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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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뭔가 도회적이고, 몽롱하며 고건물이 담겨진 흑백사진이 떠오르는 동시에 이내 향긋한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주는 단어의 조합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도시’란 도쿄나 뉴욕처럼 너무도 정신없는 풍경으로도 떠오른다. 그렇다면 도시의 본질은 무언인가?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곳. 할어버지께서 손수 짓고, 아버지가 태어났으며 한번도 이사를 다녀본 적 없는 우리 집이 있는 이 곳 또한 도시인데 말이다.


4월의 세 번째 휴일.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쏟아지는 햇살, 기분 좋은 무궁화호의 떨림 속에 마주한 책은 혼자만의 여행에 외롭지 않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여행이란 자유로움이다. 설렘이고, 도전이며 새로움이다. 또한 지겹던 방의 휴지통까지 문득 그립게 느껴지는 것 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거창한 여행의 정의에 부합되지 않는 한나절의 갑작스런 여행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먼 훗날 이 책을 펼쳐들 때 서른, 무궁화호, 4월의 햇살이 연산 작용으로 기억될 테니깐.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의 기억에 담겨진 ‘도시’들을 말한다. 그곳엔 스무 해 전 자신이 있고, 함께한 친구들이 있으며 도시의 풍경과 역사가 있다. 아울러 ‘도시’는 ‘도시(都市)’란 단순한 의미가 아닌 그 곳에 살았던 인물들로 인해 대변되고, 기억되며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브뤼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루벤스 그림이 내 기억 속에 네로와 파트라슈와 함께 존재하는 것(며칠전 엄마랑 수다 떨면서 만화 이야기를 했었는데 책에서 또 만나니 너무 신기했다~)처럼 말이다. 뭔가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남는 건 물질적인 ‘사진’이 아니라 추상적인 ‘기억(추억)’이 아닐까 싶다. 같은 곳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풍경을 바라봐도 같은 수 없는 것. 그 다름의 이유를 일상 속에서 쉬이 발견하지 못하는 건 삶과 생각의 차이가 무채색의 도시 속에 함몰되어버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 같은 무채색의 ‘도시’인데 어째서 이런 모순이 생긴단 말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생활공간)’가 누군가에겐 자신의 다름을 찾을 수 있는 ‘도시(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 익숙한 거리의 가로수조차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정답인 것도 같은 이런 생각들이 바로 ‘도시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래된 사진 속에 담겨진 집이 모습이 지금과는 너무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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