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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전경린 공명 산문집
전경린 글, 이보름 그림 / 늘푸른소나무 / 2006년 3월
평점 :
오랫동안 지속되는 싱숭생숭함의 근원지를 알지 못해 방황했고, 혹은 알면서도 회피해버림으로 인해 급기야 황량한 바람이 공허한 폐 속에 그득하게 들어찼다. 타인과 대화를 하려 호흡을 내쉬면, 서리는 냉기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결국은 나조차도 지친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치게 만들기 위해 다가오는 어떤 것도 방어할 수가 없는 무방비 상태. 면연력이 필요하지, 싶은데 우선 폐 속에 들어찬 찬 바람을 좀 몰아내자, 싶었고 사실은 그게 급선무였을 게다. 내가 웃을 수 있는 것. 주변 이들. 그들을 만나고 마음껏 웃고 떠들며 즐겼다고 생각했고, 또 사실이 그랬는데 단 한 순간도 그 순간들이 지겹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미친듯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울음으로 번지게 되고. 이게, 어디서 오는거지, 도대체. 어떤 것의 결핍이 이런 괴기한 현상을 낳은 거지. 그러던 중 전경린의 나비를 만났다. 나비. 팔랑팔랑거리는. - 이것이 내 마음에서 팔랑팔랑거리며 스며들어오길 바라면서.
생이 변하는 순간과 떠나려는 순간, 그리고 영원히 머무르는 순간을 알 수 있다. 스물 다섯 살에는 그 순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나는, 2011년인 올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뜨는 즉시 스물 다섯 살이 된다. 스물 다섯. 상상도 못 해본 나이인데,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왔네. 이를 어쩌나. 스무 살, 학교에 갓 들어간 내가 스물 다섯 살 복학생과 대면한 후 친밀감이 형성되었을 때, “오빠 참 늙었네요. 난 그 나이가 되려면 다섯 손가락만큼 더 살아야하는데..”라 말하며 깔깔댔었다. 스무 살에게 스물 다섯은 얼마나 높고, 또 얼마나 아득한가. 그런데 벌써 스물 넷의 나,가 되었고, 곧 스물 다섯의 나,가 될 예정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온 몸이 그녀의 문장에 동요한다. 아니, 동요된다. “난 아직 어려. 아직은 좀 더 ~해도 돼.”라는 내 생각과 충돌을 일으킨 지금. 내가 무얼 생각할 수 있고, 무얼 생각해야 할까. 외로움에 사무치던 그 때에, 친구를 기다리며 이 문장을 읽고 시선이 친구와 함께 하는 그 순간에도 내내 그 문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둔 채로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말하는 것이다. “나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 회한섞인 내 말에 “넌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어.”라 답하던 친구. 하마터면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주책맞게 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 ‘나 정말 열심히 살고있는걸까. 혹, 열심히 사는 척이 아니고...’
나는 그의 냄새를 사랑했다.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는 세상을 향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내 인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그의 전 생애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 또한 단 하나의 남자를 사랑하며 평생 동안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 우리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나의 꿈은 그것뿐이며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랑’에 실패한 이 후, 다시는 그것에 나자빠지지 말자, 다짐했었다. 지금에서야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시는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지만, 온 몸 구석구석이 아파서 앓아누웠을 정도로 사랑에게서 받은 상처는, 그리고 내 사랑에 대한 실망은 불쾌할 만큼 지독한 몸살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극복하고, (사실, 그걸 극복했다고 말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난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와 손을 맞잡았다. - 두 해 전 지금의 그가, 기차에서 내려서 음료수를 사는데, 직원에게서 나와 똑같은 냄새를 맡았다고 얘길하길래, ‘이 사람이 무슨 얘길하고 싶어서 이러는가.’ 싶어, 무슨 냄새?라고 되물었고, 그는, ‘당신이 쓰는 샴푸냄새’라 답했다. ‘이 남자, 내가 쓰는 샴푸 냄새를 기억하는구나.’싶어 울컥했던 적도 있었다. 이렇듯, 어떤 특정한 향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향도 있다. 그건, 사람의 냄새. 사람에게서는 각자의 향기가 있는 탓인지, 그는 나와 헤어지고 ‘내 손에서 당신 냄새가 나.’라고 곧잘 말하고 했는데, 그때 내 손에서도 그의 냄새가 콧 속 깊은 곳을 간지럽히고 있더란 것. 이 문장을 서너 번 눈으로 훑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읊어주고, 그때의 에피소드 아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예전엔 그랬었는데..’라며 깔깔거렸다. - 사실 그의 냄새는 비오는 날이면 더 짙어지는데,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고 걸으면 그와 밀착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만남 중 비가 오는 날이면, 짜증날 법도 하건만, 당신 냄새가 짙어져서 좋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풉.
전경린, 이 작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만나 호기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내 정신과 육체, 어느 한쪽 먼저랄 것도 없이 치우침없이 지쳐있었던 탓에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지, 싶다. 책이라는 게,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웃고 싶을 때 즐겁고 유쾌한 책을, 울고 싶을 땐 한 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슬픈 책을, 위로받고 싶을 땐 마주잡은 손에서 온기가 폴폴 피어나게 하는 책을 만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전경린의 나비,는 한번쯤, 사랑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꽤 공감표를 던지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경린이 이 책을 쓴 시기가, 자신이 사랑에 실패한 때에 썼던 책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릿했는데, 어쩌면 이 책, 사랑에 다친 사람들을 들춰업고 치료하여 다시 사랑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위험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사랑은 거절할 수 없는 미혹이며, 독이 퍼지는 듯한 도취이며, 백다섯 조각의 처형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이란,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이다. 더없이 신성하고, 더없이 누추한 비상이면서 동시에 추락인 이상한 벼랑이다. 아, 좋다. 밤새도록 끌어안고 몇 번이고 되뇌이고 싶을 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