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으면서도 긴 하루

나무는 하루를 한해처럼 산다지

 

나무는 나무 시간을 살고

사람은 사람 시간을 살겠지

 

너와 내 시간도 다르게 흐를까

하지만 하루하루 쌓아가는 건 비슷하겠지

 

하루 사이에 바뀌는 것도 있겠지만

그게 끝은 아닐 거야

하루하루 사는 힘은 작지 않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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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오면 해야겠다 하는 것 가운데 다른 나라 말(거의 영어) 공부하기 있으세요. 지금 생각하니 저도 예전에 그런 생각 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영어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영어 잘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영어 잘 아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어요. 지금도 다르지 않군요. 가끔 영어 공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합니다. 전에 일본말만으로도 벅차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걸 잘 하면 누군가 나를 좋아할지도 몰라 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글을 잘 쓰면 나를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그러네요. 그래도 뭔가 잘 하는 사람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제가 잘 모르는 많은 사람이 저를 좋아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친구가 저를 떠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로 사람을 잡을 수 없을 텐데. 제가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군요.

 

 언젠가 본 책에서 영어 공부를 하려면 중학교 교과서로 시작하라고 하더군요. 이건 기초부터 하는 거겠습니다. 그 말 듣고 중학교 교과서 구해서 해 볼까 하는 생각 잠깐 했네요. 영어는 늘 생각뿐입니다. 지금은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말, 중국말, 스페인말, 노르웨이말……, 여러 나라 말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중역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중역이 안 좋은 건 아니겠지만, 옛날에는 그렇게라도 책을 보면 기뻤겠지요.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 잘 알아도 잘 모르는 건 영어로 나온 책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어 잘 알면 이 세상에 나온 책 많이 볼 수 있겠군요. 한국말로 나오는 것도 그렇게 많이 못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려는 건 일본말이에요. 영어는 잘 모르고 가끔 생각할 뿐입니다. 한국 사람이 익히기 쉬운 말에서 하나가 일본말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하고 한국 사이 때문에 일본이나 일본말 싫어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일본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예요. 어렸을 때 잠깐 이런 생각했어요. 일본말 공부를 해서 일본 사람한테 한국 소설을 알게 해야겠다는(한국을 좋아하게 만들어야지였던가). 그때 일본말 공부 아주 잠깐 하고 그랬습니다. 좀 큰 꿈이지요. 지금은 그저 일본말로 쓰인 만화나 소설을 보면 된다 생각합니다. 2017년에는 별로 못 봤습니다. 몇해 전부터 일본말로 쓰인 소설 한달에 한권 보려고 했는데. 이것도 마음먹고 해야 하는데, 다른 책을 먼저 보다보면 한달이 훌쩍 가 버렸습니다. 한달이 끝날 때쯤에는 다음 달에는 꼭 두권 보자 했어요. 그렇게 2017년을 보냈습니다.

 

 일본말에 관심 가진 건 더 예전이지만, 일본말을 자주 듣게 된 건 2007년부터예요. 제가 일본말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언젠지 잘 모르겠어요. 만화영화를 아주 많이 보다 성우 블로그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 걸 하던 어느 날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그걸 바로 잘 읽은 건 아니고 더듬더듬. 그것도 참 신기했어요. 공부해야지 하고 한 사람보다 더 오랫동안 만화영화 보고 난 뒤였습니다. 만화영화 <원피스>를 다시 보니 만화책으로 보고 싶더군요. 한국말로 나온 거 보다보니 일본에서는 그게 더 빨리 나온다는 거 알았습니다. 예전에 일본말 공부했다면 좋았을걸 하고는 기초책 조금 봤어요. 그렇게 하고 오랜 시간 뒤에 정말 일본말로 나온 <원피스>를 만났습니다.

 

 꼭 <원피스> 일본에서 나온 걸로 봐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보면 좋겠다 했을 뿐입니다. 저는 혼자 책 보고 익히는 거 잘 못해요. 이건 저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학교에 다니면 선생님이 설명해주잖아요. 글을 보고 혼자 잘 익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말로 해주는 걸 들으면 더 잘 기억하지요. 일대일로 배우고 성적이 많이 오르는 건 그래서겠군요. 과외 받아본 적 없지만. 저는 만화영화를 보고 듣고 일본말 익혔습니다. 재미있어서 보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일본말 조금 알아듣게 되고는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일본말 들을 방법 없을까 하다가 EBS 라디오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EBS 일본말 초급 중급이 밤 9시에 해서 듣기에 좋았어요. 책은 사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해(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밴드가 있어서 일본에서 나온 CD도 샀어요. 지금은 CD 듣지 못하고 비싸기도 해서 사지 않지만. 일본말 초급 중급 하기 전에 하는 영어를 가르치는 방송을 듣기도 했어요. 진행하는 사람이 한국말을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저는 마음속으로 영어가 아닌 일본말을 생각했습니다. 무척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봐요.

 

 영어를 일본말처럼 익혀볼까 했지만 잘 안 되더군요. 드라마가 저랑 좀 안 맞아서 그랬을지도. CSI 같은 건 괜찮은데. 여전히 영어에 미련이. 쉬운 책이나 영어사전이라도 사서 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일본말 오래 듣고 익혔지만 여전히 잘 몰라요. 그래도 얼마전에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몇해 전에 어떤 소설 앞부분을 공책에 옮겨 써두었어요. 그때 한국말로 옮겨 보려고 했는데 힘들어서 그만뒀습니다. 얼마전에 그거 다시 보고 했더니 예전보다 덜 힘들더군요. 아주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 늘었나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말로 쓰인 소설 읽는 속도는 여전히 느립니다. 한달에 한권이라도 보고 속도를 조금 내야 하는데.

 

 다른 나라 말은 관심이 있어야 하겠군요. 일본말은 한국말과 어순이 거의 같아서 익히기 쉽습니다. 한자 때문에 어렵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외우면 됩니다. 무엇을 외우느냐 하면 한자 읽는 거예요. 많이 듣다보면 저절로 기억합니다. 이상하게 예전에 듣고 익힌 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새로운 건 잘 남지 않기도 해요. 제가 외우려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저는 게으릅니다. 게으른 제가 일본말을 익혔습니다. 말은 거의 안 하고 쓰기도 조금밖에 못하지만. 이런 제가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좀 들여야겠지요. 무엇이든 시간을 들이면 조금은 잘 하겠습니다(이 말 여러 번 하는군요).

 

 앞에서 제가 일본말을 말한 건 다른 나라 말 공부하는 것보다 조금 쉬워서였습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다른 나라 말이 있다면 즐겁게 하세요. 하다 말다 하면 안 되고 날마다 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누가 못하게 해도 하겠지요. 다른 나라 말 안다고 어디에 쓰나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 말 알아들으면 재미있고 책을 볼 수 있잖아요. 일본말로 쓰인 책 보려면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일본은 책, CD 비싸요. 문고는 싸서 저는 거의 문고만 사서 봤습니다. 책이 비싸서 다른 나라 말로 나온 책만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도서관 만들기 어렵겠지요. 영어로 나온 책은 도서관에 오던데. 지금은 힘들다 해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런 도서관이 시마다 하나쯤 생기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없을 때라 해도 괜찮아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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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내가 연습장을 썼는지 모르겠다. 연습장은 줄이 없는 종이를 묶은 거다. 예전에는 그게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이런 말 하니 옛날 사람 같구나. 생각해보니 공책도 천원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천원부터 있지 않던가(작고 얇은 건 천원 밑이구나). 난 얇은 공책은 사지 않고 조금 두꺼운 걸로 산다. 이것도 예전에는 두꺼웠는데 지금은 얇다. 두꺼운 게 아주 없지 않지만 그건 비싸다. 무엇이든 값이 내리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구나.

 

 여전히 난 종이 볼펜(펜) 그리고 연필을 쓴다. 연필은 얼마전부터 다시 쓴다. 있는 거 그냥 두면 뭐 하나 해서. 어렸을 때부터 난 편지 쓸 때 먼저 다른 종이에 쓴 다음에 편지지에 옮겨 썼다. 편지지에 바로 쓰면 글자 잘못 쓸 수도 있어서 그랬는데, 그건 지금도 그런다. 편지지에 바로 쓰는 사람도 있던데 대단하다. 할 말이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꼭 그런 건 아니겠지.

 

 편지에 쓸 걸 연습장에 쓴 적은 없다. 연습장에는 영어 낱말을 쓰고 수학 문제를 풀고 공부하는 걸 썼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편지지에 쓰기 전에 편지를 먼저 쓴 건 달력 뒷면이다. 달력을 뜯어서 거기에 바로 쓰지 않고, 커다란 달력을 쓰기에 좋게 잘라서 풀로 붙였다. 어떤 때는 광고 전단지 뒷면에 썼다. 그건 반들반들한 게 아니고 보통 종이였다.

 

 이제는 다른 공부는 별로 안 하지만, 아직도 달력으로 연습장 만든다. 그렇게 잘 써두고 다시 보는 일 거의 없지만 책 읽으면서 적는 거 하나, 책 읽은 다음에 쓰는 거 하나, 이런 글 쓰는 거 하나 세 묶음을 쓴다. 편지는 풀로 붙이지 않고 낱장에 쓴다. 그 해 보는 달력으로 한달이 지나면 그걸 뜯어서 잘라둔다.

 

 난 어쩌다가 달력 뒷면을 쓰게 됐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편지를 어디에 먼저 쓸까 하다가 본 게 달력이었을지도. 십이월에는 달력을 받으러 가는데, 지난 십이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달력은 받지 못했다. 그렇게 늦게 간 것도 아닌데 다 나갔다고 했다. 거기에서는 못 받았지만 다른 데서는 받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할까. 연습장으로 쓸 달력이 있다는 게 어딘가 싶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흰 종이를 보면 그림 그리고 싶겠지. 난 흰 종이를 보면 거기에 뭔가 쓰고 싶다. 예전부터 새해가 오면 글을 써야지 하고 연습장을 만들었지만 거기에는 거의 못 썼다. 쓰지 않아서 다른 걸 썼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연습장을 다 쓰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도 연습장을 글로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그걸 공책에 옮겨 써야 하지만 글을 쓰면 그것도 즐겁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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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1-21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이면지 엄청나게 많고 사놓고 안 쓴 노트도 많은데 그래도 연습장은 계속 사네요 ㅠㅠ 저도 이면지로 연습장 만들어 써야겠어요. 간단한데 막상 실천은 안 되는. 종이를 어떻게 묶으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끈? 스테이플러?

희선 2018-01-22 01:40   좋아요 1 | URL
어쩐지 연습장 사는 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다란 달력 한장을 16등분으로 자르면 크기가 12.5X17.5 정도가 됩니다 이것보다 조금 작은 것도 있고, 이걸 반으로 자르면 수첩으로 쓰기에 좋아요 막 쓰는 수첩... 달력 큰 거 세 장을 모두 16등분 하면 48장이 나오잖아요 그거 한장 한장 윗부분에 풀 발라서 붙여요 윗부분에만 풀을 바르는 거여서 시간은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아요 딱풀도 잘 붙을지 모르겠지만, 물풀이 더 낫습니다


희선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22 02:49   좋아요 1 | URL
팁 감사드려요~ 저도 작년 달력 잘라서 만들어봐야겠어요!!

희선 2018-01-22 23:42   좋아요 1 | URL
제가 연습장 만드는 달력은 두껍지 않고 얇은 거예요 달력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있는 두꺼운 것도 있잖아요 그것도 잘라서 풀로 붙여도 괜찮겠지만... 그런 건 그림이나 사진이 괜찮으면 포장지 대신 썼어요 어떤 달력이든 그냥 버리는 것보다 뒷면 쓰는 게 더 낫겠지요


희선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문학동네 시인선 86
김상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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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떠돌이 부부가 마을로 흘러들었다.

그들은 주민 가운데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곽,

아슬아슬한 암벽 밑 울퉁불퉁한 황무지에 집을 지으려고

온 마을에 아부했고 겨우 집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허락한 주민 가운데 그누구도

땅 주인은 아니다. 주인은 나중에 온다, 군대와 함께.

부부의 영혼과도 같은 그 집을 무너뜨리러 온다.

 

 

2016년 10월

김상혁

 

-<시인의 말>, 5쪽

 

 

 

 한달에 한권이라도 보자고 한 시집을 석달 전에는 세권이나 만났다. 그때는 어쩌다가 그랬을까. 시집을 그렇게 봤다고 무언가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이달에는 시집을 세권이나 보다니’ 했을 뿐이다. 세권 보고 쓴 걸 그달에 모두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다(찾아보니 시집 세권 보고 쓴 거 올린 적 있다. 그때 다 올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책을 천천히 느리게 읽고 쓰고 블로그에는 더 느리게 올린다. 게으른 것도 있고 다음달로 미루고 싶은 것도 있어서다. 지난달에는 시집을 한권도 못 보았다. 시집을 한권도 못 보고 지나간 달은 무언가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시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한번 볼까 했는데 이제야 만났다. 제목은 괜찮게 보이지만 시는 잘 모르겠다(이 말 빼놓지 않고 하는구나). ‘이야기’ 라는 말이 있어선지 시가 길고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집이 얇구나 생각했지만 끝까지 보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시를 좀더 천천히 봐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냥 다른 때와 다르지 않은 속도로 보았다. 아주 빠르지 않지만.

 

 맨 앞에 나온 시인의 말부터 이야기다. 땅주인도 아닌 마을 사람들한테 부부가 어떤 땅에 집을 짓겠다고 아부했는데, 땅주인은 나중에 군대와 찾아온다니. 이 이야기 자체로도 슬프게 보인다. 슬픔보다 어이없음인가. 지금 갑자기 예전에 많았던 판자촌이 떠올랐다. 거기 살던 사람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런 판자촌을 지은 건 땅주인이었을까 집장사였을까. 그런 곳에서라도 살았던 사람은 조금 나았을까. 돈이 없어서 자기 몸을 누일 방 한칸도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땅주인은 재개발이네 하면서 좋지도 않은 집에 살던 사람을 모두 쫓아냈겠지. 그런 일이 오래전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오래전이 아닐 때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지 않을까. 소설에서 재개발이 된다는 곳 집을 사서 살던 사람을 보았는데, 그런 사람은 진짜 있었겠지. 시인의 말과 판자촌이나 재개발 지역 사람하고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땅주인이 군대와 함께 찾아오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기쁨을 말한다면 그 사람은 기쁨이겠지. 기쁜 사람이 날마다 찾아가 두 팔로 나무를 안아주었다, 나무는 자라 숲이 되고, 숲은 끝없이 퍼져 해안까지 닿았다, 그렇대도 그것이 나무의 기쁨, 숲의, 바다의 기쁨은 아닌 것이다.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생각하는 기쁨

 영혼의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쁜 남자가 식구를 위해 해마다 울타리를 칠하였다, 기쁜 아내가 기쁜 아이를 낳았다, 그들 행운이 이웃을 웃게 만들었다, 그렇대도 이불을 뒤집어쓴 저마다의 행복한 꿈속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열매가 쏟아지는 미래, 정성스럽게 채색된 추억, 잠든 이들이 기쁨에 사로잡히는 어둡고 안전한 시간. 거기서 깨어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깨지지 않는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기쁜 생활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가 가방에 챙겨준 물건들이 하나둘 망가지는 동안 기쁜 아이는 자라 많은 아이들이 되었다, 그들이 끝없이 퍼져 바다 건너까지 닿았다, 거기서는 기쁜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곳의 기쁨이다.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옛날 사람을 떠올리는 기쁨

 죽은 사람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기쁜 생각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쁜 생각으로 바라보는 기쁜 물결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쁨의 왕>, 14~15쪽

 

 

 

 남의 기쁨은 남의 것이지만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웃기도 한다.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싶어서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도 한다. 그런 걸 듣고 겉으로는 기뻐해도 마음속으로는 조금 슬퍼하기도 할까. 아니 꼭 그러지는 않겠지. 1연에서 기쁜 사람이 두 팔로 나무를 안아주자 나무는 잘 자랐다. 이건 분명 기쁜 사람 마음이 나무한테 전해져서일 거다. 깊은 것까지 똑갚이 느낄 수 없다 해도 다른 사람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겠지. 이 시에서는 기뻐하는 게 사람만이 아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기쁜 생각, 기쁜 물결도 말한다.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기쁘다. 이건 기쁘다는 말을 봐설지도.

 

 

 

 나는 나보다 슬픈 사람을 다섯이나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몽유병자, 주정꾼, 어린 자식을 둘이나 잃은 부인도 있어요 나는 그들을 다 병원에서 봤습니다

 

 잠결에 자신을 찔렀고, 취해서 애인을 때렸고, 아이들이 바다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네요. 너는 어떻게 되었니? 너도 우리만큼 슬프니? 나한테 질문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한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슬픔의 왕>에서, 18쪽)

 

 

 

 여기에는 기쁨의 왕도 있고 슬픔의 왕도 있다. 슬픔의 왕을 볼 때는 조금 슬펐다. 내 마음이 슬퍼서였겠지. 시에서 말하는 사람 ‘나’는 자신한테 어떤 슬픔이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나중에 말했을지도. ‘나’는 자신의 슬픔보다 다른 사람 슬픔이 더 커 보였나 보다. 이건 조금 반대 같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 일이 아닌 자기 일이 되면 그것을 더 크게 느끼지 않는가. 난 ‘나’의 슬픔도 ‘나’한테는 무척 크리라고 생각한다. 슬픔도 누군가한테 말하면 좀 낫다고 한다. 아무한테나 말하기보다 그걸 들어줄 만한 사람한테 하면 좋겠다. 병원 의사는 불평하지 않고 듣겠지.

 

 사람은 다 이야기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이야기가 남기도 하겠지. 누구한테나 이야기 한두가지 아니 더 많이 있을 거다. 그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괜찮겠다. 자기 이야기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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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도 바깥도 어둠에 잠겼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내가 자려고 했을 때는 잠이 왔다. 예전에는 잠이 쏟아질 때 누우면 쉽게 잠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은 잠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방 안이 휑해설까. 지금 방에는 물건이 별로 없다.

 

 얼마전에 난 잘못해서 책더미에 깔렸다. 지진이 일어나서 쌓아둔 책이 무너진 건 아니다. 방 안에 널린 물건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무언가를 잡았는데 그게 책더미였다. 책은 무너지고 난 그 밑에 깔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깥이 어두웠다. 일어나려고 하니 책이 무거워서 힘들었다. 어딘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젠가 책에 깔려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그날은 대충 정리하고 잤다.

 

 다음 날 나는 책과 물건을 다른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게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책이나 물건을 치운 방은 넓어서 좋았지만 다른 때보다 조용해서 이상했다. 평소에 난 책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잤다. 책에 깔렸다가 잠든 밤에도 책들이 하는 이야기를 잠결에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제대로 정리 안 해서 그렇지.”

 

 “근데 태경이는 괜찮을까.”

 

 “아까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으니 괜찮은 거겠지.”

 

 “태경이는 조심성이 없다니까.”

 

 “맞아, 맞아.”

 

 대충 이런 말이었다. 책들은 나를 자기 친구로 생각했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책들이 가까이에 없어서 잠이 오지 않는가 보다. 다시 책을 내 방으로 옮겨야겠다.

 

 내가 책들을 다른 방으로 옮겼을 때 책들은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울고 있을지. 살짝 보고 올까. 아니다, 책들은 내가 책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거 모른다.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두는 게 낫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준 책들을 쉽게 옮겼다. 그것도 내가 잘못하고는 책을 탓했다.

 

 ‘미안해, 책들아. 앞으로는 내가 조심할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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