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내리는 비에 하던 공사마저 멈춘 오늘, 서평을 쓸까하고 폼잡고 앉아서 공책을 펴놓고 끄적끄적. 연필이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는 오전 내내 공사일정때문에 곤두서있던 머리카락과 엉키고 설켰던 마음들이 이내 사르르 가라앉으며 녹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래,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말고 서평을 쓰자 다짐했다. 사각사각사각... . 자꾸만 그 소리가 좋아서 싱글생글 웃으며 MR을 틀어놓고 서평을 써내려갔다. 그 때 들리는 곡은 'July - 바람에 쓰는 편지' 그리고 몇 분이 흘렀을까. 노래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사각사각대는 소리마저 내 귀를 떠나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서평을 쓰려는데 이유모를 눈물이 흘렀다. 뭐지, 왜 이러지. 라는 생각에 한참동안 멍하니 꺼진 모니터에 비치는 나를 보며 되물었다. 너, 왜, 그래? 그 때 마침 들려온 곡은 '이루마 - If I could see you again' 만일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곡은 애린이를 내 앞에 데려다놓았고, 어느 새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을 읽으며 희재언니의 모습에서 애린이를 보았기 때문에 <외딴방>이라는 어두침침한 그 곳에 애정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이 책의 느낌은 딱, 이애린 그 자체였고, 그 속에서 허우덕대며 방황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로 시작된 이 책은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된 것 같다. 로 마무리하며 이 글의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의아함을 만들어낸다. 나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으며 이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작품을 씀으로 인해 그녀의 외딴방에서 나올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으며, 나 역시도 그런 그녀를 의지하여 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나의 외딴방에서 움츠린 어깨를 꼿꼿하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나올 수 있기를 바랬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킬레스건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내비추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소위 외딴방이라고 불리는 곳에 감추기에 급급하고 그 문고리를 자물쇠로 꼭꼭 걸어잠궈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보호막을 형성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런 아킬레스건이 하나쯤은 있고,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더더욱 힘든 싸움이기도 하다. 화자는 감정이 없는 듯 매우 무신경하게 말하는 듯 하면서도 아픔과 슬픔, 고통은 혼자 다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래서 괜시리 짜증이 났다.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나이임에도 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화자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을 것 같아서? 아니, 외면하고 살았던거지. 우리 역시 직면한 고통에 외면하듯이 말이야.

 

 

신경숙 작가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이제 막 서른 셋이 된 화자는 좀처럼 화해되지 않는 열여섯 ― 열아홉의 사 년을 한 권의 책에 모조리 쏟아붓고 있다. 혹여 나에게 화해되지 않는 시간이 있을까 - 생각해보았다. 일 년, 일 년, 기억을 더듬으며 가만가만 생각하려고 했던 의지와는 달리 그 때의 영상들이 머릿 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의 2007년 스무 살의 봄. 그 여느 때보다 찬란했던 봄이었다. 눈이 시릴 만큼 눈부셔서 손을 이마의 끝에 동등하게 두고 손등이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딱 그 때였지 싶다. 눈 부시게 내리쬐던 햇살을 앗아간 사건들은. 언제나 행복함만이 가득할거라 믿었고 , 또 그랬어야 했다. 지금도 그 때처럼 비가 온다. 주룩주룩. 희재언니는 화자에게 햇볕같이 표정이 없는 무심한 얼굴. (p146) 이라는 첫인상을 안겨주었다고 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 그 아이는 아마 그들로 각인되었을 것 같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첫인상이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이 짜여진 그 학교의 교복을 입고 튀지 않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서 가지런히 앉아있는 32명의 아이들은 다 똑같아보였기에 어떠한 첫인상을 집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글을 서평에 쓰고 있자니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고 그보다 먼저 와있었던 자책감들이 아우성을 치며 나를 외딴방으로 다시 밀어넣기 때문에 멈춰야겠다. 그보다 이런 글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척 쓰자니 호흡이 가빠지고 머릿 속이 어지럽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그로부터 흘러간 시간들의 몇배쯤 더 지나고 마음이 무뎌질 때쯤 - 그 날이 언제 오려나 모르겠지만 - 나도 화자처럼 호흡을 길게 내 뱉으며 한 자, 한 자 잊어서는 안되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녀를 추억하며 ……상실의 깊은 멍으로부터, 그 깊디깊은 어둠의 심연으로부터, 금빛 잉어 한 마리가 푸른 물방울을 털어대며, 삶의 표층으로 솟아오르는 환각. (p231)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그 날을 기약하고 싶다.

 

 

 

"죽은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거나 그림을 본다거나 할 땐 별 감정이 없는데 노래를 들을 땐 좀 이상하지 않아요?" "육성이라서 그러겠죠. 너무나 생생해서요. 꼭 노래만 그런 건 아니에요. 언젠가 선배의 시 낭송하는 목소리를 그가 죽은 후에 들었는데 되게 이상하대요. 섬뜩했다고 하면 맞을 거예요. 목소리는 육체의 일부 같아요. 그 사람이 살아서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같더라구요." (p156) 가끔은 짧은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녹음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날따라 그들의 목소리가 예쁘게 들린다던가, 꼭 기억해야하는 그런 것이 아닌데도 그냥 불현듯 그런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 것들은 가끔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몇번 보지않은 그런 사람들까지도 그런 것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이 대화를 읽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 그것이 내 핸드폰 음성메모에 저장되어있다면… 섬뜩할까? 그래, 그건 생생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때? 이 세상에 없는데 그 목소리가 머릿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섬뜩함을 일으킬 것 같아? 적어도 나에겐 아니야, 그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더라. 그곳을 떠나와서도 언니와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그 방과 비슷한 방을 보게 되면 내 가슴은 뛰고 숨이 막히곤 했지. 갑자기 멍해지거나 안절부절못했지. 주위가 산만해지고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어. 때때로 갑자기 어린애가 돼버린 것같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그 사람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어…… 책을 읽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졌고…… 다리를 지날 때는 그 난간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지…… 커튼자락이나 빨랫줄 따위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기도 했어. 알아? 언니는 나의 장애였어. 그와 행복했다가도 그를 밀어내게 하는 관계맺기의 장애였어…… 지나친 각성상태가 주는 피로는 언니가 더 잘 알겠지…… 그곳엘 다시는 가지 않았지. 그 근처에도. (p327) 이것만큼 그 때 절박했던 내 상황을 표현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화자는 왜 하필 자신이냐고 물어보았고, 나 역시도 왜 나냐고 원망스런 눈길로 하늘을 쳐다본다. 그 모든 짊을 나에게 맡기고 그렇게 갔냐고, 왜 하필 나에게 오다가였냐며, 미치도록 뼈에 사무치게 원망했었지. 화자와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그들은 이제 없다. 그것을 잊고 살든, 합리화시키고 살든, 죽을 때까지 원망하고 살든 그건 자신에게 달린 몫이다. 나는 아직 어떤 답도 내리지 못했다. 가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모두들 잠든 새벽에 또 한번 울음을 토해낼 뿐, 더 이상의 노력도 시도도 할 수조차 없음을 나 자신이 잘 알기에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