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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여자가 스무살 여자에게
김현정 지음 / 토네이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여지껏 쓰던 서평을 홧김에 delete 해버리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한풀이하듯 써놓은 서평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밖에 안나오더란 말이다. 지지난주부터 나는, 꽤 괴상망측하게도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어떠한 일들이 잡으려고 해도 잡히질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우는 일들 뿐이었다. 그런 일들이 마구잡이로 나를 향해 돌진해올 때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픽,하니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를 찾게 되는데, 나는 늘 그 누군가를 찾다가 혼자 삭히게 될 때가 많다. 그것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자존심이 굉장한 나는, 때때로 나의 치부가 바람에도 들썩거리는 플레어처럼 쉬이 들춰지는 것이 달갑지 않은 까닭이다. 간혹,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하다가도 내게 짐인 일이 그 사람에게도 혹여나 짐으로 여겨질까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그것은 이미 어떠한 것으로도 풀 수 없을 만큼 딱딱한 무언가가 되어 있고, 그것은 그대로 굳어졌다가 어느 순간에 나를 또 다시 조여온다. 마치, 빼내어야 할 이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같이.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날에 「서른 살 여자가 스무 살 여자에게」의 저자 김현정을 만났다. 책을 읽기에 앞서 내가 서른 살이 되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직 서른이라는 나이에 근접하지 않은 내가 생각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며 서른 살에 난 뭐가 되어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텅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금세 시무룩해진다. 아니, 내가 한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했는가, 만인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 했는가, 그도 아니면, 만물을 다스리는 신이 되고 싶다 했는가. 나는 왜 서른의 나를 상상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나의 서른 살. 생각을 안해본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까닭은, 서른에 좁힐 수 없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미래에 확신할 수 없어서는 아닐까,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혹은, 스물이나 서른이나 다를 것이 무어냐, 라는 것이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들었다. 어쩌면,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렇게 멀리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도 아니라면,..-
스무 살 시절에는 자신을 삶과 미래의 중심에 놓고 동선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 중심에 서는 일은 괴롭습니다. 하지만 중심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꿈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 바라봄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날들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중심에 없으면 세상도 없고 삶도 없고 꿈도 없습니다. 오직 내 것이 아닌 세상의 빈방만을 기웃거릴 뿐입니다. 변방만 기웃거리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 바로 당신의 ‘청춘’입니다.
나는 전에 어떤 책을 읽고 그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건너가기 바로 직전에, 내 스무 살은 누구보다 밝게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정말, 그땐 그랬다. 내 스물이란 나이는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역량을 지닐 줄로만 알았다. 十年이 두번을 지나니, 뭔가가 특별해 보였는가 보다. 하지만 다를 바 없는 생활들은 나를 급기야 따분한 스무 살로 기억하게 했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스무 살을 살게 했다. 그러다가 내가 내 인생을 살아보자, 한 것이 자기계발서를 미친듯이 읽어제끼던 스물 두해를 살던 어느 날이었고, 나를 억압했던 전의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을 주욱 둘러보고 정돈했었다. 학교를 복학하고 나서도 이것이 정말 내 꿈일까 끊임없이 의심했고, 우선 시작하는 것, 최선을 다해보자, 생각하여 방학 때에도 교수님의 옆자리를 차지하여 보조 노릇을 곧잘 하며, 내 자리를 넓혀갔다. 그땐 이렇게 해서 나한테 남는 게 뭐가 있어, 라며 온갖 투정들을 다 부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남는 것이, 있었고, 여전히 그때의 온기가 내 옆에 가지런히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성취감과 보람도 없이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매월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을 위안으로 삼는 삶은 그저 사육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내 삶이 만족스럽다,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허나, 이것은 불특정 대다수에게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대표적인 물음 중 하나이다. 만족하지 못한다면, 만족하게끔 만들 수는 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지금의 정보통신이 비단 오늘만의 일인가. 하물며, 지금 나의 몸뚱아리 역시 엄마의 자궁에서 태동하며 눈, 코, 입, 팔, 다리를 다 만들어 무려 열 달을 살다 나왔는데, 꿈이 그렇게 쉬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말이다. 한달 전, 작가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이라는 책에서 인생은 뭉그적거리기에는 너무 짧거든. 이라는 문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은 당시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꿈, 아니 망상만을 좇던 내게 도전하라는 말처럼 들렸고, 그동안 해야겠다,라고 말로만 되뇌었던 공부를 시작했던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흘려보내도 무색하지 않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한 문장이, 가끔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무언가를 하고 싶다, 혹은 해야겠다,라고 마음 먹게 만들어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을 읽었다. 이 책 속에서 다른 자기계발과는 색다르다던가, 특별하다던가, 하는 것을 발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시, 다른 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사랑에 앓아누워라, 고비가 오면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등등. 누가 모르겠는가.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고, 느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적어도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미친듯이 몰아치는 회오리 바람 속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나를 구출해야했고, 그러려면 일어서야 하는데, 나를 일어서게 만들 간식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 책이 좋은 책이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삼십 대 여성들을 아니, 이웃집 언니들을 만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을 되돌아 본 것,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