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 -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
조 피츠제럴드 카터 지음, 정경옥 옮김 / 뜰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엄마,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애잔함을 감히 어떤 것과 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글쎄. 그 무엇도, 라는 것이 내 대답이다. 헌데, 그런 존재가 언제부터 내가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했단 말인가. 며칠 전, 의견 차이로 엄마와 충돌이 있었는데, 그 일 이후로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 문제의 짤막한 원인이라 함은, 모진 사람들이 꾸려낸 세상으로부터 튕겨나가기를 원하고 좋은 사람들이 꾸려낸 세상으로 가는 것이 엄마만의 도피,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런 엄마의 도피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는 조금도 이해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옹골진 단어 속에서 태동하는 우리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 답답했다. 아니 실은, 엄마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적이 있지만, 그것을 차가운 말로 내치는 내가 있었고, 그런 내가 엄마에게는 지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터다. 그래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천연덕스레 엄마를 부르고 싶게 만드는「엄마, 엄마, 엄마」 - 라는 이 책을, 쉬이 들 수 없었던 것도 그 까닭이다. 또, ‘엄마’를 소재로 한 책들 중, 깔깔 웃으며 읽었던 책은 단 한 권도 없다,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그것은 응어리진 눈물 방울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책들 뿐이었는데, 「엄마를 부탁해」가 그랬고 「바보 엄마」가 그랬다. 그런데 이 책, 뭔가 이상하다.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 - 자살을 결심한 엄마라니. 아, 이건 악몽이다. 글귀를 보자마자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새까맣게 잊은 채 그대로 엄마 품으로 돌진할 뻔 했음을.

 

 

 

울형성 심부전증, 천식, 만성 폐질환, 골다공증, 관절염, 저혈압, 그리고 이십 년도 넘도록 앓아온 파킨슨 병 - 보기만 해도 막막하게 나열된 병들, 그것을 앓고 있는 일흔다섯의 마거릿.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병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투병에 지친 그녀는 자살을 꾀한다. 하지만 딸들은 그런 결정이 경미한 우울증과 자제력을 과시하고 싶은 병적인 집착에서 오는 것이라고 가볍게 여겼지만, 자살할 날짜까지 정해놓고 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때 쯤이면 마무리를 하기에 적당하다’던가 하는 말들을 소풍가는 날짜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며 그것을 실행하겠다, 라는 암시를 주어 딸들의 마음을 더욱 바스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무리’가 되는 날은 이미 두 번이나 바뀌었고, 헬륨가스, 세코날 수면제, 모르핀, 단식…과 같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마거릿을 그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엔 충돌하는 것들이 있었다. 나 역시도 훗날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링겔이라던가, 산소호흡기라던가, 하는 그런 모든 것들은 거부할 요량에 있다. 생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완치될 수 없는 병에 억지로 링겔을 꽂은 팔에 주사액이 투여되고, 고르지 않은 희미한 숨통을 조금이라도 잡아보고자 산소호흡기를 꽂아 산다면 그때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지인들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를 생각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여태까지 생각해왔던 것들 중 하나이니까. 그런 내가, 투병에 지쳐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그녀에게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따지고 보면, 행복전도사 최윤희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힘든 것은 자신인데, 누가 그녀를 함부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딸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날을 통보하는 엄마,라는 점에서도 그녀가 내 엄마가 아님에도 야속한 생각에 몸서리를 쳤지만 후에, 딸들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가져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지만. 그래서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가득 서려있기 보다는 제 3자의 눈을 빌어 썼다고 표현해도 대수롭지 않을 만큼 꽤나 담담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문체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처음엔 그 탓에 ‘체념’이라 착각할 뻔 하였던 것도 사실이나, 책 속에는 결코 그것과 연관시킬 하나의 자투리도 없었음을 밝힌다.

 

 

 

책을 다 덮었을 즈음, 엄마를 생각했다. 내 엄마는 아직 건강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다. 발꿈치를 들어 올려서 팔을 주욱 뻗어도 손이 하늘에 닿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것들이 그만큼의 거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허나, 언젠가 그런 일들이 나에게 닥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이다. 엄마를 어떻게든 막아야 올바른 것인가, 엄마를 도와주어야 올바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손을 놓고 체념한 채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둘 중 어떤 것도 올바르다,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게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옴과 동시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나는 엄마가 홀연히 떠나버리는 꿈을 꿀 때면, 엉엉 울며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그곳에 내 숨소리가 얹어지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난 너무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그동안의 엄마와의 냉전을 끝내려 하는 내가 있고, 엄마를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엄마니까 이해하려 노력하겠다고, 문자를 보낸 후에야 비로소 불안정했던 맥박들이 가지런하게 뛰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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