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황리제 지음 / 다차원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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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詩)를 찾았다. 현재 필사를 하고 있는 시집도 있었지만, 조금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읽고 싶었다. 며칠 동안 나는, 깊은 생각을 하는 책 읽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詩가 잔뜩 실려있다는 밝은 분홍색의 표지인 <너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에는 어떤 문장들이 들어있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시집에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시들이 잔뜩 실려있을 것 같은 분홍색 표지와는 달리 이미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 소녀는 그곳에 숨어 있었다.

​눈물이 젖은 차가운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누군가 문을 열고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리라.

사랑을 할 때에 이별을 염두에 두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랬다. 변명을 하자면, 사랑을 하며 몇 차례 겪었으므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에 완벽하게 빠지지를 못한 적도 많았지만, 그러기 전에 나는 질려버렸다. 나는 사람을 쉽게 질려 하는 못된 습관을 지녔다.

J와 사랑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고, 또 아꼈다.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 내 대답은 같았다. 응, 그래. 혹은 응. 혹은 응, 나도.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 그가 떠나갈 것을 염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와 사랑을 시작했던 시기는 내가 사랑을 끝낸 시기와 맞닿을 정도로 좁았고, 무엇보다 스물두 살의 어린 나는, 사랑을 하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했었던 사람이었다.


3개월을 참았던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니가 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

그 시간들을 겪으며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고, 그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괜한 오기를 부렸다면 그와 나는 지금 연인을 넘어 부부가 될 수 없었겠지.

나는 그를 만나며 한층 성숙한 사랑을 했(...)다. 음, 그래. 물론 전보다. (지금의 사랑도 그다지 성숙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애써 변명을 해본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지나간 사랑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사람이란 추억을 가지고 사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그의 추억에 입을 샐쭉 내밀 때가 많으니까. 나는 나와 함께 나의 순수했던 시절을 보내주었던 사람들의 행복을 하나씩 빌어보았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J와 헤어졌더라면 이 시를 읽으며 떠올리는 사람은 단연 J였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그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나는 그의 행복을 빌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실배실 배어나왔다. 우습다, 나.





우린 편해졌고

그만큼 뻔해졌다.

다시 돌아와서, 그와 나는 전에 비해 참 많이 편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뻔해진 것도 사실이다. 눈만 마주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았고, 말을 내뱉으면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와 내가 닮아간다. 편해지고 뻔해지면서 깊어가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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