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네 집
김옥곤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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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 호젓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로, (개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좋아하는 소리. 그냥 자기가 못내 아쉬워, 읽고 있던 책을 집으려다 이미 다 읽은 것을 확인하고 다음 책을 고르려는데, ‘얼른, 얼른’ 하며 재촉하는 마음에 책을 고르는 손이 덩달아 바빠진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 몇 권이 뒤집어져 있지만, 눈에 띈 건 옥곤 작가의  「미라네 집」 - 장르에 있어서 작가를 따지는 편은 아니나,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틈, 그곳에서조차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는 까닭에 ‘사랑’에 관한 한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를 선호하게 된다. 사실, 남성작가라 하여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닐테지만, 사랑에 있어 남성작가들의 남성인 척, 하려는 이유 때문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알레르기처럼 거부반응을 일으킬 때도 있다는 점이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이 역시 그럴 것 같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글 역시 ‘첫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라 적혀 있기에 약간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예순,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미루어 볼 때, 담담하게 그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랑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흘러간 세월때문,이라는 초라한 까닭으로. 그럼에도, 흘러간 노래 중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유행 가사라던가,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라던가 하는 구절들이 있듯이,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남성작가가 그려내는 첫사랑은 그간 여성작가가 드러내 보여주었던 예쁘고 알싸함을 넘어 어떤 세계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사간 경주에서 아버지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했었던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찍는다. 오래 전, 아버지가 그녀를 찍었듯이. 그리고 그 날, 역광이 비추는 회화나무 아래서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두눈박이 사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나’ - <역광 속으로> , ‘운예 - 성자 - 금동’ 그들의 운명과 행적이, ‘나’를 통해 관찰되어 이야기되는 - <비천, 그 노을 속의 날갯짓> 그 외에 <신경초> , <미라네 집>, <해술이> , <목사와 고양이> , <슬픈 이중주> , <아버지의 선물> - 한 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자면, 단연 <미라네 집>이다. 사실 난 이 이야기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고, 그로 인한 메스꺼움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화자는 오미라,라는 여자가 자신의 첫사랑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자가 고향이 부안이고, 향수병으로 젊은 날에 죽었다는 것 말고도 화자는 우연치 않게 첫사랑의 이름을 딴 ‘미라네 집’이라는 카페에 가게 된 것, 그 뿐이다. 하다못해 첫사랑에 대한 어떤 감정도 글에서는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이 앞 뒤 설명하지 않고 범인은 -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저자가 옆에 있었다면, 왜 하필 이 단편이 이 여덟 편을 아우르는 제목이 되었는지, 이것을 읽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길 바랬느냐,고 끈질기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난 결국 총 여덟 개의 단편 중, 가지런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편이고, 단편이라서, 단편이기에 그들이 쳐둔 프레임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리라. 여덟 개의 단편 속 화자는 모두 중년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문체들때문인지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추억하는 것만 다르다 뿐, 그들에게서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 그로 인해 인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체가 되는 기분이었달까. 그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으나, 풍경 앞에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닌, 인물 뒤에 풍경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 나로서는 작가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한 가지 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첫사랑,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작품 마다 마다에 발담금 되어 있는 추억들이 저마다의 깊이에서 물장구를 쳐댔다. 그것으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지만, 그것이 내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다음 작품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면,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안은 채, 여운도 남기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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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2
박동선 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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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아,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화두에 자주 오른다. 그게 적당하면 즐거움이 되겠지만, 지나치면 불쾌함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한 사건을 두고 ‘걔는 _형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_해?’라는 식이다. (그것때문에 옆에 앉아있던 같은 혈액형의 타인이 욱!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한 사람을 판단할 때 혈액형을 두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다. 우연치않게 혈액형과 그 사람이 일치하는 것을 두고 혈액형에 따라 사람이 변한다,라고 말해버리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세상엔 네 분류의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혈액형을 모르는 이들은 나를 두고 A형 혹은 B형을 자주 말하곤 하는데, A형은 소심한 성격 탓에 들을 수 있는 혈액형이라고 한다지만, B형은 왜인지 알 수 없어 물어보면 ‘그냥 이유없이 넌 딱 B형같이 생겼어.’ - 풉, 내 얼굴이 B형같이 생긴 사람인가. 큭큭. 요즘은 혈액형을 물어보면, 미인형이요, 미남형이요, 계란형이요, 하는 말장난을 뒤늦게 알게 되어 대학교 복한한 후에 무척이나 많이 써먹었던 기억이 난다. 액형이라 하니, 어렸을 적 애피소드가 떠오른다. 우리집에는 A, B, AB, O형이 한 곳에 모여 살고 있다. 어째서? 엄마 A, 아빠 B, 동생 AB, 나 O - A형과 B형 사이에서 O형이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AO + BO = O’와 같은 방식이 성립되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걸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내 가족 구성원의 혈액형을 들은 친구가 “너 진짜 주워온 거 아니야?”라는 말에 난 정말 그런가 싶어 몇 시간의 가출아닌 가출을 감행했었던 것. 엄마는 그런 나를 안고, 태어난 직후 사진들을 보여주며 “넌 내 자식이다.”라는 말에 안심했었던 기억,말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위와 같이 내 가족들은 아이러니하게 네 가지 혈액형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잡지나 인터넷에서 혈액형에 대한 웹툰을 보게 되면 나는, 혈액형마다 가족들을 끼워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이 책 속에도 아빠, 엄마 나, 동생 - 네 식구를 나타내는 캐릭터들이 가득 들어 앉아 오밀조밀하게 자신들의 성격을 여실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 모든 인구가 A, B, AB, O에 따라 네 분류로 나뉘는 것은 아닐진대, 혈액형에 대한 글이라던가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네 분류만이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동생과 함께 실생활 속에서의 혈액형 유형을 보며 ‘맞아, 맞아. 난 이랬고, 넌 저랬어. 너랑 똑같아! 아, 이건 좀 아닌데. 이게 왜 나랑 똑같아!’ 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갸웃거리기도 하며 즐겁게 보다가, 마지막에 동화에 혈액형 유형을 접목시켜 각색한 것들을 보며 미친 듯이 웃어버렸다. ‘잠 자는 숲 속의 공주’ , ‘잭과 콩나무’ , ‘인어공주’ , ‘아기돼지 삼형제’ -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나른거리는 오후에, 깔깔 거리며 가볍게 읽기엔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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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훌쩍 ,떠난 여행지의 카페에서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자..눈개비도 피할겸..
새해에..
찻 집에 앉아 주인은 어딜가고..풉..
저 혼자..앉은 채 재미있어서 그냥 다 읽어버린 기억..^^
저도..아는형,,우리형..동네형..하고...놀았던..생각나요!!
 
아이리더십 iLeadership - 애플을 움직이는 혁명적인 운영체제
제이 엘리엇 & 윌리엄 사이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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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출간되는 책의 적지 않은 비중이 스마트폰을 다루고 있음은 왠지 반감을 사게 만든다. 첫 번째로, 내가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라는 까닭이 가장 클 것인데, 그것을 쓰지 않으면 외계인인가. 나의 핸드폰(쿠키)을 보며 말하는 친구의 “넌 아직도 과자야?”라는 말에 살짝(아니, 무척!) 배알이 꼴리는 건 사실이나, (내 필요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면) 고작 그것으로 인해 홧김에 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음이다. (사실 난 이번주에 그것을 살 계획에 있지만) - 여담으로, 며칠 전, 스마트폰을 샀는데, 마땅히 할 게 없어 핸드폰으로 일기쓴다,는 친구의 말은 폭소에 가까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미루어 본다면야, 젊은이들이 스마트폰, 스마트폰 하는 까닭 중 하나가 단순히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옵션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수많은 기능 중 하나,겠지만) 두 번째로, 농락이다. 유저가 아니기에 별 관심도 없는 나도 알고 있는 카톡의 유료화’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폐지’는 끊임없이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형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에 의해 애꿎은 스마트폰 유저들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 번째로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이다. 몇달 전, 적금이 만기되어 다른 적금을 물색하던 중에 <특별판>이라 하여 스마트폰 유저들은 몇 퍼센트의 금리를 더 얹어준다는 혜택은 이미 그만큼 대중화가 됐다는 말이겠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그것만큼 높은 금리가 없었던 까닭. 며칠 전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제 마트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라는 말에 왜? 어째서? 라고 대답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나는 스마트폰에 대한 상당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데 그것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

 

 

 

‘제이 앨리엇’ , 최고위급(전 애플 수석 부사장이자 잡스의 멘토) 내부자의 경험을 토대로 써진 「아이리더십」 - 신생 기업 이글 컴퓨터의 비극적 몰락을 전하고 있는 신문의 경제면을 읽고 있던 ‘나(제이 앨리엇)’는 옆의 ‘젊은이(스티브 잡스)’도 그것을 읽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 그들의 우연같은 만남이다. 그 만남으로 인연이 된 이들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고, 책은 그 시점의 애플부터 지금의 애플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제이 앨리엇이 그린 스티브 잡스는 오너로서의 자질이 충만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제품에 대한 열정, 디테일의 힘, 팀워크, 인재 채용, 인센티브, 기능 중심에서 제품 기반으로, 위기 관리, 회복과 재기 과정, 통합적 관점, 혁신 전도사, 광고 전략, 유통, 애플의 로드맵” 그 어떤 곳에서도 한치 흐트러짐을 볼 수 없는 까닭.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부분은 존 스컬리를 영입하는 과정을 그린 후 부터였는데, 컴퓨터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마케팅에 대한 존 스컬리(펩시콜라의 사장)의 식견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낼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아보겠습니까?” 와 같이 말하며 그를 애플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곧 그들의 충돌로 인해 스티브는 애플을 떠나버리기에 이른다. 그렇게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그곳에도 위기가 찾아왔고, 10년 만에 돌아온 스티브는 ‘(따로) 회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한 후 애플을 떠났지만, 직원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애플이 여전히 그의 회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가 있을 때와 똑같이 자부심, 에너지, 열정이 퍼져 있었죠.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그의 리드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도 강력한 아우라가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다시 한 번 자기 손아귀에 틀어쥘 회생 전략을 가지고 돌아왔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들은 우리 제품이 뭔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우리 제품을 써보았을 리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이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책이 ‘내부자의 목소리’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책을 읽을 당시, 누군가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책은 싫다,고 이야기했었다. 까닭은 그가 무대 위로 올라간 즉시, 그는 ‘사람’이라는 한 주체가 아닌, 객이 들여다 보는 ‘물건’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의 ‘값’을 올려야 하고, 결국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예찬론’이 되는 것이다. 역시나, 제이 앨리엇은 끊임없이 스티브 잡스를 예찬하고, 또 예찬한다. 자신이 그렇게 예찬하는 그의 왼팔.이 바로 나다,라며 우쭐해하고, 자신의 행적 또한 간간히 끼워넣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속했던 회사인 ‘애플’과 오너인 스티브 잡스에 대한 신뢰로 똘똘 뭉친 것은 백번 이해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자칫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인데, 책의 몇 부분에서도 간혹 그런 점이 보여 그 또한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 경영론이라 했는가. 제이 앨리엇, 그 역시도 ‘이 책에서 내가 의도한 것은 진정한 스티브 잡스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이것은 ‘경영론이라고 보기 좋게 포장된 자기계발’이라고, 적어도 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물어보자. 아이폰 4도 처음 나왔을 때 안테나에 문제가 있었다’,며 그 원인 중 하나를 ‘스티브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디테일에 대한 철저하고 꼼꼼한 점검 책임을 그가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일임했다.’와 같은 대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이해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말이다. 정말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볼 인재가 없으니, 그가 없으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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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저는..
아직도 스마트하게..
투지(응?!)스런 세상에 사는데..ㅎㅎㅎ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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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고 두어 달 만에 일에 적응하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내가 하는 일도 남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에 몇 번도 더 찾아오는 회의감을 동반한 방황은 간신히 서 있는 나를 발로 차대며 위태로이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눈물로 번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나는 그것을 그 속에 다 쏟아부었더랬다. 그러다보면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뭐가 그리 서러운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이 될 때가 많았는데, 그 사실은 나에겐 힘겨움으로 다가왔고, 결국 현재의 상황을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최악이다.) 체념이라는 말, 마음 언저리가 콕콕 쑤실 정도로 참, 아프고 시리다. 현재의 상황을 체념한다 하여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없다. 나 그것이 결코 완전한 체념으로 굳혀질 수 없는 것은, 내겐 이루고 싶은, 이뤄야할, 이룰 - 꿈이 있는 까닭이다. 실은 나, 막연하다. 때문에 눈을 감는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내가 보인다. 그 모든 것들이 목을 죄어오는 까닭에 숨을 헐떡이게 되고, 자유자재로 호흡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여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는 사실이 ‘사는 게, 참 힘들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그것을 놓으면 편할까, 생각하지만 선뜻 그러지 못하는 것은 아직 할 일이 많은 까닭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까닭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현재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책이 내 앞에 놓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팔자 좋은 소리. 자, 당신은 그때를 이미 지나왔고, 현재는 성공한 케이스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거야.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책의 자자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책과 첫만남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했다.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 아니라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초점’이다.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나는 내가 목적이 있는 배움이 아니라 ‘배움’, 그 자체를 즐기길 바랐다. 하지만 나, 지금 그러고 있는가. 실은 스펙쌓기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은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까닭이리라. 현재 하고 있는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은 애초에 내 능력에서 부족하다 싶은 것들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난 지금 그저 그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그리고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 꼼수만 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닐진대, 어째서 이렇게 허구헌날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해가며 잡고 있는가 말이다. 그 까닭은 한 가지로 응어리진다. 이직. - ‘내가 여기서는 배울 게 없어.’ , ‘일 하는 것이 체계적이지가 않아.’ 와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나, 겁이 나고, 불안하다. 이곳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겁 내는 것은 둘째치고, 내 능력을 의심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인데, 그것을 걷잡을 수 없다.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없는 까닭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그것을 위한 발판일 뿐, 그것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험 준비란 겉으로는 매우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의 전체적인 프레임에서 보면 문제를 유예하는 게으른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하필 뜨끔한 구절과 다시 조우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아. 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과연 그럴까. 그것이, 사실일까.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믈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책을 읽고도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어리석게도 책 한 귀퉁이에 내 답답한 마음 모두를 내려놓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려면 한낱 318페이지도 되지 않는 이 책에, 생판 모르는 김난도 교수에게 내 인생을 맡겼어야 했으리라.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이 곳에 있는 동안, 나를 버리고 왔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오롯한 내 인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실로 감격스럽다. 그동안의 방황으로 내 인생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래서 날 힘들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아직 내 꿈에 대한 내 마음이 간절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 싶다. 오월의 첫날에, 미칠 듯한 괴리감을 느꼈었다. 나만 외계인이었다. 탈을 벗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으나, 까닭을 모른다. 아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말썽이었다. 일도, 공부도, 사랑도, 우정도, 심지어 가족까지. 되는 일 하나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몇 시간을 내내 걸었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글을 쓴 듯한 한 권의 책으로 위안을 받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수첩에 이런 말을 적어놓았었다.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하기엔 노력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 불안하니까, 막막하니까 흔들리니까, 외로우니까, 두근거리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기에 청춘이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난 아직 일구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은 까닭에. 그간 읽었던 자기계발서, 에세이 - 어떤 것도 내 마음을 다잡게 할 순 없었다. 이 역시도 물론 그렇지만, 적어도 멈춘 것만 같고, 멈출 것만 같던 내 시계가 아직 겨우 오전 7시 12분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내 꿈이 죽지 않고 살아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지 않았는가. 그거면 된거지, 뭘 바라겠는가. 정말 내 말대로 이 책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는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만큼 대단한 책은 존재하지 않음을 기억해라. 나는, 촉진제를 맞았다. 비로소 식욕이 돌며 침이 흐른다.

 

 

ps.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하물며 부서지기 쉬운 모래로 만드는 두꺼비집도 차근차근 짓지 않습니까.” - ws , LSJ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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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 In the Blue 4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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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에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그곳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미니홈피를 통해서 그곳의 풍경을 언뜻 본 적이 있었는데, 빨간 지붕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모양새가 뇌리에 콕 박혀서 빠져나오질 못했었다. 그것을 보며 참 예쁘다,라는 탄성을 내지르고 사진을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보았었는지. 그 이유만으로 그 나라를 만나보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접했었는데, 그곳을 보다 따뜻하게 표현했던 책이 단연 백승선, 변혜정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 유독 여행 에세이에서만큼은 상냥하지 못한 나였음에도, 그들의 책을 읽으며 마음이 데워지는 것을 감출 길이 없었더랬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여행을 할 때에 가지고 있어야 할 지침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짤막하게 읊조리는 식이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번진다. 행복, 사랑, 달콤함, 선율 - 그것이 번져 나에게 막 뜨거운 물을 들이 부은 커피향보다 더 향긋함을 안겨준다. 이번에 그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온 곳은 폴란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폴란드,라고 불리우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물론, 폴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천지인 곳이 여럿이지만 -) 이 책만으로 작가들에 의하여 그 나라의 틀이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나라에 대해 검색을 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녹아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 둘 뾰루지처럼 튀어나오는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택한 것은, 모르는 것을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희열,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들의 발이 처음 내딛은 그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 이 도시를 말하기에 앞서 혹, 쇼팽이 누구인지 아는가. 쇼팽을 몰랐다면 그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던 저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쇼팽의 ‘이별곡’을 접한 바 있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 곡이 너무나도 구슬퍼서 들을 때마다 극중 윤수를 떠올리게 하여 마음이 아려오는 곡 중 하나이다. 아, 그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쇼팽이 폴란드 출신이었구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뿐이랴, 내가 이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인 이곳의 모든 것들은 결코,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뜬금없이 그를 들춰낸 것은, 폴란드는, 특히 바르샤바는 ‘쇼팽의 도시’라 내 머릿 속에 각인되어질 것만 같아서,인데,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다는 성 십자가 교회, 쇼팽의 첫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던 라지빌로프 궁전, 쇼팽의 다양한 자료들과 유품이 소장되어 있는 쇼팽 박물관, 매주 일요일 정오에 쇼팽의 동상 아래에서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 열리는 와지엔키 공원, 등이 그 까닭이다. 비록 그는 한줌의 재가 되었을지는 모르나, 그가 만든 멜로디는 이렇듯 살아 숨쉬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에 느긋함을 선물해주고 있다. 그곳에는 그 뿐만 아니라, 역대 폴란드 왕의 결혼식 및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성 얀 거리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성 요한 성당, 바르샤바의 수호신 인어상이 세워져 있는 리넥, 한국어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바르샤바 대학, 말발굽 모양을 닮은 바르바카 성벽, 퀴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녀의 생가를 개조한 퀴리부인 박물관,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는 사스키 공원, ‘구소련이 만든 바르샤바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문화과학궁전, 나치에 대항한 시민들의 활약상과 생활이 소개되어 있는 바르샤바 민중봉기 박물관,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게토 영웅 기념비 - 모두 그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중 ‘문화과학궁전’ - 한 장도 채 되지 못하게 쓰여진 이 건물에 호기가 생겨 책 속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지식을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폴란드인에게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스탈린이 언젠가 폴란드로 돌아오겠다며 지은 건물로 공산주의의 산물’이라고 한다. 때문에 “바르샤바 시내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문화과학궁전 전망대다." - 이 문장이 빌딩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로소 이 치욕스러운 건물을 볼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바르샤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 이 문장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건물을 볼 수 없으니까,  일상 속에서 바르샤바 사람들의 시야를 지배하는 그것을 날마다 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 그 이유다. 앞의 글을 미루어 볼 때, 이 건물은 폴란드인에게는 악감정으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강향조차 달콤한 ‘토룬’ - 그곳에 가고 싶은 저자의 세가지 이유 중 가장 궁금했던 것은 ‘진저 브레드’.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엔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인 안드로이드 버전을 생각했지만, 맛본다고? 그것을? 에? ... 그것은 다름 아닌 ‘생강빵’. 생강 냄새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나로서는, 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저자가 먹었다는 진저 브레드는 달콤하여 생강의 오해를 단숨에 날릴 수 있다며.- 하지만 그 달콤한 향 뒤로 올드타운에 구시청사를 대각선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코페르니쿠스 동상 쪽으로 머리를 향한 당나귀 한 마리. 과거에 고문도구를 모형화한 것이었는데, 그 사연을 듣고 보니 가디건에 손을 뻗게 만들 정도로 오스스해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 구석구석에 아픔이 많은 나라구나. 하지만 그 올드타운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 다행이다. 꼬리를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모자를 만지면 시험을 잘 보게 된다던 ‘행운의 필루스 동상’. 나는 그곳에 가면 아마, 욕심쟁이처럼 꼬리와 모자를 두 손에 쥘 것만 같다.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으니!

 

 

 

160명의 난쟁이가 숨어있는 곳, 브로츠와프’ - 수 천 개, 혹은 수 만 개의 자물쇠에 사랑의 맹세가 실려있는 툼스키 다리. 며칠 전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서 연인들의 사랑이 맹세한 자물쇠를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이 들었었다. 세상에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에. 하지만 이 도시의 묘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난쟁이들 찾기. 그야말로 난쟁이들과의 숨바꼭질.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그들 모두를 찾아내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난쟁이들과 인사한 뒤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는 곳, ‘크라쿠프’로 이동한다. - 성벽을 따라 아름다운 그림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지나는 여행자들의 다리를 붙들어 놓을 것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복닥거리는 마음에 한 모금의 여유로움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 여유로움이 채 남아있기도 전에 마지막 여행지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나치 강제 수용소. 그곳을 걸으며 자칫 주저앉을지도 모를 다리에 힘을 실어서 지탱했을 저자와,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의 사진까지 애정을 담아 바라본 뒤에 덮었는데도, 석연치 않은 마음이 응어리져 있는 것은, 여운이 너무 깊다,는 것이 그 까닭이다. 여행에세이를 읽고 이런 감정이 남은 것은 또 처음이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때문에, 책을 덮은 후에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길 않아 인터넷을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웬만한 것들에 대해서야, 그대로 넘어갔을 법 하지만, 나를 검색의 세계로까지 이끈 것은 단연 나치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가 아니었을까. 비록 그 관심의 주제가 슬픔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전쟁으로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든 파괴되는 유산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조치를 내리는가. 복원보다는 개발을 외치는 우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폴란드, 그곳에는 독일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유산들을 어떻게든 복원시키려고 하는 까닭에 지금의 바르샤바가 옛날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발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바르샤바를 내가 책으로 통해서나마 만나보지 못했을런지도 모르지.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빨리 걸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것. 길에서 길을 만나는 즐거움. 내용은 여행에세이라 칭하기엔 약간 부족할지 몰라도, 내게 있어 온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행에세이를 읽어본 것이, 오 작가의 책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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