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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 ㅣ In the Blue 4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전에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그곳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미니홈피를 통해서 그곳의 풍경을 언뜻 본 적이 있었는데, 빨간 지붕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모양새가 뇌리에 콕 박혀서 빠져나오질 못했었다. 그것을 보며 참 예쁘다,라는 탄성을 내지르고 사진을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보았었는지. 그 이유만으로 그 나라를 만나보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접했었는데, 그곳을 보다 따뜻하게 표현했던 책이 단연 백승선, 변혜정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 유독 여행 에세이에서만큼은 상냥하지 못한 나였음에도, 그들의 책을 읽으며 마음이 데워지는 것을 감출 길이 없었더랬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여행을 할 때에 가지고 있어야 할 지침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짤막하게 읊조리는 식이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번진다. 행복, 사랑, 달콤함, 선율 - 그것이 번져 나에게 막 뜨거운 물을 들이 부은 커피향보다 더 향긋함을 안겨준다. 이번에 그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온 곳은 폴란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폴란드,라고 불리우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물론, 폴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천지인 곳이 여럿이지만 -) 이 책만으로 작가들에 의하여 그 나라의 틀이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나라에 대해 검색을 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녹아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 둘 뾰루지처럼 튀어나오는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택한 것은, 모르는 것을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희열,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들의 발이 처음 내딛은 그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 이 도시를 말하기에 앞서 혹, 쇼팽이 누구인지 아는가. 쇼팽을 몰랐다면 그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던 저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쇼팽의 ‘이별곡’을 접한 바 있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 곡이 너무나도 구슬퍼서 들을 때마다 극중 윤수를 떠올리게 하여 마음이 아려오는 곡 중 하나이다. 아, 그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쇼팽이 폴란드 출신이었구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뿐이랴, 내가 이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인 이곳의 모든 것들은 결코,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뜬금없이 그를 들춰낸 것은, 폴란드는, 특히 바르샤바는 ‘쇼팽의 도시’라 내 머릿 속에 각인되어질 것만 같아서,인데,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다는 성 십자가 교회, 쇼팽의 첫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던 라지빌로프 궁전, 쇼팽의 다양한 자료들과 유품이 소장되어 있는 쇼팽 박물관, 매주 일요일 정오에 쇼팽의 동상 아래에서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 열리는 와지엔키 공원, 등이 그 까닭이다. 비록 그는 한줌의 재가 되었을지는 모르나, 그가 만든 멜로디는 이렇듯 살아 숨쉬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에 느긋함을 선물해주고 있다. 그곳에는 그 뿐만 아니라, 역대 폴란드 왕의 결혼식 및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성 얀 거리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성 요한 성당, 바르샤바의 수호신 인어상이 세워져 있는 리넥, 한국어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바르샤바 대학, 말발굽 모양을 닮은 바르바카 성벽, 퀴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녀의 생가를 개조한 퀴리부인 박물관,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는 사스키 공원, ‘구소련이 만든 바르샤바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문화과학궁전, 나치에 대항한 시민들의 활약상과 생활이 소개되어 있는 바르샤바 민중봉기 박물관,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게토 영웅 기념비 - 모두 그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중 ‘문화과학궁전’ - 한 장도 채 되지 못하게 쓰여진 이 건물에 호기가 생겨 책 속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지식을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폴란드인에게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스탈린이 언젠가 폴란드로 돌아오겠다며 지은 건물로 공산주의의 산물’이라고 한다. 때문에 “바르샤바 시내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문화과학궁전 전망대다." - 이 문장이 빌딩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로소 이 치욕스러운 건물을 볼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바르샤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 이 문장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건물을 볼 수 없으니까, 일상 속에서 바르샤바 사람들의 시야를 지배하는 그것을 날마다 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 그 이유다. 앞의 글을 미루어 볼 때, 이 건물은 폴란드인에게는 악감정으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강향조차 달콤한 ‘토룬’ - 그곳에 가고 싶은 저자의 세가지 이유 중 가장 궁금했던 것은 ‘진저 브레드’.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엔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인 안드로이드 버전을 생각했지만, 맛본다고? 그것을? 에? ... 그것은 다름 아닌 ‘생강빵’. 생강 냄새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나로서는, 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저자가 먹었다는 진저 브레드는 달콤하여 생강의 오해를 단숨에 날릴 수 있다며.- 하지만 그 달콤한 향 뒤로 올드타운에 구시청사를 대각선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코페르니쿠스 동상 쪽으로 머리를 향한 당나귀 한 마리. 과거에 고문도구를 모형화한 것이었는데, 그 사연을 듣고 보니 가디건에 손을 뻗게 만들 정도로 오스스해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 구석구석에 아픔이 많은 나라구나. 하지만 그 올드타운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 다행이다. 꼬리를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모자를 만지면 시험을 잘 보게 된다던 ‘행운의 필루스 동상’. 나는 그곳에 가면 아마, 욕심쟁이처럼 꼬리와 모자를 두 손에 쥘 것만 같다.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으니!
160명의 난쟁이가 숨어있는 곳, ‘브로츠와프’ - 수 천 개, 혹은 수 만 개의 자물쇠에 사랑의 맹세가 실려있는 툼스키 다리. 며칠 전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서 연인들의 사랑이 맹세한 자물쇠를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이 들었었다. 세상에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에. 하지만 이 도시의 묘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난쟁이들 찾기. 그야말로 난쟁이들과의 숨바꼭질.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그들 모두를 찾아내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난쟁이들과 인사한 뒤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는 곳, ‘크라쿠프’로 이동한다. - 성벽을 따라 아름다운 그림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지나는 여행자들의 다리를 붙들어 놓을 것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복닥거리는 마음에 한 모금의 여유로움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 여유로움이 채 남아있기도 전에 마지막 여행지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나치 강제 수용소. 그곳을 걸으며 자칫 주저앉을지도 모를 다리에 힘을 실어서 지탱했을 저자와,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의 사진까지 애정을 담아 바라본 뒤에 덮었는데도, 석연치 않은 마음이 응어리져 있는 것은, 여운이 너무 깊다,는 것이 그 까닭이다. 여행에세이를 읽고 이런 감정이 남은 것은 또 처음이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때문에, 책을 덮은 후에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길 않아 인터넷을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웬만한 것들에 대해서야, 그대로 넘어갔을 법 하지만, 나를 검색의 세계로까지 이끈 것은 단연 나치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가 아니었을까. 비록 그 관심의 주제가 슬픔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전쟁으로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든 파괴되는 유산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조치를 내리는가. 복원보다는 개발을 외치는 우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폴란드, 그곳에는 독일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유산들을 어떻게든 복원시키려고 하는 까닭에 지금의 바르샤바가 옛날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발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바르샤바를 내가 책으로 통해서나마 만나보지 못했을런지도 모르지.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빨리 걸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것. 길에서 길을 만나는 즐거움. 내용은 여행에세이라 칭하기엔 약간 부족할지 몰라도, 내게 있어 온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행에세이를 읽어본 것이, 테오 작가의 책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