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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공선옥 작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 11월 말에 만났다가 올 4월에 만난 것이라고 한다면, 꽤 오랜만일 법도 하건만, 아직 「영란」에서 영란의 행보가 한 발자욱, 한 발자욱 또렷하게 각인되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거진 일 년만에 「영란」을 접했었는데, 전작을 읽을 때는 몰랐던 어떤 괜찮음,을 발견했었다. 대체적으로 그것이 내 지독했던 슬럼프를 깨뜨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말하기 어려운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에게 있어 공선옥이라는 작가의 이미지는 순수함,인데,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정해놓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인물은 모두 소박하고, 순수하다. 그런 영혼들이 공선옥, 그녀를 거쳐 나왔으니 짐짓 그럴거라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것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그리 받아들이고 있는 겐가. 인물의 순수성은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는데, 문장들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다. 때로는 그것이 오인되면 무뚝뚝하게 느껴질 때도 없잖아 있다. 그렇기에 그와 상반되는 방정맞다거나 호들갑스러움이 없는데도 나는 그녀의 책을 받아들 때면 어쩐일인지 엄청 재미있게 쓰여진 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괜스레 달뜨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된 그녀의 책이 마냥 반가운 까닭이다. 꽃 같은 시절 - 처음엔 요목조목 쓰인 글자가 예뻐서, 또 단어가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았더랬다. 처음에 표지를 언뜻 보고는 가족 구성원을 그려놨나, 하여 가족 소설인가 싶었는데, 다시 보아하니 죄 노인들뿐이기에 노인들의 꽃 같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보다, 했다. 헌데, 이야기가 왜 돌공장에서 나오는가.
“오명순씨의 시위참여 동기는 조용히 살고 싶어서.” “조용히 살다 죽을라고까지 혀.” “죽을라고까지 어떻게 쓴답니까. 그냥 살고 싶어서.” “조용히 살다 죽을라고.”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어 유일한 생계수단인 가게가 철거되고, 개업할 때 물고 들어온 권리금과 시설투자금을 날리고 이사비용에 불과한 보상금을 받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철수, 영희 부부. 시골동네를 전전하다가 진평리의 한 곳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이곳도 조용하지 않다. 문제는 불법 쇄석 공장 ‘순양석재’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날아오는 돌가루와 소음이었다. ‘새끼를 낳던 암소가 돌 깨는 굉음에 놀라 사산하고, 덤프트럭이 질주하는 농로에서 노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논바닥으로 처박혔다. 먼지는 비닐하우스에 켜켜이 쌓여서 하우스 안은 구름이 낀 것처럼 햇빛이 들지 않았다. 깻잎에 돌가루가 박혀 입에서 싸그락싸그락 돌이 씹혔다. 논바닥에도 돌먼지가 쌓여 햇빛을 차단한 탓에 벼뿌리가 썩어갔다.’ 급기야 주민들은 데모를 하지만, 주민이라고 해봤자 3,40대는 서너 명밖에 되지 않고 노인들이 대다수인데, 형사(“나요? 나 알아서 뭣할라고? 연애할라고?” “이러면 영업방해로다가 현장체포감들이여어, 우리 언니들이 토옹 뭣을 몰라아.”)와 트럭 기사(“칵 갈아버릴까보다 그냥”)의 조롱 어린 말과 행동때문에 화가 난 영희는 메가폰에 대고 몇 마디 한 것으로 덜컥 대책위원장이 된다. 그런데, 그들의 데모라는 게 공장 앞에서 덤프트럭을 막고,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법원에 소송하고, 감사원에 탄원서를 넣는 것 말고도 지나가는 이름 모를 이들에게도 밥을 챙겨주는 것이 눈물나도록 정겹기 그지없는 풍경이라는 게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꽃 같은 시절을 이야기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요. - 아니, 당신은 꽃 같은 시절이 어떤 건지나 알고 말하는거요?
‘또르또르또르르르’ 하는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지렁이 울음소리라고 하면 비웃을 텐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여 정말 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지렁이에게도 울음소리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쩌면 지렁이 울음소리가 없을 거라 당당하게 말하는 당신도 노인들의 ‘꽃 같은 시절’을 함께 통과하며 그곳에서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들었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세 권째로 읽으며 그 세 권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작가 공선옥은 죽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것. 썩은 동앗줄인 것을 알면서 붙잡았고, 그로 인해 내동댕이 쳐질 것을 알면서도 붙잡은 것은 남은 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발악인 게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해금이 그랬고, 「영란」의 영란이 그랬고, 「꽃 같은 시절」의 영희와 노인,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그곳 주민들 모두가 그랬다. 물질적 욕망에 얼룩진 것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그들이기에, 그들은 모두 돌가루를 뒤집어 쓴 채로 흐드러지게 피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데, 그것을 통해 원하는 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전처럼 살게 해달라,는 단 하나 뿐이라 안쓰러움에 마음이 뭉그러진다. 이렇듯 이 책은 사회적 약자를 편에 서기는커녕, 굽어보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을 발가벗긴 채로 채찍을 가했던 공지영의 「도가니」, 손아람 「소수의견」을 떠올리게 하며, 진정성이 휘발된 나라에서 두 발을 땅에 딛고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몸서리 쳐지게 소름끼치는 일인 것이다. 책의 이 사건은 실화이지만, 지명을 밝힐 수 없는 것은 -ing로 진행형인 까닭이겠지. 세상 곳곳에서는 여전히 지렁이들의 한맺힌 울음소리로 세상을 메우고 있는데, 당신네들 귀는 얼마나 두꺼운 철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들을 수 없는가. 혹은 들리지 않는 척 하는가. 아무리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대도, 어떻게 들리는 것이 들리지 않는 것이 되더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