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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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혹시 아름다운 달일까,하는 오지랖도 떨어가며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했던 작가. 책장의 어딘가에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일전에 읽어봐야지, 해놓고 단편 한편도 채 읽지 못하고 잠시 덮어두었던 책 속에 작가의 단편도 함께 있을 터인데, 읽고 있는 책을 책 속에 파묻혀 읽고 오고자 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책을 추천해주었던 걸 생각해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출해왔더랬다.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답을 자꾸만 도출해내려는 그것, 때문에.

그런데 있지, 넌 꿈이 뭐니?”

꿈이 없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걷어차인 스물다섯의 오영대. 그것은 CK청바지를 사려던 20만원으로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구하는 것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독립을 한 것이다. 십팔,마리의 모기들이 짓눌려 죽은 채로 붙어있는 벽, 똥이 얼어서 물이 내려가지도 않는 화장실. 그곳이 이제 그가 지내야하는 방인 것이다. ‘잠만 자는 방그리고 그곳에는 마지막 장까지 손으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노트 상자가 발견된다. 아마 그 방에 살았던 여자의 것이리라. 여덟 번째 방

스무 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시기를 채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시기를 지나 버린 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환상을 갖게 하는 이름이다. p49

노트 여덟 번째 방에는 여자(김지영)가 거처했던 방들과 그 방에서 살 때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 적혀있었다. 노트 속의 지영이나 노트 밖의 영대나 그리고 그들을 몰래 관찰하며 안쓰러운 청춘이네,라고 읊조리는 나도, 허공을 유영하는 실체 없는 대상을 매만져보겠다고 버둥거리지만, 실상은 그 손을 뻗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다. 무턱대고 뻗은 내 손에 잡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이리라. 어찌하여 1980년이나, 1990년이나, 2000년이나, 2010년이나 모두 같을 수가 있지. 생각하며 숨이 턱 막혀온다.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 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p227

실은 지금 다니던 회사를 퇴직 후에 약간의 회의감을 안고 살고 있는 한 달이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참 좋은 책을 만났다. (물론 이것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한결같다는 것에 놀랍다.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일들을 내 옆에 있는 당신과 함께. 맛있는 반찬들을 골고루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내게 나이라는 건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나이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삶이 해마다 잊지도 않고 내게 갈아입혀 주는 옷이 매번 팔이 짧거나 목이 좁아 입기 불편했던 것은 옷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신체 비례가 불균형하기 때문이었다. p47

그 많은 방들에 나는 내 20대를 골고루 부려 놓았다. 나에게 방은 집에 부속된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집 자체였다. 부등식 <이 아니라 등식 =이 성립되는 곳이었다. 그 많은 방들을 거치며 이제 나는 서른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지나온 길 위에 두고 온 나만의 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곤 한다. 방들 속에 고여 있는 기쁨과 슬픔과 꿈과 절망과 환희와 분노는 하나같이 모서리가 닳아있었다. 말랑말랑해진 그 모서리들을 만져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p49-50

절대 바뀔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 그런 것이 또 하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는 걸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에는 모두 변하고 지나가고 잊히고 사라져 가게 마련인 것일까. p76p

바람이 불었다. 책으로 쌓아 올린 내 일상이,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 내 청춘의 페이지가 한 장씩 한 장씩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그것이 아쉽고 억울해서 나는 장판에 짓눌린 뺨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p129

가끔은 그가 했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종이 위에 그대로 옮겨 써 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것이 가진 실체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발화되는 순간 휘발되고 마는 음성 언어의 찰나를 박제화하는 것이 문자 언어라는 것을, 나는 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체감했다. p164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야.” p218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특별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줄 알거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나 되어서야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인지 아닌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한단 말이야.”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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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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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혹성탈출을 보지 않았다. 원래 SF적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요, 소재 역시 별로 끌리지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다. 그러다가 이 책을 선물 받았는데 끌리지 않는 표지에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가, 집에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어야지, 해서 손에 들었더랬다. 사실 30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내게는 너무 어렵기만 한 행성들의 부연설명이 나열되어 있기도 하고, 그다지 이목을 끌 만 한 것이 없었던 까닭. 30페이지만 넘어가면 어렵지 않게 아니, 오히려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 지난 주말, 대구에 있는 결혼식장을 가며, “나 고릴라 이야기 읽고 싶어.”라고 말하며, 책 가져올걸! 할 정도로.

 

 

 

 

 

 

 

 

우주에 떠다니는 유리병, 그 안에는 지구의 언어로 글이 쓰여 있다. “나는 이 일기를 우주 공간에 띄웁니다.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닥쳐올 끔찍한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주 탐사단원인 르벵, 앙텔 교수, 윌리스는 소로르 행성에 착륙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호수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모래밭에 인간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것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노바. 그녀는 대담하게도 맨몸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총성이 들렸다. 그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했고, 우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야했다. 그것은 분명 고릴라였다. 내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소로르에서 고릴라와 마주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릴라가 지구인처럼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p55-56

 

  

 

 

 

 

 

 

 

,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이제야 읽었다니, 1963년에 초판 되었던 책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할 수 있나, 어쩌면 작가가 기발한 사람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달수록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어만 갔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반전에 그만 숨이 턱 막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J군에게 말했다 나 유인원 무서워. 꿈에 나오면 어쩌지?”

 

 

 

 

 

 

 

 

 

 

 

고릴라가 머리에 쓴 모자가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웃음을 자아내는 볼거리겠지만 나에게는 고통의 원인이었다. 이곳에서 유인원들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모자와 머리는 조화를 이루었고, 유인원들의 모든 몸짓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암컷 고릴라는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느 사냥꾼 고릴라는 호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 꼼꼼하게 담배를 채운 후 불을 붙였다. 그 행동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p70

 

 

 

 

 

 

지구인들은 이렇게 목걸이에 묶여 유인원에게 끌려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겠지?”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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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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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한 시간 삼십분 동안 그녀를 다시마주했다. 책을 덮고 나서야 갑작스레 온 몸에 오한이 일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처음보다 더 깊은 떨림을 안긴다. 나에게 그 떨림을 주는 이는, 봉순이 언니인가 아니면, 짱아를 가장한 공지영 작가인가. 그도 아니면 봉순이 언니를 바라보는 짱아일지도.

 

 

 

 

 

 

우선적으로 말할 것이 있다. 봉순이 언니이 책은 참 뜻깊다. 끝내는 울어버리게 만들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아니었고, J군과 나를 조금 더 돈독하게 만들어주었던, 도가니도 아니었으며, 작가 스스로의 삶을 작가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보여 신물 나게 읽혔던 즐거운 나의 집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열아홉, 열여덟, 그도 아니면 열일곱. 그 삼 년 중 아릿한 어느 파편의 어떤 시간이었다. 청소년공부방이라는 곳에 비치되어있던 봉순이 언니를 읽었다. 한 번 읽고, 두 번을 읽었다. 그 당시 집에 읽을 책이 동화책 외에 가시고기밖에 없어서 그 책을 두 번, 세 번, 예닐곱 번 읽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른 책들도 있었는데, 정작 내 눈에 꽂힌 것은 양귀자의 모순과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뿐이었다. 나는 그 두 책을 매번 대출했고, 번갈아가며 읽었다. 세상에 그 책들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잊고 있었다. 내게는 읽을 책이 많이 생겼으니까. 그러다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이 책과 조우하는 순간, 정말, 숨을 못 쉬겠는 거다.

 

 

 

 

 

 

엄마, 봉순이 언니는 우리 식구 아냐?”

아니긴. 우리 식구지.” p41

 

 

식구였던, 아니 식구로 생각하려고 했던 봉순이 언니. 하지만 식구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이 식구가 아님을.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울어도, 식구가 될 수 없음을. 까지 쓰고, 이 책의 줄거리를 이제 와서 쓰면 뭣하나, 생각한다. 책의 어느 장을 펼쳐도 다음 이야기가 바로 이어질 만큼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그러하다면, 추억하면 그만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던 그때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봉순이 언니가 등신 같다고 생각을 했었나, 세탁소 남자는 죽어버리라고 생각을 했었나, 짱아엄마가 너무하다고 생각을 했었나, 왜 그녀의 편에서 서주지 않았는지 원망을 했었나. 아니, 그 모두일 거다. 질겅질겅 씹어대 더 이상 씹히지 않는 마른 오징어 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어째서 고등학생이었을 나는 오래도록, 읽어댔을까. 독후감이라는 기록의 산물이 지금 내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나는 공지영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앞서 얘기했듯, 본인 이야기를 미화시켜 핑계거리로 삼는 것도, 사회의 가운데에서 이야기를 쓰는 것도. 사실,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봉순이 언니는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미치도록, 싫으면서 놓을 수가 없다. 개정판으로 바뀌면서 작가의 말이 하나 추가가 되었는데, 봉순이 언니를 만났다고. 봉순이 언니는 안녕하던가요? ... 잘 살고 있었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촌스럽게 이 안도감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알고 있었다. 언니는, 봉순이 언니는 오래오래 울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p50

 

 

 

 

나를 놀리기만 하는 언니와 오빠를 대신해서 이제 아버지가 나의 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무너져버렸고, 내게 남은 것은 봉순이 언니뿐이었다. 그녀만이 우는 나를 달래주었고, 그녀만이 내 잠자리의 베개를 고쳐놓아 주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다. p51

 

 

 

 

언니가 없이 나는 처음으로 부당한 세상과 대면했다. p68

 

 

 

 

나도 한 번쯤 무리 속에 서서 나처럼 술래가 되는 아이를 곯려주고 싶었다. 저들이 끼워만 준다면 한 번만이라도 나를 술래를 면하게 해준다면, 절대로 잡히지 않고, 싱싱하게 술래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었다. 나처럼 가련한 술래가 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게임의 법칙을 위반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거세게 항의를 한다 해도, 다른 아이들이 아니야, 넌 틀리고 우리가 맞아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다수의 편에 서서 우기고 싶었다. 그건 정당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건 힘이고, 그건 아주 달콤하고, 의기양양하고, 그리고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이제 봉순이 언니도 더는 나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 p78

 

 

 

 

그때 깨알아야 했다. 인간이 가진 무수하고 수많은 마음갈래 중에서 끝내 내게 적의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설마, 설마,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가 그럴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그 희망의 독. 아무리 규칙을 지켜도 끝내 파울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악착스러운 진리를 내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그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다. 이런 경험을 그 이후에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나는 왜 인간이 끝내는 선할 것이고 규칙은 결국 공정함으로 귀결될 거라고 그토록 집요하게 믿고 있었을까. p81

 

 

 

 

아직도 봉순이 언니는 내가 서러울 때, 내가 따돌림당할 때, 내가 혼자 외로울 때 나를 안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였고 언니였고 그러면서 친구인 그녀는, 내 첫사람이었다. p88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아주 오래도록,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몰릴 지경만 아니라면,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고 이미 생각해온 것, 혹은 이랬으면 하는 것만을 원한다는 것을. p140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색한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p156

 

 

 

 

이제 언니가 돌아왔지만 나는 뭐랄까, 굵은 소금밭에 누워있는 것처럼 온몸이 쓰리고 불편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시간이 한 번 흐르고 나면 누구도 예전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예전으로 태연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p164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 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p196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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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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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책을 이야기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여자 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에서 책의 구절을 인용한 것에 이 책은 꼭 읽어야겠어!”라며 남몰래 위시로 담아두고 있었던 것. 결론은, 나는 총 이 책을 두 번을 읽었다. 한 번은 앙드레 고르의 삶을 만나기 전에, 또 한 번은 만난 후에. 나는 그의 책, 배반자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난해함을 느꼈는데, 그의 삶을 살짝 엿보고 나니, 그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는 척이나마 할 수가 있었다.

 

 

 

 

 

당신을 내게 줌으로써 를 내게 준 사람에게.

 

게르하르트 히르쉬, 제라르 호르스트, 미셸 보스케, 앙드레 고르. 정체성 불안, 그것을 잡아준 것은 아내 도린이었다. 자신과 화해하도록 도운 것. 하지만 고르는 그 역시도 도린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르는 아내 도린을 본인의 저서 배반자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프랑스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내가 없었다면 망가져버렸을 여자,라며 불쌍하고 나약하며 의존적인 인물로 그려서 그야말로 배반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되었다.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도린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지, 얼마만큼의 사랑과 애정, 존경을 가지고 있는지 이 편지를 통해 삶의 문턱에서 전하고 싶었겠지. 그들의 죽음이 옳다, 그르다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적어도 본인에게는 옳은 일이었겠지. 책 표지와 가장 뒷장에는 고르와 도린의 사진이 있는데, 오래도록 쳐다보게 된다.

 

 

 

 

 

 

죽음에 이상적인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혹여나, 그런 이상적인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한다면, 나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죽었으면 좋겠어.” “? 마지막까지 놀다왔으니까?” “아니, 마지막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죽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생의 불안 가운데에 살고 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먼 훗날의 이야기였으면 하는, 이야기. 이따금 J군에게 나는 신신당부를 하곤 한다. “만약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꼭 먼저 죽어야한다면, 그건 꼭 나여야만 해. 난 자신이 없어. 그러니까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

 

 

글쟁이였습니다. 글쟁이는 써야겠다는 욕구를 주제가 받쳐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작가가 됩니다. 이때 주제는 써야겠다는 욕구를 계획으로 정리해주거나 또는 그렇게 정리하라고 요구합니다. 일생 동안 글을 쓰면서도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출판하지 못하는 작가가 족히 수백만 명은 됩니다. 당신도 그런 단계를 거쳐보았지요. 처음부터 당신은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 계획을 끝없이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누누이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삶은 글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 글을 써요.” 내 소명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당신의 소명인 것처럼요.

 

 

우리는 가치관이 똑같았습니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인지, 삶에서 의미를 앗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의 개념이 같앗던 것이지요.

 

 

앞으로는 우리를 미래에 투사하지 말고 이번에야말고 정말 우리의 현재를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오탈자 : 39페이지 맨 마지막 줄 : 그때 알게 된 학생과 교사 들이 여러 해 동안 ▶▶▶ 그때 알게 된 학생과 교사들이 여러 해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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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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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나토 가나에를 알게 한 것은, 고백이었다. 그것을 빼놓고 그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의 열기는 대단했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만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의 작품을 하나씩 접할 때마다 전작 같지 않네.” 라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읽었던 그의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엉성하거나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전작과 비교를 하면서 읽다보니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만난 「꽃 사슬」- 내가 읽기 전 이미 읽은 이들의 호평이 행렬을 이루어 더 기대가 되던 책.

 

 

 

 

사람은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서, 한 번 사슬을 끊어도 다른 곳에서 연결되어 있나 봐요. p236

 

아카시아 상점가 중심에 있는 매향당에서 긴쓰바를 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 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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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사인 그녀, 다니던 학원이 부도가 났다. 월급도,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그녀에게 가족이라고는 외할머니뿐인데, 외할머니는 수술을 앞두고 있다. 할머니 저금에서 수술비를 충당해도 되느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할머니는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갖고 싶은 것이 있다. 그녀에게는 이 필요하다. 키다리아저씨, K. 그를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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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이 중역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5년 동안 아이가 없는 것을 제한다면, 그녀는 남편과의 생활이 행복하다. 남편은 설계를 하고 싶어 했고, 마침 공모전이 열렸다. 그런데 일이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후 소나기 계곡,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진실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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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친구를 통해 산악회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 같은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으로 그녀는 일절 연락을 끊어버린다. 이후에 매향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거를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그녀 앞에, 친구가 찾아와서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며 부탁을 한다.

 

 

 

 

집 지키는 데는 이력이 났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온다’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사이에는 깊고 큰 도랑이 있다. 물론 거기에 다리 같은 건 없다.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p19

 

사실 이 이야기를, 서평에 어떻게 담아내야할지 고민을 했다. 이 책을 참 괜찮게 읽었기에, 다른 이들도 서평을 보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어떤 이야기를 해도 복선 같았고, 내 어떤 생각을 내뱉어도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내 서평이니까, 훗날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읽었을 때, 내용들이,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들이 생각날 수 있는 그런 서평이었으면 좋겠으니까, 대충의 줄거리는 써놓는 게 좋겠다 싶었다. 혹자는 역시 고백보다는 아니다.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언제까지나 전작에만 얽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 나 역시 전작에 비해 별로,라며 차댔던 작품들이 비단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뿐이었으랴. 오 년 후에는 <고백>이 아닌 새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녀는 압박감을 얼마나 받았을까 싶다. 이것보다 더! 이것보다 더! 라고 외치는 팬들 앞에서, 자식 같은 작품을 내면서 예뻐해주지 못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꽃 사슬은 무려 오 년 동안 그녀의 가슴 안에서 태동하던 이야기들이었으리라. 그녀의 끝없는 행보를 오래도록 응원해주련다. 미나토 가나에니까. 파란 용담을 품에 가득 안은 채, 입 안에 향긋한 긴쓰바를 넣고 오물오물거리고 싶은, 2015년 겨울 끝자락이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소나기 계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서평을 읽어보니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진실을 알아야한다.’는 글을 보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수긍할 수 있는 말. 하지만, 그렇다면 과거를 지우고 싶은 여자는 누구일까, 생각해보기도 하고.꽃 사슬을 읽은 독자만이 참가할 수 있는 사슬.

 

 

 

[아리송한] 오탈자.

 

페이지260 : 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가즈야 씨에게는 보다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어.

 

(문맥상) 와 결혼하지 않았다면,으로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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