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참 오랜만인것같다. 휴일의 여유를 한껏 즐기다 불현 듯 리뷰를 써야한다는 생각에 후다닥 컴퓨터를 키곤 습관처럼 인터넷 바로가기 버튼을 누르고 앉은 것이 말이다. 자취하다 내려온 동생방으로 인터넷이 연결된지 한 달이 훌쩍 넘었것만 내 몸은 그 오랜 습관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래 그런 것 같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 보다 몸에 밴 행동이 더 오래간다는 것. 공선옥 그녀의 글속에서 그녀의 지나온 삶이 묻어나는것처럼. 그래서 난 조금의 부담감으로 흐릿한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다.

공선옥이란 생소한 이름. 실은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 이 책을 접하기전 작년 어느 이벤트에서 받은 서른여권의 책중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란 책을 봤기에 ‘아~ 그 사람..’이라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하지만 이름만 기억날뿐 듣도보도 못한 작가의 책은 이내 내 책장으로 들어갔기에 이 책이 그녀와의 첫만남인 셈이였다. 들뜰만한 첫 만남인데.. 대뜸 사는게 거짓말 같을때란다. 무엇이 어떻길래 사는게 거짓말 같을까란 궁금증 증폭. 하지만 서른해도 살지않은 젊디젊은 나도 뉴스나 신문에 거짓말같은, 거짓말이였으면 좋을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험한 세상에 괜한 욕도 해보고, 내 맘대로 안되는 내 삶에도 부쩍 짜증나고, 무기력해져 힘든데 내가 모르는 거짓말같은 세상사를 더 알게되어 좋을것이 뭐있나싶어 조금 망설여진것도 사실이다. 애써 살만한 세상일꺼라고, 좋은 날이 올꺼라고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는 요즘의 나에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싶었던 이유는 보기 힘들다고 무작정 안볼 수도없고, 문제가 있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 뭐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관심은 가져야할 것 아닌가.

책은 비교적 쉽게 잘 읽혔다. 굳이 말하지않아도 될 자신의 상황까지(이 역시 사회의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협한 시선일지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뭐랄까? 송두리째 자신을 까발려 놓은 후 편안하게 탁 털 듯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할까그랬다. 그녀의 글엔 멋진 표현도 화려한 기교도 없지만 그래서 더 사람을 끄는 매력있는 것 같다. 코드가 맞아서인가? 책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빨리 읽혀서 그녀의 다름 책들도 궁금해졌고, 마침 <마흔에 길을 나서다>가 있어 곧바로 읽어버렸다.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어 펴낸 책 역시 밥벌이를 위해 썼다고는하지만 그녀의 냉철함이 묻어난 책이였다. 눈은 냉철하지만 가슴은 따뜻한 그녀의 시선은 그녀의 말처럼 글을 써 먹고살기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그 때부턴 순수한 즐거움이 사라진다고들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밥벌이의 수단이되면 그때부턴 즐거움을위한 취미가 아닌 그야말로 나와 가족의 생명이 달려있으니깐 말이다. 그녀는 그랬단다 내 어머니시대 딸들이 그랬듯 어려운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하지 못했고, 먹고살기위해 공장에 다녔으며 지금도 밥먹고살아갈 걱정을 해야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시민. 하지만 소시민이 살아가기엔 이 나라 이땅엔 너무나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그래서 그녀는 그런 일들을 기록해나가기로 결심한 듯하다. 글을 써 먹고살지만 그 글속에 자신의 양심을 담아 그 밥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 얼렁뚱땅 밥을 먹지않겠다는 의지같은 것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잘먹고 잘살자는 웰빙이 사회의 화두로 집중을 받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야할 사람들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일뿐이며 탁상공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높은 분들의 결정으로 돌아가는 세상엔 가난한 자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 출산장려를 한다지만 어미젖먹을 장소조차 마땅치않고, 월드컵에 온나라가 하나처럼 뭉쳤던 그 순간에 힘없이 세상을 떠난 미순이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앞에 뭐하나 제대로된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한 힘없는 나라.. 제 나라 말보다 외국말배우기에 온신경을 집중해 연간 몇천억의 돈을 쓰고, 백인앞에선 의기소침하지만 정작 누구도 하기싫은 일을 하러온 가난한 사람들에겐 아무렇게나 대하는 사회.. 내가 그러지 않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 내 잘못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당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실은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책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부끄러웠다. 나 역시 좀더 넓은 시선으로 많은 것을 보려 노력하지만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방관자의 입장일 뿐이였다. 그렇다지않는가?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니 죽은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아무리 안타깝고, 아무리 슬퍼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곧 멀어지고, 잊혀져버린니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넘어가버리는 세상. 그렇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묻혀지고, 잊혀져 버렸을까?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렸다고 과연 사라져버린것일까? 아직도 한 쪽 어디가에선 여전히 아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아픔이 어느 순간 우리의 아픔이 될 수도 있을텐데 우린 무시하려고만 한건 아닐까? 어느새 우린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버린건 아닌지 겁이난다.

더 잃을것이 없기에 자유롭고, 가진 것이 없기에 편안한듯한 그녀에겐 팽팽하게 부풀어 터질듯한 공을 터지지않게 유지시켜주는 숨구멍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 시선과 마주할 때 한없이 부끄러운 내 모습 또한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듯. 하지만 밥벌이가 힘겹더라도 밥앞에서 부끄럽지않을 그녀의 시선이 오래도록 남아 내 부끄러움을 잊혀지지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책 한권 사는 값으로 너무 많은걸 바라는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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