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바다 건너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웃음의 나라>로 먼저 만났던 작가. 그리고 두 번째의 만남. 그것만으로 이 작가는 나에게 무언가를 줬다는 뜻일 것이다. 게다가 너무 웃기지 않는가? <나무바다 건너기>라니..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보여 지는 나’와 ‘진짜 나’사이의 거리감이 생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밖에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된다.’ 왜냐구? 곧 밖에서의 내 모습이 부모님의 모습이고, 우리 집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지금은 꽉 끼는 옷처럼 내 몸에 달라붙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화가 날 때도 ‘아니지.. 그냥 내가 참고 말지..’라던가 혹 동네 분을 만나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지나친 후에도 한동안 ‘그냥 해버릴걸..’이라며 찝찝해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난 어느 순간부터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게 부담이 되어 더 예의를 차리게 되고, 또 부담이 되는 악순환.


나도 때론 진한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소리가 요란하게 걸어보고 싶고, 밤늦게 술 취한 체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큰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쳐 보고 싶다. 나도 가끔은 펑펑 울면서 가슴속에 담긴 말을 쏟아내고 싶고, 기분 나쁜 상사에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래서 당신은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라며 미련 없이 뛰쳐나와 버리고도 싶다. 하지만 좀처럼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안다. 내가 활동하는 이 바닥은 워낙 좁아서 3사람쯤 거쳐 가면 다 친구에 친척이고, 동창에다 선배고, 후배며 동네 사람이고, 모임 회원이니깐..


‘보여지는 나’가 ‘진짜 나’를 지배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할 때 ‘프래니’가 찾아왔다.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라며 말이다. 나는 이 사람이 반항으로 똘똘 뭉친 10대의 프래니인지 경찰서장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40대의 프래니인지 흰 머리에 늘어진 살가죽을 가진 60대의 프래니인지 판단할 수 없다. 나조차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단정 지을 수 없는데 어찌 타인을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냐는 지극히 스탠다드한 생각에서 말이다.


어머니는 항상 ‘그 나이를 먹도록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고 하느냐’며 나를 꾸중하시곤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다면 ‘하고 싶은 것만’하고 사는 게 진정한 삶의 방식이라 생각하는 나는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었고, 그럼 이내 ‘아직 철들려면 멀었나보다..’란 말이 한숨과 함께 스프링처럼 되돌아오곤 했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철이 덜 든 건지 철드는 게 그런 거라면 철이 들고 싶지 않은 건지..


그리자 다시 프래니 말한다. 인간수명이 100세를 향해가는 이 시대에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100년을 살아가야할 인간이 처음 태어나 ’응애응애~‘울지 않고, ’어머니 나오느라 힘드니깐 잡곡밥과 오징어국을 놓은 5첩 반상을 준비해 주세요‘라면 너무 징그럽지 않느냐는 것이다. 깨지고, 넘어지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속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삶의 과정.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주체할 수 없이 튕겨 오르기만 하던 공도 어느 순간 스스로 적정량의 기압을 맞추게 되고, 바람 빠진 최후의 순간이 오더라도 하늘을 날아오르던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가 아니냐고 말이다. 


순간 가슴이 찡해왔다. 부질없다 생각했던 과거의 내 모습도 쉼 없이 흔들리는 지금의 내 모습도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학습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 너무 멀리 와버려 출발선은 보이지도 않고, 이 길이 맞는 건지 멈칫하는 사이 어두운 숲길에 홀로 서있는 꿈을 참 많이도 꿨는데 이젠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래 어차피 인생에서 비교대상은 존재하지 않고, 행복지수만 존재한다고 믿어 왔으니깐 용기 내보자.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아장아장 걷는 세살의 나를 보더라도, 가수에 열광하며 팬레터를 쓰는 열여섯의 나를 보더라도 늘어진 뱃살과 기미로 고민하는 마흔다섯의 나를 보더라도 부정하지 말자. 난 이미 프래니를 만났으니깐~ 

<<우리 모두는 잃는다. 사라지고, 증발해 버린다. 젊은 날의 용기와 격렬함, 무작정의 격노와 방종. 순간에 일백 퍼센트를 사는 강렬함. 그것은 틈새로 새어나가는 물처럼 우리로부터 빠져나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틈새다. 생명 보험과 주택 담보 대출이 시작되는 순간, 혹은 정기 검진에서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 그 과정이 시작된다. 따뜻한 목욕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아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생겨날 때 그 과정이 시작된다. 충동보다 안전을. 흥분보다 안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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