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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 진지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자기 탐구 놀이
롤프 도벨리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10월
평점 :
존재에 대한 의심은 나로 하여금 자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내어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게 던지는 질문이 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아무래도 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골몰히 생각하면서도 내놓은 답에 대한 충분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심심풀이로 100문 100답을 했던 것을 기억해내곤 그때보다는 깊이 있는 질문지를 직접 만들기도 해보기도 했었는데, 그 질문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예속된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질문이 돌고 도는 느낌이기도 했다.
게다가 특히나 근래에는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사이에 있는 나는 즐거우면서도 자괴감에 쉽게 빠지는 생활들을 하고 있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시간들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나의 배우자인 J는 내게 끊임없이 “요즘 일은 좀 어때?” “힘들다면 뭐가 제일 힘들어?”라면서 먼저 말을 건네어준다. 그런 질문들은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거나 할 때보다는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어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J가 건네는 그런 질문들에 생각을 하고 답을 하면서 혼자 명상을 할 때와는 다른 정돈되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주는 피드백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어서 늘 도움을 받는 편이다.
그러다가 롤프 도벨리의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질문은 조금 있는, 단순히 자기 계발서에 지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서 펼치는 순간, 약간의 신음을 내뱉게 되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질문투성이었다. 단지, 질문 속에 롤프 도벨리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정도?
질문들의 성향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것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들에 답을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대부분 즐거웠다. 내가 미처 생각하고 있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내어 질문들에 답하고 있자니, ‘아,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새로운 발견 같은 것도 깨달았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나는 ‘윤리’적인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구나 -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평소에도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내 안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새삼스레 놀랐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어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들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하고 이후에는 그 답변들을 읽고 있는데, 이게 나중에 나에게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2018년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구나. 하면서 조금 발전된 나를 볼 수도 있을 테고 침체되어있거나 퇴보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지. 아직 이 책에 있는 답들에 대한 답을 전부 다 한 건 아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답을 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최고로 꼽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 역시 끊임없이 이어갈 생각이다. 그럼으로 인해 나의 주체를 재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나라는 인간이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타락하는 것에 경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