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때론 삶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때가 있나보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으면서 줄곧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깐 말이다. 공산주의, 소비에트 국제학교,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마리와 그녀의 세 친구 리차, 아냐, 야스나의 소녀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이런 시절이 있었나싶게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난 지금도 일본에 존재하는 조선학교가 있음을 알면서 마리의 아버지가 공산당원이였다는 사실이 왜 그리 놀라웠을까? 괜히 책을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역시 뉴스에서 건성으로 듣는 이야기는 백날 들어봐야 효과가 없는가보다. 이렇듯 사전지식으로 연결이 안되니깐 말이다.


소비에트 국제학교는 공산주의라는 같은 사상을 가진 다양한 나라와 인종의 아이들이 다닌 학교였다. 하지만 아무리 사상이 같더라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문화적 차이며 신분의 차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마리 역시 그런 차이와 다름을 친구들과의 관계속에서 때론 무너트리고, 때론 인정하면서 그렇게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느꼈던 감동은 그녀들의 소녀시대가 아니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마리가 다시 세 친구를 찾으면서의 이야기였다. 1년의 공백이 있어도 어색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인데 어찌 30년도 더 지나버린.. 그리하여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친구들을 찾으러 다닐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그리워만 할 뿐 막상 찾을 용기는 없을꺼라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마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친구 찾기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혹 친구를 만나지 못하거나 불행한 소식이 들리면 어쩌나 진심으로 마음 졸였고, 재회를 했을 땐 진심으로 함께 행복했다.


다시 찾은 친구들은 소녀시절 모습에 비추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마리를 놀라게도 하고, 그와 반대로 변함없는 모습도 간직하고 있어 그녀를 감회에 젖게도 한다. 하지만 친구들의 변한 모습이나 그렇치않은 모습이나 모두들 시대의 영향이 컸기에 이 이야기의 힘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소비에트는 붕괴되었다. 만약 소비에트가 붕괴되지 않고, 공산주의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그녀들의 삶은 많은 부분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혹 프라하에서 소녀시절을 지나 처녀시절과 중년을 맞으면서 이웃사촌으로 오순도순 살았을지도..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녀들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 만족한다고 한다. 그 만족한 삶이 최선의 삶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으리라.


다만 더 이상 마리는 없고, (그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리와의 만남 이후 친구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에 자신을 대입시켜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글쎄.. 난 나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할 수 없지만 그저 슬프다는 느낌만 들었다. 소비에트 국제학교에서 만난 그녀들의 첫 만남조차 그녀들의 선택은 아니였으니깐 말이다. 물론 우리네 삶도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으로 시작되는건 없다. 단지 자신이 100%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그 선택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진실만을 알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보다 시대의 물결에 더 큰 영향을 받은듯한 그녀들이 조금 많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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