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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스페인 어느새 포르투갈 - 찬란한 청춘의 첫 번째 홀로여행
김미림 지음 / 성안북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너무 추운 겨울과 너무 더운 여름(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여름휴가를 제외하고는)에는 잘 다니지 않는 편이다. 내 친구의 말처럼 어쩌면 난 딱 그만큼만 여행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와 진짜 추웠어! 혹은 와 진짜 더웠어! 로 끝나는 여행은 과정이야 어쨌든 추억으로 남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더 짙은 경험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고스란히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내가 하는 일은, 여행기를 찾아보는 일이다. 책도 좋고, 블로그도 좋고, 카페도 좋다. 그러면서 가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다녀온 곳에 대해서는 나의 여행이 오버랩이 되는 매우 야릇한 경험도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다녀온 곳은 더 꼼꼼하게 보면서 “뭐야! 나 여기 못 다녀왔는데 ㅠㅠ 여기 어떻게 갔지? 여보여보, 우리는 여기 들어가려고 했는데 못 들어갔잖아!!!” (이를테면, 프라하 틴성당...) 하며 이런 아쉬움이 격한 감정으로 바뀌기도 일쑤이고. 또 꼭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여행을 눈으로 좇는 일, 사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어떤 날에는 하루 온종일 여행기에 빠져있는 날도 있다. 그이가 핸드폰 좀 그만해!라고 타박하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핸드폰을 off 시켜야 하는 날도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으레 ‘여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릴 적 여행이 전부였으니까. 어릴 적 여행은, 집안의 모든 물건, 그러니까 텐트부터 시작하여 그릇이며 냄비며 집안의 살림들을 전부 다 가져갔다가 전부 다 가지고 오는 일. 물론 어릴 때의 여행에 대한 추억은 깊어서 무궁할 정도지만, 조금씩 크면서 여행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 까닭이었다. 또한 어딘가를 다녀와서의 그 피로함도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작용되었는데, 2013년 결혼 직전에 전국 여행을 하면서 뒤늦게 여행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날은 점점 따듯해지고 있고,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던 나도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켤 일만 남았다. 이제 슬슬 준비하던 여행들을 하나둘 가동해야지 부릉부릉=333 하고 있는 찰나에 눈에 띈 책. 「어쩌다 스페인 어느새 포르투갈」
그 책이 조금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곧 다가올 포르투갈 여행이 있어서이기는 했지만, “넌 여행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가봐.”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고 싶은 곳과 아닌 곳이 분명한 탓에 스페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였는데, 블로그 이웃 중 내가 참 좋아하는 엘리 님의 스페인 여행기를 보며 나도 언젠가 빼곡한 톨레도의 전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 스페인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그저 해외여행이라는 막연함 때문에 가지도 못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여행기를 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예전엔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미지의 곳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윤활유가 된다는 것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욕심나던 것.1
셀프 가이드북! 사실 나는 여기엔 뭐가 있고 뭐가 있으니 이렇게 가야겠다.는 식의 동선을 짜는 정도로만 찾아보는 편이었다. 어떤 이는 많이 보면 감흥이 덜 하다던데, 나는 그보다는 내가 직접 보고 조금 다르게 느끼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다녀와서 난 분명 그걸 보고 왔는데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모든 것에 감정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처럼 아는 것에 더욱 집착하여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이에게 선언했다. “여보, 내가 또 일을 벌일 것 같아.” “뭐?” “셀프 가이드북을 만들 거야.” “뭐???? 하지 마. 또 스트레스받을 거면서.” “맞아. 어떤 사람들은 하면서 스트레스 엄청 받는데, 다 하고 나면 뿌듯하다고 하더라.”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는데, 그이는 “어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셀프 가이드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셀프 가이드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처음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 전국일주를 하면서, 그날그날의 동선을 적어두고 계획해둔 것. 그리고 밑에 짤막하게 쓰는 란도 만들어 두었었다. 이번에 셀프 가이드북을 만들게 된다면 어쩌면 그것보다는 확장이 되겠지만, 벌써부터 설렌다. 하지만 나는 셀프 가이드북에 이 건물의 역사와 유래 이런 것까지는 넣지는 않을 생각. 나는 언제나 심플한 것을 추구하니까.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수첩이면 더 좋겠다. 어쨌든 나만의, 혹은 우리만의 셀프 가이드북을 따로 만들어둔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의 일부일 것 같다. ps. 이번에는 시시때때로 쓸 수 있는 여백의 노트를 충분하게 만들어둬야지!
책을 읽으며 나도 욕심나던 것.2
그리고 여행을 가서 하루에 한 장씩 엽서를 쓰는 것 역시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그것까지 한다고 하면 그이는 아마 조금 많이 말릴 것 같기는 하다. 엉뚱한 곳에 강박관념이 있는 나는 그걸 하지 않으면 여행이 망쳐버렸어! 라며 우울해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이의 판단일 것. (안 봐도 안다. 하하.) 그래도 해보고 싶다! 대상은 누구라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엽서일지라도.
책의 본문에는 히스로 공항에서의 두근두근하는 입국 심사, 읽기만 해도 매력 넘치는 톨레도, 공항에서 잃어버린 핸드폰을 다시 찾는 행운, 포르투갈에서 몇 번이나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일들, 칼로리 폭탄의 주범 포르투의 프란세지냐, 포트 와인, 와이너리 투어, 벨렘지구의 에그타르트, 유럽의 땅끝마을 로카 곶(호카 곶), 그토록 기대했던 세비야 대성당에 결국 가지 못하게 된 것, 타지에서 만난 동행인, 카우치 서핑, 낯선 곳에서의 히치하이크, 캄프 누에서의 직관 등등 읽을거리가 적게는 한 페이지, 많게는 서너 페이지씩 짧게 나누어져 있어서 읽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여행 준비의 A to Z 라고 하여,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일종의 tip이 기재되어 있고, 스페인&포르투갈 OR only 스페인 OR only 포르투갈의 일정도 써두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을 다녀온 각기 세 자매의 인터뷰가 있어서 읽다가, 어쩐지 좀 불편해져서 그 부분은 패스를 했다.
+ 책에 블로그 주소가 나와 있어 들어가 보았는데, 블로그는 들어가지 말걸. 책을 읽을 때의 느낌과 블로그의 글을 볼 때의 느낌이 너무 많이 달라서, 조금 혼란스러워졌기 때문. 뭔가 더 쓸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