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만났습니다. 몇해 전에 우연히 이 책 《비탄의 문》이 일본에서 나온 거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도 나왔네요. 책을 보면서 제목 ‘비탄의 문’이 가리키는 건 뭘까 했어요. 바탄의 문은 모든 이야기가 태어나고 돌아오는 곳 이름없는 땅으로 들어가는 문이더군요. 말이 태어나는 곳도 있는데, 이런 건 설명하기 어렵군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했습니다. 이름 없는 땅은 《영웅의 서》에 나온 적 있을 것 같아요. 그 책은 못 봤지만, 거기에 나온 것 같은 아이가 여기에도 잠깐 나왔어요. 이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가 섞였어요. 자꾸 보다 보니 판타지에 가까웠는데, 마지막에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미시마 고타로가 이름 없는 땅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현실에 제대로 발을 딛고 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인터넷에는 아주 많은 말이 떠다닙니다. 좋은 말도 있겠지만 안 좋은 말도 많겠지요. 저는 안 좋은 건 별로 못 봤지만. 제가 보는 곳이 얼마 안 돼서 그렇겠습니다. 한국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이야기를 하고 정리하는 곳 있을까요. 열아홉살로 대학교 1학년인 미시마 고타로는 인터넷 사회 경비회사인 쿠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동아리 선배 마키가 고타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잘 맞는다고 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일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해요. 실제로도 인터넷 사회 경비회사 같은 곳 있겠지요.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 안도 사회인데 그걸 잊고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거기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고타로가 일하는 곳에서는 범죄가 일어날 것 같은 사이트나 블로그를 감시해요. 마약, 자살, 학교 폭력, 살인…….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온갖 말을 보다보면 거기에 물들지도 모르잖아요. 고타로 선배인 마키는 고타로한테 이 일에 너무 빠지지 마라 합니다. 이쪽이 어둠을 오래 지켜보면 어둠도 이쪽을 본다고 하잖아요.
여러 달에 걸쳐 몸 어딘가를 잘라내고 시체를 버린 사건이 일어나요. 그 일이 여러 번 일어나자 세상에서는 연쇄살인으로 보고 인터넷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쿠마에서는 그 사건과 상관있는 걸 찾아봐요. 그러다 고타로와 함께 일하던 모리나가가 노숙자가 사라진 일을 알아보다 사라져요. 고타로는 모리나가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모리나가가 다닌 곳을 더듬어 보다 한 건물에 이릅니다. 그 건물 가까운 데 부서진 모리나가 휴대전화기가 있었어요. 고타로는 모리나가가 밤에 그 건물에 왔다는 걸 알고 고타로도 밤에 건물에 들어가요. 거기에는 고타로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지금은 경찰 일을 그만둔 쓰즈키로 옥상에 있는 가고일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말을 듣고 알아보다 밤에 건물에 가 보기로 했어요. 두 사람이 건물에 갔을 때 옥상에는 낮에 있던 괴물 조각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정말 나타나요. 전사 가라가. 가라는 말의 정령이 태어나는 곳에서 왔다고 해요. 가라는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서 힘을 길렀어요. 죄를 저지르고 이름 없는 땅에 간 아들을 구하려고.
평범한 사람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은 마주치는 게 좋을지 안 좋을지. 사는 곳이 다르니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곳 사람은 다른 세계 사람이 가진 힘에 사로잡힐지도 모르니까요. 실제 고타로는 쿠마 사장이 누군가한테 죽임 당하자 가라한테 힘을 빌려요. 쿠마 사장이 죽임 당한 일은 연쇄절단마가 저지른 다섯번째 살인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연쇄살인과 상관없었어요. 쿠마 사장을 시샘하고 미워한 사람이 저지른 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커다란 바람에 먹혔어요. 고타로는 가라한테 빌린 왼쪽눈으로 말을 봐요. 그 사람이 한 말 형태랄까. 안 좋은 생각이나 말을 한 사람 뒤에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어요. 고타로는 쿠마 사장을 죽인 여자를 경찰이 잡게 하지 않고 가라한테 맡깁니다. 가라는 사람의 바람을 모아서 힘을 길렀어요. 하지만 고타로가 사람을 죽인 사람을 심판하거나 벌을 주면 안 되지요. 고타로는 조금씩 괴물에 가까워져요. 쓰즈키는 고타로한테 그만 본래 생활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사건도 연쇄살인이 아니었어요. 그건 경찰이 빨리 범인을 잡지 않아 일어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두번째 사건을 보고 같은 범인이다 말한 것 때문인지. 다 가까운 사람한테 죽임 당한 거였어요. 실제로도 가까운 사람한테 죽임 당한 사람 많겠지요. 연쇄살인도 있겠지만.
말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말도 여러 번 하더군요. 자신이 한 말에 묻히고 바람에 지배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릇된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건 쉽습니다. 사람은 다 자신 안에 있는 빛과 어둠의 균형을 잘 지키려고 합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군요. 그건 쉽게 깨지기도 합니다. 고타로도 사람이 아닌 괴물에 가까워졌어요.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보고 나쁜 사람이니 자신이 벌을 줘도 괜찮다 생각한 듯해요. 그건 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도 같습니다. 힘을 가져도 마음 균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데. 어쨌든 고타로는 현실로 돌아와요. 어떤 일은 가라가 보여준 환상이기도 했어요. 고타로가 가라한테 빌린 왼쪽눈으로 나쁜 것만 본 건 아니예요. 아이를 생각하는 따스한 엄마 마음도 보았어요. 고타로는 세상에 나쁜 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해야겠네요.
좋은 말을 하면 기분 좋고 안 좋은 말을 하면 기분 별로지요. 좋은 말을 생각하고 하는 게 더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도록 애써요.
희선
☆―
“늙은이, 너는 갈망을 잃고 편해지지 않았는가. 왜 다시 괴로움을 자청하는 거지.”
“그게 사람이니까!”
진심으로 격분하는 쓰즈키 모습은 고타로도 처음 보았다.
“어떤 성가신 감정이든, 꺼림칙한 기억이든, 속으로 삼키고 쌓아서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게 사람이야.”
콧김이 거칠었다. 계단에서 숨차할 때처럼 씩씩거렸다.
“무엇보다 나는 ‘편해지기를’ 바란 적 없어. ‘편하게 해달라’고 네게 부탁한 적도 없고. 네가 멋대로 그런 짓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야말로 무사태평한 쭉정이 꼴이 됐다고.” (《비탄의 문 2》에서, 106~107쪽)