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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 없는 자리
채이든 지음 / 렛츠북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 동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숨이 나왔고, 극악무도한 행동들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그나마 양호했다. 어떤 때는 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데 내 손은 내 입을 막기 위해 경계태세를 취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는 거칠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들과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과 공포심을 느꼈다. 이 책의 또 다른 이름은 '절망'이었다.
<벽장 속의 아이>와 <ROOM> 이후에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소재의 책을 부러 찾지 않았다. 내가 찾지 않아도 언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동학대였다.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서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발견했기에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들. 그동안 이렇게 이렇게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우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경악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우리가 듣는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극도의 아픔을 줄 수 있는 행위였을까? 분명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 끔찍하고 악랄한 행동들이 아이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이건 예측이나 추측이 아닌, 그런 짓까지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에서 온다.
“채이든! 아빠랑 엄마는 지금 헤어질 거야! 너는 아빠랑 살 건지 엄마랑 살 건지 선택해야 해! 누구랑 살고 싶어? 이 자리에서 당장 말해!”
이든이는 할머니와 넷째 큰아빠, 큰엄마, 아빠, 엄마와 살았다. 하지만 이때도 엄마의 손찌검을 다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이든이의 삶이 그리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든이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했는데, 네 살이었다. 겨우 네 살에 뺨을 얻어맞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몇 차례씩이나. 이든이를 그 존재만으로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는 존재는 단연코 할머니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는 엄마와 이혼을 한다며 누구랑 살 건지 선택을 이든이에게 하라고 한다. 이든은 자기를 때리는 엄마가 아닌 아빠를 택한다. 아빠는 이든이가 발을 다쳤을 때, 무릎 꿇고 앉아서 이든의 발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이든이를 생각하는 아빠였으니까.
그런 아빠가, 이든이를 버렸다. 세류 성당에. 다섯 살의 어린 이든이는 매일매일 아빠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다. 등나무 벤치에서 소꿉놀이를 할 때 ‘언니’가 나타났다. 따뜻한 손을 가진 언니였다. 꽃 중에 장미꽃을 제일 좋아하는 언니였다. 언니는 이틀 후에 온다고 하고 언니는 언덕을 내려갔다. 이제 이든이는 아빠 외에 기다릴 사람이 또 생겼다. 언니.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곤 이사했다는 옥탑방으로 이든이를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잘 됐다! 친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런데 언니라고 부르면 안 돼.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야 해.” 이든이가 네 살에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했고, 다섯 살에 아빠는 재혼을 해서 새엄마가 생겼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이든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엄마에서 벗어나 새엄마가 생긴 이든이는 이제 사랑만 받으며 지낼 수 있었으면 했다. 아... 정말 그랬으면 했는데...
“먹어! 마늘은 건강에 좋은 거야!”
마늘을 씹었다. 콩나물 머리를 씹는 것보다 어려웠다. 매운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맛이 어때?”
새엄마가 물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준 건데 맛없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맛있어요”
“그래? 무슨 맛이 나는데?”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과자 맛도 나고, 캐러멜 맛도 나고, 소시지 맛도 나고 그래요…….”
“그래? 잘됐구나! 마늘이 과자처럼 맛있다니 많이 먹어야겠다!”
새엄마는 도마에 꺼내놓은 통마늘을 나에게 전부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새엄마를 따라 웃었다.
몸에 좋으니 마늘을 먹으라고 내미는 새엄마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든이는, 매운 마늘을 먹고도 맛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프면 아프다,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싫으면 싫다는 솔직한 말을 다섯 살의 이든은 말하지 못했다. 종이 인형의 옷을 걸치는 고리가 없는 것도, 마늘을 먹이는 것도, 전에 뺨을 때리는 게 습관이었던 엄마에 비하면 고약한 장난을 치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왜 귀가 아프지? 새엄마가 웃는데 나는 왜 웃음이 안 나오지?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빠는 언제 오지?’
새엄마는 이든의 귀를 쭉 잡아당기고, 손톱으로 귓불을 찍기도 했다. 계속 반복하다 보니 귓불에서 진물이 배어 나와서 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이든. 그전까지는 귀를 잡아당기는 행동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이든은 왜 귀를 잡아당기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를 못한다. 이든이는 아빠한테 귀가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새엄마가 중간에 끼어든다. 이와 같은, 새엄마는 웃지만 이든이는 웃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매일 다르게 생긴다.
이든은 묻는다. “있잖아요……. 엄마는 왜 일요일에만 잘해주나요?”
“너 제발 좀 차에 치여 죽어라. 응? 내가 누구보다 슬프게 울어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러줄 테니까. 내가 나중에 천벌을 받아도 좋아. 지금 너랑 사는 게 지긋지긋한데 어쩌겠어? 봐서 트럭이 오는 것 같으면 뛰어들라고!”
“지금 뛰어들어요?”
“미쳤니? 네가 지금 뛰어들어서 죽으면 내가 뭐가 되겠어? 사람들이 애 하나 간수 못 하고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할 거 아니야!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너 혼자 다니다가 찻길에 뛰어들어! 내가 평생 너를 기억하고 미안해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도착해서 남은 사진, 등기 봉투에 들어가지 못한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앨범에 사진을 꽂아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표시 같은 것……. 나는 사진에다 아픈 부분을 표시했다. 파란색 사인펜으로 귀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눈과 코, 볼에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손톱 반달이 밀렸을 때 아팠으니까 손에도 동그라미를 그렸다. 앞니 빠진 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파란색 동그라미로 얼룩졌다. 사진 뒷면에는 생각나는 대로 글자를 끄적였다.
하하하 웃어요. 엉엉 울어요. 안녕하새요. 나는 당나기 친구람니다.
아... 새엄마의 횡포가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 이제는 죽으라고 한다. 차에 뛰어들어 죽으라고 하고, 젓가락을 콘센트에 꽂아서 죽으라고 하고, 파마약을 먹고 죽으라고 하고, 저수지에 빠져 죽으라고 한다. 심지어 보일러를 떼는 기름을 물에 타서 먹이기까지 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며칠 동안이나. 처음에는 고약한 장난인 것만 같았던 것들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더 이상 이든이가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엄마에게는 명패로 맞아서 앞니가 나갔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빠에게는 각목을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고 맞기도 하며, 심지어 그 각목 위에 아빠는 발을 얹기까지도 한다. 새엄마라는 여자도 죽일 년이었지만, 아빠라는 작자는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아니, 이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남발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 류의 분노였다.
자신의 사진에 아픈 부분에 표시하는 부분이라든지,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이든이가 쓴 글을 보면서 마음이 아렸다. 아빠와 새엄마와 있어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이딴 글을 큰집으로 보내기 위해 그 여자는 이든에게 글씨를 가르쳤다. 이든은,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을 텐데 하하하 웃는 게 뭔지 알까. 눈이 빨개졌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는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읽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읽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지하철이었다.
이웃들은 이런 집안을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 책에는 화가 나지 않는 이유가 없었다.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해 미치게 만든 책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나는 분노에 가득 찼다.
남의 가정사, 내가 간섭하면 뭐하나. 라는 생각을 나도 했고, 우습지만 지금도 한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그렇기에 오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아이였다. 내가 아는 아이라는 존재는, 사랑으로 키워주고 감싸서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 잘못이 있다면 혼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도대체 그 아이가 뭘 잘못했나. 이든은 자신이 혼나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몰랐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울면 자신 때문에 운다고 생각을 하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화를 내면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 어린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 머리가 복잡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어디선가 이런 일이 여전히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서다. 허구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절망이었다.
‘나도 마른자리에 누워봤으면……. 물기 없는 자리에.’
그 와중에도 이든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살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몇 번이나. 대견하고 기특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올 곳은 연립주택뿐이라는 사실이 이든도, 나도 처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손이 따뜻했던 그 여자를, 미련하게 용서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용서가 최고의 미덕은 아닌 것 같아서. 용서라는 건, 용서를 받으려고 준비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써두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마음이 넓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든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나는, 인과응보를 절절하게 믿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모두 어떤 형태로든 벌을 받기를 원한다.
이든의 소원은 단 한 가지였다. 마른자리, 물기 없는 자리에 누워봤으면. 하는 것. 끝내 이든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작가가 이든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물기 없는 자리에서 매우 잘 지내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리고 어린 날의 이든에게 정말 잘했다고, 어른이 된 이든이가 어린 이든을 힘껏 껴안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