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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평점 :
나는 믿었다. 아니 믿었었다. 언제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된 믿음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 쓰레기도 못한 대통령, 정치인, 경찰, 군인, 의사들은 많을지언정, 법관만큼은 올곧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타인의 자유를, 삶을 말 한 마디로 결정하는 사람인만큼, 그럴 것이라 은연중에 믿어왔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믿음은 너무 가혹하게 깨졌다. 세상에 믿을 새끼 하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싶었다. 경험해본 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법의 원칙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세워지지 않았고, 법관이라는 것들은 그것에 대한 경중도 판단하지 못하며, 그것 또한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한 의심이 싹텄다. 오래전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도 이서영 역을 맡은 이보영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타인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 힘들어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겠노라,고.
그리고 지랄도 염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게도 내가 그러한 사건을 겪고 나서 줄줄이 진경준 검사장, 현직부장판사 성매매, 사채왕 뇌물수수 받은 前판사, 정운호 구명로비 판사 연루 의혹 등 뉴스에 재미난 사건들이 뜨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사건들이었는데, 내가 커다란 구멍을 겪은 탓인지, 무척이나 재미나게 다가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거짓말 같은 사건들이.
그래서였다. 안천식이라는 변호사가 쓴 이 책이,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까닭이.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목차만 보고- 여러 사건을 다룬 것인 줄 알았고, 그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의 사법을 비판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건에 대해 18차례 싸운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문장 해석에 따라 故기노걸 씨나 기을호 씨에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법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여겨진다. (= 절대로 사건이 흥미롭다는 뜻이 아님을 오해 마시기를.)
D건설은 주택건설 사업을 위하여, 향산리 주민 24가구의 지주들과 토지에 대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중 한 사람인 기노걸 씨는 1997년 19억 6,000만 원에 토지에 대한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9억 8,300만 원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D건설은 1998년 IMF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H건설에게 승계하게 된다. 그 사이에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40억 원까지 오르기 시작했고, 기노걸 씨는 약속한 잔금지급기일 내에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대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H건설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2004년 기노걸 씨는 뇌출혈로 사망한다. 그리고 H건설은 곧바로 기노걸 씨의 장남 기을호 씨에게 D건설로부터 승계를 받았으며, 기노걸 씨와 1999년 재계약을 했다고 하며 땅을 내놓아라, 요구한다.
하지만,
계약서에 기재가 되어있는 필체는 아버지 기노걸 씨의 것이 아니고, 막도장이었으며, 기재되어있는 계좌번호는 1997년에 해지된 예금통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D건설의 계약서를 보고 H건설에서 승계계약서를 위조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의 감정결과는 충격이었다. 사설 문서감정원장들도 대검찰청 감정결과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하였다. 무엇인가 거대한 힘이 이 사건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p.98
/ “에…… 꼭 재정신청 사건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항소하더라도 무죄 부분이 번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고, 형량도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항소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지요.”
국민의 기본권은 그렇게 유린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구석구석에서 오열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단지 커튼 뒤에서 사라져가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p.165
읽는 도중, 몇 번이고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이에게 “나 이 책 읽기 싫어.”라고 말했다. 증인들의 뻔뻔한 거짓말들을 속아주는 거로 모자라, 증인신문조서엔 삭제된 진술이 있으며, 검사로부터 무시와 박해를 당하며, 상고를 하기 전부터 기각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시한 후 상고를 해도 기각당하기 일쑤이며, 위증죄로 신고했더니 도리어 무고죄로 신고당하며, 뻔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묵살당하기 일쑤인, 또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지 않은 사항(구상금 청구를 했을 뿐인데 부당이익금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한 것)을 별도로 심리하여 판단하는 변론주의에 반하는 판결.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내가 태연히 읽어나갈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능력도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이었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소위 말해서 힘없고 배경 없는 서민들은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재산 잃고 억울한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인 것이다. p.101
10년의 법정 싸움 끝은, 기을호 씨는 땅을 빼앗기고 돈까지 빼앗겼으며, 건강까지도 빼앗겼다. 기을호 씨만 불쌍하게 되었다. 로 끝나고 만다.
그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받은 9억 8,300만 원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을 더 쳐서 받기는커녕, 애초에 계약했던 잔금도 다 받지 못 했다. 그 돈에서 기을호 씨는 철거보상비로 50%나 증액된 3억 원을 내야 한다고 법원은 판시한다. 그 철거보상비라는 것은 D건설과 계약 시에 이주 보상비에 대한 2억 원으로 약정했다. 하지만 H건설과의 계약서엔 그런 부분이 명시되어있지 않으며, 3억 원이라는 금액이 어째서 적정한지 어떠한 근거도 없다. 또한 얼마 전에는 H건설로부터 2차 재심과 상고심 소송비용의 지급을 요구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헌법을 달달 외우던 정치 시간이 참 좋았다. 그 헌법을 외우고 있노라면, 공산주의로부터 멀어진 기분이 들었고, 나는 마치 이 나라에 주인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해지기만 했다. 따라서 가장 좋았던 헌법은 제1조 2항이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이 가당키나 한가? 법 또한 이 나라를 살기 위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나오는 것이거늘, 지금 법은 누구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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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서평을 쓰며 마지막으로 나도 한 마디 해야겠다. 며칠 전 나는 대전고등법원에 민원을 제기한 바 있었다. 이유인즉슨, 불친절한 응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처리가 되어있었다. 왜 일처리가 그렇게 된 것인지 적어도 나는 알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는 것에 그들은 앞뒤 설명 없이,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았겠나.”하고 말을 했다. 그 대응에 화가 난 나는 직접적인 사과를 원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죄송하다는 서면에 나는 그보다 위에 있는 직급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요구했고, 통화에 의하면, “저는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강제적으로 하라고 시킵니까?”라는 답변이었다. 기피 신청에도 소용없이 그쪽 감찰실로 들어갔고, 세 번의 똑같은 요구의 내 민원은 법 조항이랍시고 끼적거리며 강제적으로 민원을 종결시키겠다는 마지막 서면을 받았다. 그게 바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것이지. 내가 이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서평으로나마 이렇게 싸지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참으로 지체 높으신 분들이라 하잘 것 없는 민원인은 찌그러져 있어야 하지요. 참 잘났다, 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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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차라리 「소수의견」처럼 소설화되어 읽을 수 있었다면 좀 더 편했을까? 생각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읽기가 힘들었다는 것은, 반복되는 이야기에 조금 지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입 다물고 잠자코 내 권리를 찾아주겠지. 하고 있으면 아무도 내 권리를 되찾아주지 않으니까.
오탈자 p.155 11째줄
<증인A>가 거짓증언한 사실“이 있더라고, 이 사건 계약서가 위조되었다는 증거로 부족하다고 한다 ▶ 있더라도
오탈자 p.223 5째줄
그 외 2000년 2월경에 위조 작성된 정일석 등 4인 명의의 부동산매매계약서는 <증A>의 필적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 ▶ <증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