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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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하고-) 아, 가을이다.  가을에는 어쩐지 시 한 편을 외고 싶어진다. 현실은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닐 궁리하느라 책 한 권 겨우 읽을까 말까인데, 시를 왼 다니. 너무 웃기지만, 가을에는 확실히 시와 가까워지기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쓸쓸해서라거나 외로워서라거나 적적하다거나 하는 불유쾌한 단어들 때문이 아니라 높다란 하늘이 그렇고 적당한 뜨거움과 따듯함을 가진 가을볕이 그렇고 쾌청한 날씨가 그렇고 선선하게 부는 다정한 바람이 그렇고 산뜻한 공기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읽다만 시를 필사하는 일을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했고, 이전에 사두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시 집어 들기도 했으며, 이번에 윤동주 시인 외 16명 시인의 시가 실려있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는 시집을 집어 들기도 했다.




나의 배우자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고 조금 우습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 얼마나 시적인 말인가. 나는 이미 저렇게 표현한 J씨 때문에라도, 자꾸만 저렇게 읽게 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책에는 윤동주, 박석, 정지용, 박인환, 노천명, 김영랑, 윤곤강, 박용철, 이장희, 이상화, 이용악,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다카하먀 교시, 마쓰오 바쇼, 사이교, 가가노 지요니, 이케니시 곤스이의 시가 실려있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시 마다마다에 수록되어있다. 아니, 어쩌면 그림 한 점 한 점에 시가 수록되어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장 첫 부분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함께 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 아 -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十月 부분은 이 부분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이 첫 부분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거의) 몰랐던 고흐의 작품들도 한 점씩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이후로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마주하니 이렇게 예쁜 시화집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열두 권의 시화집을 모두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생기고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것은 특히나 탐이 난다. 아직 十一月, 十二月은 출간되기 전인데, 어떤 화가의 그림이 실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르누아르나 칼 빌헬름 홀소에나 모네의 그림으로는 출간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하고 희망을 걸어본다. (흠, 모네나 홀소에는 몰라도 르누아르의 그림은 사실, 11월이나 12월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달밤ㅡ도회(都會)

  ​        이상화

먼지투성이인 지붕 위로

달이 머리를 쳐들고 서네.


떡잎이 터진 거리의 포플라가 실바람에 불려

사람에게 놀란 도적이 손에 쥔 돈을 놓아버리듯

하늘을 우러러 온 쪽을 던지며 떨고 있다.

풋솜에나 비길 얇은 구름이

달에게도 날아만 들어

바다 위에 섰는 듯 보는 눈이 어지럽다.


사람은 온몸에 달빛을 입은 줄도 모르는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예사롭게 지껄이다.

아니다, 웃을 때는 그들의 입에 달빛이 있다.

달 이야긴가 보다.


아, 하다못해 오늘 밤만 등불을 꺼 버리자.

촌각시같이 방구석에서, 추녀 밑에서

달을 보고 얼굴을 붉힌 등불을 보려무나.


거리 뒷간 유리창에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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