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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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보면 내가 처음 그림에 대해 생각해봤던 게 초등학교 4학년쯤 인 것 같다.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보면서 말이다. 당시 그 그림이 어느 작가의 무슨 그림인지도 몰랐고, 그림이 크게 멋지지도 않았는데 (만화였으니 자세히 표현되지 못했을 뿐더러 내 눈엔 오로지 죽어가는 네로만 보였다~) 왜 그토록 네로는 그림보기를 소망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로가 죽을 때 난 대성통곡을 했고, 그 기억 때문인지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림’을 볼 때마다 네로와 파트라슈가 기억난다. 하지만 그림은 여전히 어렵고, 먼 존재다.


사실 전시회를 한번도 가본 적 없다보니 과연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직접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 무척이나 궁금하긴 하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반고흐전’과 ‘렘브란트와 바로크 거장들’을 비롯한 수많은 전시회는 왜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는지 눈물만 삼키면서 말이다. 그러다 미술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다. 당장 가볼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지식을 쌓아두면 훗날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에서 말이다.


오주석님의 책부터 시작해 내가 좋아하는 고흐관련 서적과 서양미술사까지.. 너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그림을 볼 때 한국화는 시선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 어찌 보면 너무나 기초적인 지식이지만 난 미술시간에 배운 기억이 없다. 아무리 김홍도와 정선의 위대한 그림을 본다 해도 책 읽듯 반대의 시선으로 감상한다면 감동은 줄어들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림을 펴놓고 한참을 꼼꼼히 살펴봐도 절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설명을 읽으면서 보면 그제서야 보인다는 것이다. 있다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사라졌다 생긴 것도 아닐텐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무서운 그림’ 역시 그림에 대한 욕구 충족을 위해 읽고 싶었다. 게다가 ‘무서움’이 있는 그림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결론은 무섭지 않았다. 단지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가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였다.


처음에 나오는 드가의 ‘에투알’을 보면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드가하면 단순히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인상주의 화가라고만 생각했을 뿐인데 그 아름답기만 한 발레리나들이 그 시대엔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이였다니.. 앞쪽의 아름다운 발레리나만 눈에 들어올 뿐 뒤의 검은 양복 신사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홀바인의 ‘헨리 8세의 초상’을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헨리 8세야??’라는 말부터 먼저 튀어 나왔다. <튜더스 : 천년의 스캔들>의 영향이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외모는 놔두고, 그림을 보자!! 그림을 보면 의상표현이 정말 세밀하다. 그 당시엔 큰 체격으로 지위의 높음을 과시했다니 비정상적인 어깨며 튀어나온 가슴, 종아리까지 삽입물 때문에 더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부인을 죽이기까지 한 그의 잔악함이 눈빛에서도 보이니 그의 바로 앞에서 그림을 그린 홀바인이 대단하게 생각된다.


다비드의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을 보면서는 아름다움과 사치를 대표하는 앙투아네트가 마지막엔 이런 모습이였구나.. 생각되어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건 <나는 나를 파괴한 권리가 있다>의 책표지로 익숙한 ‘마라의 죽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다비드가 권력의 이동에 따라 변절을 일삼는 사람이였다니 격동하는 시대를 탓해야 하는지, 살기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살았고, 작품을 그렸으니 지금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은 작가의 표현대로 어느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전율이 느껴지고, 표지로도 사용된 라투르의 ‘사기꾼’은 눈빛으로 통하는 베터랑 사기꾼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해서 재밌었고, 조르조네의 ‘노파의 초상’과 쿠엔틴 마시스의 ‘추한 공작부인’을 보면서는 여자는 젊고, 예뻐야 한다는 외모로만 판단된다는 사실이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정녕 남자들은 완숙한 여자의 아름다움을 모른단 말인가..


이렇듯 소개된 20편의 그림은 아주 유명한 (물론 그림을 잘 모르는 나의 기준에서)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수많은 그림 중에 이 20편의 그림을 선택했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작가가 느낀 고통과 행복, 절망과 환희를 오래도록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담고 있는 그림. 그것이 그림이 가진 힘이고, 매력이며 그래서 ‘무서운 그림’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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