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수 없어 철학하는 아이 11
마르 파봉 지음, 마리아 지롱 그림, 고양이수염 옮김, 유지현 해설 / 이마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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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책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들은, 어른이 된 지금에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까닭이다. 이렇게 (과장을 보탠다면 1분 만에 스르륵 다 볼 수 있는) 짧은 이야기로 그동안 유예해왔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꼭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들이 있다고 믿었다. 모자라기 때문에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상해 보이거나’ 쓸모가 없어 보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를테면 짝밖에 없는 양말, 한 짝밖에 없는 신발, 한 짝밖에 없는 귀걸이, 한 짝밖에 없는 장갑이 그렇다. 한 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의 것들, 꼭 둘이어야만 하는 것들.



나는 엉뚱하게도 누군가에게는 한 짝으로도 충분한 쓸모가 있었던 양말과 신발을 보면서 ‘적당한 쓸모’라는 것이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적당함과 충분함 사이에는 아무래도 깊고 좁은 간극이 존재했다. 나에게 적당한 쓸모를 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충분한 쓸모를 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결핍되었을 때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 편견이 만들어낸 안갯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온전하지 않은 나는 온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개를 바로 뚫고 나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편견이 만들어낸 안개가 눈을 가린다는 생각에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기준을 세워두고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가르면서 우리는 그것들에 근거를 댈 수도 없는 숫자로 점수를 매긴다. 하지만 틀에 박힌 생각, 곧 편견을 깨는 것과 동시에 불완전함 속에서도 완전함을 찾을 수 있고,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서도 쓸모를 찾을 수도, 쓸모가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더 이상 그것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비단 이것은 물건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생김새나 행동, 가치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책 읽기를 멈추고 고요한 방 안에서 일기를 써야 하는 날인 가보다.



완전하지 않아도, 쓸모가 없어져도 괜찮습니다. 그건 세상의 기준이 말하는 완전함과 쓸모일 테니까요. 버려진 신발이 새로운 쓸모를 찾고 완전해졌듯이, 여러분도 스스로를 충만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쓸모, 완전함의 의미를 찾아내길 바랍니다. - 유지현(책방 사춘기 대표)





/ 다가오는 주말에 미루기만 했던 책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더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무엇보다 높은 가치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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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교육의 마법 - 스스로 돈 관리하는 아이로 만드는
김영옥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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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일하면 돈 아까운 줄 알고 돈을 쓴다. 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나는 학교 휴학을 하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는 의류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번 돈은 고작 80만 원 정도였다. 그 돈은 내게는 참 큰돈이었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기도 했다. 월급날이 되면 나는 그 월급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돈을 써댔었다. 차라리 명품백을 샀다면 남았을 텐데, 옷이라도 샀다면 패션 센스가 있었을 텐데, 책이라도 샀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샀다면...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을 보면 도대체 뭐 하느라 돈을 그렇게 써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릴 적에 제대로 된 용돈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 그리고 더 넘어 대학생 때까지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며 원하는 액수를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돈이 부족해서 참고서를 산다는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고,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제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러면서도 죄책감이나 자책감, 부끄러운 감정들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내가 돈에 대해 깨어난 것은 다름 아닌 학자금 대출과 치아 치료에 고스란히 돈을 써야 했던 것 때문이었다.

나는 안다. 돈이 무섭다는 것을. 그리고 성년이 되어서까지 돈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돈이 무서운 줄 알게 하는 것은 직접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한 달동안 고생해서 받은 월급이 빚 등 다른 목적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고스란히 목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상환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돈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단순히 카드값이 빠져나가서 생활이 힘들어 다시 신용카드를 쓰고 다음 달에 다시 월급이 카드값으로 빠져나가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처음부터 돈에 대한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나의 엄마는 나에게 돈에 대한 교육을 시켜줄 만큼의 여유도 없었고, 여력도 안 됐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던 J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몰래 감탄했다. J는 어렸을 때부터 통장을 가지고 혼자 은행에 가서 저금을 했었다고 했다. 그것이 경제에 깨어있던 어머니의 교육법이었다. 하지만 J는 돈에 대한 압박을 본인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이 정도는 우리한테 없어도 되잖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금전이 오갈 때에도 “그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니까.”라고 말을 했는데, 그건 우리가 없어도 되는 돈이라서가 아니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일깨워준 적도 있다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설날에 세뱃돈을 받으면 J는 그 돈을 고스란히 어머니께 드렸다고 한다. 본인이 받은 돈은 어머니께서 돈을 어딘가에 쓰셨기 때문에 본인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면 자제력을 잃고 돈을 쓰게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때도 더러 있다. 그 외에도 그가 이따금 내뱉는 말들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서 나는 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바운더리 안에서 돈에 예속되어 있다면 그에게는 (적당한) 자유를 주고 있는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거짓말도 하고 엄마 주머니에서 동전들도 훔치고 그랬는데...


용돈교육이라는 것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보니, 지금은 다 컸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책들을 읽어보고자 하는 욕심이 좀 있는 편이다. 실제로 돈에 관한 다큐도 즐겨보기도 하고. 나는 어떠한 계기로 돈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고 확립된 편인데, 이게 가끔 이성을 잃고 와르르 무너질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지름신에 대처하는 능력이 월등히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근 1년 동안 그게 아닐 때가 더 많음을 몸소 느끼며 자주 반성하는 시간들을 가지기도 한다. 요즘은 너무 잦은데, 잘 실천이 안 되어서 더 문제다.

아무래도 이 책이 경제라는 카테고리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금 딱딱할까 싶었는데,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어려움 없이 죽 읽어가다 보니, 아이가 없는 내가 읽기보다는 대여섯 살의 아이를 둔 부모가 읽기에 최적의 교과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용돈 교육을 할 때에 용돈을 주는 것에 대한 약속을 꼭 지키기, 아이에게 빌린 돈은 반드시 갚기, 우리 집 경제 주머니 함께 보기 (매달 들어가는 돈의 규모를 알게 하기), 가계부 적는 모습 보여주기 라고 하였는데, 개인적으로 경제 주머니를 함께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며칠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실제로 부모가 버는 금액을 다 오픈하고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J 역시 아이가 생기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종종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우연치 않게 집안 사정을 다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내가 집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는 잠시 제쳐두고 아르바이트를 찾기도 했었으니까. 물론 학교 때문에 어떤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런 J도 그 다큐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큐에서는 (우리의 기준으로) 엄마가 너무 짠순이였다.)

나는 다큐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너무 옥죄고 살면 성인이 되어서 그게 분출될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이 발생했다. 그래서 집에 대한 경제 주머니를 자녀들에게 오픈함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부부가 의논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인 것만 말해주면 좋은데,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왔네, 수도세가 너무 많이 나왔네, 라는 말은 알게 모르게 자녀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실제로 내가 자녀였을 때 그랬기도 했고.

책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아이에게 저금을 하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저금을 할 수 있게 하는 원플러스원 방식은 참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일정한 돈을 저금하면 부모가 100%의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1,000원을 저금하면 부모가 1,000원을 이자 명목으로 넣어주는 것. 하지만 이것은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당장 몇 년이 아니라 기한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만기일을 스무 살이 되는 해로 한다든지.


그리고 아빠는 돈이 많다는 것이 우리 집이 부자라는 것과는 별개인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 신선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게 금전적으로는 물려줄 것이 없지만 독립심과 경제관념은 꼭 물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아마 그 부분이 일치하는 것은 이 부분일 것이었다. 너희는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벌어야지. 그러면 그 돈은 너희 것이야. 엄마 아빠 돈은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서 더 이상 일해서 돈을 벌기 어려울 때 쓸 거야.

아이에게 부모의 돈을 언제까지나 너에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 그것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아이가 돈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쓸 수 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독립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성공했다고 감히 말해본다. 조금 과장된 말일지도 모르나, 돈에 대한 중요성과 돈에 대한 가치를 아이가 제대로 알고 있을 때 부모에게 노후의 여유로움이 이미 보장된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까. 아이에게 용돈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에게 이 책은 아주 좋은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임이 분명하다.

오탈자 43. 지출을 줄이기 힘들어중도포기하기 일쑤다 ▶ 힘들어 중도 포기하기

오탈자 160. 역대 당첨자 들 중에는 당첨금을 두고 ▶ 당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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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4
다자이 오사무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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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한 줄도 적을 용기가 없어서 우선 독서노트를 작성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생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수고를 들여가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한동안 방황했다. 다른 책을 곧바로 읽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초점도 희미해졌다. 그저 ‘한 남자의 우울한 수기’라고만 생각하게 되기를 바랐는데, 서평을 써야 하는 지금까지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소꼬리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맛있게 무언가를 목으로 넘기고 있는데 누가 왈칵 목을 잡아 비트는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1. 보기 싫은 주름을 얼굴에 만들고 있는, 이상한 표정의 소년

2. 상당히 교묘한 미소를 띤, 이상하게 잘생긴 남학생 (왠지 모를 악몽과 같은 섬뜩함)

3.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얼굴의 남자



서평을 쓰기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부러 찾아보았다.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이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11. 너무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6.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제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해도 인간을 제 마음에서 끊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겨우 간신히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필사적인, 그야말로 1,000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육교를 오르내리고 지하철을 타는 행위들에 대해 고상한 놀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자주 했던 그는, 공복감과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지냈던 그는,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배가 고픈 체한 적이 있는 그는, 실질적인 괴로움, 그러니까 단지 먹고사는 일만 해결되면 그걸로 끝나는 괴로움이 뭔지 몰랐던 그는, 그는 주변 사람들과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몰랐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 익살을 선택했다.


그는 인간에게 호소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그였으니까.

호소를 하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결국 처세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그럭저럭 세상에 통할 논리를 들이대면 져 버리는 게 고작이니까.




이 부분을 읽으며 참 외로웠겠구나. 왈칵, 방치해두었던 마음이 무방비하게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내려앉은 마음이 좀처럼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묵직하게 내려앉아 명치가 아렸다. 단 몇 시간 만에 읽을 수도 있는 책이었지만 쉬이 읽을 수 없었다.

18.어찌 되었든 사람들을 웃기면 된다. 그러면 이른바 인간들이 말하는 ‘삶이라는 것의 바깥쪽에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고 텅 빈 채로 실존한다.

학교에서 그는 장난꾸러기, 익살꾼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익살을 서비스하는 편이 더 편하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철봉 연습을 하며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은 그에게 (백치라고 생각했던) 다케이치가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일부러 그랬지?” 그때 그가 느꼈을 공포감은 허를 찔린 기분보다 더한 경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그만의 ‘인간과의 소통’이 단절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았고, 그것을 계기로 다케이치와의 관계를 맺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상처 입기 쉬운 내면을 쉽게 내비쳤다는 부분에서 나는 그가 다케이치와의 우정을 오래 간직하길 바랐다. 하지만 도쿄로 이사를 가면서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도쿄로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다케이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여자가 아닌 우정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는 다케이치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다케이치가 그에게 두 가지 예언을 한다.


아마 너한테는 여자들이 홀딱 반할 거야.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


요조는, 그 예언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 예언은 짧은 이야기 속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니까.

여기까지 쓰다가, 한 가지 새롭게 생각해본다. 이제까지 요조를 향한 다케이치의 예언이 맞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조가 그 예언에 따라 맞추어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예언에 꼭 맞게.




도쿄로 간 요조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 많은 미술학도를 만나게 된다. 호리키 마사오. 요조는 그로부터 술과 담배, 여자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지만, 요조는 그를 퍽 믿고 따른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신뢰나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던 그가 그를 따른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히로시마가 고향인 쓰네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호리키는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칭한다. 이런 궁상맞은 여자와는 키스도 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덩달아 요조 역시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미약하게나마 쓰네코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전 세 개를 향한 쓰네코의 “어머, 겨우 그것뿐인가요?”라는 말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굴욕감을 안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요조와 쓰네코는 동반자살을 꾀했고,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쓰네코는 죽었고, 요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기소유예(起訴猶豫).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넙치네 집에 얹혀있다가 (정확히는 넙치가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가라고 했으면 인생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넙치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요조의 학비를 대주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쓰여있다.) 다른 여자들에게 빌붙어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 나오기는 하지만, 다케이치가 말한 여자들이 홀딱 반한다는 말은, ‘돌봐준다’라는 말과 상통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번에는 이혼녀인 시즈코였다.




그런 그에게 호리키는 말한다.

“너도 이쯤에서 여자 등치는 짓은 그만둬.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요조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라고 역설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호리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누군가에게 빌붙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이라니, 게다가 그것에 대한 어떤 부끄러운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니. 이건 기생충과 다를 바 없어. 이쯤부터 내가 요조에게 느낀 동정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즈코와 시게코의 대화를 듣고 그는 그들의 행복을 망칠 수 없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결국 그가 향하는 곳은 교바시 근처에 있는 스탠드바 2층에서 또다시 여자에게 기대어 사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즈음 술을 끊으라고 말하는, 작은 담배가게의 하얀 얼굴에 덧니가 있는 열일고여덟 살의 아가씨 요시코와 결혼하게 된다.


117. 그로 말미암아 얻은 기쁨은 결코 크지 않았지만, 그다음 찾아온 슬픔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넘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역시 저에게 ‘세상’은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손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시코가 왜소한 장사꾼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물을뿐이다.

132.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132. 과연 천진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134.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 수 있는가.



그에게 있어 요시코는 신뢰였다. 나는 생각한다. 신뢰, 신뢰는 긍정적인 단어인가, 부정적인 단어인가. 다시 바꿔 생각한다. 신뢰는 희극 명사인가, 비극 명사인가. 책을 읽으면 신뢰는 오로지 비극 명사일 뿐이다. 오로지 그것으로밖에 명명하지 못한다. 그 이후로 요조는 모르핀에 중독이 되고 만다. 그런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넙치와 호리키, 그리고 요시코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그는 제 발로 폐결핵 요양원을 간다.




148.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 그는 이를 무저항이 죄냐고 물었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에 신뢰를 쏟아부었다. 그는 제 발로 갔다. 이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 때문이었다.

그 다정한 미소 하나에 요시코는 완전하게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매장되고 만 것이다. 그의 삶은 신뢰로 가득 찼다가 완전하게 패배했다.


그가 간 곳은 폐결핵 요양원이 아니라 정신 병원이었으니까.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까요?


149. 이제 저는 더 이상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아아, 요조.




151.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나게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그의 불안했던 생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하느님같이 착했던 사람의 생.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생을 위로하기 위해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

 

 

 

PS.


107. 세상. 어쩌면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의 투쟁을 그 자리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때 그 자리에서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대의명분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이었고,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개인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문장은 여러 번 나눠서 읽었다.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이토록 모순적인 정의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세상,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개인. 개인의, 저마다의 세상. 그들의 세상. 그들의 세계. 그들이 믿는 것들이 현란하게 가득 찬 우주.







PS2.


147. “아냐, 이건 이제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무엇을 권하는데 그걸 거절한 일이 내 생애에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무엇을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이나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어색한 금이 생길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저는 반미치광이처럼 원하던 모르핀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거절했습니다.




어쩌면 요조는 현대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

그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 현대인

거절을 해도 괜찮아.

너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그것이 진정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너를 위해서

네가 생각하는 부당한 것에 대해 거절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ps3.

요조, 혹은 다자이 오사무.

당신의 실격은 무효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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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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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하고-) 아, 가을이다.  가을에는 어쩐지 시 한 편을 외고 싶어진다. 현실은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닐 궁리하느라 책 한 권 겨우 읽을까 말까인데, 시를 왼 다니. 너무 웃기지만, 가을에는 확실히 시와 가까워지기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쓸쓸해서라거나 외로워서라거나 적적하다거나 하는 불유쾌한 단어들 때문이 아니라 높다란 하늘이 그렇고 적당한 뜨거움과 따듯함을 가진 가을볕이 그렇고 쾌청한 날씨가 그렇고 선선하게 부는 다정한 바람이 그렇고 산뜻한 공기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읽다만 시를 필사하는 일을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했고, 이전에 사두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시 집어 들기도 했으며, 이번에 윤동주 시인 외 16명 시인의 시가 실려있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는 시집을 집어 들기도 했다.




나의 배우자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고 조금 우습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 얼마나 시적인 말인가. 나는 이미 저렇게 표현한 J씨 때문에라도, 자꾸만 저렇게 읽게 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책에는 윤동주, 박석, 정지용, 박인환, 노천명, 김영랑, 윤곤강, 박용철, 이장희, 이상화, 이용악,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다카하먀 교시, 마쓰오 바쇼, 사이교, 가가노 지요니, 이케니시 곤스이의 시가 실려있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시 마다마다에 수록되어있다. 아니, 어쩌면 그림 한 점 한 점에 시가 수록되어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장 첫 부분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함께 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 아 -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十月 부분은 이 부분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이 첫 부분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거의) 몰랐던 고흐의 작품들도 한 점씩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이후로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마주하니 이렇게 예쁜 시화집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열두 권의 시화집을 모두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생기고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것은 특히나 탐이 난다. 아직 十一月, 十二月은 출간되기 전인데, 어떤 화가의 그림이 실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르누아르나 칼 빌헬름 홀소에나 모네의 그림으로는 출간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하고 희망을 걸어본다. (흠, 모네나 홀소에는 몰라도 르누아르의 그림은 사실, 11월이나 12월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달밤ㅡ도회(都會)

  ​        이상화

먼지투성이인 지붕 위로

달이 머리를 쳐들고 서네.


떡잎이 터진 거리의 포플라가 실바람에 불려

사람에게 놀란 도적이 손에 쥔 돈을 놓아버리듯

하늘을 우러러 온 쪽을 던지며 떨고 있다.

풋솜에나 비길 얇은 구름이

달에게도 날아만 들어

바다 위에 섰는 듯 보는 눈이 어지럽다.


사람은 온몸에 달빛을 입은 줄도 모르는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예사롭게 지껄이다.

아니다, 웃을 때는 그들의 입에 달빛이 있다.

달 이야긴가 보다.


아, 하다못해 오늘 밤만 등불을 꺼 버리자.

촌각시같이 방구석에서, 추녀 밑에서

달을 보고 얼굴을 붉힌 등불을 보려무나.


거리 뒷간 유리창에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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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 진지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자기 탐구 놀이
롤프 도벨리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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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의심은 나로 하여금 자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내어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게 던지는 질문이 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아무래도 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골몰히 생각하면서도 내놓은 답에 대한 충분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심심풀이로 100문 100답을 했던 것을 기억해내곤 그때보다는 깊이 있는 질문지를 직접 만들기도 해보기도 했었는데, 그 질문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예속된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질문이 돌고 도는 느낌이기도 했다.

게다가 특히나 근래에는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사이에 있는 나는 즐거우면서도 자괴감에 쉽게 빠지는 생활들을 하고 있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시간들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나의 배우자인 J는 내게 끊임없이 “요즘 일은 좀 어때?” “힘들다면 뭐가 제일 힘들어?”라면서 먼저 말을 건네어준다. 그런 질문들은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거나 할 때보다는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어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J가 건네는 그런 질문들에 생각을 하고 답을 하면서 혼자 명상을 할 때와는 다른 정돈되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주는 피드백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어서 늘 도움을 받는 편이다.




그러다가 롤프 도벨리의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질문은 조금 있는, 단순히 자기 계발서에 지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서 펼치는 순간, 약간의 신음을 내뱉게 되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질문투성이었다. 단지, 질문 속에 롤프 도벨리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정도?


질문들의 성향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것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들에 답을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대부분 즐거웠다. 내가 미처 생각하고 있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내어 질문들에 답하고 있자니, ‘아,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새로운 발견 같은 것도 깨달았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나는 윤리’적인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구나 -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평소에도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내 안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새삼스레 놀랐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어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들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하고 이후에는 그 답변들을 읽고 있는데, 이게 나중에 나에게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2018년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구나. 하면서 조금 발전된 나를 볼 수도 있을 테고 침체되어있거나 퇴보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지. 아직 이 책에 있는 답들에 대한 답을 전부 다 한 건 아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답을 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최고로 꼽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 역시 끊임없이 이어갈 생각이다. 그럼으로 인해 나의 주체를 재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나라는 인간이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타락하는 것에 경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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