많이 읽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전에 읽었던 <팬이야>가 그랬고, 지금 서평을 쓰는 <나를 위해 산다는 것>도 그런 류이다. 예쁜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는 이 책의 표지와 커다란 제목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가 지금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관공서를 위주로 계약 체결을 하지만 오래되지 않은 , 아직 병아리 삐약삐약일 뿐인 회사는 전국에 있는 시·도교육청, 학교의 비위를 살살 달래어가며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owner부터 시작하여 업무를 짊어진 모든 이들의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그것이 하늘을 찔러 올해는 유난히 해가 분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누구 하나 빈둥빈둥 노는 이가 없고, 머리카락을 쭈뼛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적에 그 속에서 제외되는 나는 도면이나 패턴도 따위를 그려내며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실컷 쐬며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윗분들의 스트레스가 나에게 화살로 꽂히지 않게 하기 위해 정도껏 눈치를 봐야하는 스트레스를 만만치않게 받고 있고, 또한 그래서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받기에 앞서 맏딸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자칫 허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의젓함을 가장한 삶을 살던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 그리 오래가진 못할테지만 잠시뿐이라 하더라도 - 오롯하게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마디로 - 매우 -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싱글녀들을 위해 차린 만찬이라고 해도 전혀 부족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 남자, 친구, 스위트홈, 가족, 외출, 건강'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무엇하나도 빠지면 안될 필수불가결한 조건들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것들을 하나의 보따리에 집어넣어놓고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것에 관한 이론을 펼치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 그나마 마음에 와닿는게 있었다면 단연 일이었다. 우리는 항상 직장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 페이가 작다던가, 일이 힘들다거나, 직장상사가 못되게 군다거나, 하다못해 출근시간이 너무 이르다거나, 퇴근시간이 너무 늦다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문제점을 찾기에 바쁘고 그것에 불만을 품지만 딱히 어떠한 해결방안도 찾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그것들은 점점 모아져 알 수 없는 스트레스로 변질되어 최악의 경우 다니던 직장을 관두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일을 시작할 때의 패기와는 달리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님을 깨닫고는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기에 어떠한 만족따위는 얻을 수 없는 남들과 같은 틀에 박혀 출근해서 일하다가 시간되면 퇴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만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저자는 임시방편의 직장이라도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는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글쎄. 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낫다. (p23) 는 문장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 역시도 원하는 일이 아니지만 당분간 내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음으로 해서 스트레스는 많이 받고는 있지만 한켠으로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말고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자. (p28) 낯이 많이 익은 이 문장을 나는 안은영 작가의 여자공감에서 이미 접했던 이력이 있다. 그 때 그 한줄의 짤막한 문장은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프레임에 빠져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었는데, 그것도 책을 읽는 그때 뿐이었고, 다시 이 문장을 곱씹게 되었을 땐 마치 내 마음에 꼭 와닿는 문장을 찾았다는 희열에 가득찼고, 점점 이 책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게 왠걸. 내가 도대체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무엇을 얻고자 끝페이지까지 도달해야하는가 하는 짜증이 솟구쳐왔다.

 

 

 

물론 섹스는 연인 사이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싱글녀다. 당신이 철이 여인이 아닌 이상 우리는 가끔 우발적 섹스를 한다. 남자들은 원나이트스탠드를 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들은 우발적 섹스를 한다. (중략) 우발적 섹스를 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들볶지도, 죄책감을 갖지도 말자. 우리는 즐겼다. 그때 그것을 원했다. 그랬으면 됐다.(p121) 내가 이 문장을 오롯이 순수하게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싱글녀가 아니어서 그런가? 하는 막연한 의구심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이해하기에 힘든 부분이 아닐까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인터넷상에서 비슷한 글 - 예를 들면, 술먹고 누구랑 잤어요. 하는 등의 - 글이 올라오면 자신의 육체적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조금 격하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못하고 홀대하는 미친년이라고 욕하기도 하고 그 글에 달려있는 댓글들 또한 모두 악플로 가득 차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몸에 무성히 있는 털들에 대한 제모를 거리낌없이 부탁할 수 있는 수 있는 정도의 게이친구가 있고, 싱글이란 시기는 책임감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기다. (p173) 라는 말을 하며 싱글녀이기에 아이의 신발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 돈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다른 무언가를 투자할 수 있다는 경제적 여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 문화권 자체가 다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 저자를 이해하기란 나에게 좀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통해 나를 찾기는커녕 이 책을 읽는 동안 째깍째깍 잘도 지나가던 시간들을 다시 돌려놓고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책을 읽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며 시간을 허비한 듯한 애석함이 뚫고 지나갔다. 아직 내가 20대 초반이라는 초원을 달리고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몇 년이 좀 더 지나고 먼 훗날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그 땐 조금 더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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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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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이 숨겨왔던 재능을 펼치고 있어 이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읽을 때면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기가 일쑤였고, 그로 인한 파장은 언제나 짜증으로 치솟았기에 '더 이상은 읽지 않을거야!' 라고 외치며, 그를 정화하기 위해 그보다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중년 작가들의 작품만을 선호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내 품에 들어온 전아리 작가의 <팬이야>를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눈 감고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나중에 늦지 않게 읽어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책장 한 쪽에 밀어넣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차근차근 시작했는데, 컨디션이 말짱 꽝인 상태에서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 수 없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전아리의 팬이야를 들고 표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익살스러운 일러스트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표지를 넘겼다. 책 날개에 작가의 사진과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문장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사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작가 소개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는 작가가 1986년생이라는 숫자에 이끌려 소개란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력을 주욱 늘어놓고는 그녀의 문학에 관해 짤막한 호평을 써놓았다. 하지만 그 작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 문장들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어주리라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다.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로비를 가로지르며 "잠깐만요!" 로 시작되는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이 책의 여주인공은 이렇다 할 꿈도 목표도 없다. 남들처럼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딱히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도 찾지 못했다. 자주 만나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도 없다. 그리고 이제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사랑마저 끝이 났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걸까. 이제껏 삶을 뒤집어엎을 만한 어떠한 모험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라고 둘러대곤 했찌만 스물아홉이 된 지금에 와서 두 손을 들여다보니 딱히 잃을 만한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모험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에는 열정의 증거가 없었다. (p29) 라는 문장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스물아홉 살 계약직 회사원 정운이다. 어느 날 '뚱뚱한 지석철 부장'의 줄임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뚱뚱한 게 지랄도 하네'라는 줄임말인 '뚱지 부장'에게 불려가 해고를 당하는 꿈을 꿀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정직원이 될 수 있을거란 일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사귀던 남자 동주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엔 미련없이 헤어지고, 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큰언니가 집에 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정운은 잔소리를 듣지않기 위해 텅빈 냉장고를 채울 것을 마련해주고, 새로운 변기 커버가 있는 마트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서 PR행사때 받은 뒤 적당한 사람에게 주려고 줄곧 들고 다닌 CD에 적혀있던 'S1001'이라는 시리얼 넘버로 인해 우연치않게 '시리우스'라는 아이돌의 포옹을 받게 되고, 그들의 팬이 된다. (중략)

 

 

 

이미 몇 권의 작품집을 낸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그간 읽었던 책들엔 훨씬 못 미칠지언정 나름대로의 구색들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는 중년 작가들을 따라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애초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명언과 같은 무리수였고, 한낱 독자의 이기심이었음을 간파했다. 그걸 감안하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초점이었던 '자아찾기'가 중간중간 빈틈을 보이는 것에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아찾기'를 과감하게 - 어떤 가수나 배우에 꽂혀 콘서트를 간다거나 시사회를 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므로 내 입장에서 보기엔 충분히 과감했다 말할 수 있었다 - 감행하면서도 그를 뒷받침해주는 혹은 그에 따른 결말인 로맨스가 쓸데없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자아찾기'에 대한 관찰은 guest가 된 것이 마이너스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 작가는 자아찾기보다 로맨스를 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 그저그런 로맨스소설을 쓰고자 했었더라면 난 아마 최악의 경우 이 책을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 또한 익살스러운 표지만큼이나 유쾌한 로맨스를 꾸려가길 바랬던 것과는 달리, 관찰자 입장도 아닌 1인칭 관점에서 끌어나가는 이야기임에도 여주인공의 감정처리같은 경우엔 오목조목한 세심함이 아쉬웠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넉넉하지 못한 아량을 베풀며 답답하리만큼 끄집어내주지 못했던 점 또한 아쉬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왠지 답답한 드라마 한 편과 인터넷 소설을 혼합하여 보는 기분이었달까.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도 없었고, 로맨스에서 당연히 만끽해야할 두근거림조차 내 녹녹하지 못한 심장은 내비치지 못했기에 개인적인 짧은 소견으로 소설책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할 1원칙이라 생각되는 재미조차 추구하지 못했고, 흡입력이 강하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냥 책장이 넘어가는 기분. 그저 아무런 사건없이 유 - 하게 흘러가는 우리들의 사랑이야기가 책 속에 녹아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요즘같이 짜증이 치솟는 요즘에 읽은 것이기에 한층 더 감정적인 서평을 읽으며 심지어 한 단어 선택조차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정성스레 한 문장을 완성시켜 내 놓은 작가에게 미안함이 그지없다. 애초에 심난한 마음을 유쾌함이라는 가면으로 숨기기 위해 익살스러운 표지가 그려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들은 내 잘못인 것이다. "변화라는 게 그렇잖아. 기존의 자기를 깨부수고, 당당하게 상처받고, 남은 파편들을 치우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걸 세우는 거 아니겠어?" (p177) 저자가 책 속에 써넣은 변화에 대한 정의가 그녀에게도 가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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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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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그 모티브에서 얻은 것이다. 라고 작가 소개란의 끝에 쓰여있다. 우리는 처음 책을 집어들면 표지부터 보게 된다. 표지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혹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표지때문에 더욱 끌렸던 책이었지싶다. 책의 표지에 있는 저들 각각의 모습은 유령처럼 다들 흐릿흐릿한 모습뿐인지라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등을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책을 눈앞으로 끌어당겨 보아야 하지만, 가운데에 유독 못생긴 여자 난쟁이에게만큼은 관대하게 스포트라이트까지 비추고 있는 것을 우리는 깊이 관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 왜 박민규는 어째서 소재가 될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보잘 것 없어보이는 캐릭터로 글을 써내려갔을지 궁금해하며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한 장 , 한 장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중간중간 말꼬리를 잘라먹기에 충분한 term을 가지고 있기에 읽으며 도무지 집중을 하려 애를 써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기차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던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기차에 몸을 맡기고 될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며 읽고 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박민규 작가가 써놓은 그 글을 따라 호흡을 내뱉으며 문장들을 음미하며 읽고 있는 나를 깨달았다. 이 책은 사회적측면을 독자에게 빠르고 부담스럽게 안기기 보다는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연애소설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외모 지상주의'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저자는 여주인공에게 이름조차 쥐어주지 않았음에 (물론 내가 찾지 못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난 그 여주인공을 '못생긴 여자'라 칭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못생긴 여자'가 배우를 할 정도의 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둔 '잘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편지를 읽다보면 아래의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중략) 저같은 여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고통을 이길 수 없는... 결국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마음 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피... 흥건히 세상을 적시던 마음의 출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발밑을 뒹구는 저 얼굴을 이제 누가 찌르고 찬다 해도 아프지 않을 거야... 그렇게 봉합을 끝내고 몸통만 남은 마음으로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택한 진통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여자를... 도대체 누가 사랑해 줄 수 있겠어요. (중략) (p274)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의 뇌는 엄청난 진동으로 인한 여파로 현기증을 남겼고, 그 후 몇분간은 몽롱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못났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에 바쁘지는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가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저 사람보단 내가, 저 사람보다도 내가' (...) 라며 자신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구제시켜주기도 한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우리는 그들을 또 나를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외모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그때는 또 방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내 항문의 주름은 왜 정확한 쌍방 대칭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머릴 쥐어뜯는게 인간이라구. 신이여, 당신은 왜 나에게 좌우비대칭 소음순을 주신 건가요... 당신은 왜 나에게 짝부랄을 달아준 건가요 따지고 드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多數結)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p174)

 

 

 

나는 아주 미안하게도 박민규 작가의 의도와 벗어나서 - 벗어났는지 아닌지 요한의 말을 보면 아리송할 때가 많다 - 사회 속의 외모 지상주의를 탓하고 싶진 않다. 저자가 만들어놓은 '못생긴 여자' 그 여자의 못난 생각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문제점부터 찾아야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문제점으로만 치부해버리기에는 현실은 가혹하게도 외모 지상주의가 남발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란 참 많은 힘듦을 나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머리스타일부터 발사이즈까지 맞추려면 인형이 아니고는 탄생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정해놓은 - 아무리 동화같다 해도 자칫하면 깨질지도 모르는 그런 - 스노우볼에서만 살 작정인가?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 안에서 매력적인 면을 찾아 그것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말한다. 자신은 그러면 되는 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하면 얼마나 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겨우 몇 장의 편지에서조차 말투에서부터 자신감 부족이 뚝뚝 묻어져나오는 글을 읽으며 여주인공이 앞에 있는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고 좁히고 끝까지 좁혀서 혀를 끌끌 차는 둥 한심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저런 여자가 있다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얼굴이 못생겨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사랑이 매말라서. '못생긴 여자'는 다행스럽게도 편지의 끝에서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p289) 아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타인을 감싸줄 수 있는거야. 라고 귓가에 나긋나긋하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땐 새벽에 잠도 못자고 축구를 봤는데 골 결정력이 아쉬워서 동점으로 비겼을 때와 같은 비스무리한 탄식이 터져나왔다. 왠지 자꾸만 뭔가가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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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여섯 남녀가 북유럽에 갔다 -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 남녀의 북유럽 캠핑카 여행기
배재문 글 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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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라는 사람은 워낙 낯가림이 심한터라 낯선 사람을 대할 땐 그 사람이 난색을 표할 정도로 경계를 할 때도 있기에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는 '낯선 사람과의 여행'이라는 소재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연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기에 지인들과 여행할 때보다 무조건 자주 갈등을 빚게 될까? 여기서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만 제외한다면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적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일행들과의 어색함을 가장한 불편함이 뜻밖에도 안전장치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편함은 곧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고, 그 때문에 서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게 만들기도 한다. (p9) 그는 그럴 듯한 이유로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 이거 좀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책 소개를 살펴보던 중  유독 내 시선이 머무르던 건 낯선 여섯 남녀가 함께 떠난 북유럽 캠핑카 여행기!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건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박은경 작가의 미안해 쿠온, 엄마 아빠는 히피야! 에서 만나고 왔던 터라 설레임이 몽글몽글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인원 _ 4명~6명(남녀 비율 5:5) · 여행기간 _ 30일~45일 · 출발일 _ 빠르면 7월 20일 이후 · 여행지 _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라는 글로서 인터넷에 공지를 했고,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해주실 분,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신 분, 운전· 특히 수동 변속기 차량 운전 가능하신 분,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주체가 안 되시는 분, 그 어떤 것보다도 다른  일행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주실 수 있는 분 이라는 기본 명제 하에 사람들을 선정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선착순으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기에 문제는 터지기 마련인가보다. 일정이 맞지 않아 갈 수 없는 사람이 생기고, 다시 두 명의 사람들을 다시 모집하게 되고 가까스로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들.

 

 

 

 

'덴마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안데르센,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안데르센 박물관'엘 그들이 갔다. 하지만 개폐하기 10분 전에 가서 그만큼 볼거리가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진이 마음에 쏙 들 만큼 많지도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다. N양의 노트에 주소, 휴무, 입장료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어서 나중에 갈 기회가 있다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다. 매우 부끄럽게도 1유로, 1크로네, 1크로나가 얼마인지 몰랐던 나는 책을 읽던 때의 시세를 인터넷에서 찾아 수첩에 적어놓고, 계산을 하며 읽어내려가던 도중,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가려면 외레순 대교를 건너야해서 건넜는데 덴마크에선 고속도로 통행료를 일체 지불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790크로네 (13만원)라는 것을 보며 살인적인 물가를 경험했다. 겨우겨우[?] 넘어간 '스웨덴'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18세기 스웨덴의 낭만 시골이라 불리는 '프레드릭스달'이다.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어보는데 그저 사진을 볼 뿐임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곳에 몸도 마음도 지친 현대인들의 휴양지로 딱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사진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세번째 여행지였던 '핀란드'에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곳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산타클로스 마을'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할 그 공간이 상업성을 띄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는 그의 평은 나조차도 조금은 불만이었다. 산타클로스 오피스에서 산타클로스와 사진을 찍는 건 무료지만 그 사진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25유로 (38,659원)라는 돈을 내야하는 것이다. 당연히 개인의 카메라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사진을 간직하고 싶으면 그에 마땅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들 앞에서 돈을 꺼내 드는 모습만은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마지막 여행지인 '노르웨이'는 저자가 여행한 곳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 단연 돋보였던 건 '덴 감레 비'라는 곳이었는데, 하나같이 분위기있는 사진들은 내 눈길을 머무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서 첫번째는 아무래도 매끄럽지 못한 여행 경로가 아니었나 싶다. 조금 더 있을 것만 같은데 벌써 핀란드고 벌써 노르웨이라니, 길지 않은 시간에 여행을 다녀온 건 알고 있지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그 나라의 문화를 알기보다는 그들의 에피소드에 너무 치중되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제목 역시 그들 위주로 돌아가는 듯 했고, 그들의 여행보다는 한 사람을 지목하여 소개하는 등의 친목모임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도 자꾸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겼다는 생각에 괜찮은 여행서적 한 권을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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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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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리는 비에 하던 공사마저 멈춘 오늘, 서평을 쓸까하고 폼잡고 앉아서 공책을 펴놓고 끄적끄적. 연필이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는 오전 내내 공사일정때문에 곤두서있던 머리카락과 엉키고 설켰던 마음들이 이내 사르르 가라앉으며 녹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래,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말고 서평을 쓰자 다짐했다. 사각사각사각... . 자꾸만 그 소리가 좋아서 싱글생글 웃으며 MR을 틀어놓고 서평을 써내려갔다. 그 때 들리는 곡은 'July - 바람에 쓰는 편지' 그리고 몇 분이 흘렀을까. 노래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사각사각대는 소리마저 내 귀를 떠나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서평을 쓰려는데 이유모를 눈물이 흘렀다. 뭐지, 왜 이러지. 라는 생각에 한참동안 멍하니 꺼진 모니터에 비치는 나를 보며 되물었다. 너, 왜, 그래? 그 때 마침 들려온 곡은 '이루마 - If I could see you again' 만일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곡은 애린이를 내 앞에 데려다놓았고, 어느 새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을 읽으며 희재언니의 모습에서 애린이를 보았기 때문에 <외딴방>이라는 어두침침한 그 곳에 애정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이 책의 느낌은 딱, 이애린 그 자체였고, 그 속에서 허우덕대며 방황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로 시작된 이 책은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된 것 같다. 로 마무리하며 이 글의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의아함을 만들어낸다. 나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으며 이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작품을 씀으로 인해 그녀의 외딴방에서 나올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으며, 나 역시도 그런 그녀를 의지하여 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나의 외딴방에서 움츠린 어깨를 꼿꼿하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나올 수 있기를 바랬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킬레스건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내비추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소위 외딴방이라고 불리는 곳에 감추기에 급급하고 그 문고리를 자물쇠로 꼭꼭 걸어잠궈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보호막을 형성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런 아킬레스건이 하나쯤은 있고,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더더욱 힘든 싸움이기도 하다. 화자는 감정이 없는 듯 매우 무신경하게 말하는 듯 하면서도 아픔과 슬픔, 고통은 혼자 다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래서 괜시리 짜증이 났다.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나이임에도 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화자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을 것 같아서? 아니, 외면하고 살았던거지. 우리 역시 직면한 고통에 외면하듯이 말이야.

 

 

신경숙 작가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이제 막 서른 셋이 된 화자는 좀처럼 화해되지 않는 열여섯 ― 열아홉의 사 년을 한 권의 책에 모조리 쏟아붓고 있다. 혹여 나에게 화해되지 않는 시간이 있을까 - 생각해보았다. 일 년, 일 년, 기억을 더듬으며 가만가만 생각하려고 했던 의지와는 달리 그 때의 영상들이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의 2007년 스무 살의 봄. 그 여느 때보다 찬란했던 봄이었다. 눈이 시릴 만큼 눈부셔서 손을 이마의 끝에 동등하게 두고 손등이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딱 그 때였지 싶다. 눈 부시게 내리쬐던 햇살을 앗아간 사건들은. 언제나 행복함만이 가득할거라 믿었고 , 또 그랬어야 했다. 지금도 그 때처럼 비가 온다. 주룩주룩. 희재언니는 화자에게 햇볕같이 표정이 없는 무심한 얼굴. (p146) 이라는 첫인상을 안겨주었다고 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 그 아이는 아마 그들로 각인되었을 것 같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첫인상이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이 짜여진 그 학교의 교복을 입고 튀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서 가지런히 앉아있는 32명의 아이들은 다 똑같아보였기에 어떠한 첫인상을 집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글을 서평에 쓰고 있자니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고 그보다 먼저 와있었던 자책감들이 아우성을 치며 나를 외딴방으로 다시 밀어넣기 때문에 멈춰야겠다. 그보다 이런 글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척 쓰자니 호흡이 가빠지고 머릿 속이 어지럽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그로부터 흘러간 시간들의 몇배쯤 더 지나고 마음이 무뎌질 때쯤 - 그 날이 언제 오려나 모르겠지만 - 나도 화자처럼 호흡을 길게 내 뱉으며 한 자, 한 자 잊어서는 안되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녀를 추억하며 ……상실의 깊은 멍으로부터, 그 깊디깊은 어둠의 심연으로부터, 금빛 잉어 한 마리가 푸른 물방울을 털어대며, 삶의 표층으로 솟아오르는 환각. (p231)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그 날을 기약하고 싶다.

 

 

 

"죽은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거나 그림을 본다거나 할 땐 별 감정이 없는데 노래를 들을 땐 좀 이상하지 않아요?" "육성이라서 그러겠죠. 너무나 생생해서요. 꼭 노래만 그런 건 아니에요. 언젠가 선배의 시 낭송하는 목소리를 그가 죽은 후에 들었는데 되게 이상하대요. 섬뜩했다고 하면 맞을 거예요. 목소리는 육체의 일부 같아요. 그 사람이 살아서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더라구요." (p156) 가끔은 짧은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녹음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날따라 그들의 목소리가 예쁘게 들린다던가, 꼭 기억해야하는 그런 것이 아닌데도 그냥 불현듯 그런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 것들은 가끔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몇번 보지않은 그런 사람들까지도 그런 것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이 대화를 읽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 그것이 내 핸드폰 음성메모에 저장되어있다면… 섬뜩할까? 그래, 그건 생생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때? 이 세상에 없는데 그 목소리가 머릿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섬뜩함을 일으킬 것 같아? 적어도 나에겐 아니야, 그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더라. 그곳을 떠나와서도 언니와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그 방과 비슷한 방을 보게 되면 내 가슴은 뛰고 숨이 막히곤 했지. 갑자기 멍해지거나 안절부절못했지. 주위가 산만해지고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어. 때때로 갑자기 어린애가 돼버린 것같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그 사람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어…… 책을 읽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졌고…… 다리를 지날 때는 그 난간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지…… 커튼자락이나 빨랫줄 따위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기도 했어. 알아? 언니는 나의 장애였어. 그와 행복했다가도 그를 밀어내게 하는 관계맺기의 장애였어…… 지나친 각성상태가 주는 피로는 언니가 더 잘 알겠지…… 그곳엘 다시는 가지 않았지. 그 근처에도. (p327) 이것만큼 그 때 절박했던 내 상황을 표현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화자는 왜 하필 자신이냐고 물어보았고, 나 역시도 왜 나냐고 원망스런 눈길로 하늘을 쳐다본다. 그 모든 짊을 나에게 맡기고 그렇게 갔냐고, 왜 하필 나에게 오다가였냐며, 미치도록 뼈에 사무치게 원망했었지. 화자와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그들은 이제 없다. 그것을 잊고 살든, 합리화시키고 살든, 죽을 때까지 원망하고 살든 그건 자신에게 달린 몫이다. 나는 아직 어떤 답도 내리지 못했다. 가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모두들 잠든 새벽에 또 한번 울음을 토해낼 뿐, 더 이상의 노력도 시도도 할 수조차 없음을 나 자신이 잘 알기에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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