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것 낭만픽션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예술은 무엇일까. 이 말을 해도 나도 잘 모르겠다. 예술 하면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예술에는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들어갈 거다. 오래 남길 수 있는 것도 있고 남기지 못하는 것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 여기에는 보이는 것만 한 사람 이야기가 담긴 듯하다. 다도는 좀 다르구나. 다도는 정신, 마음과 상관있겠지. 그것도 작고 수수한 것보다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 다도는 화려하지 않아야 할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금으로 다실을 짓고 그 안도 금색으로 채웠다. 그런 걸 센 리큐는 아주 싫어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리큐의 다도를 알아주었는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따라하려 했지만 달랐다. 히데요시는 다도를 좋아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리큐가 어두운 색 다완을 쓰고 다실도 아주 좁게 짓자 히데요시는 리큐가 무인이 아닌 상인이어서 그렇다 했다. 이런 마음을 바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리큐는 죽어야 했다. 윗사람이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와비사비라는 걸 만든 센 리큐 제자는 많았다. 후루타 오리베는 센 리큐를 이어 히데요시 다두가 된다. 오리베는 리큐와는 다른 다도를 하려 했다. 좀더 화려하고 무인에 가까운. 오리베가 다도를 했지만 무인이었다. 히데요시한테는 오리베 다도가 괜찮았지만 이에야스는 오리베가 자신을 배신하려 했다 여겼다. 오리베도 배를 가르고 죽는다. 리큐와 오리베에서 이어진 사람은 고보리 엔슈다. 본래 이름은 고보리 마사카즈다. 마사카즈는 오리베 제자로 리큐나 오리베처럼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사카즈는 다실, 정원, 다완, 다실 꽃 장식, 도예, 다구 감정, 시가나 문장 같은 여러 영역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마사카즈는 무인이었다. 무인으로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선지 뜰을 만들 때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윗사람)이 바라는대로 했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게 저항했다. 전국시대에는 무인이 많았다. 무인이라고 해서 모두 싸움을 잘하지는 않았겠지. 무인에는 싸움이 없을 때 뜰을 가꾸거나 다른 걸 한 사람도 있었을 거다.

 

 지배자가 바뀌면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센 리큐도 그렇고 흉내내기극 사루가쿠를 한 제아미도 그랬다. 제아미가 하는 사루가쿠를 좋아하던 쇼군이 죽자 제아미는 사루가쿠를 하지 못하게 되고 사루가쿠를 하는 이야기만 썼다. 시간이 더 흐르고 또 쇼군이 바뀌었을 때는 먼 곳으로 쫓겨났다. 그런 일은 조선에도 많았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힘들겠지. 본래 있던 것이 아닌 좀 다른 것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여기 나온 사람은 거의 다 그랬다). 운케이는 불상을 조각했는데 그 시대 양식과는 다른 걸 하려고 했다. 불상은 그 시대 양식을 따르지 않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옛날에 다르게 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예술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절에 불이 나고 불상이 사라지면 아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운케이는 그걸 더 좋게 여겼다. 그건 자신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어서였다. 예전 것뿐 아니라 새로운 것도 함께 있으면 괜찮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난 고집이 없는 걸까. 아니 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더 좋다.

 

 여기 실린 사람은 일본 사람이고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사람들한테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본래 있던 것이 아닌 다른 걸 하려 한 거다(앞에서도 말했구나). 도요 셋슈는 오랫동안 애써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이와사 마타베에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좀 살만 해지니 높은 사람이 마타베에를 불렀다. 그때 마타베에는 시골에 살았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서 먼 곳에 쉽게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힘들었다. 살던 곳을 떠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었겠지. 그래도 마타베에는 집을 떠났다. 고에쓰는 서예에 뛰어났는데 다른 것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예술이라는 건 하나가 아니고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고에쓰는 다른 건 그저 그랬다. 그런데 왜 여러 가지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을까. 우키요에 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샤라쿠도 그림 그리기 쉽지 않았다. 샤라쿠는 먹고 살려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데 타협한다. 그렇게 해도 잘 팔린 건 아닌 듯하지만. 샤라쿠는 열달 정도 활동했다는데 지금도 이름이 남아 있다니 신기하다. 나도 이름 들어본 적 있다. 그림은 봤는지 못 봤는지 잘 모르겠다.

 

 세이초가 옛날 예술가로 소설을 쓴 건 의뢰를 받아서였다.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린 <조불사 도리>를 쓰려고 하는 소설가 이무라 이야기로 썼다. 이 소설에서 이무라는 세이초 분신이겠지. 도리는 백제에서 왜로 건너간 시바 닷토 손자였다. 이 말을 보니 도리를 잘 몰라도 그냥 반가웠다.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그렇겠지.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이 옛날에는 백제였다. 세이초가 쓴 것과 여기 나온 사람이 같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이니 그건 괜찮지 않을까. 아니 아주 다르지는 않을 거다.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한 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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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

 

 

 

 

연필은 많은 글을 쓰고 길이가 짧아졌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연필심으로

마지막까지 글을 쓰리라 마음먹었어요

한 삶을 살다 가는 건

멋진 일이겠지요

 

 

 

 

 

 

 

한 삶

 

 

 

 

나고 살고 병들고 죽는

한 삶

누구나 다 그렇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화나고

때로는 괴로운

한 삶

 

살아보세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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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 어떤 노래 앞부분이 자꾸 생각났다. 내가 어디에서 이 노래를 들었지,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어디에서 들은 건지 생각났다. 바로 만화영화 시작할 때 나온 노래였다. 그건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이다. 텔레비전 안 본 지 무척 오래됐는데, 아주아주 오랜만에 텔레비전으로 이걸 보게 됐다. 요새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일본에서 하는 만화영화를 빨리 볼 수 있다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지상파 방송은 아니지만.

 

 이건 애니맥스에서 새벽(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30분에 한다. 일본에서 하는 걸 그대로 하는 건 새벽 3시다. 12시 30분에 하는 것밖에 못 봤다. 3시에 하는 걸로 보고 싶은데. 많이 다르지 않겠지만 조금 다른 것도 있다. 그게 한국에 안 맞는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잔인한 부분은 흐릿하게 보인다. 오니와 싸우는 거여서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새벽 12시 30분에 하는 거니. 19세 이상이 볼 수 있다. 만화책은 다 볼 수 있는 것 같던데.

 

 일본말로 오니(鬼)라고 하면 도깨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도깨비를 나타내는 다른 말이 있기도 하다. 오니는 도깨비보다 좀 안 좋은 게 아닌가 싶다. 귀신할 때 그 귀(오니)니. 애니맥스에서는 혈귀라고 했다. 이 만화 배경은 일본 다이쇼로 여기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오니가 있다. 카마도 탄지로가 숯을 팔러 마을로 간 사이 엄마와 동생들이 오니한테 습격을 받고 거의 죽고 여동생 네즈코만 살았다. 하지만 네즈코는 오니가 됐다. 탄지로는 오니가 된 네즈코를 사람으로 되돌리려고 귀살대에 들어간다.

 

 

 

 

 

 

 

 

 

 귀살대는 말 그대로 오니를 죽이는 집단이다. 집단이라 하니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렇지는 않다. 귀살대 사람은 따로따로 움직인다. 까마귀가 오니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거기에 가서 오니를 죽여야 한다. 죽인다고 하니 무섭구나. 어쩔 수 없다, 오니는 사람을 잡아 먹으니 말이다. 그게 본능이라 해도 사람한테는 해를 끼치는 거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 오니가 있다면 죽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오니는 오니고 사람은 사람인데. 본능대로 살 수밖에 없지 않나. 아니 오니는 본래 사람이었으니 봐줄 수 없으려나.

 

 탄지로는 키부츠지 무잔을 찾으려 했다. 왜 키부츠지 무잔을 찾느냐 하면 오니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알지도 몰라서다. 키부츠지 무잔만이 사람을 오니로 만들 수 있다. 탄지로 집에 나타난 건 키부츠지 무잔이었던가 보다. 탄지로와 키부츠지 무잔은 한번 만났다. 키부츠지 무잔이 탄지로를 봤을 때 떠올린 사람이 있는데 탄지로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 사람은 탄지로와 가까운 사이로 아빠가 아닐까 싶지만 모르겠다. 처음에 아빠는 죽었다고 나왔는데. 그 말만 나오고 다른 건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알 수 있을지. 키부츠지 무잔에서 무잔은 몹시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말인 무참(無惨)이 아닐까 했는데 맞았다.

 

 귀살대에 붙고 탄지로가 검을 받게 됐을 때, 칼날 색이 어떨지 스승과 검을 가져다 준 사람이 알고 싶어했다. 그 검은 특수한 돌로 만든 걸로 그걸로 오니 목을 베어야 오니가 죽는다. 탄지로 칼날은 검은색이 됐다. 키부츠지 무잔이 탄지로를 보고 떠올린 사람이 가지고 있던 칼날은 붉은색이었다. 탄지로 스승과 검을 가져다 준 사람은 탄지로 검도 붉은색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검은색이라니. 검은색은 그리 많지 않고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출세하기 어렵다는말도 있다고 한다.

 

 만화로 나온 걸 다 만화영화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탄지로가 키부츠지 무잔과 싸우고 네즈코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건 못 보겠지. 그런 건 못 봐도 앞으로 남은 거 즐겁게 봐야겠다. 다른 동료도 만났다. 겁이 엄청 많은 아카마츠 젠이츠는 그 모습과 다르게 멋지기도 하다. 어떻게 귀살대에 붙었나 했는데 그 비밀이 나중에야 나오다니. 자신은 약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약하지 않다. 자신이 자신을 모른다니. 언젠가는 알게 될까. 탄지로는 냄새를 잘 맡고 젠이츠는 소리를 잘 들었다.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나오는구나.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여는 노래

 紅蓮華(홍련화) - LiSA

 https://youtu.be/CwkzK-F0Y00 노래 듣기

 

 

 만화영화에 나오는 노래지만 괜찮다.

 

 일본에서는 만화영화가 하면 인터넷 라디오도 하는데 이것도 한다. 첫번째 건 못 듣고 두번째부터 들었는데 바로 듣지 않아서 조금 밀렸다. 듣다보니 조금 우스운 게 나왔다. 탄지로가 귀살대 시험 볼 때 만난 오니가 화를 내면서 ‘아아아, 연호가 연호가 바뀌었어’ 말하는데 탄지로와 젠이츠를 하는 성우가 그 말을 따라했다. 그게 왜 그렇게 우스운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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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좁은 틈도 쉽게 빠져나가는 고양이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그저 사람을 피하는 걸지도

 

어딘가에 네가 마음 편히 쉴

볕이 잘 드는 곳이 있기를

 

 

 

2

 

문 틈으로 새어드는

빛속에서

제멋대로 춤추는 먼지,

자유로워서 멋지다

 

 

 

3

 

바람이 다닐 틈

마음이 다닐 틈

고양이가 다닐 틈

…………

틈을 두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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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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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식물 그밖에 여러 생물이 산다. 사람과 가까이에 사는 것도 있고 사람과 상관없는 곳에 사는 것도 있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옛날에는 집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하고도 조금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예전 소설에는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았을 때 아이가 우는 모습도 나왔다. 지금은 소 돼지 닭은 그저 고기일 뿐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더 빨리 더 많이 고기나 달걀을 얻으려 한다. 아무리 사람이 먹이를 주고 기른다 해도 사람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까. 고기인 동물은 세상에 나자마자 비좁은 곳에 갇혀 살다 세상이 어떤지도 모르고 죽음을 맞겠지. 만약 사람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동물이 사람과는 달라도 누려야 할 권리가 없을까. 난 있다고 생각한다. 고기로 먹히는 동물이라 해도 좀 더 좋은 데 살면 좋겠다. 이런 걸 먼저 말하다니.

 

 한국에는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가장 많은 건 개와 고양이겠지. 드문 건 뭐가 있을까. 뱀. 이게 가장 먼저 생각나다니.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듯하다. 그런 동물은 기르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 동물은 사람 욕심 때문에 본래 살던 곳을 떠나고 자유를 잃었을 테니 말이다. 동물원 동물도 다르지 않다. 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다니. 무레 요코는 고양이 한마리와 살았다. 그런데도 무레 요코는 다른 동물이나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사람과 함께 사는 고양이가 그 집 사람이 다른 고양이 이야기를 하거나 사진을 보면 샘낼까. 무레 요코 고양이 시이는 그랬다. 그런 모습 귀여울 것 같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오래 토라지지 않겠지. 사람이 고양이한테 마음을 쓰면 고양이 마음은 바로 풀릴 거다. 사람도 아주 작은 일로 토라졌던 마음이 풀리기도 하겠다.

 

 책 제목에 나오는 아저씨 고양이는 무레 요코 집에 밥을 먹으러 찾아오는 길고양이다. 짙은 밤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있어서 시마 짱이라 이름 지었다. 시마가 일본말로 줄무늬다. 시마 짱은 무뚝뚝하고 울지도 않았다. 난 고양이가 사람한테 친한 척하는 걸 잘 모른다. 길고양이도 사람한테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시마 짱은 그냥 나타나서 밥을 달라고 눈빛으로 말했다. 시마 짱은 무레 요코 집과 무레 요코 친구인 옆집 그리고 여러 곳에 먹이를 먹으러 다니는 듯했다. 무뚝뚝하고 사람을 잘 따르지 않아도 자꾸 보면 정이 들기도 하겠지. 무레 요코와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시마 짱이 다쳤을 때 집을 만들어줘야겠다 하고 만들어줬다. 시마 짱이 그 집에서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잤나 보다. 그냥 그 집에 눌러앉아 살아도 좋았을 텐데 시마 짱은 그러지 않았다. 시마 짱은 배부르고 편안한 곳보다 힘들어도 자유로운 바깥이 더 좋았을까.

 

 길고양이는 집고양이보다 사는 게 힘들고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길에서 먹을 걸 찾거나 다른 고양이와 싸우기도 해서겠지. 시마 짱이 다치고 오거나 한동안 안 오다 어딘가 아픈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마 짱이 흘린 먹이를 찌르레기와 참새도 먹었다. 무레 요코는 찌르레기 부부와 참새 부부라고 했다. 시마 짱이 흘린 걸 찌르레기 부부가 와서 먹고 찌르레기 부부가 남긴 걸 참새 부부가 와서 먹었다. 차례를 지키는 모습 재미있다. 시마 짱이 오지 않을 때는 찌르레기 부부와 참새 부부도 오지 않았다. 새들은 어디선가 보고 있다 시마 짱이 오면 가까이 왔을까. 오랫동안 시마 짱이 오지 않고 무레 요코는 시마 짱이 죽은 듯한 꿈을 꾸었다. 정말 시마 짱은 어딘가에서 죽은 건지도. 함께 사는 고양이가 아니어도 보다가 못 보면 슬플 듯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이가 무언가를 보고 찌르레기 부부와 참새 부부가 나타났다. 무레 요코는 시마 짱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동물은 혼을 볼 수 있다고도 하는데 정말 시마 짱이 찾아온 걸지도.

 

 여기에는 고양이뿐 아니라 개 이야기와 여러 동물 이야기가 담겼다. 무레 요코는 쥐를 많이 기른 적도 있단다. 쥐는 빨리 늘고 안 좋을 수도 있는데. 무레 요코는 사람들이 쥐를 싫어하는 걸 아쉽게 여겼다. 쥐는 별로여도 햄스터쥐는 귀엽다. 사료를 다섯알 남겼다 자기 전에 먹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집 사람이 다른 사람 고양이를 잠시 맡았는데, 그 집 고양이가 남겨둔 사료를 먹어버렸다. 그 집 고양이는 자기 전에 빈 먹이 그릇을 보고 풀이 죽었다. 사람이라면 니가 내 거 먹었지 할 텐데, 고양이는 그저 고개만 숙였다. 그 고양이는 왜 먹이를 딱 다섯알 남겨두고 자기 전에 먹었을까. 신기한 일이다. 고양이와 개 그밖의 동물과 사는 사람은 동물한테 위안 받겠지. 동물이 살았을 때 더 많이 예뻐하고 마음을 알려고 하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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