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젊은 작가들이 숨겨왔던 재능을 펼치고 있어 이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읽을 때면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기가 일쑤였고, 그로 인한 파장은 언제나 짜증으로 치솟았기에 '더 이상은 읽지 않을거야!' 라고 외치며, 그를 정화하기 위해 그보다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중년 작가들의 작품만을 선호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내 품에 들어온 전아리 작가의 <팬이야>를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눈 감고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나중에 늦지 않게 읽어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책장 한 쪽에 밀어넣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차근차근 시작했는데, 컨디션이 말짱 꽝인 상태에서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 수 없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전아리의 팬이야를 들고 표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익살스러운 일러스트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표지를 넘겼다. 책 날개에 작가의 사진과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문장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사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작가 소개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는 작가가 1986년생이라는 숫자에 이끌려 소개란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력을 주욱 늘어놓고는 그녀의 문학에 관해 짤막한 호평을 써놓았다. 하지만 그 작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 문장들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어주리라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다.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로비를 가로지르며 "잠깐만요!" 로 시작되는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이 책의 여주인공은 이렇다 할 꿈도 목표도 없다. 남들처럼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딱히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도 찾지 못했다. 자주 만나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도 없다. 그리고 이제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사랑마저 끝이 났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걸까. 이제껏 삶을 뒤집어엎을 만한 어떠한 모험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라고 둘러대곤 했찌만 스물아홉이 된 지금에 와서 두 손을 들여다보니 딱히 잃을 만한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모험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에는 열정의 증거가 없었다. (p29) 라는 문장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스물아홉 살 계약직 회사원 정운이다. 어느 날 '뚱뚱한 지석철 부장'의 줄임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뚱뚱한 게 지랄도 하네'라는 줄임말인 '뚱지 부장'에게 불려가 해고를 당하는 꿈을 꿀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정직원이 될 수 있을거란 일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사귀던 남자 동주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엔 미련없이 헤어지고, 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큰언니가 집에 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정운은 잔소리를 듣지않기 위해 텅빈 냉장고를 채울 것을 마련해주고, 새로운 변기 커버가 있는 마트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서 PR행사때 받은 뒤 적당한 사람에게 주려고 줄곧 들고 다닌 CD에 적혀있던 'S1001'이라는 시리얼 넘버로 인해 우연치않게 '시리우스'라는 아이돌의 포옹을 받게 되고, 그들의 팬이 된다. (중략)

 

 

 

이미 몇 권의 작품집을 낸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그간 읽었던 책들엔 훨씬 못 미칠지언정 나름대로의 구색들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는 중년 작가들을 따라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애초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명언과 같은 무리수였고, 한낱 독자의 이기심이었음을 간파했다. 그걸 감안하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초점이었던 '자아찾기'가 중간중간 빈틈을 보이는 것에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아찾기'를 과감하게 - 어떤 가수나 배우에 꽂혀 콘서트를 간다거나 시사회를 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므로 내 입장에서 보기엔 충분히 과감했다 말할 수 있었다 - 감행하면서도 그를 뒷받침해주는 혹은 그에 따른 결말인 로맨스가 쓸데없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자아찾기'에 대한 관찰은 guest가 된 것이 마이너스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 작가는 자아찾기보다 로맨스를 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 그저그런 로맨스소설을 쓰고자 했었더라면 난 아마 최악의 경우 이 책을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 또한 익살스러운 표지만큼이나 유쾌한 로맨스를 꾸려가길 바랬던 것과는 달리, 관찰자 입장도 아닌 1인칭 관점에서 끌어나가는 이야기임에도 여주인공의 감정처리같은 경우엔 오목조목한 세심함이 아쉬웠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넉넉하지 못한 아량을 베풀며 답답하리만큼 끄집어내주지 못했던 점 또한 아쉬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왠지 답답한 드라마 한 편과 인터넷 소설을 혼합하여 보는 기분이었달까.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도 없었고, 로맨스에서 당연히 만끽해야할 두근거림조차 내 녹녹하지 못한 심장은 내비치지 못했기에 개인적인 짧은 소견으로 소설책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할 1원칙이라 생각되는 재미조차 추구하지 못했고, 흡입력이 강하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냥 책장이 넘어가는 기분. 그저 아무런 사건없이 유 - 하게 흘러가는 우리들의 사랑이야기가 책 속에 녹아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요즘같이 짜증이 치솟는 요즘에 읽은 것이기에 한층 더 감정적인 서평을 읽으며 심지어 한 단어 선택조차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정성스레 한 문장을 완성시켜 내 놓은 작가에게 미안함이 그지없다. 애초에 심난한 마음을 유쾌함이라는 가면으로 숨기기 위해 익살스러운 표지가 그려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들은 내 잘못인 것이다. "변화라는 게 그렇잖아. 기존의 자기를 깨부수고, 당당하게 상처받고, 남은 파편들을 치우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걸 세우는 거 아니겠어?" (p177) 저자가 책 속에 써넣은 변화에 대한 정의가 그녀에게도 가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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