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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ㅣ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아까워해서는 안 되는 계절,
바야흐로
봄이다.
지난주부터
강의를 차근차근 듣고 있는데,
그
중 내 마음을 사로잡는 과목은 여섯 개 중 겨우 두 개뿐인데,
그
중 하나는 역시나 ‘독서와
논술의 이해’다.
나는
내가 지닌 있는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교육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어쩐지
독서지도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동한다.
모르는
아이가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자식이 생긴다면,
조카가
생긴다면,
하는
미래를 바탕으로 꽤 재미있게 듣고 있는 과목.
그
과목에서 추천 동화가 여럿 나왔고 주말이 지나고 도서관을 찾아 그 동화책들을 검색하였으나 나오지 않는 게 더 많았다.
그
중 발견한 것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이
제목으로 불과 며칠 전 영화가 상영되었던 것을 텔레비전에서 접했는데,
더빙이라는
점이 무척이나 불편해서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추천동화책에 당당하게 올라와 있지만, 난
이 책이 무척 불편하다.
물론,
잎싹(닭)이
양계장에서 탈출하여 마당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구체적인 소망을 품는 부분,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는 부분,
나그네(청둥오리)와
잎싹이 사냥꾼(족제비)에게서
초록머리(오리)를
지켜내려는 부성애와 모성애.
잎싹과
사냥꾼이 새끼들의 어미로서 지닌 공통적인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질문과 더불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배울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엉뚱하게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초록머리는
종내 청둥오리 중에서도 어엿한 파수꾼이 되어 살아가지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1.
“암탉이
깠어도 오리는 오리야!
우리
족속은 헤엄치고 자맥질하는 습성을 결코 잊지 않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당연히 안단 말씀이야.
(중략)”
마당에서
도망쳐 나와 족제비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키울 수밖에 없는 잎싹에게 마당에 사는 우두머리인 집오리가 "아기
오리를 데려 가겠다."하니
본인이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점.
2.
“엄마,
나,
오랫동안
생각해 봤어요.”
“우리,
마당으로
가는 게 어때요?
외톨이로
사는 게 싫어.”
“마당으로
가자고?”
“어차피
나는 오리인걸.
괙괙거릴
수밖에 없어.”
“그게
뭐 어떠니.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니.
엄마,
나는
모르겠어.
이러다가
집오리들이 끝내 받아주지 않을까 봐 겁나.
나도
무리에 끼고 싶어.”
“아가,
우리는
여태 잘 지냈잖아.
너는
영특해서 헤엄치고 나는 것도 혼자 터득했는데…….”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아.
그래도
우리는 서로 다르잖아.”
“다르게
생겼지.
그래도
나는 네가 있어서 기뻐.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아기니까.”
“엄마는
마당으로 가요.
나는
무리에 낄 테야!”
초록머리가
'나는
야생오리도 아니고 집오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외톨이로
사는 게 싫어.
마당으로
가서 집오리들과 어울리고 싶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잎싹은 본인이 마당에서 초록머리를 데리고 나왔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
내가
불편해하는 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초록머리도
본인이 집오리로 살 것인지 혹은 청둥오리로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여러 선택권이 있음을 오리에게 인지를 시켜주고 그 선택은
오리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해,
잎싹은
내가 품어 부화한 내 아이-로
오리의 삶을 본인의 삶과 동일시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은 꼭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삶을 움켜쥐고 '넌
이렇게 해야만 해.
엄마가
시키는 거니까 무조건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나오는 불편함이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 책을 읽은 초등생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을지 궁금했다.
교수님과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순수하게
동화를 읽으라고 했더니 트집을 잡고 있네.’라고
생각하신 건 아닐까?
그래도
교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독서논술수업은 동화에 대한 감상만이 아닌 비판과 다른 의견 제시까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생각해보니
일전에 구이도 콘티의 『닐로의
행복한 비행』을
읽고도 혼자 열렬히 비판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너무 세상을 비뚤게 틀어놓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어쩌면
동화를 읽는 내 시선이 너무나도 협소하고 단편적인 것도 문제라면 문제인데,
그것을
내 자신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어쩌랴.
보다
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