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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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그 모티브에서 얻은 것이다. 라고 작가 소개란의 끝에 쓰여있다. 우리는 처음 책을 집어들면 표지부터 보게 된다. 표지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혹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표지때문에 더욱 끌렸던 책이었지싶다. 책의 표지에 있는 저들 각각의 모습은 유령처럼 다들 흐릿흐릿한 모습뿐인지라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등을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책을 눈앞으로 끌어당겨 보아야 하지만, 가운데에 유독 못생긴 여자 난쟁이에게만큼은 관대하게 스포트라이트까지 비추고 있는 것을 우리는 깊이 관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 왜 박민규는 어째서 소재가 될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보잘 것 없어보이는 캐릭터로 글을 써내려갔을지 궁금해하며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한 장 , 한 장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중간중간 말꼬리를 잘라먹기에 충분한 term을 가지고 있기에 읽으며 도무지 집중을 하려 애를 써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기차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던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기차에 몸을 맡기고 될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며 읽고 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박민규 작가가 써놓은 그 글을 따라 호흡을 내뱉으며 문장들을 음미하며 읽고 있는 나를 깨달았다. 이 책은 사회적측면을 독자에게 빠르고 부담스럽게 안기기 보다는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연애소설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외모 지상주의'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저자는 여주인공에게 이름조차 쥐어주지 않았음에 (물론 내가 찾지 못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난 그 여주인공을 '못생긴 여자'라 칭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못생긴 여자'가 배우를 할 정도의 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둔 '잘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편지를 읽다보면 아래의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중략) 저같은 여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고통을 이길 수 없는... 결국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마음 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피... 흥건히 세상을 적시던 마음의 출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발밑을 뒹구는 저 얼굴을 이제 누가 찌르고 찬다 해도 아프지 않을 거야... 그렇게 봉합을 끝내고 몸통만 남은 마음으로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택한 진통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여자를... 도대체 누가 사랑해 줄 수 있겠어요. (중략) (p274)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의 뇌는 엄청난 진동으로 인한 여파로 현기증을 남겼고, 그 후 몇분간은 몽롱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못났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에 바쁘지는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가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저 사람보단 내가, 저 사람보다도 내가' (...) 라며 자신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구제시켜주기도 한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우리는 그들을 또 나를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외모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그때는 또 방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내 항문의 주름은 왜 정확한 쌍방 대칭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머릴 쥐어뜯는게 인간이라구. 신이여, 당신은 왜 나에게 좌우비대칭 소음순을 주신 건가요... 당신은 왜 나에게 짝부랄을 달아준 건가요 따지고 드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多數結)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p174)

 

 

 

나는 아주 미안하게도 박민규 작가의 의도와 벗어나서 - 벗어났는지 아닌지 요한의 말을 보면 아리송할 때가 많다 - 사회 속의 외모 지상주의를 탓하고 싶진 않다. 저자가 만들어놓은 '못생긴 여자' 그 여자의 못난 생각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문제점부터 찾아야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문제점으로만 치부해버리기에는 현실은 가혹하게도 외모 지상주의가 남발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란 참 많은 힘듦을 나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머리스타일부터 발사이즈까지 맞추려면 인형이 아니고는 탄생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정해놓은 - 아무리 동화같다 해도 자칫하면 깨질지도 모르는 그런 - 스노우볼에서만 살 작정인가?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 안에서 매력적인 면을 찾아 그것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말한다. 자신은 그러면 되는 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하면 얼마나 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겨우 몇 장의 편지에서조차 말투에서부터 자신감 부족이 뚝뚝 묻어져나오는 글을 읽으며 여주인공이 앞에 있는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고 좁히고 끝까지 좁혀서 혀를 끌끌 차는 둥 한심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저런 여자가 있다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얼굴이 못생겨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사랑이 매말라서. '못생긴 여자'는 다행스럽게도 편지의 끝에서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p289) 아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타인을 감싸줄 수 있는거야. 라고 귓가에 나긋나긋하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땐 새벽에 잠도 못자고 축구를 봤는데 골 결정력이 아쉬워서 동점으로 비겼을 때와 같은 비스무리한 탄식이 터져나왔다. 왠지 자꾸만 뭔가가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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