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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여러 단편소설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어렵습니다. 단편은 하나하나로 봐야 하는 거군요. 그래서 빨리 다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보고 그걸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생각해야지 했어요. 단편 소설집을 만날 때는 늘 그래요. 아니 마음이 왔다 갔다 할지도. 한편 보고 생각하고 다른 걸 보고 싶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기도 해요. 제가 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예요. 하나씩 보고 생각하려면 시간이 걸려서. 글을 쓴 사람은 어떨까요. 한편 한편 천천히 보길 바랄 것 같아요. 김애란 소설은 예전에 몇권 봤는데 이번에 본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달라진 게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제가 한사람 소설을 줄곧 본다고 그 소설가가 어떻게 글을 써 나가는지 알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걸 잘 아는 사람도 있던데, 그만큼 소설이나 소설가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겠지요. 소설가가 자신과 상관없는 글을 쓴다 해도 자기 이야기를 하나도 안 쓰는 건 아닐 거예요. 그렇다고 꼭 자기 나이대로 쓰는 것도 아니겠지요.
이 소설집에 담긴 소설에는 제목과 비슷한 게 여러 편이더군요. 자기 시간은 멈췄는데 바깥은 여전히 잘 돌아가는. 어쩐지 소설이 다 쓸쓸한 느낌이 듭니다. 아이를 잃은 사람이 나오는 <입동>, 남편을 잃은 사람이 나오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여덟해 동안 사귄 사람과 헤어지려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 <건너편>. 주인한테 버림받은 개를 데려다 두해 동안 함께 사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무척 쓸쓸한 풍경이 보이는 <풍경의 쓸모>, 다문화 가정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엄마는 아이가 마음 따듯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가리는 손>, 그리고 사람이 아닌 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침묵의 미래>. 모두 일곱편이 실렸어요. 일곱편이어서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다 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좀 오래 걸렸어요. 앞에서도 이런 말 했군요. 단편소설집 처음 시작은 괜찮은데 두번째를 보다보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기 힘들어요.
한국소설 그것도 단편을 보면 세상에는 힘든 사람만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네요(이 말은 처음이 아닐지도). 소설이기에 힘든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요. 어딘가에 살지도 모를 사람이잖아요. 부부가 집을 사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했을 텐데, 아이가 사고로 죽으면 어떻겠어요. 힘들게 얻은 아이였는데. 말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집은 왜 샀을까 했을 듯합니다. 그것뿐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하지 않아야 했다 했겠습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 아픔은 평생 가겠지요. 그래도 두 사람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산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입동>에 나오는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남편이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둘 다 죽어요. 남편을 잃은 슬픔도 무척 크겠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구하려 할 때 자기 몸은 생각하지 않을 듯합니다. 남편은 제자를 구하고 자신도 살려고 했을 거예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졌던 명지가 앞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살겠지요.
부모없이 할머니하고 살면 무척 외롭겠지요. 아니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열살 노찬성은 고속도로 휴게소 한쪽에 누군가 매두고 간 개를 데려다 길러요. 얼음을 주었을 때 느낀 것 때문에. 그건 뭘까요. 따스함일지 목숨일지. 그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느끼라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적이 없어서. 빨강머리 앤에서 밤에 앤과 마릴라 아주머니가 린드 부인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 손을 잡았을 때 느낌과 비슷할까요. 찬성은 에반(개 이름)을 동생처럼 여겼어요. 꽤 오래 산 개로 두 해가 지나자 건강도 안 좋아졌어요. 찬성이 아껴둔 돈으로 에반을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암이라고 했어요. 열두살짜리 아이가 그 말을 들어도 어찌할 수 없겠지요. 찬성은 에반을 안락사시켜주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마련해요. 그런데 그날 동물병원이 쉬어서 찬성은 에반한테 며칠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돈을 조금씩 써요. 그 모습 왜 그렇게 슬프게 보일까요. 요즘 아이는 모자란 것 없이 지낸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찬성이 자라면 에반한테 미안하게 여길 듯합니다. 찬성이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잘못한 것처럼 보여요. 아이한테 십자가를 지운 것 같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도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결혼했을 때보다 헤어지는 게 조금 편할지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사람 마음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거나 다시 좋은 사이가 되려고 서로 애쓸지도. 도화가 이수와 결혼한 사이였다면 예전 마음이 사라졌다고 헤어지려고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건너편>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이수가 거짓말을 안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싶기도. 결혼한 사람도 거짓말 안 하는 건 아니겠군요. <침묵의 미래>는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여기 실린 소설에서 가장 별납니다. 미국 원주민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것보다 사라지는 말 이야기인 듯해요.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말이 사라지겠지요. 말만 사라지는 건 아니겠습니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국말은 남아 있을까요. 흔적만 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풍경의 쓸모>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쓸쓸한 풍경이라 했군요. 이 소설에 나오는 정우 같은 사람 실제 있을 것 같아요. 정우는 교수가 일으킨 차 사고를 자신이 뒤집어 씁니다. 그렇게 하고 일자리를 얻어요. 이 정도만 말할게요.
엄마는 자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겠지요. 건강한 것뿐 아니라 예의도 생각하기를 바랄지. 재이 아빠는 한국사람이 아니고, 재이 엄마는 혼자 아이를 길러요. 중학생 아이가 할아버지를 때리는 동영상이 돌고 거기에는 재이가 있었어요. 재이 엄마는 재이가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재이 엄마는 그 모습이 재이가 놀란 게 아니고 웃음을 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요. 재이는 나쁜 아이는 아닌 듯해요. 어른도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때리는 모습 보고 말리기 어려울 거예요. 그 모습을 보기만 한 재이를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재이는 한국사람과 다른 모습 때문에 안 좋은 일도 있었어요. 그래서 더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을지도. 하지만 앞으로는 재이가 다른 사람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재이 엄마는 바라지 않을까요. 재이가 다른 사람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선
☆―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을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265~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